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아서 뭐가 나올지 몰라”…정신장애 국가책임제, 7부 능선 넘었나?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아서 뭐가 나올지 몰라”…정신장애 국가책임제, 7부 능선 넘었나?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2.02.17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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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민주당 후보 정신장애 국가책임제 공약…위기쉼터, 응급병상 지원
발달장애·치매 국가책임제에 비해 늦었지만 국가 의무의 이행이라는 평가
장애 가족의 극단 선택은 ‘사회적 타살’…국가가 의무를 방기해와
장애책임제는 돌보는 가족에게 ‘쉼’을 제공하는 의미…돌봄 일부를 국가가 책임져야
장애 가족의 토로 “하루종일 안 봐줘도(케어해도) 좋다. 숨 쉴 시간을 만들어 달라”

“오랜 기간 정신질환을 앓던 피해자를 정성껏 보살폈다고 해도 (부모가) 독자적인 인격체인 자녀의 생명에 관해 함부로 결정할 권한은 가지고 있지 않다”

지난해 4월, 서울고등법원 형사13부는 조현병을 가진 딸(36)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모친 A씨(66) 씨에게 1심의 징역 4년을 파기하고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A씨가 딸을 돌보며 정신적으로 한계에 이르는 ‘번아웃증후군’을 갖고 있던 점을 인정했다. A씨는 중학생이던 딸이 조현병을 갖게 되면서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23년간 딸을 돌봤다. 하지만 2020년 5월, 서울 자택에서 잠자고 있던 딸을 살해했다.

올해 1월에는 조현병을 가진 40대 딸을 살해한 70대 노부 B씨가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B씨는 “우리 부부가 죽고 난 뒤에 딸이 외손녀를 위협할까 두려웠다”고 말했다.

대구고법 재판부는 “장기간 정신질환을 앓는 딸을 보살펴왔던 점”을 참작했다. 그리고 “(B씨가) 남은 생을 회환 속에서 살아가게 될 것으로 보이는 점을 종합했다”고 밝혔다.

특히 A씨의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중증 정신질환자 치료와 보호의 몫을 국가와 사회보다는 가정에서 담당하는 현실에 비춰볼 때 비극적 결과를 오로지 피고인(A씨)의 책임으로만 돌리기 어렵다.”

法 “중증정신질환자 보호 가족에만 전가…피고인 책임으로만 돌리기 어려워”

정신정신질환에 대한 국가책임제를 요청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16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캠프는 정신장애인의 국가책임제를 담은 장애인 정책 5대 공약을 발표했다. 공약들이 여타 후보 캠프들보다 체계적이고 포괄적이라는 평이다. 특히 정신장애인이 요구해온 인권친화적 위기쉼터, 24시간 이동 지원, 응급병상의 안정적 공급과 지원 등이 반영된 점은 주목할 만한 성과다.

흔히 국가책임제를 국가가 개인의 삶의 모든 과정에 개입해 문제를 해결하고 결정권을 국가가 갖고 개인을 돌보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하지만 국가책임제는 선진국에서 표방하듯 국가가 책임질 부분을 국가가, 개인이 책임질 부분을 개인이 담당할 수 있도록 하는 역사적 함의를 담고 있다.

그것은 일종의 장애인을 돌보는 가족에게 ‘쉼’을 보장할 수 있게 하는 정책과 맞물려 있는 것이다. 장애인과 가족의 삶에 거대한 희생을 요구하는 억압적 구도를 바꾸자는 의미 역시 담고 있다.

<마인드포스트>는 정신장애 국가책임제를 말하기에 앞서 유사한 정신질환 영역의 치매 국가책임제와 발달장애 국가책임제를 우선 분석해 봤다.

지난 2020년 6월, 20대의 발달장애인 아들을 돌보던 60대 어머니가 승용차에서 동반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그해 3월에는 제주 서귀포의 한 자택에서 40대 어머니가 역시 10대의 발달장애인 아들과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

2021년 7월, 청와대국민청원게시판에 발달장애인 아들을 두고 있다고 밝힌 청원인은 “발달장애인 부모들은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를 부르짖어 왔다”며 “우리의 소원은 ‘자식보다 하루 더 살다 죽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그나마 2014년 5월 발달장애인권리보장법(발달장애인법)이 제정돼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된 것으로 생각되는 발달장애 가족들은 여전히 ‘국가책임제’를 요청하고 있다.

<마인드포스트>가 발달장애인법과 정신건강복지법에 규정된 가족 지원 서비스 항목을 비교해 본 결과, 발달장애인법 4장 가족 및 보호자 지원 조항에는 ‘보호자에 대한 정보 제공과 교육, 심리상담 지원, 휴식 지원’이 들어가 있다. 발달장애인 형제·자매에 대한 심리적 해소를 위한 프로그램 운영도 국가 책임으로 담고 있다.

하지만 정신건강복지법에는 이 같은 조항이 없다. 이 법 제5장 보호와 치료 항목에는 정신질환자의 보호의무자로 민법이 규정한 후견인과 부양의무자를 규정하고 있고 40조에 보호의무자의 의무만을 담고 있다.

보호의무자의 의무에는 ‘정신질환자가 적정한 치료와 요양, 사회적응 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가족이 노력해야 하고 자신과 타인을 해치지 않도록 가족이 유의해야 한다’는 규정이 전부다.

미완의 법이라는 발달장애인법에 규정된 가족의 권리는 정신장애인 법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부모 소원은 자식보다 하루 더 살다 죽는 것”

지난 2017년 9월에는 치매 국가책임제가 도입됐다. 문재인 정부 들어 공약으로 제시했던 법적 지원안이 마련된 것이다. 여기에는 맞춤형 사례관리, 장기요양서비스의 확대, 의료지원 강화 등을 포괄적으로 담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보면 이후에도 치매 국가책임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자주 게시되고는 했다. 하지만 법안이 조금씩 보완점을 만들어가면서 치매에 대한 국가의 의무가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는 가족 지원도 들어가 있다.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를 요구하며 전국적 단위에서 시위를 진행했던 발달장애인 부모 단체들은 발달장애 가족의 극단적 선택을 ‘사회적 타살’로 규정했다. 이들이 요구하는 국가책임제의 구체적 요구안들은 발달장애인이 낮시간 동안이라도 가정이 아닌 지역사회에 참여하고 서비스를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과 주간 활동 서비스 지원, 중증 장애인 직업재활 지원 사업, 가족지원 체계의 구축 등이다.

발달장애인법을 갖고도 이의 구체적 현실화를 위해 전국장애인부모연대와 발달장애인 가족 단체들이 싸우고 있다면 정신장애인의 권리 선언에만 머문 정신건강복지법 하나만 갖고 있는 정신장애인들과 그 가족들의 사회경제적 처지는 어떨지 쉽게 유추해 볼 수 있을 것이다.

19대 대선이 있던 2017년 5월, 당시 문재인 후보는 전국장애인부모연대와 ‘매니페스토 협약’을 체결한다. 발달장애인의 주간활동 서비스 제공 시간 확대 등이 담겨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1월 2일 발달장애인 생애주기별 종합대책을 설명하며 “다음 정부에서 발달장애 국가책임제로 발전하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국가책임제로 가는 과정이 녹록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지점이다. 발달장애인 지원 예산은 문 정부 초기 85억 원에서 427억(2019년), 916억 원(2020년), 1512억 원(2021년)으로 점진적으로 증가해왔다.

지난해 21살의 발달장애인 아들을 둔 50대 가장의 글이 청와대국민게시판에 올라왔다. 그는 아들이 기본적인 의사소통도 안 되고 점점 공격적인 성향에 폭력까지 휘두르고 있다면 “훗날 내가 늙어 더 이상 애를 감당할 수 없을 때에는 그나마 남은 가족을 위해 큰애를 죽이고 저도 죽어야겠다고 다짐했다”로 토로했다.

그는 “중증 발달장애인을 돌보는 시설을 만들어 달라. 돈은 내라는 대로 내겠다. 하루종일 안 봐줘도(케어해도) 좋다. 숨 쉴 시간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지난 2013년 서울 관악구에서는 17살의 자폐성장애 아들을 살해하고 극단적 선택을 한 아버지가 유서를 남겼다. 거기에는 “이 땅에서 발달장애인을 둔 가족으로 살아가는 건 너무 힘들다. 힘든 아들을 내가 데리고 간다”고 적혀 있었다.

“하루종일 안 봐줘도 좋다. 숨 쉴 시간을 만들어 달라”

모든 장애의 책임을 개인과 가족에게 전가해 온 후진적 복지 시스템이 이 같은 고백을 만들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마인드포스트>가 중증 정신장애인 국가책임제를 이야기하면서 치매와 발달장애 국가책임제를 예시한 이유는 이들 장애유형보다 하위에 놓인 정신장애인의 삶이 그만큼 척박하다는 걸 알리기 위해서다.

2021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정신장애인 인권 보고서’에 따르면 정신장애인의 의료급여 비율은 55.6%로 15개 장애 유형 중 비율이 가장 높다. 이는 급여를 받는 정신병원에서 장기입원을 유도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정신장애인 고용 형태는 임시직(49.9%), 일용직(38.5%)로 90%가 한시적인 노동에 몰려 있고 상용근로자는 5.6%에 불과하다.

또 장애인의 월수입이 171만 원인데 비해 정신장애인은 87만 원이다. 고용환경이 그만큼 열악하다는 방증이다.

주거 형태 역시 타 장애 유형에 비해 아파트에 사는 비율이 38.9%에 불과한 반면, 단독주택에 사는 비율은 48.5%로 장애 유형 중 가장 높았다. 특히 공공임대주택에서 사는 비율은 16%로 장애유형 중 가장 많았다.

이처럼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지만 정신장애 국가책임제 도입은 그만큼 더뎠다. 가끔씩 불거져나오는 정신장애인에 의한 강력범죄는 대중이 정신질환 자체를 범죄시하고 공동체에서 공생할 수 없는 존재로 만들어 격리의 방법으로 해결해 온 게 지난 한국 정신장애 역사라고 볼 수 있다.

지난 2019년 4월, 경남 진주의 안인득(40대)은 자신의 임대아파트에 불을 지르고 화재를 피해 대피하던 주민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5명이 숨지고 17명이 부상당한 사건이 있었다.

같은 달, 정신건강서비스 촉구 공동대책위원회는 성명을 내고 지역기반의 응급대응 체계 구축을 바로 실시하라는 입장을 밝혔다.

공대위는 정신건강복지법에 명시된 응급정신건강서비스 제공 체계를 구축할 것을 요청했다. 내용에는 지역사회에 권역별 응급대응센터를 구축해 24시간 상담하고 위기 시 출동해 당사자를 안정시키는 위기대응팀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담겼다.

또 지역별 위기 쉼터, 상담센터, 동료지원 공공 서비스 체계의 구축도 함께 요구됐다. 강제입원과 약물치료만이 아닌 지역사회 중심의 정신건강서비스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는 주장도 들었다.

돌봄과 지원보다는 격리에 쏠렸던 정신장애 역사…국가책임 명확해야

2020년 6월, 중증정신질환 국가책임제 관련 토론회에서 당시 박정근 한국조현병회복협회(심지회) 이사는 “부양의무제 때문에 가족은 평생 당사자의 입원비와 생활비, 치료비까지 부양하는 책임으로 피폐한 삶을 산다. 이것은 폐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백종우 경희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중증 정신질환자 국가 책임은 당사자가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라며 “찾아가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당사자들이 서비스 제공의 주체로 참여할 수 있어야 관료화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정신건강서비스촉구공대위의 정치적 요구안이나 토론회의 가족, 전문가들의 일치된 의견은 ‘국가책임제’의 시행이라고 볼 수 있다.

이재명 후보‘발(發)’ 정신장애 국가책임제 의제는 어떻게 여기에 접속할 것인가.

배진영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정신장애인사회통합연구센터 연구원은 <마인드포스트>와의 통화에서 “국가책임제가 도입되면 돌봄에 대한 부담을 사적 관계망이 부담하는 게 아니라 공동체가 같이 부담하게 된다”며 “가족의 휴식 지원 등 가족 부담을 줄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신권철 서울시립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하나의 의문을 제기했다. 발달장애와 치매 국가책임제는 이들 질환적 특성이 돌봄으로 이해되지만 정신장애 국가책임제는 대중에게 ‘관리’라는 치안적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이다.

신 교수는 본지 통화에서 “장애와 치매 국가책임제는 돌봄의 확대라고 사람들이 인식하지만 정신장애 국가책임제는 통제나 관리의 방식으로 오해하고 그런 방향으로 갈 수가 있다”며 “자·타해의 위험이 있는 사람에 대한 관리라고 표현될 수 있는 만큼 조금은 조심스럽다”고 전했다.

지난 16일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이재명 후보의 발달장애 국가책임제 공약에 환영 입장을 밝혔다. 연대는 성명에서 “우리는 발달장애 국가책임제를 통해 책임의 전환을 요구한 것이지 나의 삶을 국가가 책임져 달라는 것이 아니었다”며 “가족에게만 전적으로 지원의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아닌, 국가가 지원의 책임을 나누어 짊어져 달라는 요구였다”고 전했다.

연대는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 체계 구축 ▲지원주택 확대 ▲일자리 확대 ▲장애인연금 확대 ▲통합교육 환경 조성 등의 이 후보 공약에 대해 “국가가 함께 책임을 나누어지겠다는 선언이라고 평가한다”고 밝혔다.

이들의 국가책임제 요구는 정신장애라고 해서 다른 건 아니다.

정신장애 국가책임제에 무엇을 채워넣을 지는 정신장애 정치투쟁에 던지는 질문

통화를 한 사회복지학 박사 A씨는 정신장애 국가책임제의 의의를 묻자 곧장 “사실 잘 모르겠다. 그 안에 무엇이 담겨갈지”라고 말했다.

정치적 공약과 현실에서의 제도화는 이해주체들의 지난한 정치적 투쟁을 요구한다. 이는 2018년 4월, 발달장애인 부모 209명이 집단 삭발하고 3000명이 삼보일배 투쟁을 진행한 끝에 이뤄낸 ‘발달장애인 생애주기별 종합대책’처럼 힘겨운 싸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정신적 장애의 하위에 분류된 정신장애는 낙인과 수치, 혐오로 소환돼 온 역사적 기억이 있다. 눈에 띄지는 않았지만 정신장애계에서도 지난한 싸움들이 있었다. 다만 그 투쟁의 역사가 타 장애유형보다 짧았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번 이재명 후보의 정신장애 국가책임제 공약은 정신장애 의제를 구체화한 역사적 지점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지능지수 75의 지적장애인인 검프에게 그의 어머니는 "인생은 한 상자의 초콜릿 같단다. 뭐가 걸려 나올지 아무도 모르거든"이라고 격려한다.

정신장애 국가책임제는 하나의 초콜릿 상자와 같다.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아직 모른다는 것. 무엇을 채워넣어야 할지는 정신장애인 정치투쟁에 던져진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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