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한의사의 초음파 사용 불법 아냐”...정신의료계·의사단체 집단 반발
대법 “한의사의 초음파 사용 불법 아냐”...정신의료계·의사단체 집단 반발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3.01.03 20: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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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 “한의사가 환자에 68회 초음파 사용했지만 자궁암 진단 못해”
정신의사회 “한의학 단편 교육 통한 초음파 사용은 면허 범위 밖 진료 행위”
대한의사협회가 지난달 26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의사의 초음파기기 사용 무죄는 무책임한 판결'이라는 의견을 냈다. [사진=연합뉴스]
대한의사협회가 지난달 26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의사의 초음파기기 사용 무죄는 무책임한 판결'이라는 의견을 냈다. [사진=연합뉴스]

한의사의 초음파 기기 사용에 대해 대법원이 불법이 아니라는 판결을 내린 후 정신의학계를 비롯한 의사 단체들이 반발하고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천대엽 대법관)은 지난달 22일 의료법 위한 혐의로 기소된 한의사 A씨 상고심에서 벌금 8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가 초음파 기기를 사용한 건 면허 외적인 의료 행위가 아니기 때문에 의료법 위반이 아니라는 판단에서다.

앞서 A씨는 복부 불편으로 의원을 찾은 여성 환자에게 2010~2012년 기간 동안 68회에 걸쳐 초음파 촬영을 실시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A씨는 한의학적 진찰법인 복진(腹診) 과정에서 초음파 기기를 보조적인 수단으로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복진은 한의사가 손을 이용해 환자의 배 부위를 만지는 진찰법으로 A씨는 복진 요령으로 초음파 기기를 사용했다고 밝혔다.

A씨는 이 과정에서 환자에 대해 기체혈어형 자궁질환으로 진단했다. 이를 바탕으로 침술과 한약처방 등 한방 치료를 실시했다. 대법원은 A씨의 치료 과정이 한의학적 원리에 기반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피고인은 환자에게 투자법침술, 경혈침술, 복강내침술, 경피적외선조사요법, 한약 처방 등 한방치료 행위를 했다”며 “이와 같은 한방치료 행위의 전제가 된 진단행위 역시 한의학적 원리에 기반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의료계는 A씨가 2년간 68회의 초음파 검사를 실시했지만 환자의 자궁내막암 2기를 진단하지 못해 조기에 치료받을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점을 지적했다. 초음파 기기를 다루는 한의사의 역량이 떨어진다는 판단이다.

의료계 관계자는 “초음파 기기는 의사들 사이에서도 시술자 능력에 따라 극과 극을 달리는 기계”라며 “초음파를 굉장히 잘 쓴다는 산부인과 의사들도 갑상선이나 심장은 잘 못 본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대한한의사협회는 “초음파 기기 사용은 한의와 양의 모두 사용자의 역량이 중요한데 그것에 대한 준비가 부족한 분들이 사용하리라 보진 않는다. 그 정도의 책임감은 의료인에게 당연히 있다”며 “한의계도 한의영상학회 등에서 교육하면서 숙련도를 올리고 있다. 역량에 대한 공격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3일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정신의사회)도 성명을 발표했다.

정신의사회는 “의료 분야의 면허에 따른 행위는 국민보건 위생에 미치는 영향이 중대하므로 극히 제한적인 범위에서 자격을 갖춘 사람만이 행할 수 있도록 허가돼야 한다”며 “일부 관련 과목 수강과 단편적 교육만으로 면허 범위 밖의 진료 행위를 할 수 있다고 한다면 이는 자동차 운전면허를 가지고도 특정 교육을 받으면 항공기를 운항해도 된다는 논리와 다르지 않다”고 밝혔다.

이어 “초음파를 이용한 진단기기의 사용은 전문성을 가진 의사들조차 늘 자신의 판단을 의심하며 극도의 주의를 기울이는 술기 중 하나”라며 “한의과 대학에서의 비전문적인 전공과목 수강이나 단편적인 교육으로 습득 가능한 것이 아니”라고 전했다.

대법원이 합의체에서 초음파 기기의 사용에서 한의사가 사용해도 의료행위에 통상적으로 수반되는 수준을 넘어서는 보건 위생상의 위해가 생길 우려가 있다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판결문에서 대해서도 의사회는 이의를 제기했다.

의사회는 “이 사건은 68회나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했음에도 환자의 질환을 오진해 치료 시기를 놓쳐 환자에게 중대한 위해를 가해 시작된 것”이라며 “진단용 기기를 사용함에 있어 그 위해성은 그 기기 자체의 위험이 아닌 정확한 진단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사회는 “무분별한 무자격 진단기기 사용의 남용으로 국민 의료비의 천문학적인 상승을 초래할 것”이라며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해 보건 향상을 위한 체계를 수립하는 것은 국가의 책임”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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