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형 기자의 변론] "아버지, 나의 정신적 아픔은 당신의 잘못이 결코 아니에요"
[이관형 기자의 변론] "아버지, 나의 정신적 아픔은 당신의 잘못이 결코 아니에요"
  • 이관형 기자
  • 승인 2022.03.17 19: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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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증 안 된 정신질환 치료법에도 가족은 솔깃...그만큼 간절하고 절실해
자녀 조현병이 부모의 잘못된 양육에 있다는 이론...과학적으로 타당하지 않아
부모가 죄의식 가지지 말아야...원인보다 어떻게 지낼지에 관심 더 가져야
내 아픈 가시를 품어줄 사람은 부모님밖에 없어..."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조현병, 조울증,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의 치료 방법을 찾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에 못지않게, 사람들은 정신질환의 원인에 대해서도 많이 궁금해 합니다.

과거에는 정신질환의 원인을 미신이나 종교를 통해 해석했습니다. 조상의 죄, 악한 영의 지배, 혹은 신을 노하게 해서 얻은 병으로 이해했죠.

그래서 적지 않은 금액을 바쳐가며 굿도 하고, 기도원에서 귀신을 내쫓는 의식도 해보고, 유명한 부흥의 집회에 가서 치유 기도도 받습니다. 조상이나 악한 영, 신 때문에 병이 시작되었다면, 완치의 방법도 문제가 되는 원인을 해결해야만 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출처 : pix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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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로, 정신질환이 생물학적 혹은 신경학적인 원인으로 발생한 병이라고 믿는다면, 완치의 방법도 약물과 호르몬에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가족들은 의료적으로 뛰어난 의사들을 수소문하게 되고, 약물의 효과와 부작용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갖게 됩니다.

자녀의 정신질환을 고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특정 의사의 의학적 소견과 약물 처방을 무조건적으로 맹신하는 경우도 볼 수 있습니다.

종교적인 치료법이나 특정 의사에 대해 옳다 틀리다를 논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실제로 이러한 방법이 통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죠.

백 명 중 단 한 명이라도 이러한 방법을 통해 완치되는 사례가 보인다면, 당사자의 가족들은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그 방법에 더욱 매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심지어 커뮤니티와 단체 카톡방에서 검증되지 않은 정신질환의 원인과 치료법이 공유돼도, 가족들은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만큼 당사자의 가족들은 간절하고 절실하기 때문입니다.

출처 : pix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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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은 자녀의 증상과 고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많이 괴로울 것입니다. 당사자 스스로도 괴롭지만, 그 모습을 바라보는 부모들도 속이 타들어갈 정도로 아플 것입니다. 심지어, 자녀가 고통 받는 원인이 나 자신에게 있다고 믿는 부모들도 많을 겁니다.

자녀의 정신질환이 부모에게 있다고 믿는 많은 의료진과 상담사, 전문가들은 치료의 과정에서 가족들의 개입을 막는 사례도 있었습니다. 치료 과정에서 소외된 부모들은 자녀를 위해 배제되는 과정을 묵묵히 견디고 멀리서 지켜봐야만 했죠.

자녀가 정신질환을 겪는 원인이 부모의 잘못된 양육과 태도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이론들도 많이 있습니다. 당사자 자녀는 부모의 일탈과 잘못에 의해 희생되어 정신질환을 갖게 되었다고 보는 관점이죠.

대표적으로 프롬 라이히만(Fromm-Reichman)은 조현병성 어머니 이론(Schizophrenia mother theory)을 통해 불안한 마음으로 자녀를 과잉 보호하거나, 반대로 차갑고 냉정하게 대하는 어머니로 인해 자녀가 조현병을 갖게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부모와 자녀의 잘못된 상호관계가 정신질환의 원인이 된 것이죠.

영국의 유전학자인 그레고리 베이트슨(Gregory Bateson)은 이중구속(double bind)이라는 단어로 조현병의 원인을 설명합니다. 즉, 부모의 말과 행동, 표정이 서로 일치되지 않고 이중적 모순적으로 여겨질 때, 자녀는 혼돈에 빠져 정신질환을 갖게 된다는 이론이죠.

예를 들어, 어머니가 자녀에게 무표정한 얼굴과 말투로 사랑한다고 말하거나, 아버지가 “다 널 위해서 그러는 거야”라며 폭행을 가하는 행동이 이중 구속에 해당됩니다. 이럴 경우, 자녀는 부모가 정말 자신을 사랑하는지 미워하는 것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어떻게 받아들이고 반응해야 할지 혼란을 겪습니다.

이외에도 해리(Halry)와 마데네스(Madanes)는 위계부조화(hierarchal incongruity)의 개념으로 정신질환의 원인을 해석합니다. 즉, 부부 사이에 갈등과 다툼이 빈번하거나 이혼 또는 재혼의 과정을 거쳐 불안정한 가정의 모습이 자녀들에게 정신병적 증상을 일으킨다는 주장이죠. 이 경우, 자녀는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부모의 존재를 상실하며, 성인이 되어서도 정서적으로 가정으로부터 독립되지 못하게 됩니다.

출처 : pix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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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위에서 살펴본 이론들이 과학적으로 타당하게 입증된 것은 아닙니다. 아직, 정신병적 증상과 가족 간의 상호작용에 연결성이 입증되지 않았고, 일반화도 어렵기 때문이죠.

만약, 부모의 잘못된 양육이나 이중적인 표현, 깨진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라면 모두가 정신질환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실제로는 위와 같은 조건과 환경에서도 건강한 성인으로 자란 사람들도 많습니다. 따라서, 원인과 결과가 서로 분명하게 연결되지 않습니다.

가족을 정신장애의 원인으로 볼 수는 없지만, 전혀 영향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가족 내에 다툼과 의사소통에 있어서의 스트레스가 당사자에게 긍정적으로 작용되는 것은 분명 아니니까요.

다만, 자녀의 고통을 바라보며 부모로서의 죄책감과 좌절 의식을 가질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가족 안에서 좀 더 즐거운 시간과 행복한 일상을 공유한다면 당사자 자녀의 회복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정신질환의 원인에 집중하기보다, 앞으로 어떻게 지낼지에 더 관심을 갖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더 나아가, 가족은 당사자 자녀에게 있어서 회복의 길을 함께 걸어가는 동반자인자 조력자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함께 동행 하는 입장에서 의사나 상담사 같은 전문가와 정보를 공유하고, 당사자 자녀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논의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치료와 회복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당사자에게 가족은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중요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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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의사나 상담사 못지않게, 중요한 경험과 전문성을 갖고 있습니다. 의사와 상담사는 많게는 일주일에 한두 번 상담을 진행하지만, 가족들은 집에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당사자와 함께 지내고 삶을 공유하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자녀가 어떨 때 행복을 느끼고, 어떨 때 괴로움을 느끼고 있는지를 잘 압니다. 바로 곁에서 그때그때 필요한 도움을 제공하는 것도 가족의 몫이고 정말 위급할 때 대처를 해야 하는 사람도 가족입니다. 그래서 가족의 역할과 존재를 무시할 수 없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자조모임은 가족들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당사자 가족으로서 겪어야 했던 죄책감과 좌절감, 분노와 슬픔은 다른 곳에서 쉽게 나눌 수 없고 공감을 얻기도 힘듭니다. 하지만, 자조모임 안에서는 낙인과 편견으로부터 벗어나 서로 감정과 생각을 나누며 위로와 희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서로 경험과 충고, 지지를 나누면서 당사자의 회복을 위한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받기도 합니다. 오랜 시간 자조모임 활동을 하다보면, 이 분야에서 무시할 수 없는 전문가가 될 수도 있습니다.

기자 역시 당사자로서 한 때 아버지를 원망했습니다. 가장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 있는 기억의 희미한 시간 속에서도 저는 늘 아버지에게 야단맞고 폭력을 당해야 했습니다. 그때의 폭력으로 전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아이로 변해갔고, 이로 인해 학교 폭력과 왕따를 당해야 했습니다.

아버지의 폭력이 없었다면, 폭력에 대한 겁이 사라져서 아이들에게 대항해서 싸울 수 있었다면, 부당한 괴롭힘에 맞설 용기가 있었다면, 저는 조현병을 겪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된 원인 제공자가 바로 아버지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죠.

지금은 오랜 세월 건설 노동으로 허리가 굽고, 숨쉬는 것조차 가끔 힘들어하시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만감이 교차합니다. 한번은 제가 증상으로 고통스러워할 때, 어머니가 “당신 때문에 얘가 아프게 된 거잖아!”라며 아버지를 나무랄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어머니께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셨습니다. 어느덧 아버지는 힘없고 기력이 쇠한 노인이 되셨습니다. 표현은 안 하셨지만, 아버지도 제게 많이 미안해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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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먹고 살기 힘든 시절, 새벽 4시 30분마다 건설 현장으로 가야 했던 아버지는 오죽 힘이 드셨을까요. 제가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만큼, 아버지도 육체적으로 힘이 드셨을 겁니다. 그 시절은 그랬습니다.

많은 아버지와 어머니들이 자녀에게 완벽한 부모가 될 수 없었습니다. 때로는 잘못도 하고, 실수도 했을 겁니다. 자녀에 대한 사랑은 넘쳤지만, 표현하는 방법을 몰랐고, 다시 과거로 되돌아간다면 “다시는 그러지 않았을 텐데, 좀 더 잘해주었을 텐데”라며 후회와 아쉬움이 가득할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처럼 많은 당사자 자녀들이 때로는 부모님의 가슴을 아프게 할 때도 있습니다. 저 역시도 내 병의 원인이 아버지 때문이라며 화도 내고 소리도 질렀습니다. 왜 내가 이러한 병과 고통을 겪어야 하느냐며 억울하고 분한 마음에 부모님 가슴에 대못을 박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제 진심이 아니었습니다. 너무 힘들고, 괴롭고, 고통스러워서, 풀 수 있는 대상이 부모님밖에 없어서, 그런 못난 행동을 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상에 나의 아픈 가시를 품어줄 사람이 부모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출처 : pix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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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당사자 자녀들도 같은 마음일 겁니다. 어떤 자녀도 부모의 사랑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자식이 잘되길 바라지, 자식이 병을 얻어 아프기를 바라는 부모는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죄책감과 후회 속에서 자녀에 대한 미안함으로 살아가는 부모님들이 많을 것입니다. 어쩌면 저의 부모님도 그런 죄책감과 후회 속에서 살고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직접 말로 표현할 수는 없었지만. 차마 용기가 나지 않지만, 제 부모님께, 그리고 수많은 당사자 자녀의 부모님들께 꼭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우리의 정신적 아픔은 부모님들의 잘못이 결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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