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누가 새로운경기도립정신병원의 인권 치료 철학을 미워하는가
[단독] 누가 새로운경기도립정신병원의 인권 치료 철학을 미워하는가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1.12.24 18: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 정신병원 시스템 최초로 선진적 인권기반 치료 이념 구현해와
새경정 인권치료 철학에 무지한 정치권과 경기도가 ‘딴지’
정신장애인 입사자에 상담 편의 건의한 원장과 진료부장에 '부정청탁' 혐의로 중징계
인권 치료는 시기상조니 다른 병원들처럼 관습대로 하라고 요구해와
새경정 평의사들, 본지에 입장문 보내와…“굴복하지 않을 것”

지난해 6월 개원한 새로운경기도립정신병원(새경정)이 위기에 봉착해 있다. 개원 후 세계보건기구(WHO)가 권고하는 정신위기의 치료 철학인 퀄리티 라이츠(Quality Rights) 이념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왔지만 인권 치료를 경시하는 정치권과 경기도의 특정 집단이 이 같은 새경정의 치료 이념을 반대하고 병원장과 진료부장의 해임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경정은 민간병원이 할 수 없는 공공의료 영역에서 새로운 인권 치료를 시도해 왔다. 특히 핀란드에서 시작된 대화에 의한 정신응급 대응 치료 체계인 ‘오픈 다이얼로그’를 비롯해 환자를 묶지 않고 최대한 당사자의 인격과 의견을 존중하는 비강압 치료 역시 치료 이념으로 지켜왔다. 이 같은 치료 시스템은 중앙정부와 보건복지부 등에서 선진적이고 환자친화적 치료 체계로 주목받아 왔다.

하지만 상급 기관인 경기도의료원이 익명의 ‘제보’를 빌미로 새경정 김성수 원장과 진료부장을 ‘부정청탁’ 등이 이유로 중징계 처분할 것을 의료원 징계위원회에 요구한 상태다.

그간 도의회는 새경정의 인권 치료 철학에 역행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새경정이 원내 인권철학을 이념으로 하는 QR본부를 만들었지만 경기도의회의 거부로 해체됐다. 최근 당사자와 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인권교육 예산마저 모두 삭감돼 버린 상태다.

사건은 올해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신장애에서 회복된 30대 중반의 여성 A씨가 새경정 식당의 조리원으로 입사했다. A씨는 조리사 자격증을 갖고 있었다. 입사 당시 면접에서는 도의원, 가족 대표, 지역 센터 상임팀장 등이 참여해 공정한 과정을 거쳤다.

하지만 1달 반만에 A씨는 직장을 그만두게 된다. 직장 내 괴롭힘이 심하다는 이유에서다. A씨는 당시 새경정 원장과 면담을 통해 이 같은 사실을 알렸다. 김 원장은 원내 고충처리 절차를 권했고 A씨는 ‘직장내 괴롭힘을 멈추고 전문가와 상담을 받게 해 달라’는 내용의 고충 신청서를 고충처리위원장인 진료부장에게 제출했다. 하지만 이 내용이 유출돼 구성원들에게 알려지면서 더 큰 심리적 어려움에 처한 A씨는 결국 10월에 퇴사했다.

그런데 같은 달, 경기도의료원에 익명의 제보가 접수된다. 감사를 벌인 경기도의료원은 새경정 김 원장이 A씨 채용에 인사청탁을 했고 의료부장이 조리실에 압력을 넣어 채용을 요구했다고 발표했다. ‘부정청탁방지법’ 위반이라는 이유에서다.

현재 김 원장과 의료부장은 형사고발 예정이라는 통보를 받은 상태이고 징계위원회에도 회부될 예정이다.

새경정 관계자는 최근 <마인드포스트>와의 통화에서 “A씨 채용에 압력을 행사한 적이 전혀 없고 면접에도 도의원이 참여했었다”며 “A씨 채용 후 김 원장은 A씨가 정신장애인 당사자이기 때문에 병원 정신과 전문의와 정기적인 상담 창구를 마련하라고 건의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정신장애인은 심리사회적 어려움 때문에 사람들과의 관계맺기에 서툴다. 특히 직장 내에서 동료들과 지지적 관계를 맺지 못하면 장기간 일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번 사건은 입사된 정신장애인이 정서적 어려움으로 퇴사를 했다는 점이 주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정신장애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보여준 사례라는 점에서, 그리고 인권친화적 치료 시스템에 대한 우리 사회 지도층들의 인식이 얼마나 천박한지를 알려준 사건이기에 그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냈다는 분석이다.

새경정은 개원 이후 민간병원이 받지 않는 응급입원을 적극적으로 진행해왔다. 정신응급 환자의 인격을 존중하는 치료 체계는 이 병원 입원환자가 퇴원 후 1개월 이내에 재입원하는 비율을 6.6%로 떨어뜨렸다. 타 병원의 경우 37.9%다. 한국 정신병원에서 전무한 사례다.

하지만 경기도의료원과 경기도, 경기도의회는 왜곡된 ‘익명’의 투서를 진실로 믿고 새경정의 모든 인권 치료 시스템을 멈추려 한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새경정은 이와 관련해 24일 <마인드포스트>에 입장문을 보내왔다. ‘새로운경기도립정신병원 평의사 일동’으로 보내진 입장문에서 이들은 “좋은 치료를 위한 노력이 좌초될 위기에 직면해 관리직 의사에 대한 부당한 탄압을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입장문은 “정신장애인을 위한 질 좋은 서비스를 기치로 건 기관에서, 희망을 품고 입사한 장애인 당사자는 직장을 떠나야 했다”며 “그들을 위해 힘써 온 병원장과 진료부장은 불명예와 고초를 감당해야 할 처지”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부당한 상황에 처한 이 순간에도 ‘보다 좋은 정신위기대응’이라는 대의를 잃지 않으려 한다”며 “경기도의료원 감사실의 조치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일의 가치를 회복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강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입장문 전문.

 

새로운경기도립정신병원 의사들의 입장문

좋은 치료를 위한 노력이 좌초될 위기에 직면하여 관리직 의사에 대한 부당한 탄압을 중단할 것을 요구합니다

새로운경기도립정신병원(이하 ‘새경정’)은 정신위기 상황에 대응하는 것을 사명으로 하는 의료기관입니다. 정신위기 상황에서 환자는 자·타해 위험으로 강제 구인돼 하루아침에 낯선 병원 건물에 갇히게 됩니다.

이는 정서, 행동, 생존의 위기인 것만큼이나 직업, 경제, 관계적 위기이기도 합니다. 사회적 존재로서 자신을 규정짓던 끈이 모조리 끊어지는 경험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를 아끼는 가족들도 입장 차이가 있을 뿐 위기를 겪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이때 신속히 이송해서 안전하게 구금하고 약물치료를 해야 할 경우가 있지만 좋은 치료를 바란다면 이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환자의 생명을 구하고 가족의 안전을 일시 확보하겠으나 이후의 삶을 보장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비정상적으로 높은 퇴원 후 자살률과 재입원률이 이를 증명합니다. 다른 방법이 없기에 입원 기간만 길어지며 그럴수록 사회에 재적응할 수 있는 길은 멀어집니다. 자해와 타해, 재입원의 악순환이 이어집니다.

이제 국가 위상에 걸맞은 정신건강 위기 대응모델을 새롭게 만들어야 합니다. 심리사회적 약자들이 더 이상 고립되고 낙담하지 않도록, 사회에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병원 치료가 절실합니다.

이는 총체적 위기 상황에 다방면으로 개입하는 것이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 기존 의료 체계의 틀을 확장하고 때로는 그것을 넘어서는 접근도 필요합니다.

장기적으로 볼 때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최선의 방책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당장은 많은 인력과 시간이 소요되기에 민간에서 시도하기 어려우며 마땅히 공공에서 불을 밝혀야 합니다.

2020년 6월 새로운경기도립정신병원은 이를 배경으로 개원했습니다. 그 취지를 알기에 설립 이래로 병원장 이하 의사와 직원들은 환자가 단기간에 사회에 복귀하도록 회복기반 집중치료에 힘써 왔고 정신장애인과 그 가족들의 권익을 옹호하는 데 뜻을 같이 했습니다.

지난 8월, 정신장애로부터 회복한 당사자 한 분이 새경정 직원으로 입사했습니다. 해당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을 했고 적합한 자격증도 가진 분이었습니다. 엄격하게 정해진 절차에 따라 지원했고 내외부 위원을 포함하는 인사위원회의 면접심사를 거쳐 채용이 결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입사한 지 불과 한 달여 만에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갑자기 사직서를 제출했고 번복했으며, 장애인 차별과 직장내 괴롭힘을 호소하는 고충처리를 신청했다가 석연찮은 정황 하에 다시 철회했습니다. 그리고 결국엔 사직을 하시게 됩니다.

그러는 한편 경기도의료원에 익명의 제보가 접수되었고, 감사실은 새경정에 대한 특정감사에 착수합니다. 그 결과 12월 1일 의료원 감사실은 병원장과 진료부장을 중징계하고 수사기관에 고발하겠다고 통보했습니다.

해당인을 채용하는 데 있어서 ‘부정청탁의 금지’를 위배했다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정신장애인을 위한 질 좋은 서비스를 기치로 건 기관에서, 희망을 품고 입사한 장애인 당사자는 직장을 떠나야 했고, 그들을 위해 힘써 온 병원장과 진료부장은 불명예와 고초를 감당해야 할 처지입니다.

선의(善意)가 모든 것을 정당화하지 못함은 분명합니다. 정신질환 당사자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용납 못 할 비위를 저질렀다면 누구라도 벌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경기도의료원 감사실이 공식적으로 통보한 내용을 검토해 보면 의사들의 선의를 더럽힐 만한 어떠한 비위 사항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들의 판단 근거는 자의적이며, ‘감사실의 판단이 판단의 근거’라는 해괴한 논리를 펼치고 있는데다, 근거와 결론 사이에는 연결고리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실 확인과 논리적 타당성이라는 최소한의 구색도 갖추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관리직 의사들을 ‘중징계’하고 ‘고발’하라고 성급하게 결론짓고 있습니다.

이를 읽고 있자면 누군가가 새경정이 펼치는 사업을 의도적으로 꺾으려 한다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개원 이후 줄곧 좋은 치료에 반하는 압력이 새경정에 가해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요약하면 ‘공권력이 구인한 응급환자를 신속하게 수용하고 여타 정신병원으로 빠르게 분배’하는 ‘환자 택배시스템’을 구축하라는 압력입니다.

이것 외의 기능은 포기하도록 강요되어 왔습니다. 실제로 내년부터 인권교육과 정신건강전문요원 수련 기관 자격을 반납해야 할 상황입니다. 보다 좋은 치료를 가능하게 하는 기반 자체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새경정의 좌초는 결코 가벼운 사건이 아닙니다. 그동안 새경정은 인권에 기반한 비강압 치료와 적극적인 병원형 사례관리를 통해서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어 왔습니다.

기존 정신의료기관과 비교할 때 현저히 낮은 강박률(새경정 5%, 전국 평균 약 29%)과 퇴원 후 한 달 이내 재입원률(새경정 6.6%, 전국 평균 26.3%, 조현병의 경우 42.6%) 수치가 이를 증명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건복지부를 비롯한 중앙부처가 관심과 지지를 보내 왔고 정신의료 및 지역 정신보건복지 관계자들이 우리를 주목했습니다. 무엇보다 정신장애인 당사자와 가족단체들이 새경정의 새로운 치료에 동의하며 격려해 주시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성과와 지원을 바탕으로 더 좋은 정신건강위기 대응모델이 전국에 확산되어 가길 바라고 있습니다.

만약에 관리직 의사들에 대한 어처구니없는 징계 요구가 그대로 시행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런 일들로 병원장과 진료부장이 오명을 덮어쓴다면 어떤 뜻있는 의료인이 열정을 가지고 이곳에서 근무하려고 할까요? 그래서 새경정의 간판만 유지한 채 기존의 의료서비스가 반복된다면 그 피해는 누구에게로 돌아갈까요? 이렇게 되면 우리는 언제 또 다시 새로운 시도를 시작할 수 있을까요?

우리 의사들은 부당한 상황에 처한 이 순간에도 ‘보다 좋은 정신위기대응’이라는 대의를 잃지 않으려 합니다. 어렵게 피운 불꽃을 이대로 꺼뜨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새로운 사업인 만큼, 시행착오는 물론이고 갈등과 역경이 있으리라는 점은 이미 각오하고 있었습니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이번 조치에 굴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일의 가치를 회복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강구할 것입니다.

새경정이 아니라도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더 좋은 정신의료 환경을 만들기 위해 분투하는 종사자들이 무수히 있습니다. 절박한 심정으로 새경정에 희망을 걸고 계시는 당사자와 보호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을 위해 한 알의 불씨를 남기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소리 소문 없이 굽히고 사라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2021. 12. 24 새로운경기도립정신병원 평의사 일동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