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형 기자의 변론] 세상 끝에 선 고통을 넘어 희망을
[이관형 기자의 변론] 세상 끝에 선 고통을 넘어 희망을
  • 이관형 기자
  • 승인 2022.12.26 19: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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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인생을 살면서 때로는 세상의 끝에 서기도 합니다. 수능 시험을 망치고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없을 때. 100여 곳의 회사에 이력서를 냈지만 번번이 떨어져서 부모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을 때. 사랑하는 연인과 헤어지거나 야심차게 시작했던 사업이 망했을 때. 그리고 우리 당사자와 가족들에겐 병이 발병되거나 재발되어 병원에 입원 할 때, 마치 세상의 끝에 선 기분이 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출처 : facebook.com/sekainoowari.snoofc/
[사진=SEKAI NO OWARI 페이스북 페이지 갈무리]

오늘 소개해 드릴 일본의 아티스트도 세상의 끝에 서는 경험을 했던 당사자들입니다. 이름은 후카세 사토시. 1985년생으로 일본의 도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소프트웨어 개발자 출신으로 현재 회사의 임원을 지내고 있는 상당한 재력가인 아버지와 상당한 미인으로 알려진 어머니를 둔 남부러울 것 없는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후카세에게는 남들과는 다른 한 가지 특징이 있었습니다. 바로 선천적인 ADHD(주의력 결핍을 동반한 과잉행동장애)를 안고 태어난 사실입니다. 이로 인해 유년기 동안 같은 또래들과 상당한 마찰을 일으키며 자라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되었고, 부모님은 후카세가 학교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습니다. 실제로 공수도라는 무술을 배운 후카세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상급생들과도 잦은 싸움을 했고, 아이들 사이에서는 ‘악마에 씌인 아이’라는 소문이 나기도 했습니다. 물론 학업에도 집중할 수 없어서 성적도 좋지 못한 편이었죠.

후카세는 부모의 도움으로 명문 중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모범적인 학교생활을 하려 노력했고, 반장에도 당선될 수가 있었죠. 하지만 또다시 싸움을 일으켰고 결국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전학을 간 학교에서 운명적인 재회를 갖게 됩니다. 훗날 음악 활동을 같이 하게 될 사오리와 나카진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이죠.

facebook.com/sekainoowari.snoofc/
[사진=SEKAI NO OWARI 페이스북 페이지 갈무리]

사오리는 후카세와 이미 소꿉친구였습니다. 그녀는 후카세와 달리 가난한 집안 환경에서 자라났죠. 1년 동안 같은 청바지를 입고, 머리도 일 년에 두 번 정도 밖에 자르지 못할 정도였죠. 하지만 사오리에게 가난보다 힘든 건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밥을 먹을 때나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갈 때 늘 혼자였습니다. 아이들에게 자신에게 잘못한 것이 있다면 고치겠다고 용서를 구했지만, 반 아이들은 그녀를 투명인간 취급을 했죠.

사실 학교 아이들은, 피아노 콩쿠르에 출전하느라 수업에 빠지곤 하는 사오리를 질투했습니다. 특히 교내 행사 때마다 연주를 하는 그녀를 아이들은 재수 없게 생각했죠. 그래서 사오리는 왕따를 당하게 되었고, 학교를 자퇴하고 싶어했습니다. 가끔 너무 힘들면 화장실에 숨어서 혼자 울었습니다. 차라리 각자 구역을 맡아야 하는 청소시간이 가장 행복했다고 합니다. 그 시간만큼은 괴롭힘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죠.

그런 사오리에게 후카세는 유일한 친구였습니다. 다만 청소 때마다 도망치는 후카세가 탐탁치 않았죠. 그래서 선생님에게 후카세가 청소를 하지 않는다고 일러대기도 했습니다. 한편으론 동경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비록 청소 때마다 도망가고 아이들과 싸우곤 하는 후카세였지만, 그의 곁엔 수많은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죠. 물론 공부와는 거리가 먼 싸우고 말썽을 일으키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지만요.

사오리는 그런 후카세가 마냥 싫지만은 않았습니다. 어쩌면 후카세와 친하게 지내다보면 많은 친구들을 사귈 수 있을 것 같았죠. 그렇게 둘은 더욱 가까운 사이가 되었습니다. 하루는 엄마와 크게 싸우고 집을 나온 사오리가 후카세를 찾아갑니다. 사오리는 울면서 “이제는 돌아갈 곳도, 머물 곳도 없어”라며 탄식을 했죠. 그런 사오리에게 후카세는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있을 곳은 내가 만들거니까, 울지마”라고 말이죠.

그렇게 힘들 것만 같던 사오리의 학교생활은 후카세를 통해 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시비를 거는 아이들과의 싸움을 피하지 않는 후카세와 친하게 지내다 보니, 다른 아이들이 사오리를 쉽게 괴롭힐 수가 없었죠. 또한, 사오리는 후카세의 친구들과도 친하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후카세도 사오리를 통해 그녀의 초등학교 동창과 친해지게 됩니다. 그가 바로 훗날 음악적 구심점이 될 나카진입니다.

[사진=SEKAI NO OWARI 페이스북 페이지 갈무리]

나카진은 후카세나 사오리와 달리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는 모범생이었습니다. 사오리와는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냈는데, 중학생이 되어서는 같은 밴드의 팬이라는 이유로 후카세와도 친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나카진은 모범적인 학교생활만큼이나 성적도 좋았고, 명문대 수학과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던 중, 학창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후카세, 사오리와 함께 밴드를 만들어서 음악활동을 해 보자는 약속이 생각난 것입니다.

당시 후카세의 상태는 매우 좋지 않았습니다. 고등학교를 다니던 중 ADHD 증상이 심해져서 자퇴를 할 수밖에 없었죠. 미국에서 치료를 받으면 나아지겠다는 생각에 유학을 떠났지만, 오히려 낯선 환경에서의 외로움과 이질감은 정신질환까지 발병하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그는 일본으로 돌아왔고, 중졸의 학력과 유학 실패, 정신질환자라는 타이틀만 남게 되었죠. 후카세는 정신병원에서 생활하며 ‘세상의 끝’이라고 느껴지는 절망과 시련을 마주하게 됩니다.

후카세는 좌절하지 않고 퇴원 뒤, 의사가 되고자 꿈을 갖고 공부를 시작합니다. 2년 만에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합격할 수 있었지만, 의사가 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았죠. 심지어 현재 자신의 정신적 어려움을 해결하지 않고는 어떠한 직업도 갖기가 힘들 거라 생각합니다. 그때 밴드음악을 하기 위해 찾아온 나카진을 만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 사오리는 음대 클래식 피아노과에 수석으로 입학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연주 실력으로 각종 대회에 학교 대표로 출전하는 등, 재능을 꽃피우고 있었죠. 또한 빚을 갚기 위해 아이들을 대상으로 피아노 교습은 물론, 다양한 종류의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학업을 이어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몸도 지치고, 피아노에 흥미를 잃는 등 음악가로서의 권태기를 겪기도 했습니다.

지쳐있던 사오리에게 나카진의 제안은 매우 흥미롭게 느껴졌습니다. 결국,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후카세가 보컬을, 음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사오리가 키보드와 아코디언을, 나카진이 기타를 맡아 밴드를 결성합니다. 여기에 삐에로 가면을 쓰고 디제잉과 각종 효과음으로 사운드를 풍성하게 만들어 줄 ‘DJ 러브’(활동명)까지 합류하여 ‘세카이노 오와리’, 우리말로 ‘세상의 끝’이라는 이름의 밴드가 탄생합니다.

[사진=SEKAI NO OWARI 페이스북 페이지 갈무리]

물론 이들의 활동은 처음부터 인기를 끌거나 경제적으로 많은 수입을 올렸던 것은 아닙니다. 밴드 멤버들은 연습실 겸 공연장을 갖기 위해 옛 출판인쇄소를 매입하여 ‘Club EARTH’라는 이름의 라이브 클럽도 운영합니다. 그리고 매입에 사용한 1억 원의 빚을 갚기 위해 각자 아르바이트를 병행해야 했습니다. 다행히도 라이브 클럽과 이들의 음악이 인디 밴드계에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음악 팬들로부터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10년 타워레코드라는 기획사를 통해 싱글앨범 곡 ‘환상의 생명’를 발표, 여러 방송 매체와 음악 프로그램을 통해 소개되며 대히트를 기록합니다. 이 곡은 여러 가지 해석과 추측을 낳고 있는데, 병원에서 절망 가운데 지내던 후카세가 은하에 있는 꿈을 찾아간다는 의미도 담겨져 있는 노래라고 합니다. 병원에 갇혀 있던 후카세가 가진 희망을 노래한 곡이라고 할 수 있죠.

이후로 6번째 싱글인 ‘RPG’라는 곡은 유튜브에서 1억 뷰를 달성하는 등 많은 관심을 끌었고, 우리나라 노래방에도 등록되는 등 국내에서도 많은 인기를 끈 곡입니다. 또한, 가수 이무진의 표절곡 논란으로 알려진 ‘드래곤 나이트’와 빠른 템포에 랩을 곁들인 ‘헤빗(Habit)’이란 곡도 호평을 받았습니다.

facebook.com/sekainoowari.snoofc/
[사진=SEKAI NO OWARI 페이스북 페이지 갈무리]

우리 당사자들도 가끔은, 어쩌면 자주 세상의 끝에 서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병의 증상으로 인해, 혹은 보이지 않는 회복의 가능성으로 인해, 아니면 사회로부터 혼자 떨어져 사는 것과 같은 외로움으로 인해. 우리는 그렇게 세상의 끝에 서는 것을 경험합니다.

오늘 일본의 밴드, ‘세카이노 오와리’ 밴드 멤버들의 이야기를 쓰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으로 인해서 상처받을 수도 있지만, 사람으로 인해서 회복될 수도 있다고 말이죠. 쉽지 않은 삶을 살아온 멤버들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준 것처럼, 그들의 노래가 우리 당사자들에게 힘이 되어줄 거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지금도 보컬 후카세를 비롯한 밴드 ‘세카이노 오와리’의 멤버들은 직접 노래를 작곡 작사하며 일본인들은 물론 한국인을 포함한 세계 여러 나라에 공연을 다니며 명품 밴드로서의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특히 드래곤 나이트라는 곡은 병의 증상으로 인해 세상의 끝에 서는 것과 같은 고통의 당사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노래라 생각됩니다. 가사 일부를 공유하며 이 기사를 마칩니다.

今宵は 百万年に 一度

오늘밤은 백만년에 한 번

 

太陽が 沈んで 夜が 訪れる日

태양이 저물고 밤이 찾아오는 날

 

終わりの 来ない ような 戦いも

끝이 없을 것 같은 이 싸움도

 

今宵は 休戦して 祝杯を あげる

오늘 밤은 휴전하고 축배를 올리자

 

人は それぞれ正義が あって、

사람에겐 제각각의 정의가 있어

 

争い合うのは 仕方ないのかも 知れない

서로 다투는 건 어쩔 수 없는 건지도 몰라

 

だけど 僕の 嫌いな彼も

하지만 내가 싫어하는 그에게도

 

彼なりの 理由が あると おもうんだ

그 나름의 명분이 있을거라 생각해

 

Dragon Night 今宵、

Dragon Night 오늘 밤

 

僕たちは 友達の ように 歌うだろう

우리들은 친구사이처럼 노래하겠지

 

Moonlight, Starry sky, Fire bird

Moonlight, Starry sky, Fire bird

 

今宵, 僕たちは 友達の ように 踊るんだ

오늘 밤, 우리들은 친구사이처럼 춤출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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