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고...“우리는 자기결정권에 기반한 삶을 원한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고...“우리는 자기결정권에 기반한 삶을 원한다”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1.06.06 22: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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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그알', 남양주시 조현병 아들의 아버지 살해 사건 방송
정신장애를 범죄성으로 해석하던 기본 프로그램과 약간 결이 달라
국가가 정신장애인과 가족을 위한 인권친화적 정책 디자인할 때

정신적 질환으로 고통받던 30살. 그 무렵 기자는 시골 부모님 집에서 1년 정도 생활했다. 기자는 방 밖을 나가지 않았다. 가끔 마당에 나가 몇 분간 서 있었을 뿐, 모든 시간을 골방에서 지냈다. 아버지는 아파했다. 무언가 뚜렷한 이유가 있어서 방에 있는다면 모르지만 백주의 거리로 나서지 못하고 방안에만 고여있는 아들이 당신은 슬펐으리라.

그 1년 동안, 괴로웠던 건 사람을 만나는 거였다. 이상했다. 그 시절, 한 번도 우리 집을 찾아온 적이 없고 앞으로도 없을 사람들이 집을 방문하고는 했다. 그들을 피해 방에 틀어박혔다. 병들고 가난하면 가까운 친구들도 다 떠난다는 건 참 자명한 이치 같다. 누구는 아니라고 하겠지만 그게 세상사 사람 마음인데 굳이 노여워하거나 아파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기자는 그렇게 고립돼 있었다. 혼자 된다는 것. 누군가는 충만해지는 일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외로운 일이라고 한다. 기자에게 혼자 된다는 건 존재론적 고립이었다. 그건 충만이나 외로움이 아닌 그 이상의 형이상학적인 두려움이었다. 기자는 골방에서 이유 없는 불안에 몸을 떨고는 했다.

(c)SBS '그것이 알고싶다' 갈무리.
(c)SBS '그것이 알고싶다' 갈무리.

무서운 건,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모두가 잠든 밤 시간, 안방에서 주무시는 아버지를 해칠 것 같은 공포가 기자를 엄습했다. 그 망상은 밤마다 기자를 괴롭혔다. 인간의 마음과 마음은 서로 연결돼 있다고 한다면 그런 망상 속의 아들을 아버지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두려웠을까. 한편으로는 그랬을 것이다. 기자는 망상 속에 떠오르는 흉기를 의식적으로 지우느라 밤마다 스스로 싸웠다.

고립은 외로움 아닌 형이상학적 두려움

언젠가 인터넷에서 30대 정신질환을 가진 젊은 아버지가 밤마다 두려움에 몸을 떤다는 글을 읽었다. 그는 자신의 두 딸이 아내와 함께 잠든 방에서 나와 거실에서 자신이 흉기로 사랑하는 딸들을 살해하려 하는 망상에 사로잡혀 몸을 떨고 있었다. 어쩌면 기자와 그렇게 닮았을까. 그 망상, 극단적 죽음의 망상은 어떤 정신장애인에게는 실존의 고통이었을 것이다.

1년 후 시골집을 떠나 서울로 와서 누나 집에서 살게 됐을 때, 기자는 길거리에서도 마치 스스로 범죄자가 된 듯한 기분에 자주 사로잡히고는 했다.

무서웠다. 내가 길거리에서 누군가를 흉기로 살해할 것 같은 망상이 들면서 길거리를 걷는 그 행위조차도 몸을 떨어야 했다. 정신장애를 가진 자식을 둔 가정이 행복할 가능성은 많지 않다. 기자도 그랬다.

기자의 병을 이해하지 못하는 누나와 자주 싸웠고 결국 기자는 S시에 방 하나짜리 반지하 방으로 이사를 해 버렸다. 잠깐의 후련함은 있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다시 기자는 망상의 골목길로 들어섰다. 문을 세게 닫는 것 때문에 옆집이랑 싸우고 이사를 했고, 이사간 거기서 또 소음 때문에 이웃과 싸우고 이사를 했고, 또 싸움을 벌이고 이사를 했다.

그렇게 10여 차례의 이사를 한 후 기자는 인천 남동구의 한 허름한 반지하 원룸방으로 밀려났다. 아무도 없었던 시절이었다. 개신교를 믿는 누나는 기자의 질병이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 죄’라고 단죄했다. 기자는 끊임없이 술을 마셨고 옆집이 문을 세게 닫으면 이웃과 또 싸웠다.

의식은 극단적으로 퇴행했고 기자는 방 밖에서 나는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는 했다. 나를 지원하고 지지해줄 어떤 집단과 개인도 없었다.

이후 인천에서 꽃게배를 타게 됐는데 바닷일이 혹독할 정도로 힘들었지만 일이 끝나고 배의 후미에 계단을 타고 내려가면 있는 침상에 누우면 고요한 평화가 찾아오곤 했다. 그곳에서 들리는 소음은 찰랑거리는 바닷소리가 전부였다. 그곳에서 기자는 깊은 평화의 감정을 느꼈다.

잠깐의 위로이자 안식이었다.

(c)SBS ‘그것이 알고 싶다’ 갈무리.
(c)SBS ‘그것이 알고 싶다’ 갈무리.

그렇지만 기자의 고립된 삶으로 들어와 도움의 손길을 주는 이들은 없었다. 기자는 어떤 망상으로 인해 누군가를 해치려 할지도 모른다는, 내가 나를 믿을 수 없는 상황까지 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10년을 헤매다가 집안 식구들의 도움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했고 6개월 후 퇴원해 공동생활가정 두 곳에서 6년의 시간을 보냈다.

지금은 임대주택의 최고 윗층인 5층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렇지만 지금도, 아주 가끔은, 두려움을 가진다. 

돌아보면 그렇다. 만약 기자가 고립된 삶 속에 처했을 때 정신건강복지센터가 그런 기자를 발굴해서 절차보조 서비스를 지원하고 일주일에 단 이틀이라도 찾아와서 일상을 점검했다면 기자는 훨씬 일찍 회복의 길로 들어섰을지도 모른다.

고립된 존재에게 국가기구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면

힘들고 외로울 때,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전화번호를 내가 알고 있다는 것. 그래서 정신적 어려움이 커질 때 사회복지사와 같은 정신요원들에게 전화할 수 있다는 믿음은 인간을 심리적으로 안정시키는 기제가 된다.

하지만 기자에게는 아무도 없었다. 정신병원에 입원하기 전까지 기자는 오로지 홀로 견뎌야 했다. 그 견딤 속에는 스스로가 병을 이기지 못해 망상에 사로잡혀 타인을 해치는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이 강하게 들어있었다. 실제로 반지하 원룸에 살 때, 술에 취해서 자정 무렵 옆집 문을 향해 술병을 집어던지기도 했으니 말이다.

지난 6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 프로그램에서는 경기 남양주시에서 20대 아들이 아버지를 살해한 사건을 기획보도했다. 아들은 군 제대 후 정신질환이 발병했고 이후 기자의 삶과 같은 시간을 보냈다. 그렇지만 그에게는 지지하는 아버지가 있었다. 그런 아버지를 아들은 늘 ‘살해하고 말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아버지는 아들을 피해 자신의 부모님이 있는 집으로 가서 살았다. 어린이날인 지난 5월 5일, 아버지는 그래도 아들에게 뭔가 좋은 것을 사 주고 싶어 남양주 집을 찾았고 그곳에서 아들에 의해 숨졌다.

기자는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하나씩 메모를 하기 시작했다. 진행자가 어떤 멘트를 하는지, 보도 방향이 정신장애인의 관리와 격리, 배제에 집중한 것은 아닌지. 만약 그렇다면 기자는 다시 그 프로그램을 비판하는 글을 실어야 했을 것이다.

보도 내용을 메모하면서 기자는 더 이상 이런 형식의 탐사보도가 나오지 않았으면 했다. 잠을 자야 하는 밤 11시 시간대에 나오는 방송을 봐야 했고 정신장애인에 대한 차별적 언행이나 정신장애를 위험성과 잠재적 범죄의 형식으로 보도하는 것들을 많이 봐 왔기 때문이고 그렇게 포맷된 방송을 보고 난 후 다시 이를 비판하는 비판기사를 쓰는 것이 지겨웠기 때문이었다.

이 프로그램의 제목은 ‘살인자의 기록법...예고된 죽음과 SOS’였다. 아들은 방의 벽에 아버지를 위협하는 글을 써두었고 메모지에도 아버지뿐만 아니라 어떤 사람들을 해치겠다는 글을 적어두기도 했다. 기자는 속으로 ‘또 정신장애인이 위험하다는 쪽으로 몰아가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아버지 차에서 일기장 발견, 죽이겠다고 적혀 있었다, 다 죽이자’ 등등.

방송 중간에 변호사는 아들의 존속살해 혐의에 대해 심신미약으로 인정될 것으로 봤다. 그런데 심신미약 상태에서 통제 능력이 떨어진다고 볼 수 없다고 답했다.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사건을 일으킨 비장애인들이 자신에게 유리한 판결을 유도하기 위해 심신미약을 주장하는 경우가 정신장애인보다 더 많다는 점이다.

그런데 시민은 정신장애인은 원래가 무서운 존재들인데 그들은 사람을 살해하거나 다치게 하고도 심신미약을 이용해 법망을 빠져나가려고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자가 봤을 때, 심신미약을 주장하는 이들은 대부분이 비정신장애인들이다. 욕은 정신장애인들이 먹고 심신미약 이라는 법적 장치는 비정신장애인들이 이용하는 셈이다.

방송은 정신과 의사의 판단을 인용해 그 아들이 편집성 조현병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범죄학자의 말을 인용해 아들이 행위가 계획 범죄보다 충동 범죄로 보인다고 전했다.

한 사회심리학 교수는 “아들이 여행으로 탈출하고 싶은데 막는 게 아버지였고 그래서 아버지를 제거하겠다(라는 생각을 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아들은 분명한 조현병 당사자...하지만 지원 없이 고립돼

기자는 그 발언에 동의할 수 없었다. 흔히들 정신장애를 가진 자들이 여성 등 자신보다 약한 사람들을 골라 일종의 ‘테러’를 한다고 비난한다. 기자는 부인하지 않겠다. 기자 역시 그랬으니까. 앞에 마동석 같은 존재가 있다면 기자는 움찔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여성이나 아이였다면 기자는 고함을 치면서 덤벼들었을 것이다. 부끄럽지만 그렇다. 정신질환을 가진다고 해서 자신이 이길 수 없는 거대한 상대에게 머리를 들이밀지는 않는다. 인간의 적대성은 늘 약자를 향해 있다. 자신의 억울함, 괴로움, 아픔 이런 내적 고통이 인간에게서 온 것인데 그 인간이 조직폭력배라면 인간은 그에 대한 복수심을 제대로 작동시키지 않는다.

즉, 정신장애인도 사리분간을 할 줄 아는 존재들이라는 것이다. 때로는 망상이 강해서 아무나 붙들고 시비를 붙이기는 해도 그 시비의 방향성은 폭력적인 강자보다 약자에게 더 쏠린다는 점이다.

그럼 저 사회심리학 교수가 이야기한 것은 오류라고 기자는 말하고 싶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언제든 돈을 받아서 여행을 떠날 수 있다. 그런데 그 욕망을 가로막는 것이 아버지라고 했다. 아버지가 무슨 힘이 있어 아들의 돌출적이고 황당한 여행 욕구를 가로막을 수 있겠는가.

다만 아버지가 할 수 있는 건 아들이 돈을 요구하면 그 돈을 주는 것뿐이다. 망상을 하는 아들 때문에 집안의 칼을 다 치웠지만 아들은 다시 흉기를 구입해 집안 구석진 곳에 감추어두었다.

기자는 저 아들의 심리는 자신의 내적 고통과 이 세계로부터 무시당한 모욕감과 분노를 자기보다 약한 아버지에게 투사한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그는 자기 존재를 스스로 위로하고 싶었던 것이다. 단순히 여행을 막았다는 것이 아들이 아버지를 살해한 이유가 될 수는 없다고 기자는 생각한다.

방송은 중간에서 결말로 흘러가면서 정신장애인의 응급입원 문제를 짚고 있다. 정신건강복지법이 2017년 시행되면서 정신장애인 당사자가 동의하지 않으면 입원을 시킬 방법이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아버지는 아들의 폭력을 견디지 못해 경찰을 불렀다. 그렇지만 경찰은 너무나 태연한 아들의 모습을 보고 더 이상의 공권력 행사는 불가하다 생각하고 돌아갔다.

기자가 의아하게 생각한 건 아버지가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는데 그보다 사설구급대가 먼저 집앞에 와 있었다는 점이다. 어떻게 온 것일까. 경찰이 아무것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아버지가 따로 부른 것일까.

사설 구급차를 몰고온 그는 “병원 가자 해도 안 간다고 하면 우리는 어떻게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과연 그럴까. 먼저 짚고 넘어갈 부분은 정신보건법이 시행된 1995년 이후 정신장애인을 자본의 축적 대상으로 보는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기 위해 저 ‘사설구급대’라는 존재들이 정신장애인들을 범죄자처럼 포승줄로 묶었던 시절에 대해 일말의 반성조차 없다는 점이다.

렉커차가 교통사고가 나면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하기 위해 역주행을 불사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렉커 차 차주에게는 시민의 안전보다 현장에 가장 먼저 가서 사고 차량을 견인하는 것이 돈이기 때문에 고속도로에서도 역주행을 한다.

마찬가지로 사설구급대는 환자 한 명을 정신병원으로 이송하는 것이 돈이기 때문에 가장 먼저 가서 가장 폭압적 방법으로 환자를 묶어서 차에 밀어넣어버린다. 환자는 그때, 깊은 트라우마와 더불어 분노를 느끼게 된다.

정신보건법 시대 횡행했던 불법 강제입원에 대해 권력은 반성해야

그런 정신질환 세계의 렉커차인 사설구급차가 위협을 가하는 당사자를 가족이 데려가 달라고 요청하면 가장 먼저 와서 묶어서 가는 게 문법처럼 돼 버린 그들이 “환자가 거부하면 돌아서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정신의 고통 속을 역주행해 당사자를 묶어버리는 그들이 무슨 선(善)한 존재인 것처럼 그렇게 말하는가, 기자는 묻고 싶다.

방송은 결론 부분에 가서 말한다. “아들은 고립돼 갔다”고. 그리고 고립의 동굴로 들어가는 걸 막을 수 없는 이유는 오로지 “당사자가 거부하면 어떤 서비스도 제공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정신건강복지센터 한 종사자는 말했다.

그렇지만 뒤집어서 생각하면 왜 정신병원은 환자가 퇴원할 때 정신건강복지센터의 존재를 알려주지 않느냐는 것이다. 일부는 알려준다고 항변할 수 있다. 하지만 기자가 만나본 많은 부모들은 병원에서 센터의 존재를 안 게 아니라 우연히 길을 가다가 센터를 알리는 플래카드를 보고 찾아가기도 하고 어떤 이는 당사자의 부모들과 모임을 갖다가 그 존재를 알게 됐다는 게 더 많았다.

(c)SBS ‘그것이 알고 싶다’ 갈무리.
(c)SBS ‘그것이 알고 싶다’ 갈무리.

병원이 맡아야 할 퇴원 후 치유 프로세스를 진행하지 않고 센터를 알지 못했던 가족을 역(逆)비난하는 셈이다. 일본은 환자가 퇴원을 지자체에 신고하면 공무원이 와서 퇴원 이후를 함께 설계한다. 이는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말하는 여러 나라에서 의료적 부분을 병원이 담당하고 복지의 부분을 지자체가 책임지는 공통된 특징을 가진다.

하지만 우리는 정신장애인이 입원을 하면 지역사회 연결고리가 다 끊기고 퇴원을 하면 고리가 사라진 지역사회에서 하나의 인프라 없이 고립된 채 살아가야 한다. 이 경우 가족은 당사자의 삶의 고통을 온몸으로 맞아야 한다.

방송은 “왜 가족에게 모든 짐을 지운 걸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어쩌면 그건 한국사회 정신보건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부분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서 “안인득 사건 때도 형이 6차례나 신고해야 했던 그 사건을 치르고도 변한 게 없다”고 전한다. 안인득은 2018년 경남 진주 자신의 임대아파트에 불을 지르고 화재를 피해 대피하던 주민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5명이 숨지고 17명이 부상당한 사건이다. 그의 형은 동생 안인득을 입원시키기 위해 경찰과 관계기관이 수없이 전화했지만 형은 직계인 부모가 아니라는 이유로 그 모든 요청을 거절당했다.

방송은 또 다른 에피소드를 넣었다. 정신장애인인 딸로부터 일상적으로 폭행당해왔던 어머니의 이야기다. 딸 미연(가명)은 커트칼로 엄마의 팔을 그었고 어느 날은 스스로 집에서 뛰어내려 중상을 입기도 했다. ‘사고’를 치고 두 번이나 치료감호소 들어갔다. 지금도 미연은 치료감호소에 있으면서 집으로 돌아가게 되면 ‘엄마를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하고 있다.

그의 엄마는 “무서워서 못 살아”라며 “딸이 나오면 내가 죽어요. 구치소에 있는 딸 생각하면 눈물이 나. 안정이 안 돼서 밤에도 잠을 못 자”라고 토로했다.

기자가 시골집에서 밤이면 밤마다 아버지를 흉기로 해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몸을 떨어야했던 그 실존적 고통을 저 엄마가 겪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마음이 아픈 것은 딸의 폭행에 일상적으로 노출됐던 그 엄마가 오히려 딸의 안위를 걱정하며 눈물을 흘린다는 것이다.

정신질환을 가진 당사자와 사는 가족은 이 같은 이중 감정, 혹은 모순된 감정에 빠지게 된다. 심리적으로 위협하는 당사자가 두렵기 때문에 밤에 잘 때 방문을 잠그고 집안의 흉기는 안 보이는 곳에 치우게 된다. 그 스트레스가 장기화되면 인간은 어떤 방식으로든 정신질환에 걸릴 확률이 굉장히 높다. 기자가 그랬다.

두렵지만 내가 지켜야 해...이중 모순의 감정 느끼는 가족

그렇지만 엄마는 딸을 치료하고 싶어한다. 저 딸에 대한 ‘연민’, 그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어떨 때는 자식이 빨리 죽기를 바라고 어떨 때는 온 힘을 다해 자식을 때려버리기도 싶지만 마지막까지 놓지 못하는 것, 그건 ‘내 자식에 대한 사랑’ 때문일 것이다.

방송은 그렇게 묻는다. “(입원과 관련해) 설득이 실패하면 자·타해 책임은 오직 가족에게 있다. 정신건강복지법 이걸 인권을 위한 법이라고 할 것인가.”

그리고 결론을 내린다. “(저 아들에게) 사회복지사가 와서 입원을 시켰다면 이런 비극은 안 일어났을 것이다. 국가가 이제 책임을 져야 한다.”

2년 전 한 방송국 시사 프로그램은 조현병 관련 사건·사고를 기획기사로 방영한 적이 있다. 그때, 그들은 위험한 정신장애인은 사회에게 격리돼야 한다는 쪽으로 결론을 몰아 갔다. <마인드포스트>는 즉각 항의성 기사를 실었다.

이번 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다 지켜본 후 기자가 내린 결론은 ‘그나마 감사하다’는 것이었다. 정신장애를 위험성으로 보고 격리의 시선으로 접근한 게 아니라 정신장애인을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보호해야 하고 그것을 위해 국가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의식을 시민 사회에 던져줬기 때문이다. 특히나 방송 초반에 기자가 우려했던 정신장애인의 위험성 프레임은 그 안에 없었다는 것도 말하고 싶다.

정신장애인 인권 황무지에서 구조적 모순 추적한 프로그램에 감사

프로그램은 결론에 입원의 문제를 짚었지만 정신건강복지센터 같은 관계기관에서 사회복지사가 와서 고립된 정신장애인을 위로하고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스스로 입원을 결정할 수 있게 하는 시스템에 대해 전했다는 점, 그리고 이는 타자에 의한 폭력적 침해가 아닌 자기결정권에 기반한 입·퇴원의 문제, 퇴원 이후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인프라의 국가적 디자인의 필요성을 조금이나마 알렸기 때문이다.

이제 비슷한 형식의 프로그램이 만들어진다면 국가의 정신보건과 복지 정책의 디자인에 빠져 있는 부분들을 보충해주는 정신장애 친화적 방송이 많아지길 바란다. 그럼, 기자도 펜을 들고 프로그램 내내 메모하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좀 더 나은 미래로의 행진, 그것은 정신장애를 타자로 규정하는 것이 아닌 우리 사회의 한 실존적 존재로 인식하고 그들의 삶을 지원하는 국가 정책, 기자의 바람은 그것이다.

그리고 사회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 방송이 조현병에 대한 편견을 강화할까 우리도 고민을 했습니다”라고. 그들도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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