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한 것 없는 정신건강복지법 제정 3년...정신장애인 당사자운동 정치세력화해야”
“변한 것 없는 정신건강복지법 제정 3년...정신장애인 당사자운동 정치세력화해야”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0.08.21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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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장애인 당사자 컨퍼런스 마지막 토론 진행
우리 없이 누구도 우리에 대해 말하지 말라는 철학 공유
서비스 제공 과정에 당사자 참여하는 게 국제적 흐름
영국은 증상 6개월이면 장애 등록...한국은 만성화돼야 겨우 장애등록
당사자 운동은 비등록 정신장애인까지 포함해 조직화해야
‘신체장애 운동에 편입? 혹은 독자적 노선 운동’ 고민해야
정신건강복지법 개정 시급...인권 기반의 법으로 바뀌어야
연대도 과정이 올바르지 않을 때 분열과 파괴의 불씨돼
사회권 확대로 증상 있어도 지역사회 살도록 의식 바뀌어야

제1회 전국 정신장애인 당사자 컨퍼런스 ‘새로운 대안’이 21일 사흘째 발표를 진행하며 마무리됐다. 마지막 진행은 이날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호암교수회관에서 제철웅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탈시설 및 지역사회 자립생활을 위한 대안적 정신장애 정책에 대하여’를 주제로 진행됐다.

유엔 장애인권리협약(CRPD)의 태동은 멕시코에서 시작됐다. 당시 멕시코 대통령 후보가 장애인 정책 실현을 공약하며 당선된다. 당선된 멕시코 대통령은 유엔 연설을 통해 장애인권리협약을 촉구하게 된다. 이 연설을 계기로 각 국가들이 움직이면서 2006년 협약이 탄생하게 된다. 이후 많은 장애인 정책들이 이 협약을 중심으로 보완되고 만들어지게 된다.

정신보건 분야에서도 이 협약은 힘을 나타냈다. 세계적 추세는 강제입원을 줄이고 서비스 이용자에 머물렀던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이 서비스 제공자로 참여하게 된다. 또 지역사회에서의 치료와 빠른 일상생활로의 복귀를 위주로 하는 정책들이 만들어진다. 정신질환이 있을 경우 다른 사람이 그를 대신해 결정하는 후견제도 역시 빠르게 폐지된다.

제 교수는 “기존에는 장애가 있으면 예방의학 의미에서 빨리 치료하고 재활하고 사회로 나가라는 전문가 중심의 사고방식이 지배적이었다”며 “이것이 질병이 있으면서도 사회생활을 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바뀌게 된다”고 말했다.

예방, 치료, 재활, 사회복귀의 연속성을 가진 치료적 관점에서 질병이 있는 상태에서도 이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관점으로 바뀌게 된다. 이 관점의 중심 고리는 일자리가 된다.

제 교수는 “정신장애인들이 잘할 수 있는 일거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게 (국가들의) 주요 정책이 되었다”며 “정신장애인들이 사회를 정화시킬 수 있는 기능을 할 수 있는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전했다.

일자리와 관련해 국가들의 정신건강 정책 역시 변하게 된다. 영국은 2010년 평등법을 제정하고 이 법에 일상생활 수행에 영향을 미치는 정신질환이 일 년 이상 지속될 경우 장애로 판정할 수 있게 됐다. 이들은 파트 타임 근무를 비롯해 탄력적 근로 제도, 다양한 형태의 일자리를 지원하도록 하고 있다. 자신이 겪는 심리적 고충도 쉽게 이야기할 수 있고 제도적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미국 역시 장애인복지법에서 6개월 이상 장애를 지속하면 장애인으로 분류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신장애인 채용 시 정당한 편의 제공을 전제로 하며 장애를 이유로 채용하지 않을 시 근로법 위반에 해당하도록 했다.

제 교수는 “우리나라의 장애인복지법은 정신장애인이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가야 장애로 분류한다”며 “20대 초발 정신장애인도 50대가 되고 더이상 가망이 없을 때 비로소 장애로 등록하는 시스템”이라고 지적했다.

정신장애인 현황을 보면 한 해 우리나라의 정신과 치료를 받는 이는 300만여 명이다. 정신병원 환자 6만여 명, 정신요양시설 입소자 9000여 명, 지역사회 중증정신질환자로 추정되는 인구가 17만여 명이다. 이중 정신장애 등록자는 10만 명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영국과 미국처럼 정신질환으로 일상생활 수행이 어려운 이들을 정신질환자로 분류할 경우 그 수는 100만 명에 이른다는 게 제 교수의 설명이다.

제 교수는 “이들이 겪는 장애는 사회적 장애”라며 “이 장애를 해소할 수 있는 정책들이 여전히 한국에는 없다”고 전했다.

국제적 당사자 장애운동은 중요한 두 가지 선언을 함의하고 있다. 하나는 ‘우리 없이 누구도 우리에 대해 말하지 말라’는 것. 이는 개인의 문제뿐 아니라 사회적 문제에도 우리와 관련된 모든 정책에 당사자를 참여시키라는 요청이다. 서비스 제공 과정에 당사자가 참여해야 한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다른 하나는 ‘한 개의 약이 모든 이들에게 맞지 않는다’이다. 정신질환에 걸리면 증상을 없애기 위해 모든 이들에게 같은 약을 사용하는 것은 의료 중심의 관점이라는 의미다. 이는 장애 정책의 시스템의 근본적 개혁을 의미한다.

이 같은 장애인 인권 기반의 시스템이라는 세계적 흐름에서 한국의 정신장애인 당사자 운동은 어떤 목표와 지향점을 가져야 할까.

제 교수는 “우리나라 정신장애인들이 처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장애인 당사자들이 결합해서 운동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며 “세력화된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지를 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정신장애인 운동은 장애 등록된 당사자만을 대상으로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며 “회권 확대를 통해 증상을 어떻게 관리할 거냐의 문제를 이제는 지역사회에서 증상을 갖고 어떻게 잘 살아갈 거냐로 문제의식이 바뀌어야 한”고 주장했다.

이 경우 정신건강의 문제를 지닌 청년들,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등으로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들까지 운동의 지형에 포섭해 당사자 운동이 경험했던 지혜와 인생의 통찰력을 지원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제 교수는 또 “정신장애 운동이 신체장애 운동에 편입돼 전체 장애 운동의 일원이 돼야 할까를 고민해야 한다”며 “우리만의 독자성을 갖고 운동하고 그들과 연대할 것인가. 전체 장애의 일부분으로 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제 교수에 따르면 신체장애 운동은 한국 사회의 장애 인권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그렇지만 신체장애 운동이 정신장애 운동 방식과는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체장애인들이 거리로 나와 시위를 하면 그들의 억압됐던 분노들이 분출되고 사회가 이를 들어주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지만 정신장애인이 거리에서 고함을 치면 ‘정신질환이 재발했다’는 시선으로 포섭된다는 점이다. 정신장애인의 사회적 의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신체장애보다 사회에 수용되기 어렵다는 문제를 안게 된다.

제 교수는 “우리는 인간성을 회복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사회를 설득하고 당사자를 규합하는 운동을 해야 한다”며 “우리가 원래 가지고 있던 영혼의 순수한 모습을 집단으로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신건강 문제를 경험한 당사자들이 다른 정신장애인 동료를 지원하는 단체가 전국적으로 만들어져야 한다”며 “정신장애 당사자들이 비영리단체를 결성하고 자신의 힘으로 역량을 강화해 회복될 수 있는 고유의 자립생활 센터 모델들을 조속히 만들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당사자 단체의 경우 정신장애인뿐만 아니라 정신장애 문제를 갖고 있는 모든 정신장애인들의 회복을 지원하는 활동을 수행해야 한다”며 “동료의 회복이 나의 회복이고 나의 회복이 곧 동료의 회복과 연결돼 있다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는 정신건강복지법의 개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기존 의료 전문가 중심의 체계였다면 이를 정신건강 서비스 이용자가 대등한 관계에서 치료와 요양, 재활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인권 존중 기반의 법으로 바꿔야 한다는 요청이다.

이항규 한국정신장애인협회장은 “정신건강복지법 제정 후 3년 동안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법률적으로는 못하는 것은 없지만 행정을 하는 주무부서와 보건복지부, 지자체는 제한을 해 버린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장애인으로서 지위와 질환자로서의 지위를 가지는 등 법적 지위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권리를 누릴 수 없는 상태”라고 비판했다.

현재 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전국에 2곳뿐이다. 이 협회장은 “우리가 운동 방향을 잘 잡지 않으면 이들도 분리될 것”이라며 “정신질환자를 포괄한 자립생활센터를 추구할 것인지 장애등록된 10만 명을 위한 자립생활센터를 할 건지는 지속적으로 토론하고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하 정신장애와인권 파도손 대표는 “기회주의가 다양성의 이름으로 민주로 논의되고 있다”며 “우리는 진실함을 요구한다. 진실하지 않은 것과 진실한 것을 동일선상에 놓는 것이 민주주의는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사자 운동의 방향성을 논할 때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소중한 영혼들을 잃을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또 “분단과 식민, 민주주의 역사의 맥락에서 당사자 운동도 같이 가야 한다”며 “역사 의식 없이 당사자 운동은 진행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당사자들의 심리적 기저에는 자본에 의해 망가진 것들을 회복하려는 욕망이 자리잡는데 우리들의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다”며 “지금 중요한 것은 당사자의 조직화이며 그래야 당사자 대중이 당사자 운동 판을 신뢰하고 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과거 경험 속에서 연대도 과정이 올바를 때 힘이 되지 과정이 올바르지 않을 때 그 연대는 분열과 파괴의 불씨가 된다”며 “진실한 마음으로 하는 당사자 운동 집단을 (당사자를 자기 사업의 대상으로 보는 집단과) 똑같은 선 위에 놓은 게 민주주의인가”라고 비판했다.

채문현 우리다움프렌즈 절차보조사업 팀장은 “병원과 지역사회에서도 인간의 기본적 인권침해에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치료 부분에 들어서면 힘의 논리에 의해 많이 좌우된다”며 “그 힘의 균형차로 인해 정책이나 제도도 어쩔 수 없이 좌우된다”고 말했다.

그는 지역사회의 취업 지원, 주거 지원, 교육 지원, 치료 지원들이 정신장애인의 권리에 기반한 재활과 치료가 되어야 하는데 ‘결과’만을 중요시하는 현재의 시스템에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내놓았다.

채 팀장은 “취업을 했다, 공동임대에 혼자 독립생활을 시작했다는 결과의 부분만 갖고 늘 판단해 왔지 않은가”라며 “생활 면에서 본인 권리를 주장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와 배려, 사회적 의사소통이 충분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채 팀장은 “당사자들이 강력하게 기존의 재활기관들에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느냐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며 “결과를 항상 요구하기 때문에 지역 자원들도 권리에 기반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정유석 한국정신건강전문요원협회 사무국장은 “당사자 단체가 정신장애인 운동의 지향점을 어떻게 하자는 제안은 시의적절하다”며 “당사자 운동이 등록 정신장애인뿐만 아니라 정신건강 문제를 안고 있는 모든 사람을 포괄하는 사회활동이라는 점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정 사무국장은 “보호를 받았던 당사자들이 그걸 탈피해서 본인을 중심으로 자립생활 지원 서비스를 만들어가고 있다”며 “지역사회에서 전문가와 지역 주민, 당사자가 협동하고 연대해 상호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박재우 서초열린세상 소장은 당사자의 자기결정권을 강화한다는 것이 논리적으로 설득력을 가지지만 이 결정권을 지나치게 강조할 경우 ‘막히는 지점’이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정신건강복지법 제정 후 강제입원 요건이 보호자 2명의 동의와 정신과 전문의 2인의 교차진단을 요청하면서 정신응급 상황에 놓인 이들이 종종 사각지대에 방치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박 소장은 “(가족이) 우리 애가 파괴될 때까지 그 과정을 지켜보고 있어야 하나라는 지점에 대해서는 자기결정권 강조가 사회적 설득을 얻기 어렵다”며 “자기결정권의 이름으로 이들을 내버려두는 게 과연 옳은가. 그것이 인권 침해라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문제를 푸는 방식으로 사회권의 확대를 주장했다. 유엔은 세계인권선언의 원칙으로 자유권과 사회권을 규정하고 있다. 자유권은 정치적 결사와 언론의 자유 등 국가의 개입을 필요로 하지 않는 보편적 권리를 의미하고 사회권은 인간다운 삶을 누릴 권리 등 국가가 적극 개입해야 하는 권리를 담지하고 있다. 사회권은 20세기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유엔에 요청하면서 시민 권리에 접속됐다.

박 소장은 “사회권 확대를 통해 증상을 어떻게 관리할 거냐의 문제를 이제는 지역사회에서 증상을 갖고 어떻게 잘 살아갈 거냐로 문제의식이 바뀌어야 한다”며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삶의 지원 체계가 없어서 힘들어하는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유권의 기준을 높이는 것만 얘기하지 병원 외에 다른 선택권에 대해서는 논의하지 않는다”며 “자기결정권은 현실에서 의미가 없어져 버린다. 입원이냐 아니냐라는 선택만 남을 뿐”이라고 말했다. 자기결정권의 문제는 선택의 문제라는 해석이다.

박 소장은 “질병의 관점이 아니라 정서적 고통의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정신질환으로 해석하지 않고 삶의 고통의 문제로 본다면 논의의 지점이 많고 당사자들이 말하는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관계’의 형성 역시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박 소장은 “고립에서 벗어나서 사람들과 만나는 데서 회복이 시작되고 사회적 삶의 첫 출발이 된다”며 “정신질환이라는 관점이 아닌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는 담론이 풍성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대환 청주정신건강센터장은 “당사자운동이 수레바퀴라면 바퀴가 잘 구르게 하기 위해 그 원을 튼튼하게 받쳐주는 살이 필요하다”며 “다양한 법과 제도의 완성은 수레바퀴가 무너지지 않고 갈 수 있게 살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센터장은 “자립생활에서 의존력을 높이는 훈련을 하면 더 빨리 자립생활에 도달할 것”이라며 “주변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다양한 지역사회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1회 전국 정신장애인 당사자 컨퍼런스 ‘새로운 대안’은 지난 19일부터 21일까지 서울대학교 호암교수회관에서 진행됐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대중적 모임 대신 소규모로 진행됐으며 주최 측은 이번 컨퍼런스에서 생산된 결과들을 모아 국회에 입법 청원 등을 진행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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