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삐언니의 책방] 정신과 의사들은 환자에 얼마나 ‘공감’하는가
[삐삐언니의 책방] 정신과 의사들은 환자에 얼마나 ‘공감’하는가
  • 이주현 기자
  • 승인 2022.05.25 18:5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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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삐언니의 책방 ⑤ 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 도서관

나종호 지음·아몬드

조울병 첫 발병 이래 20여년간 여러 의사들을 만났다. 입원했던 폐쇄병동에서 회진을 돌았던 담당 인턴·레지던트 의사들까지 합하면 족히 열 명은 될 듯하다. 그중 한 분은 16년째 뵙고 있으니 더 보탤 말 없이 내게 가장 좋은 주치의다. 그의 정확한 처방과 적절한 조언은 큰 힘이 됐다. 조울병은 질병의 한 종류일 뿐이라는, 정신질환에 대한 보편성을 깨닫게된 데는 의사 선생님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터이다. 

물론,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의사도 있다. 싸늘하고 기계적인 태도로 환자를 대했다. 마치 전염병을 옮기는 바이러스라도 된 듯한 기분으로 진료실 문을 닫고 돌아선 기억이 생생하다. 궁금했다. 과연 의사는 환자의 고통에 얼마나 공감하는 걸까. 병을 직접 앓아보지 않는 이상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하고 진료 경험이 많더라도, 환자들의 고통을 완벽하게 이해하긴 힘들지 않을까. 

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 도서관: 낙인과 혐오를 넘어 이해와 공존으로
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 도서관: 낙인과 혐오를 넘어 이해와 공존으로

이번 달에 출간된 따끈따끈한 신간 <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 도서관>은 ‘공감’을 고민하는 의사의 이야기다. 뉴욕은 한국보다 훨씬 다양한 인종과 성정체성을 지닌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니, 지은이는 아무래도 아시아계 전문직 남성이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많았을 것 같다.

‘내가 서 있는 자리’를 아는 사람은 ‘남이 서 있는 자리’도 이해하려 노력하는 법. 지은이가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어보기’라는 공감(empathy)의 본질에 이르는 길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는 보통 ‘경험한 만큼 공감할 수 있다’는 말에 쉽게 동의한다. 가난한 사람의 처지는 가난한 사람이 알고, 환자는 환자끼리 알아보고, 부모의 심정은 부모 돼봐야 알고, 그런 식이다.

하지만 이 책에 나오는 ‘제이콥의 어머니’와 관련한 에피소드는 경험이 공감의 필요조건은 아님을 알려준다. 제이콥의 어머니는 ‘환청이 들린다’며 주기적으로 자폐증 아들을 입원시켰는데, 제이콥을 진료한 모든 의사들은 입원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다.

아들 보호에 지친 싱글맘 어머니가 조금이라도 쉬기 위해 아들 증세를 꾸며내는 게 아닌가하는 의심을 한 것이다. 당시 어린 딸을 돌보느라 심신이 피곤했던 지은이는 제이콥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을 건넬까 고민한다. “저도 집에 한 살짜리 아이가 있어서 어머니가 얼마나 힘드실지 조금이라도 짐작할 수 있어요.”

하지만, 제이콥 어머니의 마음을 흔든 사람은 ‘아빠' 경험이 없는 커밍아웃한 게이 의사였다. “어머니, 저는 아이가 없어요. 애를 키워본 적이 없어서 어머니 심정을 잘 몰라요. 그렇지만 듣고 싶고 배우고 싶어요. 제이콥을 어떻게 키우셨는지, 들려주시겠어요?” 제이콥을 키우느라 고군분투했던 지난 시간을 고스란히 들려준 제이콥의 어머니는 이날 면담 뒤 더이상 아들을 입원시키러 병원에 오지 않았다. 

공감엔 정확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사실 나도, 알코올 중독자인 동생이 가족의 동의 하에 죽음을 선택하는 과정을 그린 <동생이 안락사를 택했습니다>라는 책을 읽기 전까지는, 알코올 중독은 ‘의지’로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알코올 중독은 고치면 되는 ‘습관’이 아니라 ‘질병’이다. 지은이는 중독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숨을 최대한 참아보라’고 말한다. 숨을 참느라 고통스러운 이들에게 산소가 간절한 것처럼, 중독자들은 마약·알코올 등을 산소처럼 갈구한다고 말한다. “중독환자는 흔한 편견과는 달리 ‘기분을 고양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통스러운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약물을 사용한다.”

많은 환자들은 정신과 의사들을 불만스러워한다. 짧은 진료시간 때문에 의사가 무성의하다고 느끼기도 한다. 이런 불만의 배경엔 내가 미처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불합리한 의료 시스템도 있을 테고, 일부 의사들의 부족한 자질 탓도 있을 거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확실히 깨달았다. 의사도 사람이구나. 환자가 의사에게 배우듯, 의사도 환자에게 배우는 사람이구나. 

다음달 주치의 선생님을 만나는 시간이 기다려진다. 

 

※<삐삐언니는 조울의 사막을 건넜어>를 쓴 삐삐언니가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 <마인드포스트> 독자들을 만납니다. 조울병과 함께한 오랜 여정에서 유익한 정보와 따뜻한 위로로 힘을 준 책들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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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나무 2023-02-01 05:06:29
참 좋은 글이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