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 기고] 나는 마음이 아파서 글을 씁니다..그리고 고통을 통과한 품위를 얻은 듯합니다
[당사자 기고] 나는 마음이 아파서 글을 씁니다..그리고 고통을 통과한 품위를 얻은 듯합니다
  • 소울레터
  • 승인 2022.08.01 2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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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폴라 앓으면서 사람들을 더 이해하게 됐고 공감할 수 있게 돼
모든 것에는 끝이 있고 지독한 슬픔도 곧 지나갈 것이라 믿어
마음을 헤아리는 편지
마음을 헤아리는 편지

사실 나는 '조울증'이라는 진단명보다 '바이폴라'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 이렇게 느끼는 데는 단순히 외래어가 더 고급지고 세련되게 보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조울증'이라는 직접적인 세 글자는 어딘지 모르게 나 자신이 앓고 있는 감정의 너울을 지나치게 과장하여 회복 불가한 '환자'로 낙인찍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 때문에 마음이 까슬까슬 불편할 때가 많다.

반면, 내게 '바이폴라'가 있다고 이야기할 때, 내게 별 관심 없는 사람들은 그저 내 말을 흘려들을 수 있고, 정말 내게 애정과 관심이 있는 사람들만이 어학 사전을 뒤져가며 그 의미를 찾아 주곤 하는데, 그 일련의 과정을 통해 비로소 나를 이해하기까지 걸리는 조급하지 않은 시간이 좋고, 직접적인 단어를 언급하는 대신 간접적인 절차로 타인에게 이해받는 과정이 나는 마음에 든다.

그런 방식으로 나 자신을 폭력적이지 않게 소개할 수 있다고 느끼고, 일방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타인에게 헤아림받는다 느낀다. 무엇보다 '조울증'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직접적인 마찰감보다 '바이폴라'라는 표현은 어딘지 모르게 내게는 덜 아프고 더 가볍게 느껴진다.

그래, 나는 '바이폴라'다. 어쩌면 바이폴라이기에 삶을 다른 차원에서 느낀다. 그 영역을 타인들은 감지할 수 없기에, 보다 높고 깊은 감정의 영역까지 더 풍성하고 충만하게 받아들이며 살기도 한다. 병적인 우울감이나 병적인 극치감이 내 속에 소용돌이칠 때도 있지만 약물치료와 상담을 병행하면 안정적인 기분으로 건강한 일상을 유지할 수도 있다.

일상 속에서 기본적인 관리가 필요한 뇌질환으로 나는 바이폴라를 대한다. 기분을 조절해주는 호르몬이 분비되는 것에 장애가 있는 것이다. 이는 약물치료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약 부작용으로 나는 살이 많이 찌긴 했지만 어쩌면 이 살점들을 얻은 것도 바이폴라를 정직하게 온 몸으로 앓으면서 이 기분장애와 친해지라는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인다.

처음 약물치료를 하며 20kg 가까이 살이 불어난 내 모습에 깊은 우울감을 느낀 적이 있었다. 나 자신을 사랑해 내는 것이 이리도 어려운 것인가 얼마간 서러운 마음까지 북받쳐 눈물을 훔쳤던 기억이다.

그때 나는 의지도 없고 유약하기만 한 약물 의존자처럼 느껴져서 약이 나를 조종하고 있는 듯한 피해의식마저 있었다. 한동안 약물치료를 거부해 다시 재발에 재발을 거듭하면서 약은 나의 물리적 뇌질환을 위해 섭취해야 하는 영양분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수월해졌다. 약이 나를 지배하고 압도하는 게 아니라 내가 약을 선택하고 내 삶을 주도한다고 생각하니 용기도 생겼다.

비록 지금 내 모습이 더 이상 외적으로 아름답고 날씬하고 매력적인 모습은 아닐지라도 나는 바이폴라를 앓으면서 사람들을 더 이해하게 되었고, 내 삶의 다양한 배경들을 만났고, 나와 같은 사람들을 공감할 수 있는 마음을 얻었다.

약의 도움을 받고 치료를 병행하면서 나는 운 좋게 참 좋은 주치의 선생님들을 만났는데 어떤 여자 주치의 선생님께서 이렇게 말해주었던 기억이 난다. 모든 것에는 끝이 있으니 내가 지독히 앓는 지금 이 슬픔도 곧 지나갈 것이라고. 약이 나의 핵심적인 장점과 타고난 자질을 결코 방해하지 못한다고 말이다.

나는 그 말이 두고두고 기억이 난다. 형식적인 상담 몇 마디에 처방된 약만 무심하게 얹어 보내지 않고 그 여자 주치의 선생님은 나의 무너진 마음까지 일으켜 세우려 애써주셨던 분이었다.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지려는 나를 붙잡아 주고 용기를 불어넣어준 고마운 분이다.

지금은 이렇게 덤덤히 바이폴라와 지내고 있지만, 내게도 분명 죽음을 생각할 만큼 어두침침한 우울의 시기가 있었다. 그리고 그 시기의 무력감을 묘사할 힘이 내게는 없다. 여전히 돌아가기 싫은 끔찍한 기억들이고 두렵고 무섭고 겁이 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어둠의 시기를 통과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스스로 자부심을 느낀다. 고통을 통과한 품위를 얻은 느낌 말이다. 말괄량이 소녀가 얼마간 고통으로 다듬어져 숙녀가 되어가는 중에 만나야만 했던 아픔. 나는 바이폴라가 나를 성숙하게 이끌어 주었다고 믿는다. 아픔이 없었더라면 불안한 마음이 이렇게 안정을 찾지도 못했을 일이고 무엇보다 바이폴라를 앓지 않았더라면 나는 많은 것을 알지 못한 채로 이기심만 늘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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