[삐삐언니의 책방] 뇌가 병들어도 삶은 계속된다
[삐삐언니의 책방] 뇌가 병들어도 삶은 계속된다
  • 이주현 기자
  • 승인 2022.12.28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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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삐언니의 책방 ⑫ 마음의 눈-빗소리가 어떻게 풍경을 보여주는가
올리버 색스 지음·이민아 옮김, 알마

조현병·조울병 등의 정신질환이 뇌에서 만들어내는 신경전달물질의 조절 오류와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은, 요즘엔 널리 알려진 정설이다. 미국 국립정신보건원 인간두뇌수집원장인 바바라 립스카의 뇌종양 투병기인 <나는 정신병에 걸린 뇌과학자입니다>를 보면, 뇌를 잠식한 흑색종은 감정 과잉, 과다경계상태, 망상과 환각 등 정신질환과 비슷한 증상을 일으킨다. ‘정신질환은 마음이 아니라 몸이 아픈 것입니다’라는 말에서 ‘몸’은 곧 ‘뇌’와 다름 아니다.

올리버 색스, 마음의 눈, 이민아 옮김, 알마 2013.
올리버 색스, 마음의 눈, 이민아 옮김, 알마 2013.

신경과 의사 올리버 색스(1933~2015)는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간다. 그는 사고나 질병 등으로 손상된 뇌를 갖고서도 자신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들을 조명한다.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비롯해 <뮤지코필리아> <환각> <목소리를 보았네> <색맹의 섬> <마음의 눈>과 같은 그의 책들은, 유전자 문제나 뇌 질환 등으로 감각을 잃은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고 표현하고 소통하는지를 감동적으로 묘사한다.  뇌가 아파도 삶은 계속되는 것이다. 

올해 마지막달에 소개할 책을 고르다가 책장에서 집어든 책은 <마음의 눈-빗소리가 어떻게 풍경을 보여주는가>다. 다름 아니라, 책 제목에 ‘눈’이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두가지 큰 병을 앓았다. 하나는 조울병이고 또 하나는 밀러 피셔 증후군라는 자가면역질환이다. 밀러 피셔의 발병 원인은 아직 뚜렷히 밝혀지지 않았는데 바이러스가 신경세포에 이상을 일으키면서 눈동자가 움직이지 않게 되고 팔다리가 마비된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회복되긴 하지만, 몇달 동안 제대로 볼 수 없고 걸을 수 없는 고통을 겪는다.

2015년 이른봄 어느날, 밀러피셔가 찾아왔다. 심한 기침 감기를 며칠간 앓고 난 뒤 안구의 움직임을 조절하는 시신경이 마비됐다. 왼쪽·오른쪽 눈이 따로따로 움직였고(심한 사시가 된다), 두 눈이 각각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사물이 여러 개로 보이는 복시 현상이 나타났다. 심할 때는 구토를 할 정도로 어지러웠다. 나는 지금도 내가 가장 불행한 때가 언제일까 상상하면, 시력 상실의 순간이 아닐까 생각한다. 

<마음의 눈>에선 직업적으로 눈이 매우 중요했던, 그러나 글을 읽고 얼굴을 알아보는 기능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나온다. 어느날 갑자기 악보를 읽을 수 없게 된 연주자, 문자는 보이지만 단어나 문장을 이해할 수 없게 된 소설가 등이다. 이들에게 갑자기 또는 서서히 찾아온 실독증은 절망적이었다. 

뇌의 후방피질위축증을 앓는 피아니스트 릴리언이 그랬다. 평소 외워서도 쳤던 모차르트 협주곡 21번 악보를 어느날 갑자기 읽을 수 없게 되더니 3년 뒤엔 글을 읽기 힘들어졌고 또 그뒤엔 면도날을 펜으로, 펜치를 바나나로 인식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럼에도 릴리언은 피아노를 쳤다.  “기억이 더이상 (시각적으로) 먹을 것이 없어졌다”고 한탄하면서도 귀로 듣고 재생하는 능력을 이용해 음악의 세계에 머물렀다. 하지만 병세는 계속 악화된다. 올리버 색스와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그는 앞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병이 깊어진 상태였다.

연주를 들려달라고 올리버가 간곡하게 부탁하자, 릴리언은 자리에서 일어섰으나 피아노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했다. 남편의 도움으로 간신히 피아노 앞에 앉은 그는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하이든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그가 과연 연주를 끝낼 수 있을지, 독자인 나조차 마음을 졸이며 마지막 문장을 읽어내려갔다. 

“릴리언은 연주하면서 허공을 응시했고 입으로는 선율을 흥얼거렸다. 릴리언이 전에 보여주었던 힘과 감정이 온전히 실린 절정의 예술적 연주 속에서 하이든의 음악은 격랑, 음악적 격론에 휘말려 들어갔다. 연주가 피날레를 향하고 마무리 화음이 울리면서 릴리언이 말했다. 간결하게. ‘다 용서했어.’”

운명은 변덕스럽다. 어쩌면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 없는 날이 올지 모른다. 지금 누리는 감각의 세계는 그저 아슬아슬한 균형에 불과할 수 있다. 그러면 세상이 원망스럽고, 무력한 내가 미워질 것이다.  나는 릴리언이 연주를 마치며 ‘용서’를 말할 때 조금 울었다. 그의 용서는 사랑이었다. 나를 나답게 만들었던 핵심 기능이 퇴화해 쓸모를 잃었을지라도, 스스로를 저버리지 않겠다는 마음. 나를 향한 온전한 헌신 말이다. 

 

※<삐삐언니는 조울의 사막을 건넜어>를 쓴 삐삐언니가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 <마인드포스트> 독자들을 만납니다. 조울병과 함께한 오랜 여정에서 유익한 정보와 따뜻한 위로로 힘을 준 책들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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