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우 “일본에서도 강제입원은 당사자에 상처 남겨…당사자 환자 아닌 인격체로 대해야”
김성우 “일본에서도 강제입원은 당사자에 상처 남겨…당사자 환자 아닌 인격체로 대해야”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2.02.22 18: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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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우 '만화로 읽는 조현병' 역자 인터뷰
일본 유학 중 대학 친구인 일본인 아내와 결혼…이후 조현병 아내 돌봐
조현병 치유 방법 알기 위해 일본과 한국 서점 둘러보며 정보 찾아헤매
회복까지 사례 많으면 희망 가졌겠지만…당시에는 미지의 영역이라 불안
우연히 마주한 나카무라 유키의 만화책을 보고 도움, 이후 한국어로 번역
일본도 강제입원은 당사자에 깊은 상처 남겨…환자 의지 반하는 입원 지양해야
당사자를 인격체가 아닌 환자로 대할 경우 감정적 교류 어려워져
침대에 누워 생활하는 아내에게 칭찬하고 긍정적인 말로 다가가기 시작
감정 내려놓고 아내가 치유의 선순환 궤도에 오를 방법을 사유해야
치유 방법은 상대와 마음을 열고 대화하는 것…몸과 마음은 연결돼 있어
박종언의 만남: 길을 묻다 (c) 마인드포스트
박종언의 만남: 길을 묻다 (c) 마인드포스트

그는 한국에서 태어나서 일본 명문 와세다대학에서 공부했다. 그 대학에서 지금은 아내가 된 여자친구를 만났다. 아내는 활달하고 분위기를 리드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아내가 그와 교제를 하기 전에 조현병(일본명 통합실조증) 증상으로 이미 2차례의 입원을 경험한 사람이었다는 걸 안 건 아주 시간이 흐른 후였다.

아내가 조현병 당사자라는 걸 알게 된 그는 일본 서점들을 돌아다니며 조현병과 관련된 책들을 사서 무작정 읽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조현병에 대한 일반적 설명만 있을 뿐 가족이 어떻게 대처하고 어떻게 회복을 조력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 방법론은 없었다. 그는 그게 너무 아쉬웠다고 했다.

강제입원을 당한 아내는 완강했다. 약을 먹으려 하지 않았고 강제입원에 의한 상처로 가족에게 적대적 태도를 보였다. 이해되지 않는 완강한 삶. 그는 낯선 풍경 앞에서 넋을 놓은 듯이 비틀거렸다.

아내를 돌보면서 살아가겠다는 결심을 하고 결혼했다. 하지만 아내는 여전히 조현의 시간을 지나고 있었고 그런 남편인 그에게 아내는 하루에 수백 통의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회사에서 그는 아내가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거나 가족을 원망하는 내용의 메시지를 힘없이 읽었다.

사랑이라는 감정만으로 아내를 이해하기에 그는 지쳐있었다. 삶이란 누군가 만들어놓은 방법론으로만 진행되지 않는다. 그 진행되는 길 앞에는 우리가 알 수 없는 미지의 구렁텅이가 있기도 하고 폭우가 내리면서 정신의 둑이 무너져 흘러내리기도 한다. 그 공간에서 인간은 사유한다. 아니, 사유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삶이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늘 가는 것은 아니라는 그 단순한 진실을 깨닫게 된다.

그는 아내를 어떤 방법으로든 치유시켜야 했다. 왜?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모든 것을 내주면서 존재의 이유인 그를 옹호하는 것.

일본 책방을 찾아다니던 어느날, 그는 조현병 관련 책을 구입했다. 작가 나카무라 유키의 만화로 풀어쓴 조현병 이야기였다. 작가의 어머니는 34년째 조현병을 갖고 살아가고 있었다. 작가는 어머니를 돌보며 느낀 가족의 이야기, 법적·제도적 이야기, 회복의 이야기를 쉽게 만화로 풀어놓고 있었다. 그는 이 책을 <만화로 읽는 조현병>이라는 이름으로 번역해 한국에 상재했다.

그러면서 조현병 당사자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인격적 대화로 출발해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그는 그래서 아내에게 의지할 수 있는 친구가 되자고 스스로를 정의내렸다. 어쩌면 치유는 거기서 출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크나큰 기대를 일단 내려놓는 것. 아주 사소한 것에서 치유의 지점을 바라보는 것. 약물이나 조력이나 하나의 가치에 모든 것을 투자하지 말고 열린 자세로 대응할 것.

시인 황지우는 아내에 대한 사랑을 이렇게 번역한다. “내가 말했잖아 정말,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은, 너, 나 사랑해? 묻질 않어 말하지 않고, 확인하려 하지 않고, 그냥 그대 눈에 낀 눈곱을 훔치거나 그대 옷깃의 솔밥이 뜯어주고 싶게 유난히 커 보이는 게야”라고.

사랑의 시선은 일상의 작은, 그런 소소한 기쁨과 감사에 있는 것이리라. 그리고 그 사랑이 일상을 넘어서면 그것은 혁명으로 전환된다.

<만화로 읽는 조현병>의 역자 김성우(예명·30대) 씨와의 인터뷰를 위해 책을 출판한 ‘뿌리와이파리’에 타진했다. 그는 기꺼이 응했다. 대신, 그는 자신의 이름과 기타 신분이 노출될 수 있는 부분은 가려줄 것을 요청했다. 그는 자신의 한국 가족에게도 아내의 조현병 상황을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현재 김성우 씨는 싱가포르에서 금융업에 종사하며 아내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일문일답.

(c)김성우 씨 제공.
김성우 씨와 아내의 손. (c)김성우 씨 제공.

-일본에서 대학을 보낸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까요.

“당시에는 일본 정부가 유학생을 유치하려고 장학금을 많이 제공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장학금과 아르바이트로 생활이 가능하다고 판단해 유학을 결심했어요.”

-처음 아내가 조현병 증상을 보였을 때 정보가 없어 당황했겠지요. 어떻게 대처했습니까.

“처음에는 인터넷과 서점의 서적을 통해 정보를 찾았어요. 그런데 조현병이란 이런 거다라는 개념 설명만 있었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회복하게 되는지 등 알고 싶은 정보는 없어서 답답했죠.

발병부터 회복까지 여러 사례들을 접할 수 있으면 희망을 갖거나 감을 잡을 수 있을 텐데 미지의 영역이 너무 많아 불안했다 할까요. 정보가 부족했던 점이 너무 아쉬웠죠.”

-아내의 입원이 모두 강제입원이었습니까.

“아내 말에 따르면 20대 중반의 나이에 심리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고 해요. 형제간에 감정적 불화도 있었고 정신적으로 피폐한 날을 보냈다면서요. 첫 입원은 강제로 석 달, 두 번째는 스스로 입원, 마지막에는 어머니 결정으로 한 달을 입원했어요.”

-한국에서는 정신응급 상황에서 민간 구급이송단이 와서 환자 손발을 묶고 병원으로 이송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일본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일본은 정신병원 관계자가 찾아와서 구급차로 이송을 한다고 합니다. 환자 손발을 결박하는지 여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한국에서는 퇴원 시 정신건강복지센터 등 지역사회 정보들을 제대로 제공하지 않는 경향이 있어요. 아내의 퇴원 때 정보를 얻었습니까.

“당시 저는 한국에 있어서 퇴원 시 아내가 어떤 정보를 제공받았는지는 알 수 없었어요. 하지만 퇴원 이후 주기적으로 진찰을 받으러 갈 때 따라가서 주치의와 상담을 하고 정보를 얻거나 행동지침에 대한 교육을 받았어요. 저의 경우 사회적인 도움보다는 의사와 가족의 도움 위주였습니다.”

-조현병 관련 정보는 어디서 얻었습니까.

“간단한 정보는 인터넷에서 얻었지만 실제 도움이 된 건 일본에서 구매한 서적들이었습니다. (일본은) 실용서에서부터 전문 서적까지 다양하게 구비돼 있었거든요.”

-아내는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습니까.

“아내는 스트레스가 많은 환경에서 오래 일하지 못해요. 감정의 진폭이 크고 한 가지 사항에 골똘히 빠져버리는 경우가 있어요. 대기업에 다녔는데 그만두고 일본어 강사 자격증을 따서 2년간 외국인에게 일본어 가르치는 일을 했어요.

감정적·체력적으로 부담이 되지 않고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안정적 생활을 했죠. 결혼 준비를 하면서 일을 더 이상 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육아에 전념하고 있어요.”

-아내의 정서적·심리적 안정을 위해 어떻게 대응하십니까.

“아내는 스트레스에 취약한 모습을 보였고 저는 스트레스를 받을 법한 환경이나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과도한 업무나 스트레스가 적은 환경에서는 충분히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에서는 보호의무자 개념이 없죠. 강제입원 시 누가 입원을 결정하고 책임집니까.

“아내의 강제입원 때는 어머니(장모)가 결정을 했습니다. 법적인 보호자의 경우 입원을 결정하고 책임질 수 있습니다.”

아내를 업고 언덕을 오르는 김성우 씨. (c)김성우 씨 제공.
아내를 업고 언덕을 오르는 김성우 씨. (c)김성우 씨 제공.

-자기결정권이 배제된 강제입원은 당사자에게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아내의 경우 어땠습니까.

“아내는 강제입원을 당한 일로 인해 상처를 받고 부모님과 인연을 끊었다고 할 정도로 관계가 소원해졌어요. 장모님과 수년이 지나도록 연락을 하지 못하고 있어요. 환자가 난폭한 행동을 하거나 통제할 수 없을 때 이를 저지해야 하면서도 동시에 환자의 신뢰와 감정적 교류를 이어가야 하는 건 어려움이 있어요.

장모님으로서는 혼자서는 감당이 안 되고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해 입원을 결정했지만 아내 입장에서는 자유의지에 반하는 행동을 당했을 때 겪는 상처와 공포는 너무나 큰 것이죠. 강제입원은 지양하고 필요하더라도 환자의 감정이 다치지 않도록 배려해야 할 것 같아요.”

-가족은 당사자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문제는 환자를 ‘환자’로 생각하는 겁니다. 한 인격체를 인격으로 대하지 않고 환자로 대하는 태도가 더 강하면 당사자는 큰 상처를 받고 감정적인 교류를 하기가 어려워집니다. 한 인격체로 대하고 대화하고 교류하는 것이 증상 개선에 훨씬 중요해요. 조현병의 일부 증상은 마음의 병이 쌓여 생긴 결과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종종 받아요.”

-당사자를 환자로만 재단할 경우 어떤 상황이 발생합니까.

“장인 장모님은 아내를 환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약을 먹어야 한다는 것에 집착했어요. 아내는 약을 먹는 것에 결사반대했죠. 아내는 약 먹는 걸 너무 싫어해서 도저히 그 의지를 꺾고 강요할 수가 없었어요. 치료에 있어 약은 필요합니다. 다만 절대적이고 특정한 방법에 무조건 집착하기보다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해야 돼요.”

-케어하면서 정서적으로 힘들었을 때가 많았겠지요.

“결혼 전에 아내의 병을 알았고 그걸 알고 결혼했기 때문에 각오는 했지만 생각보다도 힘들더군요. 함께 살면서 첫 6개월 정도는 아내가 매우 불안한 심리상태를 보였어요.

제가 출근을 하면 퇴근 때까지 수백 통에 달하는 문자를 매일같이 보냈어요. 자살이나 가족을 원망하는 내용의 문자였거든요.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까 싶었어요. 연인이라는 관점으로만 아내를 대하기에는 심적으로 괴로운 상황이었어요.”

-버텨야했던 걸까요.

“제가 아내의 행동에 마음의 상처를 받고 심리적으로 무너진다면 결혼 생활뿐 아니라 아내와 저 모두 버티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내는 6개월 동안은 침대에서만 보냈어요. 제가 퇴근을 하면 겨우 일어나서 함께 저녁을 먹곤 했죠.”

-그 고통을 견딘 후에 대응과 보살핌의 길이 열리는 걸까요.

“어느 순간부터 어린아이를 대하듯 아내를 대했어요.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는 걸 격려하고 그렇게 하면 칭찬했습니다.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해 아내가 죄책감을 느끼면 그럴 필요 없다고, 쉬고 싶은 만큼 푹 쉬라고 안심시켰어요. 아내가 자책할 때면 간단한 요리를 하게 하면서 칭찬하고 긍정적인 말을 해줬습니다.

저는 심리적인 문제를 치료하기 전에 먼저 눈에 보이는 것을 개선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아침에 너무 늦게 일어나지 않기, 삼시 세 끼 먹기, 저녁에 산책 같은 운동하기, 스스로 장 보기, 수영하기, 주말에는 같이 등산 가기 등.

또 종종 친구들과 함께 등산을 가거나 초대해서 아내가 해 준 요리를 함께 먹었어요. 아내가 무척 뿌듯해하고 자신감을 되찾는 모습이 나타났어요. 6개월 정도 지나니까 눈에 띄게 밝아지면서 규칙적인 생활을 하게 됐어요. 더 이상 제가 일할 때 이상한 문자를 보내지도 않게 됐죠.”

-대화도 자주 했습니까.

“같이 외식하고 데이트를 하면서 아내의 고민이나 상처를 들어줬어요. 아내는 병원에서 겪었던 무섭고 외로웠던 감정 등 아무에게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쏟아내더라고요. 저도 아팠고 괴로웠습니다.”

-돌봄에 대한 나름의 관점이 있다면요.

“회사에 있으면 아내가 극단적 내용의 문자를 보내니까 불안해서 일에 집중할 수가 없었어요. 화도 내보고 다툼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저는 내가 무너지면 끝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렇게 버텼던 거 같아요.

돌이켜보면 회사생활을 하면서 아내와 거리를 둘 수 있는 환경에 놓였던 것이 제가 과도하게 지치지 않았던 거 같아요. 치료는 장기적이기 때문에 환자와 거리를 두면서 마음의 여유를 갖는 게 필요해요.”

-나카무라 유키 씨의 <만화로 읽는 조현병> 책은 어떤 도움이 됐습니까.

“그 책을 통해 아내를 조금씩 이해하게 됐지만 어떻게 하면 상황이 나아질지 그 방법을 처음에는 전혀 몰랐어요. 사람은 희망이 없을 때 좌절하잖아요. 희망이 있으면 충분히 버텨낼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해요.

나카무라 유키 선생의 책이 번역한 책 외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그 책들을 반복해서 읽으면서 나의 상황에 어떻게 적용할까를 끊임없이 생각했어요. 같이 운동도 해 보고 하면서 아내 상태가 나아질 수 있는 것들을 실행해봤고요. 피드백을 받으면서 효과가 있으면 지속하고 없으면 다른 방법을 시도하고 이 과정을 반복했습니다.”

-대화가 되지 않고 설득이 되지 않을 때 다 내려놓고 싶지요.

“예컨대 약을 먹으라 해도 아내는 제 말을 듣지 않아요. 스스로가 조현병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아요, 아내의 주장이 맞을지도 모르지만 대화가 안 되니 너무 힘들었습니다. 약 먹는 것 외에 이렇게 하면 빨리 회복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했어요.

인격을 가진 상대에게 강제로 시키거나 의견을 일방적으로 요구할 수도 없었습니다. 논리적으로 이해시키고 감정적으로 설득할 타이밍을 기다리고 화가 나고 답답한 순간도 다 내려놓고 천천히 조금씩 선순환의 궤도로 끌어올려야 했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아내의 상태가 선순환 궤도에 오를 수 있을지를 많이 생각했어요.”

김성우 역, 나라쿠마 유키 글그림 '만화로 읽는 조현병' 표지. (c)뿌리와이파리.
김성우 역, 나라쿠마 유키 글그림 '만화로 읽는 조현병' 표지. (c)뿌리와이파리.

-일본 속담에 ‘냄새가 나는 것은 덮어 두라’는 게 있죠. 가족도 국가도 정신병이라는 질병이 사회적으로 이슈화되는 것을 의도적으로 막고 있는 건 아닐까요.

“아내의 가족은 아내 상황을 가족 이외에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을 겁니다. 사회가 할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대부분은 가족이 감당하거나 당사자 모임에서 도움을 받는 것이 현실인 것 같습니다.”

-지난해 4월, 일본 고베시 정신병원에서 환자 가혹 행위가 언론에 보도됐습니다. 정신병원이 가지는 폭력성은 일본이나 한국이나 비슷한 게 아닐까 생각되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나라는 다르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느 곳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싱가포르는 가래침도 못 뱉게 할 만큼 공중도덕을 제1의 덕목으로 보는 나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 이 싱가포르의 정신장애인은 아시아 국가에 비해 좀 더 억압적 환경에 놓여 있는 게 아닌가하는 추론을 하게 되더군요.

“싱가포르는 중국계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은 3대가 같이 사는 가족들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범죄에 대한 관용이 적은 나라이니 가족들이 주로 돌봄을 하지 않을까 생각돼요.”

-<만화로 읽은 조현병> 이후 염두에 두고 있는 번역서가 있을까요.

“여유가 없어서 다음 번역은 제가 직접 하지 않고 지인을 통해 진행하기를 바라고 있어요. 나카무라 유키 선생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몇 권의 시리즈 형태로 돼 있는데 저는 그 책들을 다 읽었습니다. 유키 선생의 개인사도 자세히 알 수 있었는데 그 과정을 통해 위로와 현실적 조언을 얻었죠. 저도 언젠가는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그릴 수 있었습니다.”

-싱가포르에서도 조현병 관련 책들을 많이 찾고 있을 거 같습니다.

“싱가포르에서는 다행히 아내 증세가 개선돼서 따로 찾아 읽지는 않습니다. 아내는 제가 그런 서적을 찾아보는 걸 싫어하기 때문에 일부로 피하고 있는 현실적 이유도 있고요.”

-아내의 조현병 증상이 왜 시작됐을까를 고민했던 시간도 있었겠지요.

“대학생 때부터 알던 아내는 매우 건강하고 당찬 여성이었어요. 그런 사람도 조현병 증상을 겪는 것을 보면서 이 병은 누구에게도 찾아올 수 있는 증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는 섬세하고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인데 형제들과 갈등을 겪으며 20대에 마음의 상처를 입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극도의 스트레스를 겪으면서 어느 순간 마음의 심이 부러져버렸다고 할까요. 뼈도 너무나 큰 충격을 받으면 부러져버리듯이요. 누구에게도 마음을 터놓지 못하고 상처를 간직한 채 오랫동안 고독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상태가 악화된 거 같다고 생각해요.”

김성우 씨 아내의 뒷모습. (c)김성우 씨 제공.
김성우 씨 아내의 뒷모습. (c)김성우 씨 제공.

-운명이 원망스럽기도 했을까요.

“저도 평범한 사람이나 자기 연민을 가질 때도 있고 아내가 원망스러울 때도 있었어요. 또 제가 그려왔던 미래를 내려놓아야 한다는 부분이 괴롭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질환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일이고 저는 어쨌든 곁의 곤란한 사람을 살려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단지 그것이 제 아내였을 뿐이죠.

내려놓고 견디고 생활해왔지만 그 와중에 아내의 상태가 호전되거나 조금씩 웃는 모습을 되찾게 되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습니다.”

-치유로 가는 분명한 길이 있던가요.

“치유의 방법은 상대방과 마음을 열고 대화하려고 하는 겁니다. 대화가 어려울 때는 한발 물러서서 시간을 갖고 함께 운동하고 활동을 한 게 저와 아내에게 도움이 됐습니다. 몸과 마음이 따로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긴밀히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하게 됐죠.”

-조현병 당사자를 둔 가족의 고통에 위로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자기 효능감이나 긍정적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줘야 합니다.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게 격려해주고, 칭찬해줘야 해요.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살아갈 힘을 쌓아가면 그 사람은 어떻게든 다시 힘을 내 살아가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소소한 목표를 달성하고 하루하루를 무사히 살아가는 데서 기쁨을 얻으면 좋겠어요. 그런 하루가 매일 쌓여가면 물리적 기준과 상관없이 괜찮은 인생을 사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가치가 모든 것을 지배할 필요는 없습니다.

한 사람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면서 마주하고 이해하려 하고 대화를 하다 보면 조현병 증상도 나아지는 순간이 찾아올 거라고 믿습니다. 부디 어려운 시기를 건너는 환자와 가족의 쾌유와 건강을 빕니다.”

시인 황지우는 그 시를 이렇게 맺는다. “그대와 더불어, 최선을 다해 늙는 일일 것이야 우리가 그렇게 잘 늙은 다음 힘없는 소리로, 임자, 우리 괜찮았지? 라고 말할 수 있을 때, 그때나 가서 그대를 사랑한다는 말은 그때나 가서 할 수 있는 말일 거야” (황지우 ‘늙어가는 아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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