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청원 “우리 어머니를 도와주세요”...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가책임제
청와대 청원 “우리 어머니를 도와주세요”...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가책임제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1.05.18 23:2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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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응급 상황에 대한 담론은 차고 넘쳐...이제는 실행할 때
입원 결정을 사법과 준사법기구가 담당하는 구조 돼야
정신 위기 시 응급입원 찬성...그러나 치료 환경 우선 되돌아봐야
청와대국민게시판에 조현병 어머니 둔 아들 토로

어린이날인 지난 5일 경기 남양주시에 사는 A(29) 씨는 자신을 돌보던 아버지(60)를 둔기로 살해했다. A씨는 조현병 당사자였다. 20대 초반에 정신질환을 겪게 된 A씨는 그간 수 차례의 정신병원 입·퇴원을 반복했다.

그리고 강제입원을 시킨 아버지에 대한 원망 등이 겹쳐져 아버지를 살해하겠다며 아버지를 직접 위협하기도 했다. 아버지는 사건이 발생하기 한 달 전인 4월 경찰에 보호를 요청했다. 하지만 경찰은 A씨가 “아버지와 좀 다툰 것뿐”이라는 말을 듣고 돌아갔다. 명백한 자·타해 위협이 없는 이상 경찰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그리고 어린이날, 아버지는 A씨에 의해 사망했다.

이 사건 이후 정신의학계와 당사자 단체, 가족단체는 깊은 패닉에 빠졌다.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어떤 정신보건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는지, 지금의 입원 시스템은 과연 유효한지를 물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17일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신장애와인권 파도손,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한국정신장애인협회는 화상으로 이 사건에 대한 기자회견을 겸한 토론회를 진행했다.

토론자들은 현재의 정신응급 상황의 대응이 폭력적이라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였다. 사설기관이 와서 정신 위기에 놓인 당사자를 결박해 정신병원으로 이송하면 정신병원은 ‘날뛰는’ 정신질환 당사자를 강압적으로 제압하고 주사를 놓아 진정시키는 것은 치료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야만이라는 지적이었다.

현재의 정신응급 대응은 폭력적이고 야만적...트라우마 키워

또 정신응급 상황에서 명확하게 정신적 증상을 보여도 자·타해의 위험이 없으면 경찰이 개입할 수 없는 한계도 지적됐다. 특히 보호의무자가 있는 상황에서 당사자의 비자의입원은 정신건강복지법상 진행할 수 없다.

대만의 경우 정신적 위기 상황에 놓인 사람을 보게 되면 공적 기구뿐만 아니라 시민도 발견 즉시 경찰과 소방에 연락해 조치하도록 하고 있다. 응급 상황에서 공적 기구의 개입은 때로는 단호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현장에 경찰과 함께 출동한 정신건강전문요원이 당사자를 설득하고 보호자를 설득하면서 시간을 낭비하게 된다는 지적이다.

미국 LA의 경우 정신적 응급 상황에 놓인 당사자가 있다는 신고가 있으면 경찰은 반드시 현장에 출동해야 한다. 그리고 이송 과정을 담당하게 되고 자·타해 위험이 있는 이를 병원으로 데리고 가면 그 병원은 정신과 병상 일부를 반드시 비워둔 채 환자를 받아들이고 그 병상에 입원시킨다.

그리고 3일 동안의 증상을 관찰하게 되고 환자의 입원 유무는 법원이 판결을 내리게 된다. 일종의 사법입원제다. 호주의 경우 판사와 전문의, 공익위원 등이 함께 참여하는 준사법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우리는 강제입원의 결정을 온전히 가족에게 떠넘기고 있다. 자신의 의지와 다르게 입원해야 하는 당사자는 가족을 원망하게 되고 이 감정이 커질수록 가족은 신변의 위협까지 느껴야 한다.

정신건강복지법은 여전히 가족이 당사자를 조력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비자의입원 과정에서 보호의무자인 직계존속이 아닐 경우 입원을 진행할 수 없다.

지난 2019년 4월, 경남 진주에서 조현병 당사자 안인득이 자신의 아파트에 불을 지르고 대피하는 주민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5명이 숨지고 17명이 부상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는 약물 복용을 하지 않았고 여러 차례 이웃과 갈등을 빚고 있었다. 그의 형은 강제입원을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지만 돌아오는 답은 직계존속인 부모가 아니면 입원을 진행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인권 기반의 응급 시스템이 작동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사건들

2018년 7월에는 경북 영양군에서 퇴원한 지 한 달 된 정신장애인 당사자가 집안에서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어머니의 도움 요청을 받고 현장에 찾아온 경찰관에게 흉기를 휘둘러 사망하게 했다. 그가 병원에 있을 때 그의 어머니는 경제적인 이유로 아들의 퇴원을 요청했고 의사가 만류했지만 결국 퇴원했다. 그 역시 퇴원 후 약물을 끊었고 가족과 갈등을 빚고 있었다.

토론회에서는 왜 이들에게 외래치료명령제가 적용되지 못했는지를 물었다. 미국은 정신장애인 당사자가 퇴원을 하면 응급간호팀이 매일 거주지를 찾아 상태를 확인하고 정신과 전문의도 한 달에 한 번씩 의무적으로 그를 찾아 의료적 도움을 줘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입원하면 그걸로 끝나버린다.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지역사회 서비스가 멈추는 것이다. 그러면 정신장애인은 고립감을 느끼게 되고 증상이 악화되면서 사건을 일으키거나 다시 재발해서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이번 토론회에서는 바로 그 지속가능한 서비스의 공급과 지역사회 치료 환경 조성이 문제로 지적됐다.

특히 정신 응급 상황에서 경찰이 현장에 출동하면 그를 일단 병상을 비워두고 있는 지정병원으로 이송하고 정신응급센터가 그의 입원을 결정하는 체계를 시급히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그리고 새로운경기도립정신병원이 수행하고 있는 인권 기반의 치료 시스템을 전국적으로 확산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특히 오픈다이얼로그 등 정신응급 상황에서의 인권적 접근은 당사자의 치료 과정에서 당할 수 있는 폭력에의 경험을 없애고 트라우마 없이 병원 생활과 더불어 퇴원 후 생활을 건강하게 지속할 수 있게 된다는 분석도 나왔다.

특히 정신응급 상황에서 동료지원가의 역할 또한 무시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정신응급 위기 상황에서 아픔을 겪어보았던 동료가 위기 상황의 자신을 위로한다면 이는 전문가의 대응보다 높은 수준의 회복력을 갖게 된다는 의미다.

결국, 비자의입원을 사법이 결정하는 것과 가족에게 부담을 떠넘기지 않고 국가와 사회가 그 책임을 가져가는 국가책임제의 시행이 그날 토론회의 핵심 요청이었다.

비자의입원 결정은 이제 사법이 진행해야

게다가 응급입원 이외의 그 어떤 강제입원도 반대한다는 당사자 단체의 입장도 있었다.

지난 13일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는 ‘우리 어머니를 도와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왔다.

조현병 당사자인 어머니를 두고 있다는 청원인은 그간 경찰 신고, 신변 보호 요청, 소방서 신고를 진행했고 구청, 동사무소를 다 방문했다. 어떤 도움을 받아야 하는지 몰라 당장 눈앞에서 어머니의 행동을 제어해야 했고 응급 상황의 어머니를 응급입원 시켜야 하는 상황들을 겪어 왔다.

그런데 경찰과 소방, 정신건강복지센터 관계자들은 “자·타해의 위험이 없다. 타해가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현장에서 직접적 자·타해 위험이 없으면 강제적으로 응급입원을 시킬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는 앞서 말한 조현병 아들에 의한 아버지의 살해에서 아버지가 신변을 위협을 느껴 경찰에 보호를 요청했을 때 출동한 경찰관이 “자·타해 위험이 없어서 입원을 시킬 수 없다”는 발언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또 경찰은 “유리창을 깨거나 생명의 위협을 가하는 것을 눈앞에서 보여야 입원에 대한 필요성을 인지하게 된다”는 발언 역시 어린이날 발생한 사건의 아버지가 경찰로부터 들어야 했던 내용과 결을 같이 하게 된다.

청원인은 “동생이 직장을 그만두고 어머니 옆에서 설득을 하며 치료를 두 달 정도 권해봤지만 상황은 악화되고 생계에 어려움도 생겨 너무 힘이 든다”고 토로했다.

이는 집안에 병식이 없는 정신장애인이 있을 경우 가족 중 누군가는 사회생활을 포기하고 당사자에게 매달려야 하는 현재의 구조적 모순과 똑같은 상황에 처해 있음을 보여준다.

청원인은 “심해지는 어머니의 모습과 생활 패턴으로 인해 동생과 저도 점점 무너지고 방치 아닌 방치로 고통받고 계시는 어머니한테도 이건 아닌 것 같아 정말 치료를 받고 싶다”고 전했다.

정신장애인 당사자를 둔 이들은, 특히 자식을 둔 부모는 심각한 우울증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자식의 회복과 더불어 치유의 길로 나가지만 도움을 받을 곳이 없는 고립된 환경에 처한 가족은 그 자체로 트라우마를 겪게 되는 것이다. 위의 청원인은 어머니가 당사자이고 이를 돌보는 아들은 절망에 빠지고 만다.

가족이 기다리는 초인(超人)은 바로 ‘국가책임제’

청원인은 “인권으로 인해 입원에 대한 절차가 심해진 것은 이해한다”며 “하지만 정말 치료받아야 하는 사람이 그러지 못하고 고통받다 결국에는 죽음에 이르게 된다면 잘못된 게 아닐까요”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제발 도와주세요. 살려주세요. 저 또한 무너져가는데 정말 위태롭습니다”라고 글을 맺었다.

정신장애인 가족은 백마 탄 기사처럼 자신을 돕고 옹호하고 현재의 아픔을 해결해줄 누군가를 기다리게 된다. 아무리 백방으로 뛰어봐도 해결책이 보이지 않을 때 인간은 ‘초인’(超人)을 기다린다. 당신이 내 고통을 위로해 달라. 그러나 현실에서 초인은 없다.

그렇지만, 가족은 기다릴 수밖에 없다.

기자는 그 초인의 의미를 ‘국가책임제’로 명명하고자 한다.

국가책임제. 국가가 가족과 당사자의 고통을 받아안는 시스템. 응급 상황에서 경찰이 와서 인권적 접근으로 병원에 이송하고 지정병원은 의무적으로 비워둬야 하는 병실에 당사자를 입원시키고 오픈 다이얼로그를 통한 당사자의 이해와 동의에 의한 의술을 베풀고, 퇴원하면 지역사회 다학제팀이 매일 그 당사자를 찾아 일상을 회복시키는 그런 시스템. 그것은 곧 초인, 국가책임제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국가책임제를 미룰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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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2021-05-23 20:07:50
청원내용 전문을 보았습니다. 너무나 가슴이 아픕니다. 국가가 적극적으로 책임지고 당사자와 그 가족을 도와줘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