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도시2 인권위 진정 기자회견] “환자복에 배인 핏물...이 시각적 자극은 정신질환자의 폭력적 이미지를 강화했다”
[범죄도시2 인권위 진정 기자회견] “환자복에 배인 핏물...이 시각적 자극은 정신질환자의 폭력적 이미지를 강화했다”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2.07.07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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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장애 단체, 영화 ‘범죄도시2’ 인권위 진정 기자회견...“정신장애인이 범죄자로 낙인찍혀”
정신질환자는 ‘악’ vs 형사는 ‘선’의 집행자...왜곡된 선악 구도 담겨
영화사에 사과하라 하니...“그냥 의도 없이 만들었다” 답변
당사자 성명 발표...상영 중지, 공개 사과, 제작진과 면담 요구
영화 '범죄도시2' 포스터.
영화 '범죄도시2' 포스터.

“환자 역을 맡은 이는 흰색 환자복을 입었습니다. 환자복에는 핏물이 배어 있습니다. 이 시각적 자극은 정신질환자의 폭력적 이미지를 강화하는데 기여합니다.”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가족 이은희(가명) 씨의 말이다. 최근 그는 영화 ‘범죄도시2’를 본 소감을 이렇게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남겼다.

‘범죄도시2’가 누적 관객 1200만 명을 돌파했다. 한국 영화의 저력을 보여줬다고는 하지만 그 안에는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배려는 없었다.

러닝 타임 1시간 46분의 이 영화 앞머리에는 환자복을 입은 정신질환자가 흉기를 들고 슈퍼 안에서 인질을 잡고 협박하는 장면이 나온다. 형사들은 “저 사람이 정신병원에서 탈출한 사람”이라거나 “미친놈”이라고 말한다. 주인공 마석도 형사가 환자복을 입은 남성에게 다가가면서 칼을 내려놓으라고 권유한다. 남성이 공격하자 마석도가 쓰러뜨리고 제압하는 장면이다.

영화를 본 당사자 이민우(가명) 씨는 “왜 형사들이, 왜 정신병동에서 탈출한 자라는 대사를 끼워 맞추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당혹스러웠고 내가 범죄자로 낙인 찍힌 기분”이라고 토로했다.

당사자 김철민(가명) 씨는 “정신장애인은 범죄를 저지른다는 시선, 정신병원에서 퇴원하면 범죄를 저지를 거라는 시선, 정신장애인을 무조건 폭력으로 제압함으로써 진실을 구현해야 한다는 시선, 정신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차이를 둔 시선을 이 영화를 통해 파악했다”고 밝혔다.

역시 당사자 한인수(가명) 씨는 “정신병원을 탈출했다는 극 중 형사의 발언은 정신장애인은 병원에 가둬둬야 한다는 이상용 감독의 저열한 인권 의식을 보여주는 대화”라고 비판했다.

또 박영철(가명) 씨는 “큰 행복을 위해 작은 불행은 감수해야 한다거나 큰 웃음을 위해 작은 피해자는 괜찮다는 방식의 쉽게쉽게 넘어가는 작품은 졸작”이라며 “정신건강의학과를 매달 두 번씩 가고 약을 매일 두 번씩 먹으며 관리하고 관리받는 나에게는 기분 나쁘고 불쾌한 영화”라고 지적했다.

역시 가족 이은희 씨의 영화 관람평이다.

“환자는 인질 두 명을 잡은 걸로 나옵니다. 주인 아주머니와 여대생으로 남성에 비해 육체적인 힘이 약할 수 있는 인물을 이용해 자신의 상황을 타개하려고 하는 비열한 행동을 보입니다. 환자는 본격적으로 폭력을 사용합니다. 날카로운 칼을 휘두르며 후에는 형사의 손을 깨물고 공격하는 행동을 보입니다. 곧 마동석으로 대변되는 남성 형상에 의해 간단히 제압됩니다.”

영화 '범죄도시2'의 정신장애인 편견 장면에 대해 항의하는 기자회견이 7일 중구 국가인권위 앞에서 진행됐다. (c)마인드포스트.
영화 '범죄도시2'의 정신장애인 편견 장면에 대해 항의하는 기자회견이 7일 중구 국가인권위 앞에서 진행됐다. (c)마인드포스트.

그는 이어 다음과 같은 의견을 남겼다.

“악역을 맡은 정신질환자가 선(善)의 집행자인 형사와 맞붙는 장면은 정신질환자-위험한 인물-악(惡)이며, 정상인-선의 집행자-선이라는 이분법과 왜곡된 선악 구도라는 편견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비정신장애인인 일반 시민 이현주(가명) 씨는 “수많은 일반인 중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은 일부에 불과한 것처럼 정신장애인 중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 역시 소수”라며 “하지만 언론과 미디어는 이 소수에 지나치게 집중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렇게 전했다.

“영화에서 형사가 정신병원에서 탈출했다는 남자를 때려눕히자 이를 지켜보던 시민들이 박수를 치고 사진을 찍는다. 이 장면이 시사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정신병원에서 탈출한 정신장애인은 맨주먹으로 때려잡아야 하는 존재’, ‘위험한 정신장애인을 제압한 형사는 정의로운 사람’이라는 사실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으로 해석했다.”

누군가는 지나칠 수 있는 한 장면, 한 에피소드에 정신장애인들의 비판이 터져나오고 있다. 누적 관객 1200만 명이라는 유례없는 성공을 거두고 있는 이 영화에서 소수자와 약자를 배려하지 않고 날것으로 폭력성을 강조해 정신장애에 대한 대중의 편견을 강화했다는 데 대한 비판들이 주를 이룬다.

지난해 12월, 영화 ‘F20’이 조현병 환자와 가족의 삶을 왜곡하고 편견을 심어줬다는 이유로 정신장애 단체들이 이 영화를 TV로 방영하려했던 KBS 본사를 찾아 기자회견을 여는 등 강력히 반발했다. 결국 KBS는 영화 방영을 전면 보류했다.

정치인들은 최근 몇 년간 줄기차게 정신장애인을 비하하는 발언들을 이어왔다. ‘집단적 조현병’, ‘정신병자’, ‘격리’, ‘정신분열자’가 그 내용들이다. 정신장애 단체는 다시 거리로 나왔다. 이중 일부는 공식 사과했다.

왜 이토록 정신장애인은 희화화되거나 정치적 공격을 위한 수단으로만 호명되고 공동체에 소환되는 것인가. 어쩌면 소수자에 불과하고 병적 징후로 타인과 대화조차 힘겨워하는 약자의 삶을 살아가는 정신장애인들에 대해 우리 정치와 문화가 무감각했기 때문은 아닐까. 영화 ‘범죄도시2’도 이 연장선상에 있다.

영화 '범죄도시2' 비판 기자회견 모습. (c)마인드포스트.
영화 '범죄도시2' 비판 기자회견 모습. (c)마인드포스트.

7일 오전 11시 ‘범죄도시2 규탄 기자회견’이 열렸다. 동일한 분노와 동일한 편견과 낙인으로의 고통이 난장판처럼 기자회견장을 휘감았다.

이들의 노여움은 앞서 언급된 당사자와 가족, 활동가들의 문제의식과 다르지 않았다.

정유석 마인드포스트 언론 미디어 감시 옴부즈만센터 활동가는 “(센터가) 제작사에 만남을 요청하며 항의 메일과 전화를 수차례 했다”며 “제작사 측에서 돌아온 답변은 그냥 의도 없이 만든 거라는 답변을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제작진의 공개적인 사과와 더불어 해당 장면의 삭제”를 주장했다.

유인선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정신건강권리옹호센터 간사는 “나만 이런 불편을 느낀 건지 주위에 영화를 본 사람들에게 물어봤다”며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 장면에 대해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고 전했다. 왜일까?

그는 “이 말은 곧 사회에서 정신질환자는 난폭하며 통제해야만 하는 존재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임봉준 변호사는 인권위 진정 진행에 대해 “(이 영화가) 혐오를 재생산하고 피해자들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및 인격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차별행위임을 확인한다”고 밝혔다.

그는 “(해당 장면을) 삭제하고 피해자들의 인권 보호를 위해 재발 방치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정신장애 단체 대표들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영화 '범죄도시2' 상영 중단을 위한 진정을 제기하고 있다. (c)마인드포스트.
정신장애 단체 대표들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영화 '범죄도시2' 상영 중단을 위한 진정을 제기하고 있다. (c)마인드포스트.

이어진 성명서는 이 영화 상영의 전면적 중지를 요구했다.

성명서는 “정신병원을 ‘탈출’한 사람이 칼부림과 인질극을 벌이는 장면은 정신장애인을 폭력적이고 위험한 범죄자로 표현한다”며 “‘미친놈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라는 대사는 정신장애인은 예측 불가능하고 과격하고 난폭한 존재로 인식하게 만든다”고 비판했다.

이어 “천만 관객을 돌파하고 있는 영화가 정신장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확산시키고 있다는 현실에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성명서는 ▲이 영화의 전면적 상영 중지 ▲제작진의 공개적 사과 ▲제작진과 정신장애 당사자 단체의 면담을 요구했다.

이번 인권위 진정은 마인드포스트 언론 미디어 감시 옴부즈만센터가 대표발의했다. 이어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합회, 한울정신건강복지재단, 우리도사회적협동조합, 한국정신장애인가족지원활동가협회, 정신건강사회복지혁신연대가 공동발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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