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형 기자의 변론] 영화 ‘F20’, 누군가에게는 흥미와 몰입감이지만…당사자·가족에게는 또 하나의 낙인 될 수 있어
[이관형 기자의 변론] 영화 ‘F20’, 누군가에게는 흥미와 몰입감이지만…당사자·가족에게는 또 하나의 낙인 될 수 있어
  • 이관형 기자
  • 승인 2021.09.23 19:0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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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D.P'는 군 내부 폭력성 고발...은폐된 군 문제의 이슈화 이끌어
조현병 다룬 영화가 공감 얻으려면 사회적 차별과 고발이 녹아들어가야
'F20'은 조현병 내용 담았지만 정신장애 낙인 더 강화할까 우려돼

얼마 전, 간호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식 개선 강의를 하던 중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았습니다.

“강사님은 강의를 하면서,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많이 하시잖아요? 혹시 과거의 아픈 기억들을 꺼내는 게 힘들거나 괴롭지는 않으신지요?”

저는 이 질문을 들으면서, 그 학생에게 고마웠습니다. 조현병 환자의 이야기를 단순한 흥밋거리나 호기심으로 듣지 않고, 당사자의 마음까지 헤아려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 학생이 훗날 현장에서 일한다면, 환자들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귀기울여주고, 깊은 마음까지도 헤아려 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제 아픈 과거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꺼내는 건 쉽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잊고 싶은 기억들을 떠올려야 하고, 심지어 다른 사람에게 들려줘야 하는 게 쉬운 작업은 아니죠. 그런데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타인의 말을 통해서, 혹은 미디어를 접하면서 과거의 아픈 기억들이 강제적으로 떠올려진다면 매우 괴로울 것입니다. 마치 PTSD, 즉 외상후 스트레스장애처럼 말이죠.

출처 : 넷플릭스
출처 : 넷플릭스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화제가 된 드라마가 있습니다. ‘D.P’라는 드라마인데요. 탈영병을 잡는 군인들의 이야기를 현실적으로 다룬 드라마입니다.

군대의 어두운 면들을 너무 현실적으로 다루다 보니, 군내에서 벌어지는 부조리와 가혹 행위에 대해서도 논란이 일었습니다. 군대 경험이 있는 남성들은 이 드라마를 보고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가 올 것 같다고 호소할 정도였죠.

하지만 대다수는 이 드라마 속 현실에 대해 공감하고 열광했습니다. 이 영화는 군 내부의 부조리와 가혹 행위를 단순히 흥밋거리나 호기심으로 다룬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피해자의 시점으로 부조리와 가혹 행위를 낱낱이 고발하는 성격의 드라마였죠.

이 드라마의 원작은 ‘D.P. 개의 날’이라는 제목의 웹툰입니다. 웹툰 작가 김보통은 지난 8월 31일 인스타그램을 통해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D.P.는 이제는 (군대가) 좋아졌다는 망각의 유령과 싸우기 위해 만들었다”면서 영내 폭행으로 사망한 하사의 부인이 보낸 메시지를 공개했습니다.

출처 : 국민일보
출처 : 국민일보

“이 드라마를 참 힘들게 힘들게 봤지만, 작가님께 감사해요. 왠지 우리를 잊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D.P.를 더 많은 사람들이 봐서 더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이에 대해 김보통 작가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외로운 싸움을 계속해 나가는 분들에게 힘을 보탤 수 있길, 오늘도 어디선가 홀로 울고 있을 누군가에게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 줄 수 있길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실제로 많은 남성들이 이 드라마를 보고, 자신이 겪었던 군생활에 대해 털어놓았습니다, 그동안 감춰지고 은폐되었던 사실들이 이슈화가 된 것이죠.

이로 인해, 가장 당황한 건 국방부였습니다. 이례적으로 공식 반응을 내놓기도 했죠. 문홍식 국방부 부대변인은 “폭행, 가혹 행위 등 병영 부조리를 근절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병영 혁신 노력을 기울여왔다. 일과 이후 휴대전화 사용 등으로 악성 사고가 은폐될 수 없는 병영 환경으로 현재 바뀌어 가고 있다”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처럼 D.P. 라는 드라마는 대한민국 군 내부에서 일어나는 폐해를 세상 밖으로 드러내었고, 이를 개선하고 고쳐나가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했습니다.

출처 : 넷플릭스
출처 : 넷플릭스

그런 점에서, 조현병을 다룬 영화나 드라마가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컸습니다.

지금까지 조현병은 언론을 통해 일방적이고 자극적으로 보도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일부 드라마에서 조현병 환자가 등장하기도 했지만, 대다수는 범죄자나 사이코패스로 비추어졌습니다. 따라서 많은 당사자와 가족들은 조현병에 대해 올바로 알리고, 사회의 편견과 차별을 고발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기다려 왔습니다.

이런 점에서, 개봉을 앞두고 있는 ‘F20’이란 영화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기자뿐 아니라 많은 당사자와 가족들이 염려를 하면서도 조금의 기대를 갖고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마인드포스트>의 인터뷰 요청에 아직까지 답이 없는 제작진의 모습, 예고편에 이어 9분짜리 요약 영상을 보고 난 뒤에는 점점 우려가 현실이 되어감을 느낍니다.

영화 제작진이 타 언론들에 제공한 포스터와 보도자료. 그리고 이를 기사화한 제목의 모습을 보면, 이 영화도 드라마 ‘D.P.’처럼 조현병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을 드러내고 고발하려는 목적이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출처 : 네이버
출처 : 네이버

캡쳐된 기사의 제목에 쓴 표현은 다음과 같습니다. 

‘생생 긴장감 + 극강 몰입도’, ‘장영남 주연.. 조현병 환자 엄마역’, ‘생생한 긴장감 & 압도적 몰입감’,

‘김강민 캐스팅’, ‘믿보배 장영남 파격 변신 시도’, '선악 넘나드는 폭발적 열연' 등등.

이 영화에 대한 기사는 주로 긴장감과 몰입감, 그리고 배우들과 연기력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조현병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고발하거나, 조현병 당사자와 가족들의 아픔에 대한 내용과 접근은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조현병이라는 소재는 극의 긴장감과 몰입도를 높이려는 데 사용된 주 재료에 불과하지는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또한, 배우 장영남이 연기한 당사자 가족의 모습은 얼마나 파격적일지 걱정이 되는 게 사실입니다. 많은 아픔과 상처를 안고 사는 당사자 가족들이 왜곡되어 비추어 질 수 있으니까요.

이러한 우려는 9분짜리 영상에서도 찾아 볼 수 있었습니다.

우선 이 영화도 주변 이웃들이 가진 조현병에 대한 편견과 시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새로 이사온 주민(김정영 역)의 아들이 조현병인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고양이 살해 사건이 발생하자, 이사온 주민의 아들을 의심하죠. 이러한 의심을 받는 아들에 대해 새로 온 주민은 "저희 얘 진짜로 착해요"라고 말하는 장면이 이어집니다.

출처 : 뮤랑TV
출처 : 뮤랑TV
출처 : 뮤랑TV
출처 : 뮤랑TV
출처 : 뮤랑TV
출처 : 뮤랑TV
출처 : 뮤랑TV
출처 : 뮤랑TV

이처럼 이 영화는 조현병 당사자를 둔 가족들이 겪어야 하는 편견과 시선에 대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사회의 편견과 시선에 대해 고발하려는 의도인지, 아니면 영화의 긴장감과 몰입도를 위한 하나의 장치에 불과한지,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장면을 본 당사자와 가족들은 마음이 찢어질 듯 아플 것입니다. 마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것처럼 말이죠. 드라마 'D.P.'처럼 조현병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변화를 이끌어 내고자 하는 장면이었는지 제작진에게 묻고 싶습니다.

9분 영상 말미에는, 조현병 아들을 둔 엄마(장영남 역)가 아들의 병을 숨기기 위해, 또 다른 당사자 가족(김정영)에게 폭행을 가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자신의 아들이 조현병이라는 사실을 유일하게 알고 있는 인물(김정영)을 살해해 비밀을 지키고자 폭력적 행동을 보이는 장면이죠. 이 장면에 대해, 많은 네티즌들은 댓글로 "사실 엄마(장영남)가 조현병이 아니냐?"라는 추측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출처 : 뮤랑 TV
출처 : 뮤랑 TV

기자는 9분짜리 영상을 보면서, 최대한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이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기자도 당사자이고 가족들이 있기에, 아픈 마음을 진정시키며 이 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하물며, 다른 당사자와 가족들의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누군가에겐 생생한 긴장감과 몰입도를 가져다주는 흥미롭고 자극적인 내용이겠지만, 누군가에겐 외상후 스트레스보다도 더 한 피눈물 나는 평생의 상처이자 아픔일 수 있습니다. 배우들이 연기하는 극적인 캐릭터와 행동 묘사와 대사 한 마디가, 누군가에게는 이 사회에서 발붙이고 살아갈 수 없는 족쇄이자 낙인으로 인한 멍에가 될 수 있습니다.

기자는 이 9분짜리 요약영상에 대해 정신건강 관련 카페에서 종사자들에게 의견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대다수가 기대보다는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종사자 분들이 댓글로 남겨주신 의견들을 소개하며 이 글을 마칩니다.

"조현병 증상으로 동물을 죽이는..극단적인 것으로 공포감을 주고, 실제 증상으로 인해 힘든 것에 공감을 하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가족들의 고통과 걱정들을 표현하는 듯 싶다가도 주인공이 급격하게 심경이 변화하면서 폭력적으로 표현이 되어서 부정적인 인식으로 마무리가 되어가는 게 저는 개인적으로 걱정이 되네요."

"F20이라는 무거운 주제로 영화를 만들겠다고 결심을 하였다면 어느 정도 정신질환에 대한 연구, 전문가들과의 만남, 정신질환 당사자분과의 인터뷰, 가족분들이 겪은 애로 사항들과 남 모르는 애환들에 대해 충분히 들어본 후 만들었길 바라봅니다. F20이라는 주제로 영화를 만들어 상업성을 추구하겠다고 한다면 적어도 이에 해당하는 분들에게 피해는 가지 않았으면 합니다. 9분 짜리 영상이지만 분위기를 봤을땐 실무자인 저부터도...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이 뒤로 확 후퇴될 것 같습니다."

"영화에서 주변 이웃들이 "미친X"라고 욕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당사자들 또한 저런 시선이 두려워 병을 밝히기 어려워 하는데, 더욱 상처주는 일이라 생각됩니다. 영화에서 보여지는 주변인들의 낙인과 편견을 해소하기 위해 많은 기관 종사자들과 당사자, 가족들이 노력하고 있습니다만, 예고편만 봐서는 상영해도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영화가 조현병을 소재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지 지켜보겠습니다."

"영화는 어느 정도 상업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교육적 내용이거나, 다큐멘터리 혹은 내셔널 지오그래픽 같은 영상이 아니라면 요소마다 사실적인 부분을 첨가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관객들은 강제로 교육하고 주입시키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죠. 실제로 조현병 중에는 망상으로 인해 동물을 죽이거나 애니멀호더 같은 증상을 가진 분들도 계십니다."

"8분의 영상에서 주변 사람들의 편견, 그 편견으로 마음 아파하는 가족들의 장면, 아들의 질병을 감추려 하고 주변인들이 시선을 두려워하는 가족의 모습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대중들의 편견이 더해질까 우려됩니다. 당사자 어머니가 다른 당사자 어머니를 살해 시도하는 장면 또한, 당사자 가족에 대해서까지 좋지 않은 모습으로 비추어져 편견이 더 가중될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영화 'F20' 9분 요약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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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인 2021-10-02 16:09:51
영화하나에 편견생길나라면그냥 망해야죠. 미국보세요 배트맨이나 아웃라스트도멀쩡히나오는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