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 칼럼] 노희정 “가족 교육은 당사자와 가족 위해 중요…정신건강복지센터에 등록부터 하라”
[당사자 칼럼] 노희정 “가족 교육은 당사자와 가족 위해 중요…정신건강복지센터에 등록부터 하라”
  • 노희정
  • 승인 2021.09.2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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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에 정신질환 교육 필요…정신과 가는 문턱 낮춰야
초기의 적절한 치료가 병 예후 높이고 만성화 방지해
환자 치료는 의사, 당사자, 가족의 삼박자가 이뤄져야 성공
스페인 화가 에바 알머슨 作.
스페인 화가 에바 알머슨 作.

정신질환은 특히 초기 발병기 시기의 치료와 발견이 중요한 병이다. 이때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질병에 대한 인지가 요구된다.

아직 초기 증상만 있다면 굳이 약물 치료를 하지 않아도 상담 치료만으로 해결할 수도 있으며 내성이 없는 적은 용량의 약물로 증상이 완화될 수도 있다.

일단 환자 본인이 자신의 상태를 스스로 파악해 정신건강의학과를 찾거나, 가장 가까운 곁에서 이상 징후를 발견할 수 있는 가족들이 함께 치료해가는 것이 좋은 예후를 낳는 해결책이 될 테지만 현실은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많은 지식과 정보 축적으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병원을 찾아간다. 하지만 이때 가족들의 반대로 치료가 중단되는 안타까운 사례도 많다. 반대로 가족들이 권유하고 심지어 애원하며 병원에 데려가려 해도 환자 본인이 거부해 제때에 치료가 시작되지 못한다.

가장 위험한 사례는 병을 방치하다 중증 환자가 되고 외래 치료 경험도 없는 환자가 장기입원 환자들을 수용하는 병원에 강제로 수용되는 경우이다.

이런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기 않기 위해서는 일반 국민들에게 정신질환에 대한 기초 상식과 이해를 위한 많은 교육과 수단들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정신과는 완전히 인간의 이성(理性)을 잃은 미치광이들이 가는 병원이 아니라는 것만 알려져도 환자 본인이나 가족들이 정신과 치료의 잘못된 편견에서 벗어나 치료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경우 정신질환 증세가 나타나면 환자나 가족들은 바른 길을 보지 못하고 우회한다. 한의원에 찾아가 입원비보다 비싼 한약을 지어 먹고, 기도원으로 보내고, 조상 묘를 파헤쳐 이장을 하고, 굿을 하기도 한다.

화가 이만익 作 '가족'.
화가 이만익 作 '가족'.

초기에 노이로제나 우울증, 성격장애 증상일 때 빨리 병원을 찾고 적절한 치료를 받은 사람은 병의 예후도 좋고 사회 복귀도 빠르게 할 수 있지만 이 시기를 놓치면 결코 예후가 좋아지지 않은 사례가 많다.

환자 스스로 자신이 병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는 결코 쉽지 않다. 그러기에 가족들의 발견과 현명한 판단은 무엇보다 중요하며 환자가 병식을 갖는 것만큼 가족들을 위한 가족 교육과 치료 역시 필요하다.

어느 정도 증상 통제가 되는 상황에서는 우선 정신건강의학과 외래를 찾으면 된다.

이때 환자의 치료는 환자와 의사, 보호자 간의 삼박자가 골고루 어우러져야 성공한다. 환자는 의사를 거부하지 않아야 하고 의사는 환자를 진심으로 낫게 해야겠다는 전문적인 직업의식이 있어야 하며 가족들은 환자를 이해하고 보듬으며 의사와 의논해야 한다.

환자는 가족이 밉고 의사도 밉다. 의사는 치료가 쉽지 않은 환자에게 지치고 매너리즘에 빠진다. 가족들은 이해할 수 없는 도에 넘는 행동을 보이는 환자에게 당황하고 포기한다.

전형적인 치료 실패의 케이스이다. 환자의 치료는 환자, 의사, 보호자의 합작품인 것이다.

치료를 받지 않은 환자가 통제 불능 상태에 이르게 되면 사설 응급구조대에 의해 정신병원에 끌려가 폭력을 당하고 ‘코끼리 주사’를 맞고 결박을 당한다. 어느 부모도 가족도 환자가 이런 경험을 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가슴 아프고 비애감이 든다.

그러기에 환자 본인을 위해서 또한 환자의 가족들을 위해서는 병에 대한 공부를 하고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

우리나라엔 각 행정구마다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설립돼 있다. 우선 정신건강복지센터에 회원 등록을 하는 것이 좋다. 등록된 환자는 사회복지사, 간호사, 심리상담사에게 사례관리를 받을 수 있다.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상담은 물론 여러 프로그램에 참여함으로써 재활 치료를 받는 것은 치료에 많은 도움이 된다.

코로나19 때문에 정신건강복지센터의 프로그램 동아리 활동은 사실상 중단됐다. 하지만 많은 정신건강복지센터는 인터넷 밴드를 통해 회원들과 교류하고 있다.

서울시 광진구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는 밴드를 통해 강사가 지도하는 무용 동영상을 올려 환자들을 온라인 프로그램으로 참여시키고, 공예 만들기와 사회복지사가 직접 가르치는 요리 강좌를 제공해 정신건강복지센터 회원들의 여가 생활을 풍족하게 하고 있다. 또한 정신건강에 관한 강의를 올려 환자뿐만 아니라 가족 교육도 돕고 있다.

화가 이만익 作 '가족'.
화가 이만익 作 '가족'.

사례 관리 담당자 한 명당 사례 관리를 받는 회원 수가 지나치게 많고 정신건강 전문요원들의 복지가 열악하다는 것이 큰 문제점이지만 정신건강에 대한 사회적 중요성은 앞으로 대두되고 있어 그 역할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일반인들의 정신건강 상담도 진행함으로써 지역 사회 정신건강 지원을 위한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는 강사를 초빙해 가족 교육 프로그램도 함께 진행한다.

정신질환에 대한 이해를 돕고 환자 보호자로서의 역할과 환자의 자립을 위한 정보를 제공한다.

가족 교육에 참여하는 회원 가족들의 자조 모임도 활성화되어 새로운 정신건강 법률 개정안이나 복지 체계에 대한 교류를 나누고 약물과 병원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며 보호자로서의 힘든 역할과 고충을 서로 토로하고 위안하는 의미 있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정신의료계의 컨트롤 타워라 할 수 있는 국립정신건강센터에서는 매달 한 번씩 가족 교육을 진행한다. 교육은 환자들의 가족뿐만 아니라 당사자들도 참여해 유익한 강의를 들을 수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모임이 제한돼 최근에는 줌( zoom)을 통해 강의가 진행되고 있다.

가족들도 생계를 꾸려가야 하고 자신들의 인생을 살아가야 하므로 이러한 가족 교육과 가족들의 자조 모임은 매우 고무적이고 생산적인 지원이라 할 수 있다.

상담치료를 통해 또한 심리치료를 통해 당사자들은 자신들의 발병 원인과 해석에 대해 통찰하게 된다. 이를 통해 얻는 것이 많아서 스스로를 이해하고 보듬어 안을 수도 있지만 발병의 원인이나 내면의 갈등이 부모나 형제자매 간의 관계로부터 시작됐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면 더한 갈등에 시달리기도 한다.

많은 당사자들이 가족력을 가지고 있기에 더욱 절망하고 낙담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부모도 처음부터 자식을 사랑하지 않고 자식이 건강하게 살아가기를 바라지 않는 부모는 없다. 이때에 당사자들이 가져야 할 신념은 부모와 형제 자매들을 한 인간으로 분리시켜 그들의 삶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감당할 수 없는 상처를 가져다준 부모와 가족들을 용서하는 방법밖에 없다.

환자라는 이유로 부모와 형제자매에게서 정서적, 언어적, 그밖에 다양한 형태의 학대를 받는 당사자들이 지금도 많이 있다. 평생을 병과 싸우며 함께 살아가야 하는 당사자들의 입장, 상황, 증상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가족들 때문에 더욱 힘든 것이 당사자들의 현실이다.

(c)co.pinteres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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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입장에선 한평생 업보로, 십자가로 지니고 살아가야 하고 형제자매들은 식구 중에 정신과 환자가 있다는 사실을 남들에게 감히 말할 수도 없다.

병을 앓는 당사자도 이를 돌보고 바라보는 가족들도 이는 이루 비견할 수 없는 비극적인 현실이다. 하지만 이 현실은 서로가 서로를 탓한다고 해서 벗어나지 못한다. 당사자와 보호자 간의 관계는 용서가 되고 이해가 되기도 힘들다. 하지만 그 과정을 넘어서야 당사자도 보호자도 치료될 수 있다.

환자는 병든 가족과 병든 가정을 대표하는 가족이라고 한다. 가족 교육을 통해서 당사자의 치료와 함께 보호자들도 치유될 수 있다면 병든 가족들은 건강한 관계로 유대감을 가질 수 있을 것이며 병든 가정도 비로소 건강한 가정으로 변화돼 새롭게 함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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