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형 기자의 변론] 당사자들에게 운동은 선택이 아닌 필수....스포츠 통해 집밖으로 나와야
[이관형 기자의 변론] 당사자들에게 운동은 선택이 아닌 필수....스포츠 통해 집밖으로 나와야
  • 이관형 기자
  • 승인 2023.03.16 19: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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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장애인은 운동 안 한다는 편견 깨고 풋살팀 FC.당당 만들어
약물 부작용과 나쁜 생활습관으로 신체질환 가져..평균수명도 짧아
풋살이 가진 팀워크와 상호작용은 사회생활과 닮아 있어
풋살운동을 통한 정보와 친교 나누기...소통의 창구 역할

2022년 2월 페이스북 게시물을 구경하다가 우연히 놀라운 사진을 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알고 지내던 당사자 동생들이 풋살장에서 운동을 하고 찍은 인증사진이었죠.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정신적 어려움을 가진 친구들도 운동을 즐길 수 있구나”라고 말이죠.

저 역시 운동을 좋아하는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정신장애인들은 운동을 못 할 거라는 편견과 선입견이 있었음을 되돌아봤습니다. 이를 계기로 계획을 세웠습니다. 조현병, 조울증, 우울증과 같이 정신적 어려움을 가진 당사자들로 구성된 풋살팀을 만들자고 말이죠. 

FC. 당당 회원 [사진=FC.당당 제공]

예전부터 운동의 중요성은 알고 있었습니다. 당사자에게는 더욱 필요하다는 사실을요. 많은 정신장애인들이 약물 부작용과 건강하지 못한 생활습관으로 인해 당뇨병, 관상동맥 심장질환, 고혈압 및 폐기종 등의 신체질환을 동시에 겪고 있습니다(김미나 외, 2019). 특히, 이와 같은 대사성 질환을 겪는 조현병 당사자들이 일반 인구집단에 비해 약 4~5배나 많다고 보고되었고, 23.4%는 3개 이상의 만성신체질환을 함께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이상욱 외, 2018).

보건복지부 통계 자료에서도 정신장애인들의 사망원인으로 1위 악성신생물(종양, 암)에 이어 2위 심장질환, 5위 뇌혈관질환, 6위 당뇨병, 10위 고혈압성 질환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정신장애인들의 건강을 악화시켜 삶의 질을 낮추고, 평균수명까지 단축시키는 결과로 나타납니다.

그만큼 정신장애인들이 약물부작용과 신체 활동 부족에 의해 흔히 겪는 비만을 가볍게 보거나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활동량이 적은 생활과 운동부족, 흡연, 과일이나 야채 같은 식품의 섭취부족, 음주 등의 생활 습관에 따른 비만과 과체중은 신체건강 문제까지 동시에 발생시키기 때문입니다(김학령, 2019). 정신장애 유형이 신체장애 유형에 비해 사망시 평균연령이 짧은 것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당사자들에게 운동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행복을 위한 취미 생활을 넘어 건강을 지키기 위한 생존 활동이라고도 할 수 있죠. 저 역시 혼자서 동네 하천 길을 산책하며 운동하기보다,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공을 주고받는 구기 종목에 참여하고 싶었습니다. 그중에서도 풋살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종목이고요.

 풋살의 개념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작은 축구’라고 규정지을 수 있습니다. 축구장의 절반 크기보다 작은 풋살장에서 5~6명이 한 팀을 이루어 작은 골대에 공을 넣기 위한 스포츠입니다. 발로 공을 차고 패스를 주고받으며 골키퍼를 제치고 슛을 성공시켜야 한다는 점에서 축구와 거의 동일한 종목이라 할 수 있죠. 다만 경기장이 작고 인원이 적다보니 축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골이 나오기도 합니다.

농구나 야구 같은 다른 구기 종목도 마찬가지지만, 풋살의 팀플레이나 전술, 규칙과 위치 선정을 통해 팀원들과의 상호작용은 마치 사회생활과 닮아 보입니다. 회사라는 경기장에 들어가 여러 종목의 업무를 수행할 때도 혼자서 일하기보다 동료들과 합을 맞춰야 하고, 업무 지시와 직함에 따라 각자의 역할을 해내야 하니까요.

풋살경기 [사진=FC.당당 제공]

풋살에도 공격수와 수비수의 역할이 있지만, 제가 가장 좋아하는 포지션은 골키퍼입니다. 골키퍼는 주로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진 사람이 맡을 정도로 인기가 없는 포지션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재미없는 골키퍼를 왜 하냐고? 골대 앞에 가만히 서있기만 하는데 운동이 되겠냐고?” 의아해하며 묻곤 합니다. 하지만 전 골키퍼에 대한 자부심이 있습니다. 시합을 하다보면 숙명적으로 상대 공격수에게 여러 골을 허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골을 막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와 아쉬움이 밀려오기도 하죠. 하지만 골을 허용한 것에 연연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서 상대방을 막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인생도 골키퍼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살다보면 숙명적으로 몇 번의 실수와 실패를 하게 되죠. “그때 왜 그랬을까.. 그 사건만 아니었다면”라는 후회와 아쉬움에 머물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다시 일어나 자신의 인생을 계속 묵묵히 걸어 나가야 합니다. 과거에 조현병이나 조울증이 발병되어 인생에 많은 손해를 보았더라도, 현재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야 하듯이요.

어쩌면 공을 넣고 팀원들의 환호와 박수 속에 세레머니를 하는 스트라이커의 화려함보다 골을 허용하고 팀원들의 응원과 위로 속에 다시 일어서는 골키퍼의 모습이 우리 당사자들의 삶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아프고 실패뿐이었던 제 삶에서도 많은 이들의 응원과 위로가 저를 다시 일어서게 만들어 주었으니까요.

풋살경기 [사진=FC.당당 제공]

이처럼 풋살을 통해 인생을 배우는 기쁨과 즐거움을 많은 당사자들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사진 속 동생들을 주축으로 운동에 뜻이 있는 당사자들을 모아 팀을 창단했죠. 이름은 ‘FC. 당당’이라고 지었습니다. 풀어 설명하자면 ‘Footsal Club. 당당한 당사자들’이란 뜻이죠. 이름처럼 당당하게 살아가는 당사자들의 모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직접 만든 로고를 넣어 팀 조끼도 제작했죠. 팀원들은 갓 성인이 된 스무살부터 40대 초중반까지 다양한 연령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창단 멤버 중에는 성인 축구팀에서 선수 경험을 한 당사자 동생도 있습니다. 그 친구의 아버지는 축구 지도자 자격증이 있는 감독님이셨고, 우리 팀을 위해 재능기부 차원에서 무료로 레슨을 해주시기로 했습니다.

팀 조끼 [사진=FC.당당 제공]

2022년 5월부터 감독님을 통해 매달 한 번씩 정식으로 풋살 레슨을 시작했습니다. 매달마다 참가하는 회원들의 회비 1만원씩 모아 구장을 예약하고 운동 후 회식도 가졌습니다. 처음에는 온누리교회 한마음 정신회복예배 공동체와 대학로에 위치한 달리다쿰 선교회 당사자 청년들 10여명을 중심으로 팀을 꾸렸습니다. 이 소식을 알게 된 팀원 당사자의 부모님들, 교회 공동체와 선교회에서 적지 않은 금액을 후원해주셔서 회식으로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도 있었죠.

그리고 현재는 다음 카페 심지회와 태화샘솟는집,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마포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등 여러 기관과 단체에서 활동하는 당사자들도 함께 운동하고 있습니다. 현재 FC. 당당의 정회원 수는 20여 명을 훌쩍 넘었습니다. 매달 레슨 때마다 평균 15명의 인원이 참여하고 있고 앞으로도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경기 전 몸풀기 [사진=FC.당당 제공]

FC.당당의 가장 큰 특징은 정신적 어려움을 겪은 당사자들만 가입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곧 우리의 정체성이기도 하죠. 단순히 풋살 레슨을 받으며 운동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회식과 교류를 통해 자조모임의 역할까지 담당하고 있습니다.

회원들끼리 가장 많이 하는 질문 중 하나가 “조현병이세요? 조울증이세요?”입니다. 사회에서는 쉽게 꺼낼 수 없는 주제이고,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이 함부로 할 수 없는 질문이지만 FC.당당에서는 스스럼없이 할 수 있는 질문입니다. 같은 당사자로서 병의 고통과 증상을 겪었기에 서로 공감하고 이해하고 동질감을 느끼고 있으니까요. 가끔은 단체 카톡방에서 여러 기관의 프로그램이나 취업정보를 나누기도 합니다. 서로 정보와 친교를 나누는 소통의 창구 역할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회식과 교류를 통해 자조모임의 역할까지 담당한다. [사진=FC.당당 제공]

올해부터는 개별적인 후원으로 운영되는 한계점을 극복하고자, 마포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자조모임으로 등록되어 서울시의 보조금으로 풋살 레슨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인원수가 많아지고 예산을 지원 받는 만큼 좀 더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기존 팀원들이 각자 역할을 나누어 맡고 있죠. 구장 예약과 회계부터 시작되어 식당을 알아보는 일까지, 단순히 운동만 하고 마치는 게 아니라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다양한 역할을 미리 연습하는 경험도 할 수 있습니다.

풋살의 효과와 장점은 연구 논문을 통해서도 입증된 바 있습니다. “12주간 풋살 운동이 우울성향과 신체적 자기개념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논문은 풋살이 참가자들의 우울 감소, 집단 중요성 인식, 운동 동기유발, 체력 향상, 자신감 향상, 생활 태도의 변화 등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나타냈습니다(권혁현, 2017). 이 논문에서 연구 참가자들은 다음과 같이 소감을 밝혔습니다.

정신장애 당사자 풋살 자조모임 FC.당당 [사진=FC.당당 제공]

  “규칙적으로 만나서 운동을 하다 보니 듬직한 친구가 생긴 것 같다.”

  “여럿이서 운동을 하니까 의지가 많이 되고 서로 의사소통을 많이 해서 마음속의 답답함도 사라진 것 같다.”

  “팀 조끼를 맞추어서 운동을 하다 보니 소속감이나 친밀감이 생긴 것 같다.”

  “풋살 운동은 운동을 잘하는 사람이나 하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팀원들의 칭찬과 격려를 통해 자신감이 많이 생기게 되었다.”

  “나는 운동을 하다 실수를 하면 눈치를 많이 보는 편이다. 실수를 할 때 민망함이 컸지만 같은 사람들과 운동을 하다 보니 친해져서 그런지 실수를 해도 덜 민망하고 과감해져서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도 한다.”

  “집단 운동은 잘 못하기 때문에 실수하면 같은 팀에게 핀잔을 듣는 것이 너무 싫었다. 하지만 풋살 운동을 해보니 지도자가 잘해도 못해도 잘했다고 칭찬을 해주었다.”

이처럼 풋살은 많은 당사자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운동이라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활동을 하며 가장 잘한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런 점에서 적지 않은 다른 당사자들이 가입을 망설이다가 포기하는 경우가 안타까웠습니다. 단체 활동과 격한 운동이다보니 선뜻 참여하기로 결단하기가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FC.당당도 인원이 늘어나다보니, 추가로 회원을 모집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있습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다른 센터나 기관들의 지원으로, 혹은 다른 당사자 리더의 주도로 풋살 팀이 더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꼭 풋살이 아니더라도 농구나 탁구처럼 다양한 스포츠를 통해 많은 당사자들이 집밖으로 나와 함께 운동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풋살경기 [사진=FC.당당 제공]

올해도 FC.당당은 여러 가지 행복한 미래를 꿈꾸고 있습니다. 가깝게는 다른 기관의 당사자 풋살팀과 시합을 하며 친목을 도모할 수 있고요. 여성 당사자들로 구성된 풋살 팀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전국 장애인 체육대회에 풋살을 포함한 정신장애인들을 위한 종목들이 신설되는 것도 중요하고요. 현실이 될지 가능성은 알 수 없지만 일본으로 전지훈련을 가서 베델의집(일본의 클럽하우스) 회원들과 풋살 한일전 시합도 꿈꾸고 있습니다.

몇몇 당사자 청년들이 풋살을 하고 땀 흘린 모습을 인증샷으로 남겼던 당당함이 오늘날 FC.당당을 만들었습니다.

시합을 하다보면 상대방에게 골을 허용해도 다시 상대의 골문을 향해 달려가야 합니다. 때로는 발에 걸려 넘어지지만 공을 빼앗기 위해 다시 일어서야 합니다. 삶에서도 실패와 어려움이 있었지만 다시 미래의 꿈을 이루기 위해 나아가는 우리 당당한 당사자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정신장애 당사자 풋살 자조모임 FC.당당 [사진=FC.당당 제공]

관련 문의 : 마포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권익옹호팀(070-5143-0337)
 

참고문헌.

1) 김미나 외(2019). 지역사회 거주 조현병 범주 장애 환자의 신체건강관리 관련 요인. 대한조현병학회지, 22(1), 14~20.

2) 이상욱 외(2018). 조현병 환자의 동반 만성시네질환 현황 및 총 의료비용에 관한 연구. 정신신체의학, 26(1), 26~34.

3) 김학령(2019). 개인-가족-환경요인이 정신장애인의 신체건강행동에 미치는 영향. 정신건강과 사회복지, 47(2), 127~163.

4) 권혁현 외(2017). 12주간 풋살 운동이 우울성향과 신체적 자기개념에 미치는 영향. 한국체육학회지, 56(1), 139~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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