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가은 “청소년의 자아 찾기가 배부른 투정? 우리 감정의 선과 아픔은 다 달라요”
우가은 “청소년의 자아 찾기가 배부른 투정? 우리 감정의 선과 아픔은 다 달라요”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1.11.16 19: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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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가은 멘탈헬스코리아 피어스페셜리스트 인터뷰
청소년기는 자기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갈등은 불가피해
초등학교 4학년 때 접한 폭력의 구조가 삶을 옭아매
청소년의 자해문화는 이해받고 싶다고 아픔을 알아달라는 ‘마지막 발악’
학교 Wee클래스 상담 후 비밀 보장 안 되는 걸 알고 실망, 이후 찾지 않아
Wee클래스 제대로 작동하려면 서류보다 학생 정서가 우선 보호돼야
증오보다 긍정적 감정이 좋지만 때로는 나를 위해 증오 필요할 때 있어
생각의 가면을 쓰고 사는 건 복잡한 삶을 정제하는 행위
언어폭력도 폭력이라 가르치지만 신고하는 방법 가르치지 않아
모든 아픔의 질은 고유하고 개별적…쉽게 판단하지 말아야
타인이 나를 억압하는 말을 해도 ‘난 나야’라는 마음 있으면 괜찮아
다름이 틀림이 아닌 다름 자체로 인정되는 세상 꿈꿔
박종언의 만남: 길을 묻다 (c) 마인드포스트
박종언의 만남: 길을 묻다 (c) 마인드포스트

이제 열여섯 살. 고등학교 일학년. 그 어린 여학생에게 삶의 길을 묻는다는 건 알파벳을 배우고 있는 이에게 영어로 된 철학 서적을 읽으라는 의미와 같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녀는 “청소년이 마냥 그렇게 어리지는 않다”고 말했다. 생의 미숙함은 오류가 될지언정 모든 의미를 단절시키는 실패는 아니다. 따라서 오류를 통해 인간은 성숙해지고 실패를 통해 지혜로워진다.

멘탈헬스코리아(Mental Health Korea)라는 데가 있다. 정신장애인 소비자 운동을 이끌고 있는 단체다. 정신보건에서 그간 기울어져 있던 치료자와 이를 이용하는 정신건강 소비자 사이의 관계를 좀 더 평등하게 만들려는 기획에 기초한 운동단체다.

이 조직은 청소년의 심리적 고통에 주목해 왔다. 어른들이 알 수 없는 내밀한 상처들. 어른들은 어리석고 배부른 투정이라고 규정하는 그 반항과 슬픔을 세계에 드러냄으로써 그들의 사유가 틀린 게 아니라 ‘다르다’는 걸 알리는 역할을 해 오고 있다. 거기, 고등학생 우가은(16) 양이 있다.

가은이는 초등학교 4학년 때 학교에서 언어폭력과 정서적 학대를 겪었다. 극단적 선택을 위해 학교 옥상으로 올라간 적도 있다. 기자는 물었다. 도대체 어떤 문제로 인해 그 어린 나이에 죽음을 생각하고 실행하려 했던 것일까. 거기에다 스스로를 학대하는 자해문화까지. 1970년대와 1980년대를 청소년기로 지나온 기자에게 그 어린 아이의 영혼은 쉽게 이해될 수 없는 무엇이었다.

기자 역시 청소년기에 학교 선배들에게 부조리하게 많은 신체적·정신적 폭력에 시달렸다. 그리고 그들이 무서웠고 그 무서움을 보호해주는 주변의 지원군이 없을 때, 기자는 극단적 슬픔을 만났던 기억이 있다.

공부도 못했고 눈에 띄지도 않았고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었던 기자에게 친구들은 손을 내밀지 않았다. 아니, 몇 명이 손을 내밀었지만 그들에게 기자는 그냥 조용하고 말 없는 아이에 불과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게 성년이 된 후 상처가 되지는 않았다. 아니, 상처였으나 그것을 의식적으로 회피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랬다.

그런데 가은이는 초등학교 시절에 가해자가 행한 폭력의 기억을 생쌀처럼 오롯이 갖고 있었다. 잊어버리면 안 될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또 하나의 폭력이다. 기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태도는 가은이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이다.

최근에 책이 한 권 나왔다. 멘탈헬스코리아의 청소년 조직인 피어 스페셜리스트(Peer Specialist·아픔의 경험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 ‘우리의 상처는 솔직하다’이다. 거기에 가은이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가은이는 책에 이렇게 쓰고 있다. “이유 없이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던가? 쓸모없이 노력한 시간이 아까웠지만 어찌됐든 나는 성숙해졌다.”

기자는 깊이 공감했다. 맞다. 우리 삶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함부로 평가하고 험담하고 재단하는 인간들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만나왔고 얼마나 그로 인해 스스로를 자학하고 상처주었던가. 가은이는 내가 삼십대에 알게 된 생의 비밀을 열여섯 살에 알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가은이는 나의 동지다.

멘탈헬스코리아 장은하 부대표에게 가은이와의 인터뷰를 요청했고 가은이는 흔쾌히 응했다. 지난 12일 대구에 살고 있는 가은이가 서울 마포구의 <마인드포스트> 사무실을 찾아왔다. 주중인데 어떻게 올 수 있었냐고 하니 수업을 온라인으로 하고 있어 조금은 자유롭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우가은. (c)마인드포스트.
우가은. (c)마인드포스트.

-청소년기에 반항과 갈등은 있기 마련이라는 말이 있지요. 어떻게 생각하나요.

“청소년기의 반항과 갈등은 청소년이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스스로와의 싸움과 고민을 하면서 어쩔 수 없이 부모님과 생각의 차이가 생기는 거죠.

나는 이런 사람인 것 같은데 부모님은 아니라고 해요. 그럼 어쩔 수 없이 반항을 하죠. 청소년기의 반항과 갈등은 불가피해요. 그럼 이걸 잘 받아들이는 게 중요하지 이게 없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면 안 되죠.”

-너무나 어린 초등학교 4학년 때 가은 양이 경험한 ‘배제와 소외’는 저의 경험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저도 가해자들의 입장에서 생각을 했어요. 가해자들은 ‘네가 너무 꼴보기 싫었어’, ‘네가 너무 싫었어’ 이 말만 하더라고요. 내가 그렇게 잘못한 게 없었는데 왜 싫어할까. 초등학교 4학년이 이런 경험을 겪는 건 흔치 않아요.

이 경험을 하면서 생각한 게 그냥 사람을 싫어할 수 있는 거구나였어요. 선배들한테 폭력을 당하고 또래들 사이에서 배제를 당하면서 느낀 건 주변 시선들이 나를 옭아매고 잡아둘 때가 굉장히 많다는 거였어요.”

-자해문화가 왜 만들어졌는지도 이해가 안 됐어요. 제가 청소년이던 1970년~1980년대에는 자해문화 자체가 없었거든요.

“맞아요. 자해문화가 생긴 지는 얼마 되지 않았어요. 저는 청소년이 자해를 하는 건 마지막 발악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자살을 시도했던 사람으로서 그 청소년들을 이해해요. 그들에게 자해는 마지막 희망이었대요.

자해를 함으로써 잠시나마 자신이 겪었던 아픔이 잊혀지는 느낌이 든대요. 자해문화가 좋다고는 얘기 못 해요. 아픔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방법을 모르니까,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해요.”

-어쩌면 관심받고 이해받고 싶었다는 걸까요.

“그렇죠. 나를 알아봐 주세요라는 느낌도 있어요. 자해문화의 제일 큰 의미는 나 자신이 이렇게 아픈데 겉으로 표현할 방법을 모르겠다는 거죠. 자기 자신한테 내가 이렇게 아파라는 걸 계속 얘기해주는 느낌이 들어요.”

-청소년기에 맺은 친구들끼리의 우정과 약속은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빛이 바래는 헛된 이야기들이 아닐까요.

“헛된 이야기일 수 있어요. 우정이라는 것도 자칫 뒤틀리면 시기(猜忌)와 질투가 되고 그걸로 인해 학교폭력이 생기거든요. 저는 학교폭력을 많이 겪었잖아요.

우정이 필요는 하지만 많은 우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학교에서 많은 애들과 어울리는 게 아니라 소수의 친구들과 맺는 우정이 가장 큰 희망이고 위로라고 생각해요.”

-중학교 입학 후 위(Wee)클래스 상담에서 기대했던 공감과 경청 대신 오히려 명령과 몰이해를 당했어요. 믿었던 곳에서 거절당했다는 느낌이 들었겠어요.

“저는 도움 받을 수 있을 거라 믿고 갔는데 (상담 선생님이) 상담하는 내내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어요. 정말 그런 일이 존재는 하냐는 눈으로 저를 바라봤고 끝나고 하는 말이 ‘난 너를 이해할 수 없어’였어요. 그 말을 듣고 ‘오지 말걸, 내가 괜히 손을 내밀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믿었던 곳에 대한 배신이었어요.”

-위클래스 상담 후 그 상담 비밀이 지켜지지 않아 담임선생님과 학생들이 다 자신이 상담한 사실을 알게 돼 아팠다고 하는 이야기들도 들었어요.

“학교에서 상담 내용이 알려지는 게 비일비재해요. 제 상담 내용도 담임선생님과 학교 선생님들 대부분이 아셨어요. 위클래스에서의 보안은 없다고 보는 게 맞아요. 그래서 전 친구들한테 위클래스에 가지 말고 상담기관을 가라고 얘기를 해요.

위클래스는 어쩔 수 없어요. 왜냐하면 이 기관이 학교 안에 있고 학교는 문서로 돌아가는 기관이잖아요. 문서로 남기는 절차에서 당연시하게 공개가 되더라고요. 상담은 보안이 제일 중요한 원칙인데 너무 당연하게 공개되고 알려져요.

그게 선생님들끼리의 보안이면 상관이 없는데 친구들한테까지 알려지는 사례가 굉장히 많다는 게 문제예요. 그것 때문에 더 배제당하고 소외당할 수 있거든요. 그걸 단절을 해야 되는데 학교 내에서는 쉽지가 않더라고요.”

우가은. (c)마인드포스트.
우가은. (c)마인드포스트.

-위클래스가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

“정말 위클래스가 학교 안에서 운영되려면 선생님들의 서류가 아니라 학생들의 정서가 우선이 돼야 해요. 저도 우울증이라는 결과가 나와서 위클래스에서 상담을 받았는데 부모님께 말씀드린다는 걸 극구 사양했어요.

그러고 나서 제가 한 일은 검사를 다시 해서 우울증 의심이 나오지 않게 하는 거였어요. 상담을 했고 내가 상담 안 받겠다 했으니까 우울증이 아닌 걸로 나와야 됐던 거죠. 위클래스는 학교 생활에 의지가 되고 믿음이 돼야 되는 공간이지 서류 때문에 일사천리로 진행돼야 되는 곳이 아니라는 거죠.

물론 담임선생님한테 알려야 할 부분은 있어요. 학교 생활을 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그게 철저하게 보안이 붙여져야죠.”

-위클래스 선생님은 정식 교사인가요.

“학교에 수학 선생님, 과학 선생님 등 과목별 선생님이 있잖아요. 그런 선생님들 중에 상담 과목을 이수하면 위클래스 선생님이 될 수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전문가가 아니네요) 교육만 받고 상담을 하는 거예요.”

-저는 가은 양 나이 때 공부도 못했고 친구도 없었어요. 가은 양은 어때요.

“(웃음) 저도 공부를 잘 하는 것 같지는 않고 친구도 많은 것 같지도 않아요. 공부를 하고 싶은 욕심은 있는데 그게 결과로 안 나올 때가 많고요. 친한 친구는 딱 세 명밖에 없어요. 저는 친구를 많이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정말 내 곁에 있어 줄 친구, 나를 믿어줄 친구가 필요하지 허울뿐인 친구는 필요 없더라고요.”

-청소년기에 방황 대신 공부에 집중해 좋은 대학을 나오고 좋은 회사에 취직하면 그만큼 행복해질 수 있다는 어른들의 말은 무엇이 잘못된 걸까요.

“좋은 대학 나오고 좋은 회사 들어가는 거 좋죠. 저도 그러고 싶고요. 하지만 방황과 공부를 연관지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학생 시절에 제일 중요한 게 공부라고 하지만 저는 청소년기에 제일 먼저 겪어야 할 건 자기 자아를 찾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방황, 부모님과의 갈등, 세상의 억압을 겪어가면서 자아를 만들어가는 거죠. 그 과정에서 학생들이 힘들어해요. 하지만 거기에 덧붙여서 공부를 같이 하잖아요.

너는 반항을 하니까 공부 안 하잖아라고 말을 하는데 아니에요. 반항하면서도 공부하는 애들 되게 많아요. 내가 이러면 안 돼라는 생각을 하면서 공부하는 친구들 정말 많아요. 하지만 이 방황과 공부가 같이 따라갈 수는 있어도 한쪽으로 치우치지는 않는다는 거예요.

방황을 안 하면 공부를 잘해, 이게 아니에요. 공부를 잘하면 방황을 안 해, 이것도 아니라고요. 공부를 잘 하는 친구도 방황을 많이 했을 수 있고요. 공부를 적게 한 친구도 방황을 많이 할 수 있는 거예요. 그건 반비례로 왔다갔다하지 않아요.

공부가 필요하고 좋은 대학을 가는 게 중요하기도 해요. 그게 살아가는 데 키워드가 될 수 있어요. 하지만 청소년 시기 때 확립해야 하는 건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짧은 학창 시절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내는 건 어렵지 않을까요.

“그래서 부모님과 갈등을 겪고 친구들간에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거죠. 성인이 된 후에도 자아에 대해 고민하는 분들이 굉장히 많아요. 그렇기 때문에 청소년기 때는 자아에 집중할 시간을 줘야 돼요. 그래야 성인이 됐을 때 확립된 자아를 가지고 더 좋은 길로 나갈 수 있어요.

확립된 자아를 가진 사람이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회사에 취직한다고 말할 수 없지만 그럴 확률이 높은 건 사실이에요.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아니깐요.”

-가은 양이 겪은 청소년기의 폭력에의 기억도 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된다는 꼰대들의 말에 어떻게 생각하나요.

“잊혀질 수가 없어요. 피해자들 입장에서는 평생을 따라다녀요. 저는 아직도 기억해요. 초등학교 4학년 때 점심시간이었는데 4층에서 선배가 1층에 있는 저보고 좀 올라오라고 했어요. 그때 했던 말이 토씨 하나 빠짐없이 기억해요. 굉장히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똑똑히 기억해요.”

-뭐라고 했나요.

“너 왜 그따위로 사냐고 말했어요. 그리고 수많은 비속어들이 날라왔어요. 선배들이 둘러섰고 저 혼자였고. 그 선배들은 절대 기억하지 못할 거예요. 가해자들은 쉽게 잊어요. 하지만 피해자들은 절대로 쉽게 잊혀지지 않아요. 그 아픈 상처는 평생을 꼬리표처럼 따라다닐 거에요.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잖아, 자연스럽게 잊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절대 안 잊혀져요. 잊혀질 수가 없어요. 그 아픔을 겪은 사람만 아픈 걸 알잖아요.”

우가은. (c)마인드포스트.
우가은. (c)마인드포스트.

-남성 뮤직 그룹의 멤버 한 명이 과거 학교 폭력의 가해자인데 피해자였던 사람이 텔레비전에 그 가해자의 얼굴을 보고 폭력의 기억을 꺼집어내 페이스북에 글을 올린 걸 봤어요. 가해자가 자신에게 사과하기를 바란다고 했죠. 그 사람에게는 그 상처가 그대로 남아 있는 거겠죠.

“저 같아도 그럴 거 같아요. 저도 중학교 올라갔을 때 초등학교 4학년 때의 그 선배들을 같은 동네에서 만나면 무서워서 손을 떨었어요. 고개를 푹 숙이고 선배가 안 보이는 곳으로 빨리 지나갔죠. 그렇게 지나치면 과호흡이 와요. 그래서 많이 울었어요.

잊혀진다, 무뎌진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이렇게 담담히 이야기하지만 저도 제가 흔들릴 때는 그 일이 지옥 같을 때가 정말 많아요. 손이 떨리고 치가 떨리고 저 사람만 봐도 무섭고 그래요.”

-자신이 쓴 가면이 사람 사이의 적절한 거리를 유지해주고 그 거리는 나를 지키는 데 꼭 필요하다고 썼어요. 솔직하게 사람에게 다가가는 게 더 진실한 사이가 되는 게 아닐까요.

“가면이 없는 사회가 필요한 건 사실이에요. 부모님과 제 관계에서 가면은 없잖아요. 하지만 학교에 있을 때, 사회에 나갔을 때 저는 가면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가면이 사람 사이의 거리만 유지시켜 주는 게 아니라 제 감정도 컨트롤할 수 있게 하거든요.

불필요한 내 감정을 드러낼 필요가 없어요. 부모님한테는 쉽게 짜증내고 화내고 애교부리고 기분이 천차만별이지만 남한테는 그럴 수 없잖아요. 친구한테 제 기분을 100% 표현할 수는 없단 말이에요. 저는 그 기분을 조절하기 위해 가면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가면이 없어야 진실될 수 있어요. 하지만 가면을 써도 진실될 수 있어요. 본인의 생각과 행위가 가면을 씀으로써 정제되는 거니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가면을 쓴 채로 살아가는 게 오히려 삶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증오라는 감정은 잔인하지만 평생을 상처받으며 고생하는 것보다 나은 선택이라고 말했어요. 하지만 인간은 증오로만으로 살아갈 수는 없지 않을까요.

“맞죠. 어떻게 사람이 증오라는 감정만 가지고 살겠어요. 그런데 증오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사람은 많은 감정을 느끼며 살잖아요. 그 중에 증오라는 감정만큼 사람을 철저하게 배제할 수 있는 감정은 없다고 생각해요.

사람과 사람을 봤을 때 ‘내가 저 사람을 증오해’라고 말하지 않잖아요. 보통 속으로 ‘저 사람 너무 싫어, 저 사람 증오할 거야’ 이렇게 하잖아요. 그러면서 저 사람과 나 사이의 불필요한 마찰을 줄인다고 할까요, 만나면 으르릉거리는 사이는 필요가 없잖아요. 그런 관계에서 증오라는 감정은 필요할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굳이 왜 증오를 해’라고 물을 수 있어요. 하지만 증오라는 감정이 사람을 많이 바뀌게 하거든요.”

-어떻게 바뀌나요.

“증오는 여러 순서를 거쳐야 나오는 감정이에요. ‘나 저 사람 싫어, 저 사람 안 봤으면 좋겠어’ 그러다가 결국 끝에 몰리게 되면 증오를 하게 돼요. 저는 증오라는 감정을 받아들이면서 저의 친가 쪽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었어요. 내가 끊어내면 되겠구나, 더이상 감정 소모하고 힘을 쏟을 필요가 없겠구나를 느꼈거든요.

살아가면서 증오라는 감정보다 긍정적인 감정이 더 쓰였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증오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는 건 꼭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아직 가은 양은 삶의 경험도 적고 가치관과 세계관도 형성되지 않은 나이에요. 그런데 증오부터 배우다니요.

“저는 어리고 아직 인생의 가치관이 확립되지 않았고 삶을 경험한 기간이 짧잖아요. 그게 오히려 좀 더 깊게 저를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 됐어요. 내게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더 깊게 저를 훑는 거죠.

겪지 않아도 될 일을 너무 많이 겪었는데 그런 저를 보면서 제가 ‘아 나는 참 불쌍하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하지만 그런 것들을 겪으면서 증오라는 감정을 배운 게 감사했어요. 왜냐하면 떨어트릴 수 없는 사람을 떨어트렸고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게 증오라는 감정이라서요.”

-제가 중·고등학교 때는 쉬는 시간에 선배들이 교실에 와서 후배들을 패는 일이 많았어요. 가은 양은 어때요.

“요즘 학교에서는 그럴 수가 없어요. 보는 눈이 많고 학교에서도 휴대폰이나 전자 기기들이 너무 많아요. 그런 폭력은 학교에서 일어날 수 없는데 그렇다고 폭력이 없어지는 건 아니거든요.

제가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반에서 때리고 치는 건 있을 수 있는 일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전혀 없어요. 초등학교 때 제가 느낀 폭력은 신체적 폭력밖에 생각을 못 했어요. 그런데 대한민국은 끝없이 경쟁을 하는 사회잖아요. 특히 학생 때는 입시라는 경쟁이 더 치열하고요.

저는 신체적이고 물리적인 폭력은 없지만 아직도 학교 안에서의 정신적인 폭력은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가은 양이 볼 때 교실은 폭력이 난무하는 공간인가요.

“그럴 수도 있죠. 이제는 물리적인 폭력은 없지만 언어폭력은 존재해요. 언어폭력과 정신적 폭력은 항상 존재하죠. 제가 중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굉장히 저한테 불합리한 선생님이었어요. 본인은 그렇게 생각 안 할 수 있지만 저한테는 상처되는 말을 많이 했고, 언어폭력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모범이 돼야 되는 존재잖아요. 그런데 그런 선생님이 학생에게 언어폭력을 하는 게 비일비재하다는 거예요. 이걸 신고할 수는 없어요. 증거가 없을 수 있고, 그거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학생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그런 과정들이 아직도 있다라는 걸 사람들이 많이 알았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은 몰라요. 학생들은 학교 안의 이런 얘기를 절대로 부모님한테 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언어폭력이다 보니까 제대로 된 폭력으로 규정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언어폭력은 폭력이라고 가르치지만 그걸 신고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가르치지 않는다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교실은 언어폭력이 난무하는 곳이 아닐까 생각해요.”

우가은. (c)마인드포스트.
우가은. (c)마인드포스트.

-가은 양이 당했던 차별과 소외, 상처와 증오는 훗날 어른이 됐을 때 어떤 의미가 될까요.

“저는 이 질문을 저한테 매년 매일 던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과연 이 상처를 밝히는 게 미래에 어떤 도움이 될까. 제 발목을 잡을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미래를 생각하면 이건 더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이 될 거라고 믿어요.

저는 이 과정을 겪으면서 좀 더 성숙해졌고 보는 시야가 넓어졌어요. 그리고 이 일을 하면서도 계속 넓어지고 있고요. 그래서 제가 겪지 않았어야 할 일이라고 다들 얘기하지만 나한테는 필요한 일이었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지금은 해요.

그리고 지금은 어느 정도 제가 저를 컨트롤할 수 있고,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됐잖아요.”

-우리 어른들이 무엇을 그렇게 잘못한 걸까요.

“(웃음) 저는 어른들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어른들한테 많은 소외를 받았어요. 선생님한테도 그랬고 저의 가족들한테도 그랬고요.

하지만 어른들은 그 상황에서 그게 최선이었겠다고 생각해요. 어른들이 청소년이었을 때랑 저희가 청소년이었을 때랑은 너무 많은 변화가 있어요. 배운 것도 달라요. 저희는 자아에 대해 배우고 공부를 해요. 그런데 어른들의 청소년기 때는 자아의 형성보다는 오히려 신체적 폭력이 존재했잖아요.

하지만 지금은 그런 폭력이 존재하지 않아요. 배우는 과정이 다르고 배우는 것들이 달랐기 때문에 분명히 다른 것에 대해 이해충돌이 있을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어른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부딪히는 이해를 받아들이려고 노력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는다는 거예요.

어른들은 내가 배운 게 맞고 내가 하고 있는 게 잘 맞아라는 확립 때문에 청소년들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아요. 어른들의 시각에서 굳히고 있는 게 가장 큰 잘못이 아닐까 생각해요.”

-가은 양의 학교 폭력과 상처에 대해 가족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을까요.

“저는 가족의 도움을 많이 받은 편이에요. 제가 정말 죽고 싶었을 때, 주저앉아 있었을 때 저는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장문의 글을 썼어요. 그 글을 저희 외가 쪽 사촌언니들이 보고 부모님한테 보내줬어요. 그래서 부모님이 제가 힘들고 아픈 걸 아셨거든요. 아버지가 환갑이신데 다행히 열려계신 분이에요. 그래서 이해받을 수 있었고 차근차근 이겨낼 수가 있었어요.”

-저는 가은 양과 같은 나이 때 꿈이 없었어요. 가은 양은 구체적인 꿈이 있나요.

“저는 구체적으로 꿈이 존재해요. 전에는 꿈 때문에 저랑 많이 싸웠거든요. 처음에는 연예인이나 가수를 하고 싶었고 배우도 잠깐 했었는데 지금은 연예계 쪽에서 음악이랑 연기를 하면서 있을 거 같아요.”

-지극히 가난한 집안의 한 청소년이 부모님이 일 나가면 동생들을 밥 먹이고 챙기는 일상을 담은 프로그램을 TV에서 본 적이 있어요. 가은 양의 반항과 아픔은 배부른 투정이라고 누군가는 말하지 않을까요.

“그 친구의 눈에는 배부른 투정이라고 볼 수 있겠죠. 나는 동생들 챙긴다고 바쁜데 너는 자아를 찾는다며 반항하고 있냐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저는 질이 다른 거라고 생각해요.

저희는 저희 자아를 찾아가면서 느끼는 아픔의 질이 있는 거고 그 친구는 가난이라는 악재 속에서 견디는 아픔의 질이 있는 거거든요. 우리 인구가 5천만 명이면 5천만 명의 다 각기 다른 질의 아픔이 있다고 생각해요.

남이 보면 저 정도야 이겨낼 수 있지라고 취급할 수 있지만 개인이 느끼는 감정의 선과 아픔은 다 달라요.”

-가은 양은 지금 ‘왕따’(집단따돌림)를 겪고 있는 건 아니죠. 그런데 학급에서 왕따를 당하는 친구는 있게 마련이에요. 그 친구에게 가은 양은 친구가 돼 줄 수 있을까요.

“저는 실제로 친구가 돼줬던 사람이에요. 그런 상황을 겪었던 사람이잖아요.”

-왕따가 있는데 내가 그 왕따인 친구를 도와줘요. 그러면 나머지 세력이 나를 학대해요. 어떻게 생각해요.

“저도 겪었어요. 중학교 때 저도 친구를 도와주면서 (폭력이) 저한테까지 옮겨붙더라고요. 저는 패기 있게 그 친구를 도와줬어요. 같이 다녔고 같이 맛있는 거 먹고 그랬는데 어느 순간 타겟이 제가 돼 있더라고요.

솔직히 힘드니까 후회도 했어요. 이 친구를 내가 왜 도와줬을까. 지금 생각하면 그 친구를 도와준 거 후회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도와줬기 때문에 그 친구가 살아났다고 생각하니까요. 한 사람을 살린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후회하지 않아요.”

-멘탈헬스코리아는 어떻게 알고 지원하게 된 건가요.

“중학교 1학년 방학 때 SNS이나 페이스북을 찾아보다가 한 문구가 저를 딱 끌었어요. 아픔이 강점이 될 수 있다는 그 한 마디에 되게 홀린 듯이 지원을 했던 거 같아요. 30분 만에 부모님 허락받고 신청서를 냈어요.

'우리의 상처는 솔직하다' 멘탈헬스코리아 피어 스페셜리스트 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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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여중생 두 명이 건물 옥상에서 함께 투신해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어요. 학교 폭력 때문이었는데 그 친구들이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하세요.

“저도 자살을 시도했던 사람이었잖아요. 제가 느낀 건 그때 누군가 한 명만 잡아줬어도 그들은 살 수 있었어요. 그들에게 자살은 마지막 희망이었을 거예요.

어쩔 수 없었겠죠. 왜냐하면 자살 외에는 그 아이들의 괴롭힘을 끝낼 방법이 없었으니까요. 친구들한테 계속 학교폭력을 당하는 바에야 죽는 게 더 깔끔하겠다는 생각을 한 거죠. 저도 그랬어요. 저도 옥상에 올라갔을 때 떠오른 건 내가 죽으면 다 끝난다였으니까요.

그 친구들의 자살을 안타깝게만 여겨지 말고 왜 거기까지 몰릴 수밖에 없었는지를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또 하나의 사건이 있었는데 남자 고등학생이 학교폭력 때문에 뛰어내려 사망했는데 그 가해자에게는 정학 처분 10일밖에 내려지지 않았어요. 굉장히 모순이죠. 사회에서 법정에 서면 그 친구는 백 프로 살인죄에요.

하지만 학교라는, 청소년이라는 굴레 안에서 명확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정학 10일로 끝났어요. 사망한 친구는 유서에 이 친구가 나를 괴롭히고 나는 못 견뎌서 죽을게라고 적었는데 정학 10일로 끝나요. 얼마나 모순적이에요.”

-청소년들에게 훈육보다 아파했으니 괜찮다고 안아주는 어른이 있으면 좋겠죠. 그러나 그런 마음을 가진 어른들은 그렇게 많지는 않죠.

“그렇죠. (웃음) 많지 않죠.”

-학교 다닐 때 공부는 안 하고 나쁜 짓만 하다가 사회에 나가서 자기가 못 사니까 학창 시절의 담임선생과 교사들을 욕하더라고요. 그런 건 어떻게 생각해요.

“어리석은 거죠. 본인이 잘못한 거예요. 그때 본인이 잘못된 길을 가면 분명히 선생님들이 말렸을 거예요. 이렇게 하면 안 된다, 너의 길을 찾아보라고 얘기했겠지만 그렇게 비뚤어졌다는 건 본인 선택이죠. 그리고 본인이 어른이 됐을 때 그 당시를 욕하는 건 그냥 탓할 사람이 없어서이겠죠. 자기 자신을 탓하기는 싫으니까 책임 전가하는 거죠.”

-가은 양에게 그 말을 해 주고 싶어요. 누구라도 가은 양에게 부정적이고 상처 주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뒤돌아서서 다시는 만나지 말라고요. 이건 제가 살면서 느낀 의미인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끊어낼 수 있는 관계라면 끊어내야죠. 왜냐하면 그런 말을 들어봤자 본인만 힘들어요. 말한 사람은 아무렇지 않단 말이에요.

저한테 그런 말을 뱉은 사람은 아무렇지 않은데 나만 왜 이런 사람이지 하면서 자신을 의심하게 만들어요. 그런 관계는 유지할 필요가 없어요. 하지만 욕하지만 떨어질 수 없는 관계가 존재해요. 그런 관계는 적정선을 유지하기 위해 그 사람의 말에 제가 감정이입을 하지 않는 거예요.

그 사람이 아무리 나한테 너 못생겼어, 너는 아니야라고 아무리 말해도 나는 나야, 나는 네 말에 휘둘릴 정도로 약한 사람이 아니야라는 걸 자기 자신이 잡고 있으면 괜찮을 거 같아요.”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는 우가은 양. (c)멘탈헬스코리아 블로그 갈무리.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는 우가은 양. (c)멘탈헬스코리아 블로그 갈무리.

-가은 양이 바라는 세상은 어떤 풍경일까요.

“다름이 다름으로 인정되는 세상이에요. 대한민국은 다름이 틀림이 되는 국가라고 생각해요. 저희는 아픔을 겪지 않는 친구들과 달리 아픔을 겪었을 뿐이지 그들과 틀리게 아픔을 겪은 건 아니잖아요. 다름이 그냥 다름 그 자체로, 너는 그냥 다른 거구나라고 편하게 이야기하는 세상이었으면 좋겠어요.”

-세상의 어른들한테 무슨 말을 해 주고 싶은가요.

“그렇게 마냥 청소년들이 어리지는 않다고 말해 주고 싶어요. 제가 만난 사람들, 주변 친구들, 학교 학생들을 봐도 청소년은 그렇게 어린 사람이 아니에요. 자기 자신에 대해 알고 있는 학생들이 굉장히 많아요.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도 잘 아는 사람이예요. 그러니 청소년들에게 ‘넌 어려서 뭘 몰라’가 아니라 ‘니네 생각이 이럴 수 있구나’라는 걸 아셨으면 좋겠어요.”

사진을 찌기 위해 가은이에게 포즈를 요청했다. 기자가 본 가은이의 포즈는 또래의 아이들이 가지는 발랄함이었다. 그것은 생의 약동(elan vital)과 맞닿아 있는 의미라고 기자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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