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형 기자의 변론] "정신질환의 발병은 내 책임이 아니지만 회복에 대한 노력은 분명히 내 책임"
[이관형 기자의 변론] "정신질환의 발병은 내 책임이 아니지만 회복에 대한 노력은 분명히 내 책임"
  • 이관형 기자
  • 승인 2022.04.10 20: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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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기능 가정이 자녀의 정신질환 발생시켜...병리적 관점은 부모를 원죄로 취급
정신질환 발병 이후 가족 지지로 회복 이룰 수 있어...파트너십 관점의 강점
부모를 회복 과정에 협력자로 포용할 수 있어..선택과 책임은 개인의 몫

어느 정신장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여러 당사자와 글을 주고받은 적이 있습니다. 소통을 하며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당사자들은 저마다의 방법과 모양으로 과거의 상처를 간직하며 살아간다는 사실을요. 그 중 40대 초반의 한 여성이 들려준 이야기가 기억에 남습니다. 지금까지도 너무 충격적이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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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몇 살 터울의 오빠를 두고 있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여느 평범한 가정과 다를 바가 없었죠. 하지만, 중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에 인생의 비극이 시작됩니다. 사춘기에 접어든 친오빠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일이 계속 이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은 강력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피해자인 딸도 중요하지만, 가해자인 아들을 더 지키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악몽보다 더 괴로운 일들이 벌어지는 동안, 부모는 방관하는 자세로 딸보다 아들의 인생을 더 걱정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여성은 부모로부터 떨어져 홀로 생활하고 있지만, 심각한 인격장애를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취업은 물론, 사회생활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죠. 때로는 술자리에서 옆 테이블과 시비가 붙고, 그로인해 경찰서에도 가야 했습니다. 그녀에게 인생의 유일한 목표가 있다면,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난 뒤, 친오빠에게 복수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그 이야기를 듣고 화가 나서, 부모님 입장은 생각하지 말고 법적으로든 어떤 방법으로든 복수를 하라고 재촉했습니다. 그렇게 복수를 하고 난 뒤, 마음속의 분노와 증오에서 벗어나라고 이야기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까지 복수를 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고 오빠를 용서하는 건 더욱 불가능했죠. 그렇게 여성은 오빠에 대한 복수심을 안은 채, 지금까지 아픈 인생을 살아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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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의 비극은 아닐지라도, 많은 당사자들이 역기능 가정으로 인해 영향을 받았을 것입니다. 직접적인 학대나 폭력이 아닐지라도, 부모의 잘못된 양육이 계기가 되어, 학교에서 혹은 사회에서 비극적인 사건을 경험하기도 하죠. 그래서 많은 당사자들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부모를 원망하며 살아가기도 합니다.

출처 : 양서원

당사자가 겪는 정신질환이 부모의 잘못인지 아닌지는 관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습니다. 서미경 교수가 쓴 <정신장애인과 가족, 함께 살아가기>라는 책에서는 병리적 관점, 반응적 관점, 파트너쉽 관점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당사자의 부모를 바라보는 시선과 태도를 세 가지 관점에 따라 해석하는 것이죠.

먼저 병리적 관점에서는 부모의 잘못으로 인해 자녀가 상처를 받고, 성인이 된 이후에도 부모로 인해 정신질환에서 회복되지 못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의사나 상담사로 하여금 병의 원인이 되는 가족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치료 과정에서 철저히 배제시킵니다.

또한, 부모들 역시 자녀의 병을 발생시킨 책임과 죄책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의사나 상담사가 진행하는 치료 과정을 최대한 멀리서 지켜볼 수밖에 없죠. 때로는 부부끼리 자녀의 질병에 대한 책임과 잘못을 서로 떠안기고 전가하면서 갈등이 심해지기도 합니다. 전문가들의 입장에서도 부모를 역기능 가정의 원인 제공자이자 상담과 치료가 필요한 환자로까지 여겨지죠.

물론, 정신질환의 원인을 모두 부모에게 돌릴 수는 없습니다. 역기능 가정에서 자라난 아동들 중에도 건강한 성인으로 성장한 경우도 많으니까요. 반대로 건강한 가정에서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요인들로 인해 정신질환을 갖기도 합니다.

정신질환의 원인은 매우 복잡하고 다양합니다. 생물학적인 원인, 뇌 호르몬의 불균형, 혹은 유전으로 인해 정신질환이 발병한다는 이론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의료계에서도 무엇 하나 때문이라도 명확하게 말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도파민 호르몬의 이상이 원인이라는 주장이 가장 많은 설득력을 갖고 있죠. 그렇다고 가정의 영향을 전혀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출처 : pixabay

매일같이 부부싸움을 하고 폭력과 방임을 저지르는 부모에게서 자라난 아이는 성인이 되어 힘들고 괴로운 상황에 악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큽니다. 반면, 건강한 가정에서 자라난 아이는 같은 조건의 역경도 잘 극복해 낼 가능성이 크죠. 이처럼 부모와 가정의 환경에 따라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도, 긍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은 반응적 관점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정신질환의 원인이 뇌의 질환인 것은 맞지만, 부모와 가정환경이 어느 정도 질병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죠. 가족과의 관계, 가정 내 분위기에 따라 정신질환이 잘 회복될 수도 있고, 병이 악화되어 재발이 될 수도 있다고 보는 관점입니다.

부모들도 무조건적으로 당사자의 치료 과정에서 배제당하지 않습니다. 치료와 회복을 위한 일차적인 보호 책임을 지고 있기에, 가족으로서 어떻게 대처할지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노력을 통해서 당사자의 회복을 도울 수도 있죠. 반대로 가족 내 불화와 다툼이 이어진다면 역으로 치료와 회복이 아닌 재발과 악화를 가져 올 수도 있습니다. 결국, 부모는 당사자에게 어느쪽으로든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파트너십 관점에서는 정신질환이 발병된 후에도 가족들의 지속적인 지지와 도움으로 당사자의 회복을 이룰 수 있다고 바라봅니다. 당사자 개인의 노력뿐 아니라, 가족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야만 하는 것이죠. 그래서 가족들은 온라인 카페 활동이나 오프라인 자조모임을 통해 여러 정보들을 공유하고 전문가에 가까운 경험과 지식을 쌓게 됩니다.

의사나 상담사는 일주일에 한두 시간 당사자의 이야기를 듣지만, 부모와 가족들은 당사자와 일상을 함께 하며 직접 삶을 공유하기 때문이죠. 어떤 상황과 환경에서 당사자가 어떤 반응이나 증상을 나타내는지를 지켜보기에, 당사자 자녀에 대한 이해와 파악이 정확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당사자가 회복의 길을 나아가는데 필요한 동반자이자 치료 자원이라고 해석할 수 있죠.

출처 : pixabay

협력적 파트너십 관점을 가진 의사와 상담사도 가족들에게 당사자에 대한 정보를 공유합니다. 약물의 효과와 부작용에 대해, 그리고 증상과 재발에 대해서도 상세히 설명해 줍니다. 다시 말해 전문가의 권위로 가족 위에 군림하거나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들을 동등한 권한으로 대하며 존중하게 됩니다. 가족으로서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가족들의 결정권을 인정하며 치료 과정에 참여시키는 것도 협력적 파트너십 관점에서 가능한 것이죠.

이러한 세 가지 관점에 대한 선택권은 가족뿐 아니라 당사자에게도 주어집니다. 병리적 관점에 따라 부모를 고통의 원인으로 지목할 수 있습니다. 평생 미워하고 증오하며 관계를 단절하거나 복수를 꿈꾸며 사는 것이죠. 반응적 관점으로 상황과 판단에 따라 부모를 가까이 하기도 하고, 때로는 멀리 거리를 두면서 관계를 잘 조절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파트너십 관점에 따라 부모를 회복의 길로 나아가는 동반자이자 협력자로 포용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누구도 세 가지 방법 중 어느 한 가지를 강요하거나 강제할 수는 없습니다. 본인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 것이죠. 그 선택에 대한 결과와 책임도 본인의 몫입니다. 아래의 문장이 세 가지 관점 중 하나를 선택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정신질환의 발병은 내 책임이 아니지만, 회복에 대한 노력은 내 책임이다.”

 

참고문헌

서미경(2014). 정신장애인과 가족, 함께 살아가기. 양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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