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여기,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기고] 여기,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 김강원 정신건강권리옹호센터장
  • 승인 2022.12.29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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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원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정신건강권리옹호센터장
정신건강권리옹호센터 사업 첫해를 돌아보다
김강원 센터장(왼쪽에서 두 번째)이 지난 7월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열린 한·몽·일, 동북아 정신장애 인권 컨퍼런스에서 발언하고 있다. (c)마인드포스트 자료사진.
김강원 정신건강권리옹호센터장(왼쪽에서 두 번째)이 지난 7월 몽골 울란바투르에서 열린 한·몽·일, 동북아 정신장애 인권 컨퍼런스에서 발언하고 있다. (c)마인드포스트 자료사진.

유엔 인권고등판무국은 <장애와 인권>이라는 문서에서 장애인의 인권에 있어 핵심적인 문제로 장애인이나 장애 문제를 마치 없는 사람이나 없는 문제처럼 배제해 버리고 제거해 버리는 ‘비가시화(Invisibility)’ 현상을 언급했다.

자유와 인권과 같은 가치들은 보편적으로 승인된 것으로서 모든 인간에게 동등하게 보장되지만, 문제는 이러한 가치가 장애인들에게는 전혀 적용되지 않거나 차별적으로 적용된다는 것이다. 비가시성은 우리가 당연시 여기는 인간의 자유를 증진시키기 위한 정상적인 법적 보호를 등한시하는 경향을 만들었으며, 현존하는 법적 보호도 장애인의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거나 훨씬 덜 엄격하게 적용된다고 했다.

우리 연구소에서는 시급히 해결해야 할 장애인의 인권문제가 바로 정신장애인의 인권이라는 것에 구성원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 그래서 최근 정신장애인의 인권문제 해결에 기여하고자 ‘정신장애인사회통합연구센터’와 ‘정신건강권리옹호센터’를 만들었다. 그리고 한 해가 저물어가는 지금, 정신건강권리옹호센터의 첫해 사업이 마무리되는 과정에 있다. 정신장애인의 인권문제의 해결은 전혀 마무리되지 않았지만!

정신건강권리옹호센터는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가 2000년부터 설립해 운영했던 ‘장애인인권센터’의 정신장애인 특화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장애인인권센터가 주로 발달장애인 대상의 학대와 노동력 착취, 장애인시설에서의 인권침해 문제를 다뤘다면 정신건강권리옹호센터는 오로지 정신장애인(심리적 및 사회적인 어려움을 겪는 모든 사람을 의미하며 정신질환자냐, 정신장애인이냐라는 구분은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에게 집중하며, 장애인시설 대신 주로 정신병원에서 일어나는 제반 인권문제에 있어 당사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일을 한다.

사업 첫해를 돌아보며 누군가 소회를 묻는다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라는 한 문장으로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많은 사례의 당사자들을 지원하면서 정신병원에 부당히 강제입원된 몇 분들이 퇴원을 하시게 되는 기쁜 순간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순간은 경악 그 자체였다.

2022년의 대한민국에 이렇게 인권이라는 것이 없는 영역이 있다는 것은 충격적이었으며, 모두가 알지만 알려고 하지 않는, 보이지만 보려고 하지 않는 ‘비가시화’된 광범위한 영역을 목전에서 생생히 보았던 것이다.

모든 정신병원이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접한 정신병원은 일단 안에 입원해 있는 사람과 연결되지 않았다. 전화 통화도 할 수 없었으며 면회도 할 수 없었다. 전화나 면회를 요구하면 ‘보호자만 가능하다’라거나 ‘주치의 허락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무슨 근거로 면회를 거부하는지를 내용증명우편으로 따져 물은 뒤에야 겨우 면회가 허락됐다. 병원인데 왜 휴대폰 소지가 금지되는가? 교도소도 면회가 가능한데 병원이 면회가 왜 안 되는가? 라는 상식적인 질문조차 공허하게 여겨졌다.

여전히 불법 입원이 만연했다. 가족간의 재산 다툼이나 불화, 분쟁 끝에 사설구급대를 통해 불법 입원을 시키는 과정에서 속임수나 신체적인 제압, 폭행이 발생하고 이 과정에서 저항을 하게 되면 곧 ‘자해 또는 타해의 위협’으로 간주돼 강제입원의 근거가 됐다.

입원 절차는 무시되고 모든 과정은 서류 몇 장으로 ‘꾸며졌다.’ 법에 정해진 권리 고지나 퇴원 안내 같은 것은 받아본 적도 없었으며 병원 구석에 비치된 ‘권리고지서’는 필자가 보아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수없이 퇴원시켜달라고 요구했지만 퇴원을 안내하기는커녕 그 요구조차도 자해 또는 타해의 위험으로 간주돼 격리와 강박의 근거로 악용됐다.

정신병원 내부의 상황은 더 처참했다. 모 기관의 의뢰를 받아 들어가 본 정신병원 폐쇄병동은 상가건물 한 층을 임대해 사용했는데, 과거 인권침해로 신고된 많은 장애인시설을 조사해 보았지만, 마당이라도 있고 제한된 공간에서나마 오고 갈 수도 있었던 장애인시설은 그 정신병원에 비하면 양반이었다. 좁디좁은 공간에서 대낮부터 정신과 약에 취해 누워만 있는 정신질환자들의 모습은 경악 그 자체였다.

더욱이 심각한 것은 입원 의사(意思)가 왜곡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자의입원’, 그러니까 스스로 원해서 입원했다고 입원 유형이 분류된 많은 사람들은 실제로는 가족에 의해 병원에 끌려왔다고 답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가 지난 9월 21일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불법 사설 구급대의 강제입원과 구금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c)마인드포스트 자료사진.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가 지난 9월 21일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불법 사설 구급대의 강제입원과 구금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c)마인드포스트 자료사진.

제대로 의사표시를 하기 어려운 지적장애인나 자폐인 같은 발달장애인이나 치매환자들도 폐쇄병동에 입원됐지만 입원 유형은 자의입원이거나 자의입원으로 분류되는 동의입원이었다. 자의입원이기 때문에 복잡한 입원 절차를 밟을 필요도 없이 병원에 들어왔지만 원할 때 퇴원할 수 있다고 알려주는 사람조차 없었다.

당사자를 도와 퇴원심사청구를 넣어 봤자 형식적인 심사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법원에 인신구제청구를 준비해 접수시키면 첫 번째 재판 날짜가 잡히자마자 슬그머니 퇴원을 시키는 일이 반복됐다.

정신병원 문제를 겪어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정신병원은 철저히 비가시화된 공간이며 정신병원에 입원한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다. 가볼 수 없고 안에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도 없으니 알 길이 없다. 소위 전문가들이나 정신보건 종사자들, 의료인, 정부 당국자들은 이 문제를 알고 있지만 누구 하나 이 문제를 직면하거나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다. 정신병원을 경험한 당사자들은 스스로를 ‘생존자’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들 생존자들의 목소리는 작아서 잘 들리지 않는다.

권리옹호를 의미하는 영단어 Advocacy의 어원은 ‘목소리를 크게 만든다’는 뜻이다. ‘도와 달라’, ‘여기서 내보내 달라’는 정신장애인들의 호소는 정신병원에 갇혀 병원 밖으로까지 들리지 않는다. 입·퇴원을 반복하며 강제입원의 공포 속에 배타적인 지역사회 속에 살아가는 ‘생존자’들의 목소리는 사회적인 편견과 배제에 막혀 역시 잘 들리지 않는다.

신년을 맞아 우리 연구소는 이들의 목소리를 크게 만드는 권리옹호의 본질에 더욱 집중할 것이다. 합의된 보편적인 가치인 ‘인권’이 정신장애인들에게도 동등하게 보장되도록,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는 시스템이 정신장애인들에게도 동등하게 작동되도록, 그래서 보이지 않던 정신장애인들과 정신장애인의 인권문제가 사회적으로 가시화되고 이들의 목소리가 누구에게나 들리도록 확성기 역할을 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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