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할 것은 F20 이후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들의 모습과 그들의 치열한 목소리이다”
“주목할 것은 F20 이후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들의 모습과 그들의 치열한 목소리이다”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2.12.23 21: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족협회가 제작한 영화 ‘F20 그 이후’ 시사회 열려...제작비 3500만 원의 저예산 영화
정신장애와 사회제도 개선 찾는 기자의 시선으로 보는 현실 담아
이해 전에 “조현병 아버지가 얄미웠다”...이해 후 “아빠, 우리 같이 오래 살자”
영화 'F20 그 이후' 시사회. (c)마인드포스트.
영화 'F20 그 이후' 시사회. (c)마인드포스트.

23일 오후 3시, 여의도 이룸센터 교육실. 사람들이 들어오더니 어느 순간 80여 명이 공간을 꽉 채웠다. 보건복지부 지원으로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가 제작한 영화 ‘F20 그 이후’ 시사회가 열리고 있었다. 러닝 타임 70분. 제작비 3500만 원의 저예산 독립영화다.

주인공 보미(이보미)는 인터넷 언론 진실탐사그룹 셜록 소속의 기자다. 그는 두 사건을 취재하고 있다. 2019년 4월 경남 진주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40대 안인득이 새벽에 자신의 불을 지르고 화재를 피해 대피하던 주민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5명이 숨지고 17명이 다치는 사건, 그리고 2021년 5월, 경기 남양주에서 조현병을 가진 20대 아들이 60대 아버지를 살해한 사건이다.

보미는 조현병에 의한 사회적 사건이 터질 때마다 언론이 광기에 취해 정신질환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규정하고 이들을 다수의 안전을 위해 병원이나 시설에 가둬야 한다는 폭력적 이데올로기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는 중이다.

보미에게도 숨겨진 가족사가 있다. 아버지 이영철은 20대 후반에 조현병이 발병했다. 어머니는 그 아버지를 케어하다가 60세도 되기 전에 일찍 세상을 떠났다. 보미에게 아버지는 엄마를 고생시키고 일찍 타계하게 만든 장본인이자 자신이 건강을 책임져야 하는 보호자로서의 임무를 수행 중이다. 아버지에 대한 미움은 늘 가슴 한 켠에 고여 있다.

진실탐사그룹 셜록 대표는 보미에게 정신질환과 사회적 편견에 대한 기획기사를 써보라고 권한다. 하지만 보미는 정신과 의사들을 인터뷰하면서도 막상 어디서부터 기사를 작성해야 할지 막막하다.

인터뷰에 응한 조현병의 사계의 석학인 권준수 서울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안인득 사건과 남양주 사건에 대한 해법 제시는 곧 우리나라 정신건강 정책 전반에 대한 방향성 제시”라고 말했다.

방향성의 한 줄기는 조현병 당사자의 증상이 악화됐을 때 바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정신건강복지법이 즉각적 개입을 가로막고 있어 실제적 치료 효과가 반감한다는 의견이다. 특히 강제입원을 법원이 판단하는 사법입원제는 판사들의 준비 부족으로, 경찰의 개입은 현행범이나 자·타해 위험성의 경우에만 개입할 수 있어 어떤 법적 주체들로부터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권 교수는 정신건강복지법의 실효적 개정을 주문한다.

보미는 독백한다.

“나는 지금도 엄마가 환갑도 못 채우고 간 가장 큰 이유가 아빠 때문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엄마는) 아빠는 자신이 끝까지 책임져야 하고 아빠보다 조금 더 오래 살아 그 뒷정리까지 다 해야 할 사람은 자신 말고는 없는 것처럼, 죽음이 다가오는 순간에도 그럴 수 있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다가 갔다. 나는 자꾸 자신이 없어진다.”

아버지 영철은 첫 발병 이후 몇 년에 한 번씩은 꼭 난리를 치고 입원을 거듭했다. 보미 입장에서 영철은 엄마의 생전에 약도 안 챙겨먹고 고집만 피우면서 엄마의 속을 다 썩어 문드러지게 만든 장본인이다.

하지만 엄마가 타계한 후 영철은 혼자서 약도 잘 챙겨먹고 매일 한 시간씩 운동도 한다.

엄마가 돌봐주지 않으니까 스스로 자신을 돌보려는 의지가 강해진 건데 보미 입장에서는 그 아빠의 행동이 얄밉다. 아니, 혐오스럽다. 엄마 생전에 그렇게 행동하지 못한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영화 'F20 그 이후' 제작진과 출연자들. (c)마인드포스트.
영화 'F20 그 이후' 제작진과 출연자들. (c)마인드포스트.

기획기사를 준비하며 이번에는 백종우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를 만난다. 백 교수도 권 교수와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조현병 환자에게 임계치를 넘어서는 자·타해 증상이 나타나면 바로 개입한다. 이를테면 강제입원 같은 것을 추진하겠다는 것은 개입해야 할 대상군도 줄어들면서 그 효과성은 분명한 거고요.”

백 교수는 말을 이었다.

“우리가 진료를 하다보면 이 환자는 증상이 악화되면 자·타해 위험이 높아지겠구나 예상할 수 있는 고위험 조현병 환자들이 있잖아요? 그런 분들만이라도 초기부터 밀착해서 관리하면서 치료가 중단되지 않도록 계속해서 챙기는 거죠.”

백 교수에 따르면 미국은 지역사회 정신질환자 관리 시스템은 액트(Assertive Community Treatment)가 대표적인데 전문의와 정신건강간호사, 사회복지사가 팀을 이뤄 한 팀당 100명 정도의 환자를 돌보는 체계다. 매일 찾아가 약과 증상 관리, 주사제 투입 등을 진행하는데 그 팀원 중에는 회복된 정신장애인이 반드시 포함된다.

보미는 “한마디로 환자가 병원에 안 오면 병원이 환자를 찾아간다 그거네요”라고 말한다. 백 교수는 동의하면서 “안인득이 2016년 7월에 갑자기 외래진료가 중단됐을 때 바로 안인득을 찾아가 다시 치료를 받도록 권했더라면 어땠을까요?”라고 반문한다. 한탄이었으리라.

보미는 독백한다.

“맞다. 아버지도 약 끊고 방에 틀어박혀 있을 때, 누군가 찾아와 아버지에게 치료를 권하는 시스템이 있었더라면 어머니가 그렇게 혼자 술만 마시다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서 보미는 엉뚱한 질문들 한다. “조현병 증상 중에 유별나게 강한 생존본능 뭐 이런 것도 있을까요?”

백 교수는 “조현병이 심할 때는 생존본능이 약해진다기보다 현실판단이 안 되니 생존에 부적절한 방법으로 표출되는 것”이라며 “조현병이 좀 좋아지면 생존본능이 생존에 적절한 방향으로 표현되는 것”이라고 답한다. 보미는 아버지가 왜 그렇게 운동하고 규칙적 생활을 하게 됐는지 이해한다. 그러면서 속으로 말한다. “그게 왜 나는 별로 안 기쁘지?”

회사에서 보미는 대표와 이야기를 나눈다. 중증 정신질환자가 치료를 중단하지 않게 하고 악화되면 바로 의료 체계가 개입하는 것, 지역사회 정착을 지원하고 사회적 고립과 치료 중단을 막기 위해 시스템적으로 움직이는 것. 그게 다다. 그런데 그 쉬운 시스템도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보미는 울컥 감정이 치밀어 오른다.

보미는 “이건 의지의 문제가 맞다. 시급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고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라며 “그 벽 앞에서 당사자와 가족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적당한 환멸과 포기를 학습하고 애매하고 복잡한 감정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토로한다.

보미는 이후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조순득 회장과 인터뷰를 진행한다. 조 회장은 환자 당사자의 입장에서 치료 시스템이 재편돼야 한다고 말한다. 코로나19가 발생하면서 가장 먼저 사망한 사람이 청도대남병원 정신과 폐쇄병동에 20년째 입원해 있던 63세의 조현병 당사자였다.

조 회장은 현 정신의료 시스템이 가진 강압적이고 폐쇄적인 상황을 비판한다. 부실한 치료와 노숙자 쉼터보다 못한 병동 내부, 의료급여 환자와 건강보험 환자의 구분으로 의료급여 환자가 ‘싸구려’ 약물을 복용하고 병원 이익을 위해 장기간 입원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토로한다.

조 회장은 “(발병 이후) 복학해도 수업을 따라갈 수 없고, 복직해도 이전 업무를 못 한다”며 “마치 운동선수가 수술받고 경기장으로 돌아오는 시기를 놓치면 선수 생명이 거기서 끝나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보미는 독백한다. “다름 아닌 아빠 이야기다. 촉망받는 인재였지만 정신병원 몇 번 입원하니 영영 원래 자리로 돌아가지 못하게 된 인생.”

영화 'F20 그 이후' 시사회 이후 진행된 토크타임. (c)마인드포스트.
영화 'F20 그 이후' 시사회 이후 진행된 토크타임. (c)마인드포스트.

조 회장은 토로한다.

“가족이라는 인연을 악연으로 만드는 게 가족에 의한 강제입원제도라. 이건 이제 그만해야 해요. 환자 강제입원에 대한 의무와 책임은 가족에게 지워놓고 다른 한편으로는 가족이 환자 입원시키는 걸 범죄행위 취급하며 온갖 복잡한 제한을 걸어 놓았으니 가족은 그저 발만 동동 구르는 거지.”

요즘은 시사나 예능에 정신, 심리, 마음 등의 키워드로 된 프로그램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많이 나온다. 하지만 거기에 정신질환 당사자와 가족의 이야기는 없다.

조 회장은 “이 번성하는 정신 판에 진짜 정신이 아프고 힘든 우리는 쏙 빠져 있다”며 “너희들은 우리 잔치에서 남는 음식 있으면 나눠줄 테니 거기서 기다리다 얻어먹고 가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가족이 환자를 강제입원시키는 제도는 당장 폐지돼야 한다”며 “가족은 환자의 수호자, 영원한 옹호자로만 버티고 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미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때, 조 회장이 문건 하나를 내민다. 표지에는 ‘회원 이영철’이라고 적혀 있다. 제목은 ‘내가 원하는 정신의료시스템’이다. 아빠였다. 아빠는 문건에서 원격 진료와 위기 쉼터를 주장하고 있었다.

어느 아침, 보미는 아빠와 짧은 대화를 나눈다. “아빠는 오래 살고 싶어”. “오래 사는 게 좋지”, “나도 오래 살았으면 좋겠어?”, “그야 당연하지. 너는 더 오래 살아야지”, “아빠, 우리 같이 오래 살자.”

회사 사무실에 늦은 시간까지 앉아 있는 보미. 그는 모니터에 제목을 적는다. <F20 그 이후>. 그리고 빠른 속도로 기사의 앞부분을 채워나간다.

“주목해야 할 것은 F20 이후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들의 생생한 모습이고 경청해야 할 것이 그들의 치열한 목소리다. 그들이 겪었던 시행착오, 깨지고 좌절하고 일어선 모든 과정 속에서 우리가 F20이라는 괴물과 어떻게 맞서야 하는지에 대해, 우리 사회가 그 F20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어떻게 안고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가장 현실적인 해답이 준비돼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그렇게 끝난다. 그리고 이어진 대화의 시간.

‘F20’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정신장애인의 삶을 편견 없이 보여주고 싶어서 만들었다는 그 영화는 정신장애인의 인권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영화였다. 서울대를 다니는 조현병 아들을 둔 엄마가 살고 있는 임대아파트 주민들에게 아들의 질환이 알려질까봐 노심초사하다 일시적 착란 증상으로 이웃을 살해하는 이야기다.

당사자 단체와 가족단체는 이 영화의 공중파 방영을 저지하기 위해 KBS 방송국 앞에서 연일 기자회견과 집회를 진행했다. 결국 방영을 계획했던 KBS는 전면 취소했다.

이영렬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공보이사는 “그 영화를 보고 오바이트가 나왔다. 저 사람이 정말 우리를 모욕하려고 저 영화를 만들었을까”라며 “그건 아니었다. 그냥 몰라서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영화는 ‘F20’에 대한 대항적 시선으로 연출됐다는 시각도 있다.

영화 'F20 그 이후' 시사회 후 전체 사진. (c)마인드포스트.
영화 'F20 그 이후' 시사회 후 전체 사진. (c)마인드포스트.

그는 “조현병 환자와 가족이 그 영화를 보다가 울었다”며 “’F20‘ 연출진이 ’너희가 예술을 이해 못해서 그렇다. 달을 가리키는데 달을 보지 않고 손가락을 본다‘고 했다. 2차 가해”라고 비판했다.

영화를 관람한 당사자 최윤진 씨는 “당사자의 생활이 좀 더 드러났으면 했는데 의료적·제도적 부분에 치우쳐졌다고 생각된다”며 “내가 회복될 수 있었던 건 첫 번째 사람, 두 번째 시스템, 세 번째 약물이었다. 이 세 가지가 버무려진 영화였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공보이사는 “영화 속편이 나왔으면 하고 거기에는 당사자가 나왔으면 좋겠다”라며 “가족이 아닌 당사자가 만들면 다르다. 그 다름이 인식개선”이라고 전했다.

이 공보이사는 ‘F20 그 이후’의 시나리오를 작성했다. 감독을 맡은 양수진 중앙대 예술대학원 교수는 개봉과 관련해 “영화 관계자들이 오면 그 비용으로 극장을 하루 빌려 상영할 계획이고 플랫홈 활동도 연구 중”이라며 “장애인영화제에 내보내는 게 목적”이라고 밝혔다.

조 회장은 “보건복지부 관계자가 내게 전화를 했다. 지금 윤석열 정권이 새롭게 만들어진 국, 정신건강정책국을 없애려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며 “이로 인해 영화 제작을 지원한 복지부 관계자들이 부득이 참석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