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삐언니의 책방] 그녀는 어떻게 술독에서 걸어나왔나
[삐삐언니의 책방] 그녀는 어떻게 술독에서 걸어나왔나
  • 이주현 기자
  • 승인 2022.02.23 18: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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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삐언니의 책방 ② 드링킹-그 치명적 유혹
캐롤라인 냅 지음·고정아 옮김,나무처럼

‘으으으, 왜 그리 많이 마셨을까.’

아침에 눈을 뜰 때 지끈지끈한 머리를 만지며 후회하는 사람들 많을 거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물론, 처음부터 잘 마셨던 건 아니다. 고등학교 졸업 직전 아버지가 호프집에서 사주신 생맥주는 그저 씁쓸하기만 했다. 대학 입학 뒤엔 선배들의 술 진도를 따라가지 못해 애를 먹었고, 회사 새내기 시절엔 선배가 주는 술을 다 먹다가 심정지가 올 뻔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술은 먹잇감을 노리는 조용한 포식자처럼 살금살금 다가와 어느 순간 상대방을 제압해버린다. 처음엔 술잔이 넘치도록 부어주는 술이 부담스러웠지만 서서히 술에 익숙해졌다. 

1차로 끝내기가 아쉬워 집에 돌아와서 마시고, 슬퍼서 마시고, 기뻐서 마시고, 심심해서 마셨다. 술병에 담긴 술은 내 안의 술을 부르고, 어제의 술은 오늘의 술을 부르고 또, 아마도 내일은 오늘의 술을 호출할 것이었다. 

술을 마셔댔지만, 나의 일상생활은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숙취로 출근하기 힘들었던 때는 있었지만 무단결근은 없었으며, 꼭 마무리지어야 할 일을 끝내지 못한 경우도 없었다. 일종의 고도적응형 알코올의존증(또는 중독)이라고 할까. 

 하지만 평소엔 몸을 좀 힘들게 할 뿐인 술이 조울병과 만날 경우엔 얘기가 달라진다. 번개탄에 불과했던 알코올은 조증에선 용광로의 불꽃으로 너울댄다. 2001년 조증의 첫 방문은 과음, 폭음을 동반했다. 좀처럼 피곤을 느끼지 못하는 과잉각성 상태인 조증기, 나는 밤마다 알코올을 탐닉했다. 술자리에서 얽힌 사람들과 맺어진 즉흥적 관계는 빠르게 파국을 맞았다. 타인과의 거리 조절에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계속 술자리를 찾아 헤맸다. 끝을 모르던 음주 충동은 폐쇄병동 입원으로 인해 가까스로 제동이 걸렸다. 

 이후 20여년 동안 조울병과 ‘공존’하는 법을 배워오면서도, 나는 술을 끊지 못했다. 술 마실 이유는 너무 많았다. 일이 거의 끝나가고 해는 뉘엿뉘엿 질 때, “우리 딱 한잔 어때?”라는 동료의 말은 너무나 달콤했다. 수고로운 일을 마치고 나면 술 마실 생각부터 했다. 축하하고 축하받느라, 위로하고 위로받느라, 이야기를 하느라, 흉금을 터놓느라 술을 마셨다. 과식이 몸에 안 좋듯, 과음은 몸에 안 좋겠지, 딱 그런 정도의 생각이었다. 

이런 안일한 생각에 균열을 일으킨 계기는 <드링킹-그 치명적 유혹>과의 만남이었다. 미국의 언론인 출신이자 작가인 캐롤라인 냅(1959~2003)은 이 책에서 자신의 ‘알코올중독 이력’을 너무나 솔직하면서도 너무나 매력적인 문장으로 펼쳐놓는다.  무엇보다 용기가 놀라웠다. 그는 자신의 내면 세계를 철저히 분석하면서 뒤틀린 부분을 서술하는 데 있어서 한치의 주저함이 없었다. 그가 보기에 술은 내면의 허기와 갈망을 달래주고 두려움의 갑옷 역할을 한다. 대학 시절 인정받고 싶었던 캐롤라인은 자신을 ‘알아주는’ 교수와 진탕 술을 마셨고, 신문사에 입사해선 낯선 사람을 선뜻 접촉해 취재하지 못하는 소심함을 떨쳐버리느라 술을 마셨다. 

 하지만 술은 “진정한 감정과 진정한 공포와 진정한 의문”을 마비시키고, “정직해질 수 있는 용기”를 빼앗아간다. 캐롤라인은 술에 취해 교수의 뻔뻔한 욕구에 몸을 내맡기는 끔찍한 일을 여러 번 반복했고, 남자 친구에게 이 두 가지 사실(성추행을 일삼는 교수와 술을 마셨다는 것)을 계속 숨겼다. 어찌보면 성추행은 술과는 별도의 사건이다. 하지만 글을 쓰면서 캐롤라인은 깨닫는다. “술은 진정한 자신을 움켜쥐지 못하게 만들고 자꾸만 자기 자신을 괴로운 상태로 몰아넣는다.” 술 역시 교묘한 가해자였던 셈이다. 

 조울병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는 일이다. 자신이 아프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 받기를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한다. 알코올에서 벗어나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술에 대한 지나친 갈망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술병 뒤에 숨은 자신의 맨얼굴을 직시해야 한다.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은 어떤 것인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운 좋게도, 내가 걸어가야 할 지향점을 찾았다면 알코올의 속박에서 벗어나기가 훨씬 쉬워질 것이다. 조울병과 함께하는 삶 역시 더이상 비극이 아닐 것이다. 

 지난해 연말 나는 한 달간 단주를 했다. 여러 가지 심한 스트레스를 겪으면서, 서서히 다가오는 조증의 해일을 감지하던 차였다. 계속 술을 마시다간 조증이 일상을 집어삼킬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했고, 그래서 자발적 금주를 선택했다. 사람들은 왜 술을 안 마시느냐고 물었다. 때와 상황에 따라 뉘앙스의 차이는 있었지만, 나는 현재 감정 파고가 매우 높은 상태임을 설명(또는 고백)했다. 사람들이 보여주는 이해와 공감은 술을 마시면서 느끼는 친밀감만큼 소중했다. 

캐롤라인처럼 술을 딱 끊을 용기는 아직 없다. 약속했던 한 달이 끝나고 다시 음주의 세계로 복귀했으니까. 하지만 예전과는 좀 달라졌다. 금주가 필요한 시기라는 신호를 스스로에게 보낼 수 있게 됐다. 또 그 신호에 따를 수 있다는 자신감도 조금 자라났다. 적어도, 드링킹이라는 치명적 유혹에 무방비는 아닌 셈이다. 캐롤라인, 당신 덕분입니다!

 

※<삐삐언니는 조울의 사막을 건넜어>를 쓴 삐삐언니가 매달 마지막주 수요일 <마인드 포스트> 독자들을 만납니다. 조울병과 함께한 오랜 여정에서 유익한 정보와 따뜻한 위로로 힘을 준 책들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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