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은 내몰린 죽음…정부는 자살 문제 국가정책 우선순위에 두고 심리사회적 서비스 제공해야”
“자살은 내몰린 죽음…정부는 자살 문제 국가정책 우선순위에 두고 심리사회적 서비스 제공해야”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1.11.17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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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 자살예방 정신의료 서비스 강화대책’ 토론회
자살사망자의 정신질환 이력은 전체의 56.2%
우울장애, 수면장애, 불안장애 순으로 자살 비율 높아
도움 청할 곳 없는 한국사회…사회의 지지적 인맥 OECD 최하위
자살시도 응급실 내원 환자 신체 치료 후 귀가…선진국은 적극 개입
정부 자살예방 예산 584억 원 vs 교통안전 예산 6002억 원
덴마크, 2000년부터 찾아가는 정신사회적 개입 제공, 자살률 감소
대만은 정신과 급성기치료·시설병동·낮병동으로 구분…기능별 전환 시설 필요
정신응급센터 강원 등 4개 권역에 두고 예산 전폭 지원해야

포스트 코로나 시대, 우울증이 자살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막기 위해서는 생물학적인 약물적 접근뿐만 아니라 자살을 ‘내몰린 죽음’으로 규정하고 국가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포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또 자살 고위험군이 겪는 사회경제적 문제의 구조적 해결책에 더불어 정신건강서비스가 분절 없이 합해져야 실제적 효과를 낼 수 있다는 분석도 제시됐다.

17일 김민석 국회보건복지위원장이 주최한 ‘포스트 코로나 자살예방 정신의료서비스 강화 대책-벼랑 끝에 선 중증 우울증 환자의 자살, 그 해법은?’ 정책 토론회가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온·오프라인으로 진행됐다.

주제 발표를 한 백종우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법제이사는 “정신건강과 자살 현황을 보면 자살사망자 중 정신질환 이력이 있는 경우는 연평균 56.2%이고 정신질환자 10만 명당 자살 사망 발생률은 평균 215.5명이었다”며 “이는 전체 평균 25.2명의 8.6배에 이르는 수치”라고 말했다.

자살 비율을 세부적으로 분석하면 우울장애가 22.3%로 가장 많았고 이어 수면장애(20.1%), 불안장애(15.8%) 순이었다. 그만큼 극단적 선택에서 정신질환적 요인이 깊이 개입한다는 분석이다.

백 법제이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서 한국은 자살률 1위인데 거꾸로 힘들 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의 숫자는 최하위”라며 “주변에 얘기할 수 있고 도움받을 수 있는 사람 한 명도 있으면 살 수 있지만 그런 사람이 OECD에서 꼴찌”라고 전했다.

우울증 치료에 약물만으로는 효과가 크지 않으며 오히려 자살 수단의 접근성을 차단하고 치명적 자살방법에의 접근 또한 억제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백 법제이사는 “한국에서 자살은 개인의 책임지고 문제의 해결도 개인과 가족의 몫”이라며 “응급실에 실려온 자살시도자는 본인이나 가족이 동의하지 않을 경우 대부분 신체적 치료 후 정신과 치료나 복지 지원 없이 퇴원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경우 자살의 책임 주체를 ‘자살은 내몰린 죽음’으로 규정하고 있다. 미국은 자살을 국가정책의 우선순위로 두고 있으며 대만은 자살시도자를 국가가 등록하고 지원한다. 또 선진국은 전문의 판단이 있을 경우 자살시도자가 72시간 동안 입원 조치를 할 수 있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국가 정책으로 지자체별 담당 부서와 민관자살예방협의회가 적극적으로 운영된다,

자살예방 예산 역시 부족하다는 분석이다. 2019년 기준 정부 자살예방 예산은 584억 원이다. 이는 교통안전 예산 6002억 원, 산업재해예방 예산 3932억 원에 비해 한참 낮은 수준이다.

또 지자체 내부에 자살예방 관련 조직은 둔 지자체는 4곳 중 한 곳에 불과하다. 전국 299개 지자체 자살예방 예산 역시 전체 예산 229조 원 중 366억 원 수준이다. 전체의 0.016%다.

정신응급 상황과 관련한 공공 이송에서 자살시도자가 자·타해 위험이 있을 경우 미국, 독일은 법원이 치료 지속 여부를 결정하고 지원한다. 영국과 호주는 정신건강심판원이 이를 결정한다.

하지만 한국은 자살시도자 본인이 동의하지 않으면 응급실에서 신체 치료 후 귀가시켜야 하고 동의 없이 지자체에 인적 정보를 전달할 수도 없다.

덴마크의 경우 자살률 감소를 위한 국가 정책으로 자살위험 수단 도구의 접근성을 제한하고 2000년 초반부터 전국에 지역 단위의 자살예방 클리닉을 설치하고 찾아가는 서비스와 정신사회적 개입을 제공하면서 이후 자살률이 성공적으로 감소했다.

백 법제이사는 “이에 대한 코호트 연구 결과 정신사회적 개입이 반복되는 치명적 자해 위험과 자살사망률을 낮춘다는 보고가 있다”며 “한국도 사회경제적 문제에 대한 구조적 해결책과 정신건강 서비스가 분절 없이 같이 가야 실제가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자살예방 예산을 획기적으로 증가시키고 의료보험 서비스의 확대, 건강증진 기금의 비중 역시 확대해야 한다”며 “또 자살시도자 사례관리, 의뢰 체계, 신약 보험적용 확대 등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석정호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보험이사는 2020년 국제 학술지 사이언틱 리포트(Scientic Reports)의 실린 한국 연구팀의 내용을 인용해 “202년부터 2013년까지 국민건강보험 빅데이트 분석 결과 자살시도자의 가장 위험도를 높이는 건 우울증”이라고 말했다.

OECD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 팬데믹에서 우울증 유병률이 세계적으로 가장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석 보험이사는 “우리나라의 경우 20~30대 우울증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고 응급실 방문 역시 증가 추세”라며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응급의료기관이나 정신응급대응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석 보험이사 역시 자살시도자에 약물치료뿐만 아니라 종합적인 지지와 심리사회적 개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그는 “자살위험성을 선별해 평가할 수 있는 조직화된 체계가 필요하다”며 “자살 행동이 일어났을 때 사법제도를 통해 의무적으로 치료받게 하고 개입하고 지역사회에서 관리한다면 자살은 예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성장기에 아동 학대 등 트라우마를 경험한 경우 정신질환이 발병할 위험성이 높아지는 만큼 우울증과 자살시도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서는 아동 학대를 예방하고 학대에 노출될 경우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석 보험이사는 한국사회에서 우울증으로 고민을 하지만 쉽게 정신의료기관을 찾지 못하는 건 여러 사회적 장벽 중 편견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은 정신질환을 앓던 여동생 로즈메리 케네디를 안타까워하면서 1963년 정신건강복지법을 제정한다. 또 케네디 대통령의 조카 패트릭 케네디는 상원의원으로 있으면서 자신의 조울증을 밝히고 정신건강 문제의 중요성을 의회에서 조언해 왔다.

석 보험이사는 “이런 식으로 국가 리더십 위치에 있는 이들이 정신건강 인식 개선을 위해 노력해오고 있다”며 “정치적 리더십들의 정신건강 인식 개선은 사회적으로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근 한 제약회사에서 코에 뿌리는 우울증약을 출시했다. 투여할 경우 4시간만에 급성기 자살 생각을 떨어뜨린다는 임상 결과가 있었다. 일반 우울증 약은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4주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 걸 감안하면 긴급한 상황에서 빠를 치료 효과가 필요할 때 용이한 약으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고가에 비급여여서 대중적 사용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석 보험이사는 “항암제 중에 효과가 우수한 약은 선택적으로 우선 급여에 도입되고 있다”며 “자살시도 취약층에 효과적 약물을 제공해서 경제적 부담 없이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급성기 치료제로 급여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건강보험 수가 체계는 주로 병원의 장비와 검사 위주로 보상체계가 현실화되고 있다. 하지만 정신건강의학과는 타 과목에 비해 사람과 장비 투입이 많지 않다. 따라서 재정 건전화 과정에서 가장 수가 혜택을 받지 못하는 분야가 정신건강의학과라는 석 보험이사의 지적이다.

특히 최근 10년간 상급병원과 종합병원에서 정신과 폐쇄병동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석 보험이사는 “애물단지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정신질환과 신체질환이 겹칠 경우 상급종합병원에서 케어하는 게 필수적이고 이는 신체질환과 함께 정신질환을 치료해야 하는데 어디로도 환자를 입원시킬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라며 “중증정신질환으로 앓거나 자살 시도를 하면 병원에 입원시키기가 얼마나 힘든지 요즘은 실감하게 된다”고 토로했다.

석 보험이사는 실질적인 정신응급체계 구축을 위해서 정신건강의학과 입원 병상 기능이 의료 규모가 아닌 기능으로 재정립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만의 경우 의료적 처치라 필요한 정신과 병동, 급성기 집중치료가 필요한 정신과 중환자실, 정신과 시설병동, 낮병동 이런 식으로 병동들이 다 구분돼 있다”며 “지역사회 재활을 위해 정신건강복지선테와 같은 시설들이 그 뒤를 잇는다”고 분석했다.

또 “입원환자에 있어 특히 전문 진료 의원들이나 단과 병원도 그렇지만 종합병원과 그 이상의 병원에서 급성기 폐쇄병동들이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지원과 활성화 대책이 필요하다”고 건의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이화영 순천향대 천안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권역별 정신응급센터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교수는 “정신응급센터가 실제 의료 현장에서 작동하려면 예산을 전폭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며 “여러 개가 필요한 게 아니라 제대로 작동하는 정신응급센터 한두 개, 혹은 전라·경상·충청·강원 4개 권역에 센터를 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 시국에 정신응급 입원이 어려운 만큼 정신응급센터에 정신과 응급과 신체적 질환을 같이 치료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제대로 된 정신응급센터를 마련하려면 대학병원 등 상급종합병원에서 정신응급센터를 만들어야 하고 국가는 이에 예산을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자살 위험이 높은 이들이 어떤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지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며 “집중사례관리를 통해 이들에게 바우처 같은 서비스를 주고 어디에 가면 어떤 정보와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를 제공할 수 있는 집중적 사례관리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윤호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 본부장은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정책국 산하의 자살예방과가 아니라 자살예방국 정도로 격상돼야 한다”며 “지금의 범부처가 참여하는 자살예방 사업은 반드시 청와대가 핸들링(조정)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교통사고 감소를 위한 조직에는 도로교통공단과 교통안전공단이 있고 여기에 7000여 명이 직원이 있다”며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은 100명이 채 안 된다. 국가적 관심에서 수백 배 떨어져 있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대구대학교 장애인 박사과정의 이관형 씨는 “스스로 세상을 떠난 이들에게 옆에서 들어주는 누군가가 있었다면 극단적 선택을 안 했을 것”이라며 “건강한 사회는 약자를 보호하고 고통받는 이들에게 귀를 기울이며 그들이 필요를 채워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병든 사회는 약자를 혐오하고 고통받는 이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고 무시한다”며 “이는 병든 사회가 건강한 개인을 타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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