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승연의 리뷰] 노르웨이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이 비약물치료(MFT)를 선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송승연의 리뷰] 노르웨이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이 비약물치료(MFT)를 선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 송승연 기자
  • 승인 2022.05.27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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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달센 리커버리센터 전경 (c) MEDIUM
휘달센 리커버리센터 전경 (c) MEDIUM

정신과약물과 당사자의 관점

‘정신과 약물치료’는 처음 시작된 1950년대부터 현재까지 가장 뜨거운 ‘이슈’ 중 하나이다. 특히 약물의 효과성 여부를 떠나서, 약물치료를 당사자가 자발적으로 선택하느냐, 강제적으로 부여되느냐는 다른 차원의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그 강제성은 눈에 확연할 수도 있지만, 아주 미세할 수도 있으며, 간접적인 압박으로 존재할 수도 있다.

이러한 압력 속에서 당사자들은 약물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쟁취하기 위해, 법적 옹호를 진행하기도 했다.

가령 1982년 로저스 대 매취트(Rogers vs Macht) 판결을 통해 매사추세츠주 정신과환자들은 제한된 범위 안에서 정신과 약물에 대한 치료거부권(right-to-refuse-treatment)을 획득한 바 있으며, 1982년 리즈 대 세인트메리정신병원(Riese v. St. Mary’s Hospital and Medical Center) 판결을 통해, 비응급 상황에서 항정신병 약물을 당사자의 동의 없이 투여할 수 없다는 결과를 쟁취한 바 있다(이 판결의 주인공 엘레노어 리즈의 이야기는 영화 '55 steps'로 제작됐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노르웨이에서 시행되고 있는 '비약물 치료'(medication-free treatment, MFT)는 전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다. Standal과 동료들(2021)은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이 MFT를 원하는 이유가 아직은 자세히 분석되지 않았다고 제시하며, 당사자의 관점, 경험, 주장 등을 기반으로 MFT를 선택하는 이유를 탐색했다.

이들은 50년대부터 서구에서는 정신질환 치료에 있어 정신과 약물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지만, 모든 당사자가 약물치료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며, 관련 연구에 의하면 중증정신질환자 중 약 50%가 정신과 약물치료에 순응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언급한다.

이러한 비순응과 관련해 선행연구들에서는 당사자와 의료진과의 상호작용, 당사자와 가족, 친구 등과의 상호작용, 약물치료 부작용 및 부정적 효과, 당사자의 신념, 태도, 인식 등과 같은 요인들이 제시됐다.

당사자 관점으로 진행된 선행 연구에 따르면, 약물치료에 있어 당사자가 선택권을 발휘하지 못하는 일방적인 관계로 인해 약물치료를 중단하게 되는 경험들이 드러났다. 심지어 당사자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고자 하는 함께하는 의사결정(shared decision-making) 과정에서도 당사자가 제한적 범위 내에서만 참여하게 된다는 결과가 나타난다고 저자들은 지적한다.

이처럼 약물치료는 여전히 자발성과 강제성 사이 모호한 경계 내에 위치하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올레 안드레아스 병원장이 강연 중에 약물 없는 치료의 회복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휘달센 리커버리센터 제공
올레 안드레아스 병원장이 강연 중에 약물 없는 치료의 회복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휘달센 리커버리센터 제공

노르웨이의 비약물치료

지난 2009년 노르웨이 정부의 TF팀은 정신건강 서비스에서 강제성을 감소하기 위한 다양한 조치 중 하나로 비약물치료(MFT)를 제안했으며, 이 안건은 2012년 강제성 감소를 위한 국가 전략에 포함됐다. 2015년 노르웨이 정부는 각 지자체에게 MFT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지시했으며, 2018년 기준으로 MFT는 노르웨이 25개 지역에서 제공되고 있다.

MFT 전용 병동은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특성을 가지고 있다. 「개병 병상 중심의 입원 치료, 당사자의 욕구 우선 반영, 전통적인 회복 패러다임의 영향을 받아 구성된 프로그램 등」. 이처럼 비약물 치료를 전국적으로 확대한 정부 정책은 국제적으로 노르웨이가 최초의 사례다.

노르웨이 보건부는 MFT 전용병동 목적과 관련해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서비스 이용자(당사자)들은 임상적으로 합당한 이유가 있는 범위 내에서, 비약물 치료를 포함한 다양한 치료법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MFT 지지 운동을 벌이는 노르웨이 당사자 단체들은 “MFT 전용 병동 존재 이유는 약물치료에 대한 강력한 강압과 압박으로부터의 자유”라고 제시한다. 이 논문의 연구자들은 ‘비약물 치료’를 모든 정신과 약물로부터 벗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기보다는, 약물 치료의 강압과 억압으로부터 벗어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의료 전문가들이 비약물 치료를 바라보는 것은 다양하게 나타났다. 관련 선행연구에 의하면, MFT를 과학적 증거가 부족한 것으로 바라보기도 했으며, 비약물 치료는 소수 정신장애인의 욕구만이 반영된 것이라는 비판도 존재했고, 당사자가 이미 정신과 약물치료 과정에 많이 관여하고 있기 때문에 MFT가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견들이 제시됐다.

이와 대조적으로 당사자들은 정신건강 서비스 전달체계에서 전반적으로 정신과 약물에 대해 논의하는 것 자체가 때로는 어려운 일이라고 보고했으며, 현재 입원병동에 있는 환자의 약 절반 정도는 비약물 치료와 같은 대안적 접근법에 관심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한 유기농 식단은 휘달센 리커버리센터의 치료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c) MEDIUM
건강한 유기농 식단은 치료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c) MEDIUM

약물치료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가지는 중요한 의미들

연구 환경은 오슬로에 위치한 종합병원 안에 위치한 MFT 병동이며, 이 병동은 회복 이념 및 자의입원을 지향한다. 이 병동의 프로그램은 회복지향질병관리(IMR)를 포함해 회복 패러다임에 의한 서비스들로 구성돼 있다.

연구대상자는 기존에 정신과 약물치료를 받은 경험이 있으며, MFT 이용 욕구를 가지고 있는 정신증, 양극성장애 등을 가지고 있는 당사자이다. 연구 방법은 인터뷰 및 개방형 설문으로 진행된 질적 분석, 그리고 MFT 병동의 당사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설문조사를 활용한 양적 분석이 함께 이루어졌다.

양적 조사 결과 부작용을 비롯하여 정신과 약물의 부정적인 영향은 비약물 치료를 원하는 가장 일반적인 이유로 나타났다. 부정적인 경험에는 감정이 둔해지는 것, 예를 들어 ‘좀비가 된 것 같은 느낌, 사람이 아닌 같다는 느낌 등’이 포함되며, 또한 공허함, 피곤함, 자살 충동, 점점 약물이 증가하는 것 등이 포함됐다. 또한 정신과 약물 복용에 대한 압박감, 약물치료 외의 대안적 서비스 부족 등은 MFT를 원하는 주요한 이유로 드러났다.

질적 연구 결과 ‘정신과 약물치료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주요한 동기로 나타났다. 보다 구체적으로 입원병동에 머무르는 기간 동안 약물치료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것, 입원하기 전부터 복용하지 않고 있던 그 상태를 유지하는 것, 약물치료의 첫 시작을 피하고 싶다는 것 등으로 구성됐다. 약물치료에서 벗어나는 것과 ‘자아가 강해지는 것’의 연관성에 대해서도 언급되었다. “약물치료를 피하는 것이 개인적으로 매우 중요했어요. 험난한 길을 가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일부 참여자는 MFT 참여에 대한 열망을 약물치료 없이 자기수용을 달성하려는 것으로 설명하였다. “화학적 변형 없이 나를 수용하고 싶어요. 저는 좋든 나쁘든 간에, 있는 그대로 살고 싶어요.”

또한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느끼기 위해 비약물 치료를 선택하게 됐다는 이야기도 드러났다.

“외부 활동을 할 때 어려움은 저의 모든 감정을 억제하는 것이었어요. (중략) 만약 다시 정신과 약물을 복용하게 된다면, 그것은 마치 내 감정을 숨기고 사는 것을 괜찮다고 생각하게 될까봐 두려웠어요. (중략) 그래서 저는 제 감정을 경험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도전을 해야 할 필요가 있었어요. 저 자신을 위해 외치는 경험, 제가 존재한다는 것을 느끼고 목소리를 가지는 경험들이에요.”

약물 없는 치료를 목표로 하는 중증 정신장애인을 위한 세계 최초의 24시간 서비스다. 다이어트, 심리치료, 운동, 자연 체험이 치료의 중심이다. (c) Helsemagasinet
정신과약물이 아닌 다른 접근법에 초점을 두는 병동으로 오는 것은 현재 약물치료 회의 대안이 부족한 환경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c) Helsemagasinet

정신과약물치료에 중점을 두지 않고 있는 병동에 입원한다는 것의 중요한 의미

참여자들은 정신과 약물이 아닌 다른 접근법에 초점을 두는 병동으로 오는 것은 현재 약물치료 회의 대안이 부족한 환경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언급했다. 가령 참여자들은 이전에 경험한 다른 의료서비스에서는 약물치료에 매우 강력하게 초점을 두고 있었다고 했으며, 때로는 약물치료만이 제공받은 유일한 서비스였다고 언급했다.

“(약물치료에 덜 초점을 두고 있는 서비스를 접한 적이) 한 번도 없네요. 실제로 그런 서비스에 대해 듣거나 이야기해 본 적이 없어요. 한 번도 그런 것을 들어본 적이 없어요. 저는 실제로 2~3번의 진단을 받았지만, 제가 받은 유일한 치료법은 약물치료였어요.”

MFT 병동에 있는 참여자들은 정신과 약물치료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약물치료에 초점을 두지 않을 때 의료 전문가와의 관계에서 더 많은 대화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게 됐다. 연구 참여자들은 약물치료의 압박을 피하는 것이 MFT를 원하는 이유라고 직접적으로 표출했다. “여기는 강제적으로 나에게 약물을 투여하려는 것에 대해서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는 곳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여기 입원했을 때 저는 더 진정될 수 있었어요.”

약물치료에 대한 압박은 어떻게 존재하는 것일까?

“매우 강한 압박이 있었어요. 그 당시 저는 자신감은 매우 낮았고, 스스로에 대해 큰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어요. (중략) 저 자신의 주장에 설득력이 없다고 느낄 때, 약물치료에 반대 의견을 내는 것은 어려워요.”

“제가 (A 병동에서) 겪은 경험은 뭐랄까. 그들은 대놓고 강요하지 않았지만, 그들이 원하는 것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느끼게 만들었고, 선택보다는 통보는 받는 것 같았어요.”

그러나 MFT 병동에서도 여전히 만연한 ‘정신과 약물’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다. 가령 한 참여자는 MFT 병동에 배치된 IMR 유인물에서 약물치료가 빈번하게 언급되는 것에 대해 놀라움을 느꼈다고 언급했다.

“적어도 정신과 약물 없이 시도할 수 있는 가능성, 적어도 그 기회를 주는 것에 중점을 두어야 해요. 지금까지 우리가 여기서 주로 활용한 IMR 모듈은 직접적으로 그러한 가능성이나 기회에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아요.”

이와 더불어 참여자들은 MFT 병동에서 ‘대화요법’을 위한 더 많은 공간을 기대했다. 한 참여자는 ‘약물치료로 감정 표출을 참아야 했던 것’과 대조적인 ‘감정을 표출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저는 보건의료 시스템에서 나쁜 많은 경험들을 가지고 있어요. 정신과 약물을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저에겐 중요했어요. 나 자신과 조금 더 연결되는 것, 그리고 감정이 지배할 때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을 갖는 것은 중요했어요.”

이러한 방에서 IMR이 진행된다. IMR은 휘달센 리커버리센터의 치료법 가운데 하나다. (c) MEDIUM
당사자들은 단순히 약물치료를 피하는 서비스가 아니라, 약물치료가 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서비스를 모색한다. (c) MEDIUM

대안과 선택권의 부재는 실질적인 장벽

이 연구 결과는 ‘비약물 치료’라는 선택권을 얻는 것이 주류 정신건강 서비스에서 쉽지 않을 수 있으며, 정신과 약물의 사용은 당사자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 태도, 신념 등과 상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당사자들은 단순히 약물치료를 피하는 서비스가 아니라, 약물치료가 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서비스를 모색한다. 정신과 약물 사용에 대한 압박과 대안의 부족은 약물치료를 원하지 않는 당사자에게 실질적인 장벽이다.

또한 이 연구자들은 노르웨이의 당사자들이 비약물 치료 대안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는 그것이 ‘임상적으로 합당한 이유가 있는지’ 여부에 따라 제한되기 때문에, 여전히 MFT 이용 여부에 대한 권한은 정신건강 전문가들이 가지고 있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처럼 비약물치료 선택권과 관련해 당사자와 의료 전문가 간의 인식 차이가 존재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 의료 전문가들은 이러한 문제에 대한 소통 과정에서 권력 불균형의 영향을 충분히 인식하는 것이 중요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출처: Standal, K., Solbakken, O. A., Rugkåsa, J., Martinsen, A. R., Halvorsen, M. S., Abbass, A., & Heiervang, K. S. (2021). Why service users choose medication-free psychiatric treatment: a mixed-method study of user accounts. Patient preference and adherence, 15,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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