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수영 “내가 경험하는 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죠...피하고 부정하면 더 큰 아픔으로 다가와요”
권수영 “내가 경험하는 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죠...피하고 부정하면 더 큰 아픔으로 다가와요”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1.07.12 23: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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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수영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장 인터뷰
군 시절 본회퍼 ‘옥중수기’ 읽고 신학의 길 가기로 결심
심리사법·심리상담사법 구분 아닌 통합적 모법(母法) 만들어야
국가가 엉터리 심리상담사 양산에 개입해 정리해야
신학은 끝이 열려 있는 학문...다양한 신학적 주제 고민해야
누군가에 기대 울고 싶은 사람들을 받아주는 역할이 종교공동체
트라우마 경험 후 더 큰 세계관으로 성장...외상 후 성장의 의미
외상과 역경이 끝이 아니라 성장을 위한 돋움대로 사용되는 것
타자와 공감받는 심리적 산소 부재가 우리 사회의 자살률 높여
한일월드컵·촛불집회는 우리 민족의 연대감을 확인시킨 역사적 사건
인간은 물질적 풍요를 초월해 이타적 삶을 추구하는 존재들
박종언의 만남: 길을 묻다 (c) 마인드포스트
박종언의 만남: 길을 묻다 (c) 마인드포스트

그는 4대째 기독교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너는 언젠가 목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목사를 하지 않으려고 대학은 공대를 지원했고 불합격했다. 그는 곧바로 군에 입대한다.

군종병을 하면서 우연히 독일 신학자 본회퍼의 ‘옥중수기’를 읽게 됐다. 그 안에, 그가 그동안 믿어오던 신과 인간의 관계, 세속과 성화의 과정, 민중 속의 신의 현현이 더운 상징으로 담겨 있었다.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세속을 벗어난 곳에 신학이 있다고 생각했으나 본회퍼는 삶 속에 신이 있다고 가르쳤다.

그는 제대 후 연세대학교 신학대에 입학하게 된다. 대학 졸업 후 미국 하버드대학교 대학원에서 기독교 문화 석사, 버클리신학대학원에서 종교심리학 박사를 받고 유학 11년 뒤인 2003년 한국에 들어왔다. 애초 유학 목적이 종교사회학을 공부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정신분석학의 세계를 접한 뒤 기독교상담학을 전공했다. 그는 말했다. “돌고 돌아서 신학으로 왔다”고.

최근 심리사법을 둘러싼 갈등이 있었다. 국가가 공인하는 심리자격증을 만드는 데 모든 심리학 직군들이 동의를 하지만 자격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나뉘어 있다.

한국심리학회가 지난해 7월 보건복지부의 ‘심리서비스 입법 연구’ 과제를 체결해 같은 해 12월 결과 보고서 초안에는 학부에서 심리학을 전공해야 심리사 자격을 취득할 수 있다는 가안이 들어 있었다. 상담심리학 관련 직군에서 반발이 일어났다. 한국심리학회는 가안일 뿐 공식적인 의견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권수영(55)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장을 만난 건 심리사법에 대한 의견을 듣기 위한 것이면서 동시에 신학을 전공해 온, 신 앞에 선 존재의 의미를 묻고 싶어서였다.

권 원장은 심리사법과 심리상담사법을 따로 만드는 건 소모적이라는 의견이다. 심리사법의 공통된 학계의 의견이라면 조금씩 양보하고 논의를 통해 통합된 모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오랜 시간, 그는 신문들에 심리사법의 발전적 통합을 모색하는 칼럼들을 써 왔다.

권 원장은 우리 민족의 연대성에 대해 ‘세계가 놀란 사건’이라고 말했다. 2016년 촛불집회 때도 마지막에 휴지를 줍는 모습이, 미국처럼 시위의 끝에 늘 등장하는 약탈과 폭력의 행사가 아니라 함께 목소리를 내면서 연대를 확인하는 과정은 우리 민족이 가진 위대한 행동이었다고 그는 분석했다.

프로이트가 문명 속에서 잠자고 있던 폭력성은 전쟁에 의해 그 야만이 그대로 드러난다고 했지만 코리아는 야만이 아니라 질서를, 폭력이 아니라 연대와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는 힘을 내면에 갖고 있으며 타자와 공감하면서 함께 우리는 치유돼 간다는 30년 가까운 심리상담사 생활에서 깨달은 내밀한 의미를 이야기했다.

그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고 싶었다. 지난 5일 서울 신촌 연세대학교 원두우신학관 원장실을 찾았다. 다음은 일문일답.

권수영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장 (c)마인드포스트.
권수영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장 (c)마인드포스트.

-문외한인 기자가 봤을 때 학부에서 심리학을 반드시 전공해야 한다는 조건이 핵심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게 심리학 전공이 아니라 심리학 관련 전공으로 바뀌었어요. 반발이 일어나니까 바꾼 건데 애초에는 (심리학 전공 중심으로)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던 거죠.

미국에는 심리사와 심리상담사 따로 있어요. 제가 활동했던 캘리포니아에서는 멘탈 헬스 카운슬러(Mental Health Counselor)라고 정신건강 상담사가 있고 또 라이선스드 사이콜로지스트(Licensed Psychologist)라고 공인 심리사도 있어요.

공인 심리사들은 심리검사 개발, 심리 측정 등 준의료인처럼 의료인들과 함께 작업합니다. 정신건강 상담사들은 학교 상담이나 가족 상담 등 우리가 심리상담이라고 하는 카테고리 안에 있어요. 심리사법 만드는 분들이 우리나라도 심리사법하고 심리상담사법을 만들면 될 거 아니냐라고 하는데 이게 하는 일이 같습니다.

보건복지부 입장에서도 비슷한 두 직군의 법을 따로 둘 필요가 없죠. 저는 통합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양보하고 치열하게 논의해서 적절한 심리상담을 할 수 있는 직군을 양성하는 프로그램도 만들고 자격을 관리하는 자격자들도 만들어야 된다는 거죠.”

-변호사 자격증을 따르면 관련 법을 공부해야 하고 의사 자격증을 따려면 관련 의학을 공부해야 하듯이 심리사가 되기 위해 학부에서 심리학을 전공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는 입장도 있더군요.

“그건 그쪽에서 주장할 수 있는 거죠. 학부에 ‘상담’ 자 들어가는 학과가 사이버대학까지 하면 백여 개 대학이 있습니다. 그런데 서울대, 연·고대 등 주요 대학에는 상담학과가 없어요. 하지만 심리학과에 상담심리학 전공이 있고 교육학과에 교육상담, 신학과에 기독교 상담을 공부하는 교수와 대학원생들도 있어요.

학부 전공으로 따지면 그 말이 맞아요. 간호대학 나온 사람이 간호사 되듯이요. 그럼 심리학과 나온 학생들에게 심리사 자격증을 주자는 걸로 출발했는데 지금은 심리학부 졸업한 애들에게 2급 심리사 자격증을 주자가 아니에요. 박사 학위까지 마친 사람들이 국민 정신건강에 투입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건데 그렇게 되면 꼭 심리사만 심리상담을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심리학을 전공하지 않고 교육학에서 상담학 공부하고 신학에서 상담학 공부하고 아동학과에서 아동가족상담을 전공한 전문가들이 많이 있어요. 그러니까 구분해서 심리학과 심리학 관련 전공을 받은 사람은 심리사로 심리상담을 하고 다른 사람들은 따로 묶어서 심리상담사법 만들어서 심리상담을 니네들도 해라 이거죠. 현실적으로 두 가지 법이 다 가능성이 있어 보이지 않아요.

이 두 개를 통합적으로 만드는 게 국민에게 좋은 법이 될 수 있겠다는 거죠.”

-심리 모법(母法)인 심리사법은 모두가 동의하는 법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갈등이 만들어진 결정적 원인은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심리사법을 반대하는 게 아니에요. 미국처럼 심리사법도 있고 상담사법도 있으면 좋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건 같은 심리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군이에요. 보건복지부는 이걸 통합할 방법밖에는 없지 않겠느냐 생각해요. 왜냐하면 임상심리사라고 국가 자격 심리사가 국가 제도 안에 있어요. 준의료인처럼 심리검사도 하고 보건복지부와 작업을 많이 한 게 임상심리사 그룹들이에요.

그런데 또 다시 국가자격을 만들 필요가 있을까. 지금 만들려는 국가 자격은 심리상담을 하는 심리사거든요. 그럼 심리상담하는 다른 직군의 전문가들과 같이 만들지 않으면 실효성이 없는 법이 되는 거죠. 보건복지부는 이 둘을 하나로 만들어야 될 터인데 심리사를 정할 거예요? 심리상담을 정할 거예요?

보건복지부로서는 같은 일을 하는 직군들을 위한 법을 따로 만들 필요가 없는 거죠.”

-화해의 가능성은 있을까요.

“글쎄요. 심리사법을 만드는 분들은 충분히 이해는 돼요. 제목이 심리사법이면 당연히 심리학 중심으로 가는 게 맞아요. 자기 학문의 전문성을 살려서 국가에 기여하고자 하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돼요.

하지만 심리와 상담을 굳이 나누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NSC(심리상담 국가직무능력표준)에 분류돼 있는 전문가 이름도 심리상담이거든요. 소분류에서 심리상담, 세분류에도 심리상담. 그럼 심리상담사로 가는 게 맞지 않겠는가라는 거죠.”

-4000여 개의 민간 상담자격증이 난립하는 걸 보면 홍수에 마실 물이 없다는 생각이 떠오릅니다.

“맞습니다. 왜 이런 ‘짝퉁’들이 많이 나올까. 이유는 그만큼 국민 수요가 있다는 거죠. 진작에 허술한 자격증들이 늘어나기 전에 국가가 좀 나섰어야 하지 않을까.

심리상담 법제화라는 칼럼은 대한민국에서 제가 제일 많이 썼을 겁니다. 국가 역시 코로나 블루를 겪으면서 이제는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거 같아요.

저는 눈물나게 고마워요. 그럼 우리 전문가들이 한마음이 돼야죠. 다양한 직군의 심리상담 분야에서 일했던 전문가들이 공통분모를 찾아내든가, 아니면 최소한의 기준을 만들어내야죠. 저는 심리사법을 반대하지 않아요. 국민을 위한 통합법을 만들어내자는 거죠.”

-어떻게 신학을 전공하게 됐습니까.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서 목사가 되라는 얘기는 들었지만 부모님은 제가 원치 않으면 억지로 미시지는 않았던 거 같아요. 처음에는 이과를 가서 공학도가 되려 했는데 대학 시험에 떨어지고 군대를 갔죠.

거기서 군종병이 됐는데 그때 읽은 책이 독일 신학자 본회퍼의 <옥중서간>이었어요. 그걸 읽고 종교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생겼어죠. 본회퍼는 그렇게 말해요. 예수는 우리를 종교로 이끌지 않았고 삶으로 이끌었다고. 아, 종교라는 게 짐 싸 갖고 산에 들어가고 기도원 들어가고 거룩한 존재로 세상과 등지는 일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에요.

세상 한가운데에 들어와서 제대로 된 삶을 살지 못하는 이들에게 온전한 삶을 제공하는 일이 종교의 기능이구나 생각했죠. 그게 예수가 소개한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책을 읽고 종교에 대한 생각, 거룩함과 세속에 대한 생각들이 바뀌었어요. 용기를 얻어서 신학을 공부하게 됐죠. ”

권수영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장 (c)마인드포스트.
권수영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장 (c)마인드포스트.

-대학원에서도 신학을 전공하고 박사도 종교와 심리학 주제로 땄고요. 선생님은 신에 대한 궁극적 질문을 던지며 생애를 걸어온 느낌이 듭니다.

“신학이라는 게 꼭 하나님에 대한 학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제목은 신학이니까 당연히 신학에 대한 학문이겠지만 저는 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학문인 거 같아요.”

-주종 관계(主從關係)입니까?

“어떤 관계인지를 해석해 가는 과정이겠죠. 인간과 하나님이 함께 세상을 창조한 공동의 창조자로 보는 신학의 견지도 있고, 또 어떤 신학은 인간의 가장 내면의 아픔에 대해 하나님이 직접 성육신해서 인간보다 더 낮아지는 신의 모습을 그리기도 하죠. 그러니까 어떤 면에서 신 자체라기보다는 신과 인간의 관계, 신과 인간의 상호작용에 대한 학문이 바로 신학이 아닌가.”

-결론이 내려진 겁니까.

“신학이라는 게 결론이 있겠습니까. 신학은 끝이 열려 있는 학문 같아요. 저는 설교자들이 ‘믿습니까? 아멘’하는 게 불편해요. 아멘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믿어야 할까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게 중요해요.

지금 사이버 인간이 태어나는 시점인데 이때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는 어떻게 자리매김해야 할까. 요즘에는 동물에 대한 관심도 늘었죠. 너무 인간 중심적으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설정했는데 하나님과 동물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하나님이 만든 이 자연과의 관계는 어떤 것인지 등 끊임없이 새로운 질문들이 생겨납니다.

그러니까 ‘믿습니까’라고 쉽게 대답하기보다는 ‘아직도 어떻게 믿어야 할지 모르겠어’ 하면서 끝까지 의심하면서 답을 찾아가려고 하는 탐구형 종교인들이 더 늘어났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젊은 친구들의 신에 대한 고민도 이해할 수 있을 거고요.

예수 믿으면 복 받고 안 믿으면 지옥 간다는 단편적인 잣대만 갖고 종교를 정의하려 했다면 지금은 다양한 신학적 주제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게 신학인 거 같아요.”

-선생님은 세월호를 언급하며 교회가 유가족에게 일시적으로 위로하는 게 아니라 지속해서 그들과 함께 울 수 있는 공간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더 설명해 주신다면요.

“예전에는 죄를 지은 사람도 교회 공동체 안에 들어오면 안전하게 느꼈던 시절이 있었잖아요. 그래서 범죄인들이 교회에, 성당에 숨기도 했죠. 지금은 멀쩡하게 사회에서 기능하고 굉장히 잘나가는 사람들끼리만 모이는 장소처럼 느끼는 분들이 많은 거 같아요. 교회에 있는 이들은 사회에서 누릴 걸 다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더 많은 거죠.

교회는 그렇지 않지 않습니까. 상처받는 사람들, 마음에 구멍이 난 사람들이 교회 와서 위로도 받고 삶의 충전을 얻는 게 가장 중요할 텐데요. 제가 영화 ‘밀양’이라는 영화를 좋아해요. 영화에 주인공 신애(전도연 분)가 우연히 ‘치유 집회’라는 단어를 보고 교회를 찾아 들어갑니다.

신애가 자식을 잃고 나서 마음이 너무 아팠는데 치유 집회하는 거기 들어갔더니 사람들이 다 손을 들고 울면서 기도를 하는 거예요. 안 그래도 울고 싶었던 신애가 거기 우는 사람들 틈에서 엉엉 웁니다. 그러면서 그 공간을 안전하게 느꼈던 거죠.”

-나중에 교회를 떠나잖아요.

“그렇죠. 그런데 그 뒤로는 한 번도 교회 구성원들과 우는 장면이 안 나와요. 더 이상 우는 자와 함께 우는 공동체가 안 됐던 거죠. 그래서 밖에 나가서 노방전도도 하고 기타 치면서 찬양하는데 사실은 더 울어야 됐죠.

그래서 세상에는 혼자 울 수 없는 사람들, 누군가에게 기대어 울고 싶은 사람들이 어딘가로 가야 돼요. 그게 상담실이면 좋겠고. 저는 그런 우는 사람들의 아랫목이 될 수 있는 종교 공동체가 많아져야 된다고 봐요.”

영화 '밀양'.
영화 '밀양'.

-맨날 울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맨날 우는 게 아니라 거기 들어가서 울면서 새롭게 충전력을 얻어요. 누군가와 공감하면서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거죠.”

-한국교회는 갈 데까지 갔다, 극우적이고 근본주의적 교회는 어느 순간 다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는 한 철학자의 말이 떠오릅니다. 교회 폐쇄 이후의 교회는 어떤 모습일까요.

“저는 본회퍼의 말처럼 만인을 위한 삶에 기여하는 종교가 살아남을 것이라고 봐요. 성경 복음서에서 말하는 만인이 사람만이 아니더라고요. 영어 성경을 보면 올 크리에이션(All Creation)이에요. 만인을 사람으로 번역해서 그렇지 모든 피조물·창조물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그랬어요.

그렇다면 야생동물에게도, 우리가 해치고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자연에게도 기쁜 소식을 전해야 되는 새로운 시대를 맞고 있지 않은가. 그럼 기후 위기에 대비하고 미래 세대가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만드는 일에 앞장서는 종교가 앞으로 사람들에게 호응받을 종교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저는 교회의 미래가 어둡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독일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은 죄에는 동전의 앞뒷면처럼 두 가지 단면이 있대요. 우리가 악행을 저지르는 죄가 있고 다른 측면은 하나님을 희망하지 않는 죄래요. 이 지구를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곳으로 만드는 일도 우리가 희망을 갖고 해야 한다는 거죠.”

-희망이 없는 그 자체가 죄라는 말씀입니까

“그렇죠. 몰트만은 하나님께 희망을 가지지 않고 헛된 희망을 가지는 것도 죄라고 해요. 하나님의 희망은 창조물이 다 같이 온전한 샬롬(Shalom·평강)을 이루고 조화를 이뤄서 사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권수영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장. (c)마인드포스트.
권수영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장. (c)마인드포스트.

-정신장애는 귀신들림입니까.

“그렇지는 않은 거 같아요. 종교인들이 정신질환을 귀신들린 자, 악한 영이 씌워진 존재라고 하는데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일이잖아요. 제가 아는 분은 심리적 어려움이 있어서 약물치료와 심리상담을 받았으면 좋았을 건데 귀신들렸다고 기도원에서 매질을 당해서 사망했어요. 귀신들림이라고 해서 정신의학적 치료와 심리상담의 도움을 끊어내는 건 안 좋죠.”

-끊어낸다는 게?

“치료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거죠. 나는 약도 의사도 필요 없다, 기도로 낫는다라고 말하는 분들이 많아요.”

-악령이 있으니까 기도원 가서 퇴치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하시는 겁니까.

“전혀 아니죠. 그런 사고 자체를 경계해야 해요.”

-선생님은 과거를 지우개로 지울 수 없으니 최선을 다해 괄호 안에 묶어놓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과거가 현재의 나를 괴롭히고 아프게 한다면 그걸 괄호 안에 묶는 걸 의식적 외면일 뿐 치유가 아니지 않습니까.

“저는 트라우마 치료를 전공한 사람이거든요. 어린 시절에 학대를 경험한 내담자가 저에게 자기 얘기를 꺼내요. 나는 수없이 많은 아동학대 경험자들을 상담했어요. 그럼 그 사람 얘기를 들으면서 ‘아, 이건 지난달에 만났던 그 사람과 비슷하네’라고 해버려요. 그럼 나는 이 사람을 만나지 않고 자꾸 과거에 메이게 돼요.

그럼 나는 이 사람을 오늘 처음 만났고 그 말에 집중하고 몰입하는 게 내담자를 현상학적으로 이해하는 데 훨씬 도움이 된다는 거죠. 과거의 지식이나 편견은 내가 어떻게 지울 수가 없어요. 하지만 잠깐 묶어두고 ‘나는 오늘 아동학대를 경험한 사람을 처음 만난다’라고 생각하는 게 중요하죠.”

-늘 새로운 만남이네요.

“그렇죠. 지금 여기(here and now)라는 말을 많이 하잖아요. 지금 여기를 가장 잘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은 에포케(epoche)라고 해서 판단 중지. 트라우마의 대가들에게 트라우마를 정의해 달라고 그러면 하나같이 비슷한 얘기를 해요. 그 대가들이 ‘난 아직까지 트라우마를 모르겠다, 너무 어렵다’고 말해요.

진짜 괄호치기를 잘 하는 거죠. 이분들이 트라우마에 대해서 평생을 했는데 왜 모르겠어요. 다만 그 자세를 얘기할 때, 괄호치기와 판단 중지를 하는 겁니다.”

-판단을 중지하고(epoche) 현재를 즐기라(carpe diem)고 말했습니다. 현재가 고통스러운데 어떻게 현재를 즐길 수 있습니까.

“즐긴다는 표현보다는 현재 내가 경험하는 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겁니다. 피하면 안 돼요. 피하고 부정하면 그게 더 큰 아픔으로 다가오거든요. 마음챙김(Mindfulness)이라는 불교의 수련법이 있는데 고통을 받아들이는 방법이에요. 아, 고통이 또 왔네라고 하면 심리적 고통까지 플러스가 돼 버려요. 그럼 고통이 10인데 심리적 고통이 20~30만큼 아픈 거죠.

고통이 오면 심리적으로 불안해하지 말고 고통을 그대로 느껴봐야요. 이 고통이 어떤 고통인지, 찌르는 고통인지, 따끔따끔한 고통인지, 그냥 느끼라는 거죠. 이 마음챙김 수련법이 마음챙김 스트레스 완화법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통증 클리닉에서 마음챙김을 사용했더니 통증이 오히려 떨어지더라는 거죠.”

-불교 공부도 좀 하셨네요.

“마음챙김 때문에 틱낫한 스님 책이라든지 불교 관련 책도 좀 봤었죠. 왜냐하면 제가 좋아하는 내면 가족 체계 치료(IFS)가 마음챙김과 비슷해요. 요즘에 트라우마 집중 치료에서 수용전념치료를 하는데 이게 마음챙김과 비슷한 말들을 합니다. 트라우마 치료에서 중요하거든요. 특히 몸에 남아 있는 신체 기억에 대한 수용과 재처리가 게 트라우마 치료에서 제일 중요해요.”

-선생님은 성장은 예측할 수 있는 방향으로 성장하는 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어떤 게 성장입니까.

“예전에는 트라우마가 오면 평생 약 먹고 살아야했어요. PTSD(외상후스트레스장애)라고 장애인이 되는 거라고 생각했었단 말이죠. 그런데 때로는 외상을 경험한 사람들이 새로운 측면으로 성장합니다. 예를 들면 그 사람이 자기와 가정밖에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사회적으로 이타적이고 고귀한 뜻을 향해 매진하는 사람이 돼요.

세월호 유가족들이 그런 얘기를 해요. 내가 이렇게 맨날 띠 두르고 밖에 나서는 건 자기 자녀의 진상규명을 하기 위한 것도 있지만 이런 참사를 막기 위해서 또 다른 안전불감증 나라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 애쓰는 거라고요. 그럼 그 사람들의 행동이나 삶의 방향성은 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가요.

제가 아는 분도 사고로 자녀와 배우자까지 잃었는데 평생 사저를 털어서 그런 사고를 입은 사람들의 생존을 지원하는 기금을 만드는 일을 해요. 트라우마를 경험한 후에 더 넓은 세계관을 갖고 더 큰 목적을 위해 자신을 성장시키는 경우죠. 그걸 외상 후 성장이라고 합니다. 요즘은 의학적 용어라고 생각해서 ‘역경 성장’이라고 하죠.

이혼이라고 하면 예전에는 마치 인생이 끝나는 것처럼 생각했죠. 그런데 이혼 후에 오히려 내면의 새로운 자원을 개발시키는 사람도 있어요. 이혼을 하지 않았으면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면서 자신과 타인을 위해 의미 있는 삶을 산다. 그건 성장이죠.

제가 해외에서 가족상담 훈련을 받을 때 슈퍼바이저가 건설적 이혼(constructive divorce)이라고 해요. 이혼을 통해 오히려 내 삶을 새롭게 건설할 수 있다는 거고, 부부 갈등으로 불안해하던 자녀들을 두 사람이 헤어져 살지만 건강한 공동 양육자로 살 수 있다는 거죠.

저는 해외에서 이혼 후 상담받는 걸 많이 봤어요. 이혼이 끝이라고 하면 상담을 안 받았겠죠. 그렇지만 이혼을 하더라도 친구로 공동 양육해서 자녀들을 잘 키우자 하면서 상담을 받아요. 이것도 외상과 역경이 끝이 아니라 성장을 위한 돋움대로 사용하는 거라고 볼 수 있죠.”

권수영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장. (c)마인드포스트.
권수영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장. (c)마인드포스트.

-선생님에게 죽음은 어떤 의미입니까.

“심리학자 하인츠코헛은 심리적 산소를 이야기합니다. 심리적 산소는 타인에게 우리가 공감받을 때 생기고 그 산소가 있어야 산다고요. 심리적 산소가 없으면 인간은 견디기 어렵다고 말해요. 왜 우리나라가 자살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할까요.

우리는 관계를 중요시하고 공감을 잘 하는 민족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관계 욕구가 충족이 안 돼요. 한 마을에 노인이 지나가면 쫓아가서 인사를 했죠. 지금 노인에게 그렇게 합니까. 노인들은 점점 더 존중받고 관계 맺고자 하는 욕구가 떨어지겠죠. 그럼 화가 버럭 나는 거죠.

관계 욕구가 떨어지면서 연결감도 떨어지고 자꾸 화도 나고 그러다 보니 예전처럼 관계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나라로 변해가는 게 아닌가 생각돼요. 결국은 나를 공감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어. 부모도 내 마음을 몰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거죠.

그게 코로는 숨을 쉬지만 영혼의 숨을 못 쉬기 때문에 심리적 죽음을 경험하는 거예요. 실제 물리적으로 사는 것이 의미 없다며 목숨을 끊으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지 않나 싶어요.”

-선생님은 2016년 촛불집회를 보며 연대성으로 해석했습니다. 미국은 인종차별 시위가 있으면 꼭 가게를 약탈하는 걸로 끝나더군요. 이 둘의 문화적 차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우리는 관계의 욕구가 굉장히 높아요. 다른 사람과 연결돼 있을 때 가장 의미 있는 관계라고 생각해요. 보통 관계 욕구가 좌절됐을 때 화가 나요. 2016년 촛불집회가 그런 거였잖아요. 대통령이 우리를 버렸어, 그러면서 모든 국민들이 버려지는 느낌, 관계에서 단절된 느낌, 오직 소수의 몇 명에게만 모든 권력이 집중됐던 것에 대한 격한 분노를 느껴서 모였다고요.

하지만 분노를 표출하는 일만 하지 않았어요. 그 집회가 우리에게 그동안 아쉬워했던 연결감을 준 거예요. 저는 그 연결감이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에 거의 십수 년만에 일어나는 역사였다고 봐요. 그때만 해도 좌도 우도 없고, 남녀노소가 없었습니다. 시뻘건 옷을 입고 박수치며 대한민국 외치며 연대감을 경험한 거예요.

우리가 버려진 국민이긴 하지만 그런 연대감이 더 강하게 작용해서 강한 목소리를 냈고 새로운 정권을 창출하는 힘을 발휘한 게 아닐까. 정말 저도 놀라워요. 왜냐하면 시위가 끝나고 휴지 줍는 것도 그렇고 하나의 폭력 사건도 없었잖아요. 그건 우리가 갖고 있는 연대감의 힘입니다.”

-우리 민족의 DNA가 아닐까요.

“맞아요.”

-미국은 꼭 약탈하는 걸로 끝나버려요. 왜 그럴까요.

“프로이트가 그런 얘기를 했거든요. 전쟁의 경험을 해보니까 전쟁으로 인해 우리가 몰래 숨겨놓은 공격성의 고삐가 풀려버렸다고요. 사실 우리 안에는 다른 사람을 약탈하고 또 자기 것을 챙기려고 하는 이기적인 속성이 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그걸 연대감으로 이겨낸 반면 미국은 케이오스(chaos)라는 무질서한 상태로 변질돼 버려요. 전쟁이 무질서한 상태잖아요. 프로이트가 문명과 문화라는 울타리가 있으면 공격 욕구를 줄였다가 전쟁이나 폭동이 일어나면 다 야만인으로 변한다고 했어요.

그의 서구 문화에 대한 지적을 미국은 그대로 재현하는 거죠. 프로이트는 전쟁을 통해 봤던 문명의 어두운 측면을 그대로 드러냈고요. 우리는 갖고 있는 연대감의 DNA로 그걸 극복해낸 사례죠.”

-우리 민족이 애도를 중심하는 민족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애도 문화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상징적인 일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어떤 상징적 행동이 필요할까요.

“코로나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잖아요. 미국 뉴욕타임스는 신문 일 면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의 부고를 냈거든요. 상징적인 일이죠. 신문 전면에 낸다는 건 이만큼 국가가 함께 아파하는 사건이므로 (슬픔을) 뒤로 미루지 말자는 의미겠죠.

우리 민족은 곡(哭)을 하는 문화잖아요. 그래서 유가족이 울지 못할까 봐 유가족과 같이 우는 분위기를 만들어주기 위해 꺼이꺼이 함께 운 거거든요. 손님 맞느라 정신이 없는 유가족을 위해 함께 울 수 있게 배려하는 문화인데 그건 상징적인 일이예요. 심지어는 곡하는 사람도 불러서 장단에 맞춰 울게 만들었죠. 지금은 그 상징적 문화들이 많이 없어졌어요. 장례식장 가면 정말 눈물 한 방울 흘릴 틈이 없죠.”

-전국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들의 마음 건강 지원을 위한 가습기살균제보건센터장을 맡고 있습니다. 이유가 궁금합니다.

“가습기살균제보건센터가 전국에 10개 정도 있습니다. 그건 신체건강만 담당했는데 작년 3월에 정신건강 모니터링 운영 기관을 지었어요. 그게 연세대학교 가습기살균제보건센터고요. 제가 처음 위탁받았고 센터장을 하고 있어요.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도 보자는 건데 이건 정신과 의사의 진료만 의미하지 않아요. 저는 심리상담 전문가니까 정신과 의사 두 분과 같이 센터를 운영하고 있어요. 전국의 대상자들에게 심리상담 서비스를 합니다. 심리검사하고 모니터링하고 상담받아야 할 분을 발굴해 심리검사하고 있어요.

저희가 관심 있게 하는 게 13세 이하 아동들을 대상으로 하는 놀이치료입니다. 이 아이들은 가습기 피해를 받으면서 숨쉬는 것도 곤란하고 학교도 제대로 다닐 수 없어요. 사춘기가 되면 친구 사귀는 것도 어렵고 학습에도 어려움을 많이 겪겠죠. 이 아이들을 입체적으로 돕고 그 부모들도 돕는 입을 합니다.

또 유가족에게도 심리상담을 지원합니다. 지금 심리상담 분야에서 가장 큰 규모로 지원하는 센터라 할 수 있습니다.”

권수영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장. (c)마인드포스트.
권수영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장. (c)마인드포스트.

-센터장을 맡은 게 피해당한 이들에 대한 연민 때문이었습니까.

“저는 기독교상담자이기도 하니까요. 5년 전에 가습기 살균제 피해 판정기준이라는 게 있어서 확실히 피해자가 맞다라고 하면 일 단계 피해 보상을 받아요. 2~3단계 있고 마지막 4단계 있는데 이 사람이 기존에 폐질환이 있었어요.

폐질환이 생긴 게 가습기 살균제 때문인지 확실치가 않아요. 그래서 보상이 없었어요. 가습기 피해자로 고생을 하는데 폐질환이 있어서 보상을 안 해준다면 얼마나 억울하겠어요. 이분들이 강하게 반발했죠. 그래서 4단계를 위한 심리상담을 해 주자고 정부가 심리상담 사업을 공모했어요.

저희가 지원해서 그 사업을 여러 해 동안 했습니다. 현재 가습기살균제보건센터는 단계와 상관 없이 모든 대상자들과 유가족들까지, 아직 판정받지 않고 기다리는 분들까지 통틀어서 지원하는 센터가 됐죠.”

-그게 무료입니까.

“그럼요. 국가가 지원하는 거죠. 가습기살균제보건센터는 작년 3월에 시작해서 지금 1년차입니다.”

-치유는 나의 자원을 갖고 다른 사람과 연결되면서 나 자신을 치유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 치유할 수 있는 자원을 만드는 것이 본질이라고 했습니다. 좀 더 설명해주시면요.

“제가 책 ‘치유하는 인간’에서도 썼는데 우리가 다 치유하는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거죠. 이미 치유의 자원을 갖고 있는데 우리는 치유를 먼 나라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멀리 여행을 가야 치유가 되고 맛있는 음식을 먹어야 치유가 되고 대단한 사람을 만나서 뭔가를 제공받아야 치유가 된다는 생각을 하죠. 그래서 오히려 치유되지 않는 상태로 살고 있는지도 몰라요.

자기 자신이 갖고 있는 치유의 자원을 살펴보면 좋겠어요. 다른 사람과 공감을 하는 건 영혼의 숨을 제공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나도 함께 그 숨을 나눠가지는 거거든요. 상담사들이 돈도 많이 못 버는데 왜 그런 일을 감당하냐면 그 일을 통해서 본인도 충전되고 새롭게 치유되는 일을 경험하기 때문이에요.

치유는 굉장히 전염력이 있어서 서로 공유하면서 파장을 만들어가는 에너지인 거 같아요. 나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치유할 수 있어요. 그래서 상처 입은 치유자라는 말도 있잖아요. 내 상처를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만큼 다른 사람을 더 잘 이해하고 공감하고 치유할 수 있는 여력도 생기는 거죠.”

권수영 저 '치유하는 인간'.
권수영 저 '치유하는 인간'.

-내담자와 동시적으로 치유되고 성장하게 되는 겁니까.

“그런 거 같아요. 내담자 사례를 통해 그분을 변화시키는 것도 있지만 내가 치유에 대한 생각도 커지고 관점도 증폭되는 경험을 하는 거 같아요. 내가 그 사람을 객관적인 타자로 치유하는 게 아니라 요즘은 치료적 삼자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요.

뭐냐면 내담자 그 사람의 경험과 내 경험이 상호주관적 공간에서 내담자와 나를 구별할 수 없을 만큼 하나로 공유된 공간 안에서 경험이 돼요. 그 안에서 치유적 삼자가 작용을 하는 거죠. 그럼 그 사람만 치유되는 게 아니라 나도 영향을 받고 함께 성장하고 함께 치유되는 경험을 하는 거죠.”

영화 '굿윌헌팅'.
영화 '굿윌헌팅'.

-안아주라고, 뜨겁게 안아주라고 말했습니다. 인간이 인간을 안아준다는 건 그의 생애를 이해하고 사랑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까요.

“맞습니다. 안아준다는 건 우리가 태어나서 갖는 첫 번째 치유의 경험이거든요. 엄마에게 안기면서 가장 안전함을 경험하는 거죠. 물리적인 안김 자체도 저는 굉장히 내재적인 치유의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거기에 하나 더 할 수 있다면 상대방이 나를 사랑한다고 느끼게 만드는 일이죠. 그건 그 사람의 꺼내놓을 수 없는 맨 밑바닥에 있는 아픈 감정, 상처 입은 마음을 공유하고 공감해주는 거죠. 힐링 무비(Healing Movie) 보면 마지막 장면이 그런 거잖아요.

안아주면서 그 사람의 가장 수치스러운 마음, 가장 부끄러운 마음을 그대로 읽어주고 공감해 줄 때 눈물을 펑펑 쏟으면서 껴안게 되는 그게 뜨거운 안김. 그건 치유의 안김이라고 볼 수 있겠죠. 영화 굿윌헌팅(Good Will Hunting)에서도 주인공 윌이 심리학자 숀을 껴안으면서 짐승처럼 울잖아요. 그런 울음을 울 수가 없었던 거죠. 매 맞은 어린 시절의 자신의 수치스러운 모습을 안전하게 꺼내놓을 사람이 없었던 거죠.

숀에게 꺼내놓고 또 그걸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읽어주고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하면서 이 친구의 그 마음을 받아준 거죠. 정신분석에서 공감한다는 것은 감정을 담아준다고 표현을 해요.”

권수영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장. (c)마인드포스트.
권수영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장. (c)마인드포스트.

-30년간 상담심리를 해 오셨습니다. 인간은 어떤 존재이던가요.

“(웃음). 저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진짜 역설적인 존재인 거 같아요. 불완전한 존재잖아요. 성경을 보면 인간은 특별하게 지어졌다라고 창세기에 써 있잖아요. 인간의 코에다가 조물주가 숨을 불어넣습니다.

그 숨이라는 단어가 영어에는 영혼(spirit)인데 숨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따지면 우리는 특별한 하나님의 숨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죠. 우리는 불완전하고 유한한 인간이에요. 우리는 다 죽죠. 어떤 면에서는 불안한 존재로 살 수밖에 없는데 한편으로는 조물주의 숨, 그래서 무궁무진한 신성을 발현할 수 있는 영혼도 있다는 거죠.

그런 면에서 저는 인간은 때로는 자기를 초월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해요. 동물은 생존을 위해서만 산다면 인간은 생존뿐만 아니라 자신을 초월할 수 있는 이타적이고 승화된 존재로도 살 수 있다는 거죠.”

-승화된 존재가 된다는 게 어렵지 않습니까.

“그렇죠. 어떨 때 행복하냐고 할 때 처음에는 내가 뜨뜻한 데 잠잘 수 있고 의식주가 풍족하면 행복하겠다고 생각을 하는데 글쎄 모르겠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등 따시고 배부르면 다 행복하냐? 그렇지 않거든요.

저는 자기를 초월해서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고 공유하는 즐거움까지 갈 때 그 존재가 느끼는 행복감의 완성도가 더 높아진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아는 굉장한 부자들이 사실 그렇게 행복해 보이지 않는 분들도 많지 않습니까. 그게 뭘까라고 생각해 보면 인간이라는 존재가 그냥 배부르면 끝나는 존재가 아니라 자기를 초월해서 보다 이타적인 삶을 사는 추구하는 존재가 아닐까.

자기를 초월하는 거죠. 내가 굳이 지구를, 펭귄을 살릴 필요가 없잖아요. 그런데 다음 세대를 위해서 내 존재가 의미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인간들이 있단 말이에요. 환경 운동가 툰베리(18세) 같은 아이들도 정말 멋진 인간이라고 생각돼요.

자기 안에 신적 속성, 그게 조물주 같은 마음 아니겠어요. 인간은 굉장히 불안한 존재이지만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존재라고 생각돼요.”

마지막으로 “신은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물으려고 했다. 권 원장이 “저에 대한 심층 인터뷰네요”라고 말하며 웃었다. 기자의 우매한 질문이 아닐까 싶었다. 입을 다물었다. 바깥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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