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형 기자의 변론] "내가 겪은 정신의 고통은 정치적 지표가 됐고 활동의 동기가 됐어요"
[이관형 기자의 변론] "내가 겪은 정신의 고통은 정치적 지표가 됐고 활동의 동기가 됐어요"
  • 이관형 기자
  • 승인 2020.12.03 20: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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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시 출연 결심은...세상에 당당하고 싶어
약자의 입장에서 세상의 부조리와 모순 이야기할 수 있어
역사적 장애인 활동가들...개인 경험으로 세상 변화시켜와
세바시 방송 이후 사회가 좀 더 따뜻해졌으면

지난 9월, 모르는 번호로 한 통의 전화가 왔습니다. 보통 ‘02’나 ‘070’으로 시작되는 번호는 보험이나 금융 광고일 가능성이 크고, ‘010’으로 시작되는 번호는 강연 섭외 전화일 때가 많았습니다. 그날은 ‘010’으로 전화가 왔기에 강연에 대한 문의이겠거니 하고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작가분의 강연 섭외 전화였습니다. 과거 장애인식개선 강사 교육을 받았던 장애인개발원에서 저를 포함한 5명의 강사를 세바시에 추천해준 것입니다. 

저는 기쁜 마음으로 섭외에 적극적으로 응했고 작가분과 소통을 하면서 10여 차례에 거쳐 대본을 쓰고 고치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렇게 9월 말이 되어, 저를 비롯한 강사들은 방송 녹화를 무사히 마쳤습니다. 그리고 세계장애인의 날이 포함된 장애공감주간인 12월 초부터 세바시 유튜브 채널을 통해 강연들이 순차적으로 방송될 예정입니다. (‘조현병 환자로서 알려주는 조현병에 대한 오해들’이란 제목의 제 강연은 12월 7일 유튜브에 업로드됩니다.)

출처 : 세바시

사실 강연 섭외 전화를 받고서 기쁘기도 했지만 걱정도 되었습니다. 저로서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했습니다. 편견과 낙인으로 인해 사회로부터 배제당하는 조현병 환자로서 카메라 앞에 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100만 명의 구독자를 가진 세바시에 출연한다는 건 영광이면서도 부담이 되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나는 조현병 환자다”라고 고백하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제 자서전 <바울의 가시>를 책으로 낼 때부터, 이미 각오는 하고 있었습니다. 조현병 환자로서 세상 앞에 당당히 살아가겠다고요.

세상 앞에서 나 자신의 장애를 노출한다는 것은 어쩌면 정치적인 행위로 볼 수 있습니다. 조현병 환자로서 그동안 겪었던 사회의 편견과 차별을 대중 앞에 드러냄으로써 역으로 사회를 비판할 수 있었습니다. 조현병을 드러내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서 세상의 부조리와 모순을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이죠. 이처럼 제가 겪은 고통은 정치적 지표의 역할을 했고 당당한 활동을 위한 동기가 되어주었습니다.

출처 : 학지사

한 예로, 하반신 마비 환자이자 행위 예술가인 그레첸 쉐퍼(Gretchen Schaper)의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대학교 수업에 참석하기 위해 평소에 사용하던 휠체어를 놓아두고 기어서 가기로 결심합니다. 사회에 메시지를 던지기 위한 일종의 시위였죠.

캠퍼스 거리를 기어가는 것은 사람들 앞에서 그녀의 장애 상태가 드러내는 것입니다. 마비된 다리가 벌어진 채로, 그녀는 팔로 자신의 몸을 질질 끌며 땅바닥을 계속 기어갔죠. 주변의 지나가던 학생들은 그녀를 전염병에 걸린 것처럼 멀리하거나 못 본 체했습니다. 이 같은 행동을 보인 후 그녀는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는 사람들로부터 적대감을 느꼈다. 또한 많은 비웃음과 무시를 함께 느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주목받기를 원하는 여자다’라는 듯한 차가운 시선을 보냈다.”

이처럼 그녀가 휠체어 없이 기어가는 것은 그녀 스스로를 약자이자 소외의 대상으로 보임으로써 사회의 어두운 민낯을 드러낸 것이었습니다. 사회의 차별과 암묵적인 문화에 자기 자신을 내놓는 방식으로 말이죠.

이처럼 장애인의 아픈 개인적 경험을 드러내어 사회를 변화시키려 한 사례는 또 있습니다. 1990년 봄, 미국의 ADAPT(American Disabled for Accessible Public Transit. 접근 가능한 대중교통을 위한 미국 장애인)라는 단체를 대표하는 36명의 휠체어 이용자가 미국 의회의사당 건물의 83개 대리석 계단을 기어 올라가는 시위를 합니다. 당시 장애인들의 접근이 어려운 미 의사당 건물을 기어 올라감으로써 그동안 장애인들이 겪었던 정치적, 문화적 고통을 행위로써 표현한 것입니다.

출처 : 학지사

또 다른 예로, 뉴욕타임스는 낙인, 고정관념, 폭력, 차별, 억압의 염려가 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부모들의 갈망을 모아 에세이집을 발간합니다. 하지만 이 에세이에는 장애 부모들을 겨냥한 혐오, 욕설, 증오가 가득한 200여 개의 독자 반응이 따라오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독자들의 반응 역시도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나타내는 귀한 자료가 됩니다. 그들은 장애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며 편견에 사로잡혀 장애를 다음과 같은 키워드로 표현했습니다. 

“자아도취적임. 사악함. 뒤틀려있음. 정서적으로 불안. 정신과적 도움이 필요. 어리석음, 모욕적. 역겨움. 끔찍. 비도덕적. 인류의 수치. 괴물들.”

이와 같은 독자들의 반응 역시도 미국 사회에서 장애인들이 받아야 할 고통과 차별을 현실적으로 나타냅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미국 사회의 인식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필요성에 좋은 근거와 자료가 될 것입니다.

세바시에 출연하면서 제가 겪어야 했던 편견과 고통에 대해 있는 그대로 이야기했습니다. 강의를 시작하며 저 자신을 17년차 조현병 환자라고 소개하는 것부터 휠체어에서 벗어나 바닥을 기어가는 것과 같았습니다. 누군가는 제 소개를 듣자마자 적대감을 가질 것이고, 누군가는 비웃음과 무시를, 누군가는 주목받기 원하는 관심종자이라는 차가운 시선을 보낼 것입니다.

어쩌면 뉴욕타임스의 독자들이 보냈던 부정적인 반응이 댓글로 달릴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를 통해 우리 사회가 정신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에게 얼마나 냉혹했는지, 얼마나 부정적으로 바라봤는지를 각성할 수 있다면 제 목표는 이룬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세바시 방송 이후, 제게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기대도 되고 걱정도 됩니다. 하지만 저 개인적인 변화보다, 사회가 좀 더 따뜻하고 아름답게 변해가길 기대합니다. 멀지 않은 미래에는 조현병 환자를 비롯한 정신장애인들, 더 나아가 신체장애인과 모든 사회적 약자들이 부당함과 억압을 당하지 않는 사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참고문헌 : <장애이론 : 장애 정체성의 이론화>(조한진 외,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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