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형 기자의 변론] 텅 빈 교실에서 나는 울었네...학교폭력이 남긴 트라우마와 용서
[이관형 기자의 변론] 텅 빈 교실에서 나는 울었네...학교폭력이 남긴 트라우마와 용서
  • 이관형 기자
  • 승인 2023.01.26 19: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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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당사자들, 학창시절 사회 무관심 속에 학교폭력에 방치
성인이 된 후에도 트라우마는 지속돼...가해자 피해자 따로 있지 않아
핀란드 독일서도 왕따 문제 해결 위해 사회적 대책 마련 집중해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선한 영향력 끼치는 어른으로 교육시켜야
출처 : 연합뉴스

2022년 12월 30일 넷플릭스에서 ‘더 글로리’라는 웹드라마가 방영되기 시작했습니다. 주인공 문동은(송혜교 역)이 학창 시절 자신을 괴롭혔던 가해자들을 찾아가 복수한다는 내용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합니다. “십 년도 더 지난 일을 기억하고 살다가 복수한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요. OCN에서 방영된 ‘돼지의 왕’도 학교 폭력을 다루고 있습니다. 학교 폭력을 당했던 주인공(김동욱 역)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는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그 때의 기억이 그 놈에겐 재밌었던 학창 시절 추억이라니”

적지 않은 당사자들이 학창시절 학교에서의 폭력과 왕따를 겪었습니다. 조현병이나 조울증, 우울증의 직접적인 원인이 아닐 수 있지만, 삶에 있어서 어느 정도의 영향을 받는 것은 사실입니다.

과거의 아프고 슬펐던 기억들은 아무리 약을 먹어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병원에 가서 의사를 만나도 위로가 되는 것도 아니고요. 문제는 지금도 많은 학생들이 학교에서 같은 아픔을 겪으며 생활하는 것입니다. 많은 당사자들이 학창시절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학교 폭력에 방치되었던 것처럼 말이죠.

우리 사회는 왕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대처할까요?

2017년 2월 1일 <한겨레>는 이와 관련된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집단 따돌림 예방수칙’이 왕따에 익숙해져라?”(기사 클릭)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 사회가 왕따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대처하는 지 비판하는 기사였죠. 이 기사에는 학교 복도에 세워진 ‘집단 따돌림 예방수칙’ 현수막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현수막은 한 학습 참고서 출판기업에서 학교 대상으로 판매하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내용의 일부는 다음과 같습니다.

“일찍 혹은 늦게 등교하는 방법도 생각해보고 다른 등교길을 생각하라.”

“비싼 물건은 집에 놓고 다니고 소지품이나 돈을 자랑하지 말라.”

“만일 내가 싫어하거나 나를 험담하는 별명이 있다면 그것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하라.”

수칙을 보면 마치 피해 학생이 폭력의 빌미를 제공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 책임도 예방도 모두 피해 학생에게 달려 있다고 말이죠.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전적으로 학교 폭력과 왕따 가해학생에게 책임이 있고 비난받아 마땅하다는 입장이죠. 많은 유명인들이 학창시절 학교폭력 가해 논란으로 활동을 중단했습니다. 특히 연예계와 체육계에서 대중의 인기와 사랑을 받다가 이른바 학투(학교 폭력을 고발하는 미투)로 인해 이미지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우죠. 이들은 아무리 용서를 구해도, 대중의 비난과 손가락질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출처 : 픽사베이(pixabay.com)

저 역시 학교폭력, 이른바 왕따 피해자로서 가해자에게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제 책에도 나오는 강희(가명)라는 아이는 아마도 제 평생에 잊을 수 없는 이름일 것 같습니다. 그 친구는 저를 떠올리면 재밌었던 학창시절의 추억으로 웃음 지을 거고, 저는 잊을 수 없는 괴로움에 비명을 지르곤 했었죠.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던 저는 유난히 폭력에 겁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중2때 유난히 키가 크고 힘이 세며, 유도까지 배운 강희와 짝이 되었습니다.

처음에 장난으로 한두 대씩 때려도 저는 반항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언어폭력과 신체폭력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느덧 제 이름은 사라지고 창녀의 아들 같은 온갖 성적이고 치욕적인 별명으로 불리어졌습니다. 앞서 소개한 현수막의 내용과는 달리 제가 도저히 받아들이고 익숙해질 수 없는 별명들이었죠. 신체적 언어적 폭력 외에도 급식시간에 제 국그릇에 쓰레기를 넣고 분필가루를 모아다 제 얼굴에 쏟아 붓기도 했습니다.

반에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서로 경쟁하듯이 저를 괴롭혔고 그때마다 아이들은 큰 소리로 웃었습니다. 그래야만 강희에게 인정받고 반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졌거든요. 선생님도 그 모습을 보며 “얘들이 너 괴롭히냐?”면서 함께 웃었죠.

저는 그만 괴롭혀 달라 애원했지만 “싸대기 200대를 맞아야 한다”며 사실상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왜 괴롭히는지 물어보니, 단지 ‘재수가 없어서’라고 대답했죠. 누군가 혼자 있는 제게 친근하게 말을 걸기라도 하면 “너도 왕따 당하고 싶냐? 조심해라!”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고요. 하지만 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나로 인해 어머니까지 마음이 힘들까봐 걱정되었거든요.

출처 : 픽사베이(pixabay.com)

반에는 저뿐 아니라, 약간의 지적장애를 가진 친구도 있었습니다. 역시나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아이들에게 두들겨 맞는 날이 많았습니다. 그 아이는 맞으면서도 늘 얼굴엔 웃는 표정이 그치지 않았던 게 기억에 남습니다.

당시 반은 정글과 같았습니다. 힘센 아이는 약한 아이를 때리고, 나머지 아이들은 자신들까지 왕따를 당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저와 지적장애 친구를 괴롭히기 위해 혼신을 다하는 모습이 느껴졌으니까요. 누군가 저를 괴롭히면 다 함께 웃어야 하고, 누군가 저를 때리면 함께 괴롭혀야 마음 편히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성인이 된 이후로도 트라우마에 시달렸습니다. 찾아가서 복수하는 망상을 매일 꿈꾸었죠. 제가 20대 후반 되었을 쯤, 발신번호 표시제한 번호로 전화가 왔었습니다. 그리고 다짜고짜 욕설을 내뱉는 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여러 정황상 제 번호를 알아낸 강희가 제게 전화한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강희도 마음이 많이 병 들었구나. 사실, 강희도 중학교 1학년 때 학교에서 왕따를 당했었습니다. 그때의 불안감과 분노를 중 2학년 때 제게 풀었던 거죠. 어찌 생각해보면, 학교 폭력과 왕따에 있어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따로 있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마음이 아픈 피해자처럼 느껴졌죠. 그때부터 복수의 망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왕따는 피해자 개인의 책임이거나, 가해자 개인의 잘못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사회적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출처 : 픽사베이(pixabay.com)

그렇다면, 학교 폭력과 왕따의 가해자와 피해자는 어떻게 생겨나는 것일까요? 한영주(1998)의 논문에서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특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학교 폭력의 가해자 집단은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고 관계를 주도해나가며, 자신의 갈등 상황을 잘 표현하는 사회 기술적 특징을 가졌지만 부정적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에 있어서는 현저한 결핍을 보인다. 따라서 자신의 부정적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여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되, 자신의 행동을 기술적으로 표현하고 대처하는 능력이 있다. 반면 학교 폭력의 피해자 집단은 대부분의 사회 기술이 낮은데, 특히 자신을 주장하고 주도하며 표현하는 능력이 결핍되어 갈등 상황에서 자신을 가해자로부터 방어하지 못하고 피해를 당하고 나서도 자신의 상황을 표현하여 대처하는 능력이 부족하기에 지속적 피해의 가능성이 있다.

이처럼 타인과 관계를 주도하며 무리를 이루는 기술이 뛰어나지만, 내면에 있는 부정적인 감정을 표출해야 하는 가해자 집단에게 피해자 집단은 좋은 먹잇감이 됩니다. 피해자 집단은 관계를 이루거나 어려움을 표현하여 대처하는 것이 부족하니까요. 즉, 가해자가 폭력을 저지르고도 해당 행위를 은폐하거나 감추기에 좋은 대상이 피해자 집단입니다.

이들을 좀 더 심리적으로 분석해보면, 먼저 왕따의 주체인 가해자는 자기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공동체를 형성합니다.

약육강식과 경쟁이 빈번한 학교 안에서 자신만의 무리를 형성하고, 그 무리의 우두머리가 되기 위해 공동의 목적을 만들어 냅니다. 그 목적으로 괴롭혀도 문제가 되지 않거나 반항이 없는 약자를 선정하여 비교적인 상대우위를 통해 힘과 권력을 과시하는 것이죠. 하지만 그 이면에는 자신도 힘을 과시하지 않으면 반대로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과 순수한 친교 목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공동체의 붕괴 가능성의 위험을 안고 있죠.

또한 왕따의 객체인 피해자는 다수에 의해 핍박 받는 소수로서의 왕따 구조를 스스로 헤쳐나올 수 없으며 공동체의 핍박을 받다보면, 그 공동체로부터 스스로 빠져나오고 회피함으로서 더욱 외롭고 고립되어가는 과정을 밟게 됩니다. 이로 인해 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든 폭력의 상처와 외로움으로 스스로 극단적 선택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출처 : 픽사베이(pixabay.com)

물론 학교폭력과 왕따 문제에는 가해자와 피해자 뿐 아니라 방관자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왕따의 주체도 객체도 아닌 제 3자로서 존재하는 집단이죠. 이들은 “왕따와 친해지면 자신도 왕따가 된다”라는 사고와 불안감 속에서 살아갑니다. 공동체에서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왕따 가해자의 권력에 의지하고 싶은 요구가 있는 한편, 왕따 피해자에 대한 미안함과 도움을 주지 못하는 죄의식이 동시에 공존하죠. 하지만, 괴롭힘을 당하지 않기 위해 오히려 피해 학생을 함께 괴롭히거나 방관하는 자세를 유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학교 안에는 공동체를 통해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는 가해자와 여기에 희생되는 피해자, 그리고 자신도 어쩌면 왕따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살아가는 방관자가 함께 공존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주장하고 부정적 감정을 해소하기 원하는 가해 학생과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 피해 학생, 그리고 불안 속에서 살아가는 방관자에게 필요한 것은 학교나 사회의 개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왕따 문제는 사회적 문제로 다루어야 할 심각한 현상이기 때문이죠.

1980년대 중반부터 일본의 사회적 문제가 된 이지메가 1990년도에 우리나라에서 이름만 바뀐 왕따라는 용어로 시작되었습니다. 1996년 선천성 심장병을 앓던 고등학생이 집단 괴롭힘을 당하고, 1998년에는 제주도의 초등학교 6학년 여학생과 울산의 여고생이 왕따를 당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1999년에는 국무회의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직접 왕따 현상을 적극 해결해야 한다고 지시하기도 했습니다.

출처 : 픽사베이(pixabay.com)

이러한 집단 따돌림은 일본과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각국의 정부와 사회는 왕따 문제를 근절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죠.

캐나다 통계 자료에 의하면 자국 청소년 3명 중 1명이 최근까지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했고, 성인 중 40%가 직장에서 왕따를 경험했다고 대답했습니다. 또한 학교폭력 가해학생의 60%가 사회적 범죄 기록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를 위해 캐나다 정부는 WITS(Walk away, Ignore, Talk it out, Seek Help)라는 프로그램을 실시하여 학교 폭력 상황에서 벗어나고 무시하며, 피해 학생과 대화하고 도움을 요청하도록 교육하고 있습니다.

또한 핀란드는 학생 중 많게는 15%가 괴롭힘을 당하는 왕따 공화국으로 불렸습니다. 이후 왕따에 맞서는 학교라는 의미를 가진 키바 코울루(Kiva Koulu) 프로그램을 실시하였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초중학교 학생들은 1년에 총 1시간 동안 왕따 관련 역할극, 단편영화 감상, 그리고 토론 및 발표를 했습니다. 그 결과 학생들의 스트레스와 우울증을 줄어들었으며 학업성취도가 높아지는 효과가 보고되었습니다.

이외에도 독일 베를린 주에서는 “왕따 없는 학교”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사이버 왕따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디어와 SNS를 바르게 사용하고 인터넷 피해로부터 학생을 보호하기 위한 교육을 실시했으며, 중국도 최근 학교에서의 왕따 현상을 근절하고자 교육부 션샤오밍 부당서기를 중심으로 교육부 8개 부서에서 대책마련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출처 : 픽사베이
출처 : 픽사베이(pixabay.com)

학교 내 폭력과 왕따 문제는 사회적 제도와 프로그램 외에도 그 근본적인 원인과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쩌면 학교는 사회의 작은 축소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안에서는 공부를 통해 사회적 성공의 초석을 다질 수 있고, 때로는 욕설과 폭력으로 물들기도 합니다. 부모와 선생님 같은 어른들의 생각과 가치관에 따라 학생들의 언어와 행동들이 나타나기도 하죠. 이 안에는 미래의 선한 의인이 날 수도 있고 미래의 흉악한 범죄자가 만들어 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학교의 본질인 교육이 중요합니다. 단순히 교과서를 외우고 문제집을 푸는 것이 아닌, 올바른 집단생활과 학우들 간의 협력을 배워나갈 수 있는 사회의 축소판입니다. 교실 내에 신체적 정신적 장애가 있거나 힘이 약하다는 이유로 폭력을 행사하고 차별을 한다면, 이러한 현상은 사회 속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날 것입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어른들의 폭력과 차별이 어린 학생들에게 대물림되어 학교에서 나타나는 것일 수도 있죠.

출처 : 픽사베이(pixabay.com)

학교는 대학에 가기 위한 과정이 아닌, 선생님이 점수를 높이기 위한 수단이 아닌, 교과서는 단순히 암기했다가 시험지 번호를 맞추기 위함이 아닌, 진정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어른이 되기 위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약자를 품고 차별 속에 고통 받고 소외된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는 학교에서 먼저 올바른 교육이 선행돼야 하죠. 정신질환을 단순히 당사자나 가족들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는 것처럼, 왕따와 학교 폭력 문제도 이 사회가 책임지고 풀어나가야 할 숙제입니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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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덕관 기자(2017.02.01), 한겨레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8085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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