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희정 칼럼] “조현병 당사자임을 숨기고 창작 활동하는 연예인들에 보내는 위로와 공감”
[노희정 칼럼] “조현병 당사자임을 숨기고 창작 활동하는 연예인들에 보내는 위로와 공감”
  • 노희정
  • 승인 2022.02.13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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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들의 커밍아웃으로 우울증은 대중에게 친숙해진 질병
조현병·조울증은 금기시된 질병명…연예인들도 이 병은 공개하지 못해
미 팝그룹 리더 브라이언 윌슨도 조현병 당사자지만 팬들이 지지해
(c)www.saudebemestar.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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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사람들이 자신의 우울한 감정을 ‘우울증’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신경정신과에 대한 이해와 정보도 없이 선입관만 가득했건만 너도 나도 자신이 ‘수험생 우울증’을 겪었다‘, ‘주부 우울증’이다 하며 조금만 의욕이 상실되고 무기력해지면 우울증이란 병명을 갖다 붙였다.

연예인들도 마치 유행처럼 대중들에게로부터 쏟아지는 시선에 대한 부담감과 불안감, 악플로 인한 분노와 의기소침 등을 모두 우울증 군으로 이름 지어 자신이 우울증을 겪고 있다고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리고 소속사에서 기자들에게 밝혔다.

우울증이란 심한 우울감이 2주 이상 지속돼 일상생활을 지속해갈 수 없을 때, 수면을 적절히 취할 수 없고 식욕이 떨어지며 체중이 급격히 줄어들거나 느는 변화를 보이고 모든 의욕이 사라지고 행동이 느려지며 심하게는 자살 충동까지 동반할 때 내리는 병명이며 상담치료와 함께 약물치료가 동반된다.

그런데 매일 집에서 나와 방송사에서 녹화를 하고 행사를 전전하는 배우나 가수들이 자신의 슬럼프와 무기력감 공허감을 모두 통틀어 우울증이라 말한다..

덕분에 일반인들에게 우울증이라는 병명은 나쁘고 무서우며 금기시되는 그 어떤 것이 아니라 마음의 감기라는 친절하고 다정한 병이 되었다.

최근 우울증보다 더 흔하게 그리고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는 병명으로 공황장애가 있다. 이제 공황장애는 자신이 정신 공황장애라는 것을 그다지 숨기지 않고 이야기하는 사회가 되었다. 연예인들도 큰 거리낌없이 커밍아웃을 하고 자신이 공황장애를 갖고 있다는 이야기를 방송에서 당당히 말한다.

우울증이란 질병을 치료하는 곳은 정신건강의학과이다. 공황장애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같은 정신건강의학과 환자라고 해도 조현병이나 조울증이란 병명을 가진 정신건강의학과 환자는 우울증, 공황장애 환자와는 다르게 자신의 병명을 스스럼없이 밝히기 힘들다. 사회의 인식,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병의 유발 원인은 정확히 다르다. 나타나는 증상도 다르며 치료법도 다르다. 약물치료를 받는 기간 역시 다르다. 하지만 예를 들어 우울증으로 진단받아 우울증 치료를 했던 환자가 급작스런 조증 증상 발현으로 인해서 뒤늦게 양극성정동장애(조울증)로 진단명이 정정되는 일은 매우 흔하다.

그리해서 양극성정동장애 약물로 치료를 다시 시작한 환자에게서 조현병 증세가 나타나면 다시 진단명이 분열형정동장애로 바뀔 수 있다.

우울증, 양극성정동장애, 분열형정동장애. 사람은 한 명인데 병명은 세 가지. 두 번이나 병명이 바뀌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울증이었던 시절엔 큰 의미 없이 내원했던 정신병원이 양극성정동장애 환자로 들어설 때는 걸어다니는 시한폭탄으로 낙인찍힐 것이 두려워 행여 누가 알아볼까 전전긍긍해야 할까?

정신건강의학과를 내원하는 환자를 두고 두 가지 군으로 나누어서 우울증, 공황장애 환자는 괜찮고 조현병·조울증 환자는 큰일난다는 인식은 편견을 넘어서서 무지이다.

연예인들 사이에서 자신이 우울증이다, 공황장애다, 경계선인격장애다, 정신과 상담을 받았다라고 말하는 가수나 배우는 많다.

조울증도 일반인들에게 많이 알려져서 이제 자신이 조울증 환자임을 밝히는 연예인들도 있다. 알코올중독, 마약중독이었음도 이야기한다.

하지만 조현병을 앓고 있다고 보도되는 연예인은 볼 수 없다. 연예인 중에 조현병으로 인해 활동을 못 하고 잊혀져 가서 자신의 재능을 빛내지 못하는 안타까운 이들은 없을까?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러브 앤 머씨’에는 조현병의 발병으로 인해 삶이 뒤바뀐 한 뮤지션이 등장한다.

뮤지션 브라이언 윌슨. (c)en.wikipedia.org
뮤지션 브라이언 윌슨. (c)en.wikipedia.org

2015년 여름, 함께 개봉했던 ‘인사이드 아웃’에 묻혔던 이 수작은 미국의 팝 그룹 ‘비치 보이스’의 리더 브라이언 윌슨이 음악에 대한 창작열 때문에 겪어야 했던 조현증 발병과, 환자가 되어 의사에게 이용당하고 학대받았던 과정, 그리고 영혼이 치유되고 안정돼 ‘사랑과 자비’를 노래하는 현재의 모습까지를 담고 있다.

‘Surfin USA’로 최고의 성공과 인기 반열에 올랐던 팝그룹 ‘비치 보이스’의 리더 브라이언 윌슨은 동시대에 활동했던 비틀즈에 버금가는 명반을 만들기 위해 창작에 열중하던 중 환청과 착란을 일으키고 조현병이 발병하게 된다.

혼돈 속에서도 발매한 앨범 ‘Pet Sounds’는 지금도 손꼽히는 명반이 되었으나 브라이언 윌슨의 주치의는 치료 대신 브라이언 윌슨의 저작권을 빼앗기 위해 그를 감시하고 조종하며 외부와 차단시킨다.

우연히 차를 사기 위해 의사와 함께 찾아간 캐딜락 매장에서 만난 여성 딜러는 이러한 브라이언 윌슨의 상황을 알게 되고 그를 지옥 속에서 구출해낸다.

브라이언 윌슨을 살린 이 여성은 그의 부인이 되었고 제대로 된 치료와 안정, 사랑으로 인해 그의 재능은 부활한다.

‘Love and Mercy’(사랑과 자비)를 새롭게 편곡해 앨범을 발매했고 ‘Love and Mercy’는 비치 보이스를 잊지 못했던 옛 팬들뿐 아니라 비치 보이스와 브라이언 윌슨을 알지 못했던 새로운 젊은 세대들에게서도 큰 반향을 얻었으며 모든 이들은 시련에 맞서서 살아남은 그를 지지했다.

브라이언 윌슨은 팔순이 넘은 나이에도 2021년 6월 미국 뉴포트 비치에서 야외 공연을 했으며 지금도 음악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병력으로 인해 그의 말투와 행동은 느리고 표정은 굳어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찬란한 재능으로 인해 정신질환을 앓게 되었음에도 투병 속에서 그만의 재능을 잃지 않고 살아남은 진정한 생존자다.

지금 현재 우리나라에도 브라이언 윌슨과 같은 연예인들이 존재할지 모른다.

자신의 정신질환을 차마 커밍아웃할 수 없고 모든 재능이 멈추어버린 상태로 고통 속에 있을지 모르는 연예인들. 그들이 다시 다른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선다면 우리는 브라이언 윌슨의 팬들처럼 지지하고 공감해줄 수 있을까?

방송 속에서 자신의 병을 이야기하고 기사를 통해 역으로 이미지화하는 연예인들을 지지하고 위로하긴 쉽다.

하지만 우린 또 다른 위로와 공감도 준비해야 한다. 브라이언 윌슨처럼 재능을 다시 살려내지 못한다 해도 고통 속에서 병마와 싸우며 살아가고 있을 연예인들이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을 드러낼 수 있도록 지지하고 위로하고 응원할 수 있는 준비를. 언젠가는 그들이 그들만의 ‘사랑과 자비’(러브 앤 머씨)를 보여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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