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원 입원 당사자 64% “지역사회 퇴원 계획 상담 받아본 적 없다”
정신병원 입원 당사자 64% “지역사회 퇴원 계획 상담 받아본 적 없다”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2.06.27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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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받고 퇴원해도 정신재활시설 이용은 ‘눈높이에 안 맞아’ 이용 안 해
인권위, 선진 사례로 본 정신장애 지역사회 통합증진 실태조사 발표
CRPD 비준했지만 지역사회 통합 대신 의료 중심에 치우쳐져 있어
국가인권위원회. (c)연합뉴스.
국가인권위원회. (c)연합뉴스.

우리나라는 유엔 장애인권리협약(CRPD)을 비준하고 이 협약 규정에 충실하기 위해 정신건강복지법 제정·시행했지만 지역사회 기반이 아닌 여전히 재활모델에 머물러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정신병원과 정신요양시설 입원·입소한 당사자의 64%는 퇴원·퇴소 계획에 대한 상담을 받은 적이 없으며 퇴원 계획 상담을 받은 36%의 당사자 중 지역사회 정신재활시설을 이용할 계획이 없다는 비율은 77%로 나타났다.

당사자가 퇴원 후 시설 이용을 하지 않는 이유로는 당사자의 개별화된 욕구에 맞는 시설이 부재한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됐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서울대 산학협력단에 의뢰해 작년 10∼12월 정신의료기관 및 정신요양시설에 입원·입소 중인 정신장애인 100명을 설문 조사한 '선진 사례를 통해 본 정신장애인 지역사회 통합 증진을 위한 실태조사' 보고서를 27일 펴냈다.

연구는 인권 중심 정신장애인 지역사회 통합 실현을 위한 목적으로 국내외, 당사자와 가족, 전문가 의견들을 수렴해 분석했다.

연구팀이 국내 법·제도 등 정신건강 정책 환경에 근거해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는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제19조 ‘지역사회에의 동참’이 지향하는 바와 달리 지자체 조례 등에서 장애인복지서비스와 지역사회 시설 이용을 배제당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지역사회 중심, 권익옹호 등 당사자 단체에 대한 지원 등 인권의 실질적 보편화에 대한 관심 역시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정신건강 정책 환경은 여전히 의료 및 재활관점에 머물러 있고 정신장애인이 지원받을 수 있는 수당이나 수가체계 역시 의료기관 중심으로 조성돼 있었다.

연구팀은 “이는 정신장애인이 탈원화를 하지 못하고 낮은 사회경제적 지위에 머물게 해 결국은 더 나은 환경이나 지역사회 내 회복 기회를 박탈시켰다”고 분석했다.

연구팀이 영국, 호주, 일본, 대만을 중심으로 해외 주요국 선진 정신장애인 정책을 살펴본 결과 이들 국가들은 중앙정부와 지방 정부의 주도하에 국제 인권 기준에 근거한 지역사회 중심 회복 및 탈원화 전략 실천이 이뤄지고 있었다.

영국은 2007년 정신보건법을 개정해 치료 중심에서 인권 중심으로 서비스를 전환했고 중앙정부 주도 하에 2019년 정신건강 5개년 계획을 발표해 정신건강 관련 예산을 연간 3조 원 추가 조달했다.

또 정신건강대변인(IMHA)을 정신보건법에 규정하고 국가 차원에서 대변인을 교육해 자기결정 및 권익 옹호 서비스 체계를 구축했다는 평이다.

호주의 경우 2014년 기존 대체의사결정제를 지원의사결정으로 전환하고 당사자 의사결정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취하고 있다. 대만은 장애인권리협약 비준국은 아니지만 정신위생법 제13조부터 제15조를 통해 당사자, 보호자 및 권익 옹호 단체 대표자의 정책 수립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법률로 규정하고 있다.

이미지=픽사베이.
특히 정신건강 정책 환경은 여전히 의료 및 재활관점에 머물러 있고 정신장애인이 지원받을 수 있는 수당이나 수가체계 역시 의료기관 중심으로 조성돼 있었다.

연구팀은 “우리나라의 경우 당사자와 가족의 개별 상황에 맞춰 입원 시점부터 퇴원 계획을 수립하고 퇴원 이후의 계획이 실현될 수 있도록 사례관리자가 지원하거나 제도적 장치들이 마련돼야 한다”고 평가했다.

당사자와 가족, 정신보건 종사자의 인식과 욕구조사에 따르면 당사자의 절반 이상이 퇴원 계획에 대한 상담을 받아보지 못했다. 퇴원 계획 상담을 받았다해도 시설이 자신의 욕구에 맞지 않아 참여를 꺼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당사자의 욕구에 맞는 지역사회 시설을 확충해야 하고 일자리와 권익옹호제도, 가족 돌봄, 재정 부담에 대한 서비스 확충이 필요하다”며 “정신건강 위기 상황에서의 환경 조성과 지역사회 연계 서비스 제공에 대한 노력이 이뤄져야 한다”고 분석했다.

당사자 가족의 경우에도 절반 이상이 퇴원 계획 상담을 받지 못했으며 당사자의 주보호자가 부모, 형제자매인 것을 고려할 때 돌봄 부담이 부가되지 않도록 퇴원 계획 상담 시 가족 역시 고려돼야 한다는 게 연구팀 분석이다.

또 서비스 연계를 위한 당사자와 가족이 욕구에 맞는 서비스 인프라 확충이 필요하며 이들의 욕구에 맞는 서비스는 국제 인권 서비스 기준에서 표방하는 서비스와도 일맥상통한다는 의견이다.

연구팀은 “연구에서 가족이 가장 필요하다고 보고된 위기상황에서의 정서 및 물리적 환경 제공과 개인 맞춤형 회복 환경 조성을 위한 제도 및 서비스 지원이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 의견을 통한 정신장애인 지역사회 통합 우선 과제를 분석한 결과 퇴원·퇴소를 촉진하는 제도 마련이 필요하고 자립을 지원하는 지역사회 인프라가 구축돼야 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이를 위해 주거의 마련과 집중적 사례관리, 퇴원 계획 수가 체계 마련, 맞춤형 서비스의 정신재활시설, 고용 지원, 활동 지원, 가족 지원 등이 대안적 서비스로 마련돼야 한다는 의견이다.

특히 국내 정신건강복지정책을 치료 및 재활 중심에서 인권 중심으로 전환하는 정책 담당자의 인식 개선이 필요하고 실질적인 복지 확대, 탈시설에 대한 로드맵 등 정책 전반에 대한 인권 중심 접근이 요구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더불어 지방자치단체의 서비스 제공 책임을 명확히 해 실제 지역사회 통합을 위한 실천을 이행해야 한다고 연구팀은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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