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발달장애인에 대한 탈시설 정책은 당사자와 가족 사지(死地)로 내몰아”
“중증발달장애인에 대한 탈시설 정책은 당사자와 가족 사지(死地)로 내몰아”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1.07.16 00:14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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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청원…중증발달장애인 시설에서 거주할 권리 보장해야
시설 폐쇄로 도전적 행동하는 발달장애인, 가족이 모두 떠맡는 실정
무책임한 탈시설 정책이 부모를 예비 살인자로 만들고 있어
중증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는 헌법 정신에 부합하는 정당한 요구
장애 다양성 고려 않은 탈시설 정책은 발달장애인 가족에 죽음 의미

중증발달장애인에 대한 탈시설 정책이 오히려 가족과 당사자를 사지로 내몰고 있다는 청원이 14일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올라왔다. 장애 유형의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은 밀어붙이기식 탈시설은 가족과 지역사회 내 부작용을 더 키울 수 있다는 우려다.

중증발달장애인인 30세의 아들이 10년째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청원인은 “정부의 탈시설 정책으로 (시설) 정원이 축소되고 퇴소하는 것을 보면서 사지에 내몰려 있는 중증발달장애인 가족의 현실을 알리고자 한다”고 밝혔다.

청원인은 “지난 10년 동안 장애인 복지의 주된 화두는 ‘탈시설’이었다”며 “발달장애인들은 탈시설의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목소리도 내보지도 못한 채 그 변화를 직격탄으로 맞아야 하는 처지”라고 토로했다.

지난해 6월 광주시 외곽의 농로에 주차돼 있던 승용차에서 60대 어머니와 20대 발달장애인 아들이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이 발생했다. 또 같은 해 3월에는 제주도 서귀포에서 40대 어머니가 10대 발달장애인 아들과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

이처럼 시설 기능이 작동하지 않으면 가족이 발달장애인의 문제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는 게 청원인의 토로다.

청원인은 “정부는 탈시설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중증장애인 거주 시설 이용자들의 신규 입소를 제한하고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법인을 해체해 시설을 통째로 폐쇄하려 한다”며 “정원을 줄인다는 빌미로 도전적 행동과 문제 행동이 많은 장애인을 먼저 시설에서 퇴소시켜 중증발달장애인을 더 곤란한 상황으로 몰고 가고 있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장애인 거주시설이 줄어들면서 발달장애인이 미신고 시설로 몰리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풍선 효과다. 미신고 시설은 행정기관의 감독이 미치는 못하는데다 장애인 학대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부작용을 낳는다.

청원인은 “무책임한 탈시설 정책이 장애인 가족을 위기 가정으로 만들고 그 부모를 예비 살인자로 만들고 있다”며 “탈시설을 부르짓는 이들에게 ‘중증 발달장애인과 하루만 살아보라’고 말하고 싶다”고 전했다.

그는 “정부가 이야기하는 탈시설 정책은 다양한 장애유형을 고려하지 않고 있으며 탈시설만 하면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것처럼 포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탈시설 정책과 관련해 그는 장애인 당사자와 가족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않은 정책이라는 입장이다. 시설 거주 발달장애인들의 부모는 대부분이 시설이 존치되기를 바라고 있고 특히 시설 장점은 유지하고 단점을 보완해 더 나은 주거 환경을 만드는 게 우선 순위라는 주장이다.

청원인은 “자녀가 시설에서 생활하기를 원한다고 하면 어떤 이들은 정부에서 더 좋은 주거 환경을 약속하고 지역사회와 통합해 살라고 하는데 왜 반대하느냐고 한다”며 “저희도 반문한다. (지역사회에서) 장애 아이와 같이 살면서 받았던 수많은 눈총과 ‘이런 애를 왜 데리고 다니냐’는 경멸의 말들이 떠오른다”고 반박했다.

그는 “장애인의 지역사회 통합을 논하기 전에 이 사회가 장애인에게 얼마나 야만적인 사회인가를 직시해 주길 바란다”며 “탈시설 정책을 실행하려면 먼저 장애인에 대한 인식개선 사업이 실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청원인은 중증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를 주장했다.

특히 발달장애인의 도전적 행동은 중증장애인 요양시설에서도 제일 돌보기 힘든 대상이라는 지적이다. 시설을 없앨 경우 이들의 도전적 행동으로 민원이 수없이 제기될 것이고 이로 인해 지역사회 자립지원주택에서 살 가능성조차 없다는 설명이다. 그는 물었다. “이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청원인은 “중증발달장애인에 대한 국가책임제가 선결되지 않는 한 부모와 형제까지도 무한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며 “발달장애인이 부모 사후에도 인간적 존엄을 유지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요구는 헌법 정신에 부합하는 정당한 요구”라고 밝혔다.

청원인에 따르면 노인요양원은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어서 이용자의 입장에서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 그러나 장애인 거주시설은 폐쇄하는 방향으로 기울고 있어 시설마다 대기 인원이 백 명이 넘는다는 전언이다. 시설 거주 수요가 많지만 공급이 전무하면서 중증발달장애인을 돌보는 보호자들은 ‘과부하’에 걸려 있는 상황이다.

청원인은 “어린이들은 어린집에서 돌보고 치매 어르신들도 요양원에서 돌보는데 왜 힘센 치매환자라고 불리는 중증발달장애인은 부모와 가족이 감당해야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현재 탈시설 운동을 벌이고 있는 단체는 대부분 신체장애인이라는 게 그의 지적이다. 신체장애인은 전체 등록장애인의 76%에 이른다. 그렇지만 이들은 시설이 필요하지 않고 지역에서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시설의 도움 없이 살아가는 것이 힘든 중증발달장애인에게 무조건적인 탈시설 요구는 폭력이며 인권 침해”라며 “자립이 어려운 사람에게 ‘너도 자립하라’고 말하는 것이 정당한 요구인가”라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현재 광주에서 실시하고 있는 발달장애인 24시간 돌봄 서비스를 전국적으로 확대할 것을 청원인은 요구했다.

그는 “중증 발달장애인도 가족 가까이에 있는 시설에서 살며 사회적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며 “바라는 것은 저와 제 아들이 받고 있는 안정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 사회 곳곳에 만들어져 가고 싶은 곳을 선택할 수 있고 시설과 가정과 지역사회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장애의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은 탈시설 정책은 중증발달장애인 가족에게 죽음을 의미한다”며 “정부는 탈시설 정책을 중지하고 중증발달장애인이 시설에서 거주할 권리를 보장하라”고 요청했다.

이 청원은 15일 현재 1만1565명이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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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2021-07-16 19:29:54
탈시설, 탈원. 다 각각의 입장과 이유가... 발달장애인은 정신장애인 보다 더 소외된 그룹인가 자립이 불가능한 장애인가 다 힘들다고 청원 올려대니 대통령도 머리 아프겠네

ㅇㅇ 2021-07-16 08:18:57
역시 부모는 당사자의 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