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우리가 모여 취업과 주거·활동지원서비스를 국가에 요청했으니...
여기, 우리가 모여 취업과 주거·활동지원서비스를 국가에 요청했으니...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1.06.26 01: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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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 목소리 환영대회’ 컨퍼런스 이틀 간의 행사 성료
당사자연구 통해 환청·망상 문제를 긍정적으로 보게 돼
강제입원이 유일한 대안 돼서는 안 돼...가고 싶은 병원 만들어야
취업을 통한 일이 인간의 자기존중과 자기실현을 완성시켜

정신장애인 컨퍼런스 ‘당사자 목소리 환영대회’가 24~25일 이틀간의 행사를 모두 마무리했다. 이번 행사는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권리 회복과 정신장애 복지 체계의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마련됐다.

25일 ‘우리를 빼고 우리를 말하지 말라’는 슬로건으로 시작된 행사는 환청·망상대회와 토크 콘서트, 당사자 권리 선언문의 낭독으로 진행됐다.

충주어울림센터의 당사자 A씨(여)는 자신의 환청과 망상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자신이 예수라는 환청을 듣고 망상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교회에 가면 아무도 그를 예수로 칭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모두 자신에게 무릎을 꿇고 ‘너는 예수라’라고 말할 줄 알았는데 교회 사람들을 만나면 그는 그저 평범한 교인에 불과했다.

그는 “나는 위대한 예수이고 이런 대접을 받을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 짜증과 화가 났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이용하는 센터에서 당사자 연구를 진행한다. 당사자 연구는 일본 홋카이도 남단의 작은 어촌 우라카와 마을에 사는 정신장애인 당사자 공동체 ‘베델의집’에서 시작된 프로그램이다.

환청과 망상, 우울 등 정신적 고통에 대해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자신을 내보이면서 동료로부터 지지를 얻고 자신의 고생의 원인을 분석하는 대화에 의한 치유의 모색이다. 이는 한국 정신장애인의 당사자 연구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A씨는 “당사자 연구에서 내 얘기를 하면서 마음이 편안해지기 시작했다”며 “나의 환청·망상을 엄마, 아빠에게도 할 수 없었는데 이 연구에서 환청과 망상을 이야기하면서 내가 진짜로 한 인간이 된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어 “예수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 살아도 나는 행복하고 감사하고 기쁜 생각을 하면 살게 됐다”며 “요즘은 환청이 나한테 ‘너는 잘 될 거야’, ‘걱정하지 마’라는 좋은 소리를 많이 해줘서 환청과 망상을 갖고도 잘 살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진 토크 콘서트에서는 정신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한 취업, 주거, 대인관계 등을 주제로 진행됐다.

김도희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 대표 변호사의 사회로 시작된 콘서트에서 권용구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장은 정신장애인의 정신적 위기와 관련해 “위기가 오면 무조건 입원하는 방향성밖에 없기 때문에 강제입원을 당하게 된다”며 “자신이 병원에 들어가고 싶을 때 들어가고 나오고 싶을 때 나오는 쉼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활동지원 서비스에 대해 “이는 장애인이 생활상의 정서적 지지를 받는 서비스”라며 “그런 게 정신장애 쪽에는 너무 없다. 일상생활 지원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신석철 송파정신장애동료지원센터장은 “당사자 운동을 하지만 정신병원을 다 때려부수자는 게 아니”라며 “당사자가 가고 싶은 병원을 만들어야 하고 당사자가 왜 병원을 안 가려 하는지 정부 스스로 물어봐야 한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입원하기 좋은 병원을 만들어서 저항 없이 병원에 갈 수 있게 하는 게 인권 친화적 부분”이라며 “지역사회에서 위기 대응은 활동 지원이나 동료 지원인데 사실상 이게 법에 없고 있어도 실제 적용되지 않는 제도적 허점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토론회에 참여한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 B 사무관은 “주거 문제는 보건복지부 장관도 어느 정도 공감한 것 같고 특히 위기쉼터 예산도 증액됐다”며 “기획재정부나 예산을 담당하는 곳에 가서 내가 얘기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고 전했다.

이어 “그들에게 가서 전달하면 1%라도 반영될지 부담이 된다”며 “실제 제도를 만들려고 해도 원하는 만큼 안 되고 가끔은 요것밖에 안 돼서 부끄러울 때가 있다”고 토로했다.

주거 주제와 관련해 신 센터장은 “2021년 정신장애 인권 보고서에 따르면 정신장애인이 병원에서 퇴원하지 않는 일순위의 문제가 당사자가 갈 곳이 없다는 것”이라며 “서울시에서 지원주택을 확충하겠다고 했지만 노숙인 대상의 물량보다 적은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보건복지부가 탈원화한 사람의 살 곳을 마련해줘야 한다”며 “정신장애만 (주택을) 많이 달라는 게 아니라 장애 유형 간에 동등하게 지원주택·자립주택 공급이 이뤄져야 한다”고 요청했다.

김 변호사는 취업에 대해 “일자리가 있다는 의미는 공동체에서 내가 소속감을 갖고 사는 것이고 더 나아가 사회에서 존재의 의미를 갖게 해 준다”며 “자기 존중과 자기 실현이 일을 통해 이뤄진다”라고 전했다.

권 센터장은 “정신장애인들은 군대를 면제받거나 의가사 제대를 하는 경우가 많다”며 “취업하려고 면접을 보면 이와 관련돼 할 말이 없어서 취업 자체가 안 된다”고 토로했다.

그는 “다리가 아파서 면제받았다고 하고 일을 시작하지만 결국 몇 달 같이 일하다 보면 내 다리가 멀쩡하다는 걸 알게 된다”며 “거짓말이 오래 가지 못하고 밝혀지면서 일자리를 잃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신장애인 당사자 부모들은 당사자가 돈을 많이 벌어오는 걸 원하는 게 아니”라며 “일을 구해 열심히 일하고 자아 실현을 할 수 있기를 바라지만 사회는 우리를 받아주지 않고 그만큼 정신장애인의 자존감은 낮아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김재완 동대문정신장애동료지원센터장은 “취업을 하면 나는 비록 정신장애가 있지만 희망을 갖게 되고 회복에 도움을 준다”며 “취업이 단순히 경제적 이득만으로 볼 게 아니라 자아 실현과 맞닿아 있다”고 말했다.

정신건강복지법 제78조에 대한 의견도 나왔다. 제78조는 국가나 지자체가 정신질환자의 사회적응 촉진과 권익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나 시설을 육성하고 이에 필요한 비용을 보조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규정 자체가 사문서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 변호사는 “중앙정부는 이 조항만으로도 자립생활센터 지원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지자체로 가면 말이 달라진다”며 “그게 전국적으로 들쭉날쭉 적용되면 안 된다. 필요하면 조항을 바꿔거나 추가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 B 사무관은 “활동 지원에 관한 문제 제기는 굉장히 많이 들었다”며 “이게 안 되는 이유가 있을 건데 그것까지는 파악하지 못했다. 활동 지원 담당과에 가서 확인해 보겠다”고 말했다.

이어 “주거는 조금 되는데 정신재활시설은 100퍼센트 운영비를 지방에서 하니까 잘 안 되고 있다”며 “예산이 원하는 만큼은 아니지만 정신장애 예산은 조금씩 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예산도 복지부는 증액하려고 열심히 하고 있고 기재부도 하려는 쪽으로 전향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진 당사자 권리 선언문에서 연맹 단체들은 ▲정신장애인의 특화 일자리 지원 사업의 실시 ▲정신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의 이용 지원 ▲위기쉼터의 제공 ▲주거지원서비스 지원 예산 확충 등을 국가에 요구했다.

이번 컨퍼런스는 동대문정신장애동료지원센터, 사람희망금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 서울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마인드포스트 사회적협동조합,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청주정신건강센터,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해뜨는양지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람희망디디텀가 공동 주최했다.

다음은 당사자 권리 선언문 전문

오늘, 우리는 정신장애인을 가둠의 대상으로만 인식했던 낡은 시대를 부수고 정신장애인 스스로가 주체적 삶을 살아가는 새로운 시대정신을 이 자리에서 고한다.

너무나 긴 시간이었다. 정신장애인은 치료라는 이름으로 폭력적 정신병원과 요양시설, 기도원 등에서 더 깊은 상처를 안고 지역사회로 내동댕이쳐졌다. 그리고 어떤 이는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집이 없다는 이유로 정신병원과 정신요양시설에서 사육되고 있다.

코로나가 가장 먼저 죽음의 문을 두드린 청도대남병원이 그랬다. 질병은 만인에게 평등하지만 감염은 가장 약한 집단을 먼저 덮쳤다. 국가는 그제서야 정신병원 안전에 대한 일제 점검에 들어갔다.

만약 코로나로 인한 약자의 죽음이 없었다면 국가는 여전히 정신장애인들의 삶을 외면했을 것이다. 그리고 국가가 개입하지 않으면 우리를 가둠으로써 국가의 자본을 축적하는 병원들은 여전히 우리들의 존엄과 치유를 사유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 우리는 정신질환이 있다는 이유로 사회의 전 영역에서 차별받아야 하고 불법적이고 강제적으로 병원으로 끌려들어가야 했는가. 왜 정신질환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우리는 일자리에서 차별받고 여타 신체 장애인들이 누리는 혜택 역시 받지 못하는가.

인간은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며 살아가는 존재다. 자기가 삶의 주인인 것이다. 하지만 정신장애인에게 자기결정권은 권력이 빼앗았고 우리는 타자의 결정에 의해 폭력적 방식으로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존엄보다는 자본이 우선되었으며 자신의 온전한 삶 대신 권력에 의한 통제와 감시가 앞섰던 낡은 시대의 정신보건 시스템 안에서 당사자들은 침묵해야 했다.

그 누구도 우리의 언어를 귀담이 듣지 않았다. 미쳤다는 의미는 온전히 사회적 참여를 가로막는 기제로 작동했다. 미쳤다는 이유로, 이성에 포섭될 수 없다는 이유로 우리는 바보들의 배를 타고 떠돌았다. 나라살림을 맡고 있는 정치인들조차 우리 정신장애인을 비하하거나 정치의 도구로 이용했다. 그리고 사건사고가 발생하면 공동체는 우리 정신장애인을 소환해 낙인찍고 비난하고 가뒀다.

시민의 안전, 공동체의 안전이라는 권력의 시선 앞에서 정신장애인은 벌거벗겨진 존재였고 존재에는 ‘위험성’이라는 주홍글씨가 씌어졌다.

세계는 정신장애인을 가두기보다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게 만드는 것이 더 사회적 비용이 적게 든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고 인간 존재를 인간다움으로 규정하고 그의 존재를 어떻게 인권적으로 옹호하는지에 대해, 세계가 시선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핀란드의 오픈 다이얼로그가 그렇고 노르웨이의 약물 치료 없는 정신병원이 그렇다. 또한 이탈리아의 바살리아법은 ‘자유가 치료다’라는 슬로건으로 이탈리아의 정신병원을 다 폐쇄시키고 지역사회 서비스를 펼친 것이 그렇다. 그리고 정신질환자 또는 정신장애인 당사자가 농장에 가서 하루 종일 자기 의지에 따라 생활할 수 있게 디자인된 네덜란드의 케어팜이 그렇다.

이 변화는 실존으로서의 인간 존재를 어떤 경우에도 존중해야 한다는 인간 존중의 시대정신이 녹아 있는 것이다. 인간은 실존의 의지를 갖고 살아가는 존재다. 그런 실존을 가둔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정신보건 시스템이 얼마나 낡았는지를 역으로 보여준다.

이제 우리는 말한다. 국가권력과 의료권력은 가둠이라는 전근대적이고 낡은 치료 문법을 멈출 것을 요청한다. 사회의 주변부에서 객체로 살아가고 통제되고 감금됐던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이 삶의 주체가 되어 온전히 인간의 존엄을 회복하며 살아갈 수 있는 모든 사회적·정치적 옹호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도 요청한다.

무엇보다 우리가 사람이라는 것. 우리도 희로애락을 느끼며 살아가는 하나의 온전한 인간이라는 점을 공동체에 다시 한 번 더 선언하고자 한다.

폭력과 감금, 배제와 차별, 위계질서와 통제하는 시선을 이제 권력은 버려야 한다. 세상은 낡은 질서를 버리고 새로운 질서로 나아가고 있다. 코로나19는 세계 문명의 단절과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이 문명의 급격한 단절과 변화에서 역사적으로 담론의 대상이 되지 못했던 정신장애인이라는 존재가 문명의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존엄을 인정하고 지지하는 것. 그들의 삶을 옹호하고 공동체에서 함께 살아가게 하는 것. 그것은 모름지기 국가가 담당해야 할 책임이자 사명이다.

폭력의 문명은 지나가고 새로운 시대의 시대정신이 떠오르고 있다. 따라서 정신병원과 정신요양시설, 정신장애인 대상의 기도원 등 모든 폭력적 장치는 이제 사라져야 한다. 그리고 정신장애인의 삶과 존엄을 옹호하는 정신보건 시스템을 이제 우리 공동체가 함께 논의해야 하는 시대인 것이다. 정신장애를 바라보는 기존 패러다임과 단절하고 새로운 인간 존중의 치유 패러다임을 우리는 지금, 다음과 같이 국가에 엄숙히 요청한다.

하나, 정신장애인 취업차별 정책을 폐지하고 정신장애인 특화일자리지원사업을 실시하라.

하나, 탈원화와 심리적 트라우마를 겪은 정신장애 당사자들에게도 활동지원사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하라.

하나, 위기 상태에 있는 정신장애인을 위해 강제입원이 아닌 위기쉼터를 제공하라.

하나, 정신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안정된 자립을 할 수 있도록 주거지원서비스의 예산을 더 확충하고 지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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