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식장애 인식주간 특집] 섭식장애에 대해 뭔가 해야 한다고 나선 사람들
[섭식장애 인식주간 특집] 섭식장애에 대해 뭔가 해야 한다고 나선 사람들
  • 박지니 (책 '삼키기 연습' 저자)
  • 승인 2023.01.25 20: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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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식장애 경험 당사자와 생존자의 ‘로렌조 오일’
© 2022 Project HEAL
© 2022 Project HEAL

병원에서 만난 열다섯 살짜리 여자아이들의 ‘프로젝트’

2015년 12월의 어느 일요일 저녁, 나는 의사에게 ‘섭식장애 퇴치를 위한 HEAL 재단’에 대한 짧은 메일을 썼다. 우버의 CEO였던 트래비스 캘러닉과 아리아나 허핑턴까지 정장을 하고 참석한, 참으로 미국적인 자선모금 행사에 관한 기사를 읽은 참이었고, 내 주의를 끈 것은 바로 그 재단을 설립한 이들이 십대 시절 섭식장애 치료시설에서 만난 두 소녀였다는 점이었다.

1992년생인 크리스티나 새프런(Kristina Saffran)은 열 살 때 처음 섭식장애 치료를 받았다. 그 뒤 흠잡을 데 없는 학창시절을 보내는 듯했으나 열세 살에 병이 재발한다. 거식증에서 온전히 빠져나오기까지 그녀는 무려 네 차례나 입원치료를 받아야 했다.

수 년 뒤에 그녀는 한 인터뷰에서[1] 자신은 “주위의 전적인 지지가 있었고, 최고 수준의 치료를 받았고, 좋은 보험상품에 가입해 있었기 때문에” 여러 차례의 재발에도 굴하지 않을 수 있었고, 그렇게 되기까지 소요된 비용은 “20만 달러를 우회”한다는 계산이 나온다고 고백한다. 그것은 그녀도 인정했듯 “대다수의 미국인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이다.

(인용한 기사는 2015년 12월자 기사였고, 거기서 언급된 미국 섭식장애 입원치료시설 이용 비용은 한 달에 무려 3만 달러, 우리 돈으로는 4,000만 원이라는 상상 이상의 액수다. 2000년대에 잠시 운영됐던 국내 소수의 섭식장애 입원병동의 경우 한 달 입원비는 200만 원 수준이었다. 미국 의료비와는 비교할 수준이 못 되지만, 현실적으로 따지면 이는 딸을 병원에 입원시킨 가정에서는 대략 400만 원 이상을 급작스럽게 어떻게든 마련해야만 했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2022년 12월 현재, 국내에는 그 같은 섭식장애 전문 입원시설마저도 전멸된 상태다.)[2]

크리스티나는 입원한 치료시설에서 비슷한 또래의 환자였던 리애나 로젠만(Liana Rosenman)을 만난다. 그때가 2006년, 그리고 2년 뒤인 2008년 이 둘은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는 섭식장애 환자들을 돕기 위한 자선단체를 꾸리고 ‘먹고, 수용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Help to Eat, Accept and Live)’이라는 문장의 첫 글자를 따서 ‘프로젝트 힐(Project HEAL)’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연방 국세청으로부터 501(C)(3) 비영리 자선단체 자격을 승인 받은 건 두 사람의 생일이 나란히 있던 5월 초였다고 한다.

그들은 자선기금을 기반으로 환자들의 치료를 지원하는 한편, 미 전역의 대학교 캠퍼스에 멘토링과 상담을 제공하는 소조직을 개설하는 식으로 활동을 시작했던 것 같다. 2012년 7월 기사[3]에서 그들은 그때까지 총 18만 달러를 모금해 7명의 여성 및 청소년의 치료를 지원했고 전국 17개 대학 캠퍼스에서 멘토링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한 달 앞서 <피플(People)> 매거진에 실린 인터뷰 기사[4]가 도움이 돼서, 후원이 늘었고 소조직 개설 문의도 활발해졌다.

2013년 9월 기사[5]에서 그들이 공개한 누적 모금액은 30만 달러. 그리고 2015년 12월 내가 읽은 자선모금 행사 기사는 프로젝트 힐이 그때까지 무려 36명의 환자에게 치료를 지원했으며, 단체의 차후 목표는 매년 치료 지원을 신청해 오는 500명의 사람들을, 지금은 비록 그 중 10퍼센트에만 도움을 줄 수 있지만, 탈락자 없이 전원 지원하는 것이라 밝혔다.

동력시스템의 핵심으로 침투하다

2015년 12월의 그 자선모금 행사가 열린 장소는 다름 아닌 샌프란시스코의 우버 본사였다. 트래비스 캘러닉이 우버의 수장으로서 자질을 의심받으며 고군분투하던 시점이었다. 그 해 3월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SXSW)에서 우버의 초기 투자자 겸 이사회 멤버였던 벤처캐피털리스트 빌 걸리가 우버를 비관적으로 전망한다는 투의 암시적인 발언을 한 뒤, 캘러닉은 걸리 대신 아리아나 허핑턴과의 새로운 유대에 기울고 있었다.

행사에는 캘러닉의 연인이었던 바이올리니스트 개비 홀즈워스가 무대에 올랐다. 그녀는 스스로 섭식장애를 오래 앓은 당사자였다. 미디어업계 거물 아리아나 허핑턴 역시 두 딸을 대동했다. 허핑턴의 딸들도 모두 섭식장애를 앓았다.

프로젝트 힐의 웹사이트[6]에는 단체의 연차보고서(annual report) PDF 파일이 2016년도 문서부터 올라와 있다.

특히 새프런과 로젠만은 “해가 갈수록 경제적 문제만이 치료 기회를 막는 유일한 원인은 아니며, 병원 치료 역시 회복이라는 퍼즐을 맞추기 위한 조각 하나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이에 2017년 부터는 “치료와 회복 경험의 모든 단계에서 장벽이 되고 있는 모든 것을 무너뜨리는 데 초점을 맞춰 단체의 핵심 활동을 재구상”하기 시작했다.[7] 2017년도 연차보고서에 정리된 그들의 활동은 이렇다.

해법 2: 치료 접근성 강화

프로젝트 힐은 회복에의 의지는 있으나 치료비용을 마련하기 어려운 섭식장애 환자들을 위해 치료기금을 지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었습니다. 이를 위해 이제까지 90여 명의 환자를 지원할 수 있었지만, 미국 내 섭식장애를 앓고 있는 3,000만 명 가운데 대다수가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할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직 많았습니다. 2017년에 프로젝트 힐은 보다 큰 임팩트를 발휘할 수 있도록 치료 지원 프로그램을 강화했습니다. 우리는 현재 이 분야의 대표적 전문가인 변호사 리사 캔터(Lisa Kantor), 섭식장애연합(The Eating Disorders Coalition for Research, Policy & Action, EDC)의 동료들, 그리고 정신 보건의료 형평성을 위한 케네디 포럼(The Kennedy Forum)과 함께 사례별 내비게이션 프로그램을 조직해 프로젝트 힐에 도움을 요청하는 연 300여 명의 환자들이 각자의 보험 현황을 알고, 불합리한 치료 기회 상실에 대해 항소하고, 그들 자신의 권익을 위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돕기 위한 방안을 찾고 있습니다.

프로젝트 힐은 또한 미국 전역의 주요 치료센터들과 파트너십을 맺고 치료 지원을 요청한 사람들에게 돌봄을 제공해 왔습니다. 2017년에는 연계 센터들에 보험회사의 방침에 따르기보다 임상가들 스스로 적절한 치료 종료 시점으로 판단되는 때까지 환자를 퇴원시키지 않도록 하는 “결과 중심” 기조를 유지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치료임상 섹터와 더불어 섭식장애 치료에 대한 보험 보장성을 개혁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크리스티나 새프런이 마침내는 캘리포니아 대학 샌디에고 섭식장애센터 출신의 임상심리학자 에린 파크스(Erin Parks)와 함께 ‘에큅(Equip)’이라는 원격진료 기반 섭식장애 치료 회사, 즉 소위 말해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을 설립한 것은, 그가 이번에는 파트너십을 맺은 치료기관과 방침을 조율하는 수준을 넘어 아예 의료 서비스 제공자(provider)의 영역까지 검토하기로 했다는 뜻일 것이다. 에큅이 출범한 것은 2019년이었고, 팬데믹이 지속된 몇 해 동안 견실히 성장했다. 에큅은 유망한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 목록에 종종 이름을 올리는 회사가 됐다.

애나 웨스틴 법

미국 워싱턴의 섭식장애연합(EDC)은 최근 애나 웨스틴 법(Anna Westin Act)이 의회의 연말 예산 패키지에 포함됐으며 이제 바이든 대통령의 서명만 남겨두고 있다는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2015년 발의된 애나 웨스틴 법안은 섭식장애의 조기 발견을 가능케 하기 위해 학교 교직원과 보건의료 전문가를 교육하기 위한 예산 확보와 섭식장애의 적실한 치료를 위한 보험 보장성 확대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8]

법안 발의의 계기가 된 것은 미네소타 주 태생의 한 소녀 애나 웨스틴(Anna Westin)의 비극적 죽음이었다. 1978년 생이었던 애나 웨스틴은 16살에 거식증에 걸려 외래치료를 받고 회복된다. 그러나 대학 때 재발한 병은 위중해져 의사는 입원치료를 권한다. 그러나 당시는 보험회사들이 거식증의 치명성을 인지하고 있지 못했던 시기였고, 가족은 보험사가 애나의 치료 적합성을 ‘검증’할 때까지 기다려 결국은 훨씬 제한된 치료만을 받을 수 있었다. 그 직후인 2000년 2월, 애나는 21살의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딸을 잃은 애나의 어머니 키티 웨스틴은 곧바로 활동가로 변모했다. 그녀는 섭식장애 환자들에 대한 치료 여건 개선을 촉구했고 미네소타 주 최초의 섭식장애 입원치료시설을 설립했다. 애나가 세상을 떠난 같은 해에 섭식장애연합이 창립되는 과정에도 그녀는 힘을 보탰다. 그러면서 에이미 클로버샤(Amy Klobuchar) 상원의원과 인연을 맺고, 애나 웨스틴 법안도 그렇게 탄생하게 되었다.

Kitty Westin thanking President Barack Obama at the Anna Westin Act signing ceremony, on Dec. 13, 2016. (c) Minnpost
Kitty Westin thanking President Barack Obama at the Anna Westin Act signing ceremony, on Dec. 13, 2016. (c) Minnpost

2016년 12월, 오바마 전 대통령은 21세기 치료법(21st Century Cures Act)의 일환으로 애나 웨스틴 법안에 서명했다. 딸의 죽음 뒤 무려 17년에 걸친 그녀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뒤이은 인터뷰에서 자신의 임무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단호히 답했다. 딸을 잃은 뒤 어쩌면 두문불출 고독한 삶을 살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고 섭식장애 치료와 연구 예산 확보를 위한 입법청원을 하며 목소리를 높여 온 까닭을 기자가 묻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그건 애나의 인생이 반드시 그렇게 끝나야 할 이유는 없었다는 깨달음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애나의 사연을 세상에 알린다면, 그것으로 촉발될 수 있을 변화가 누군가를 살릴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었죠.”

“내 직업은 심리학자이고, 어쩌면 섭식장애 환자를 치료하는 길을 택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문제를 오래 숙고했기에 개인 단위에서보다 더 큰 차원에서 변화를 일으키고 싶었어요. 나는 단지 어느 누구도 애나와 같은 고통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아서 여기까지 왔을 뿐입니다.”

당사자로서의 연구자, 당사자로서의 활동가

소위 ‘당사자 경험(lived experience)’ 혹은 ‘당사자 전문성(expertise by experience)’은 최근 들어 심리학적 연구에서 주목받고 있는 개념으로, 섭식장애 분야에서는 특히 호주의 연구자들이 적극적으로 탐구하고 있다. 얼마 전 스윈번 대학교를 떠나 멜버른 대학교에 새 둥지를 튼 ‘스완 연구그룹(SWAN, Scientific Work in Anorexia Nervosa & Other Eating Disorders Research Group)’[9]이 이 분야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보여 왔다.

한편, 영국에서는 ‘당사자 경험’을 지닌 액티비스트들의 활동이 두드러진다. 30대 초반의 청년 제임스 다운스(James Downs)[10]는 섭식장애와 남성의 섭식장애에 대한 캠페인을 펼치고, 매체에 기고하고, ‘당사자 전문가(expert by experience)’ 자격으로 연구에 참여하고, 영국왕립정신의학대학(Royal College of Psychiatrists)과 협력해 섭식장애 가이드라인 개정 작업에 참여하기도 한다.

비슷한 세대인 호프 버고(Hope Virgo)[11] 역시 작가이자 액티비스트이면서, 특히 ‘체중계를 치워라(#DumpTheScales)’라는 캠페인을 주도한 것으로 유명하다. 현재 체질량지수(BMI)를 기준으로 ‘거식증(anorexia)’과 ‘폭식증(bulimia)’을 형식적으로 구분하고 있는 진단기준이 결국엔 체중이 더 나가는 환자들의 치료 접근성을 막아서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실제로 학계에서는 ‘비(非) 저체중 거식증(higher-weight anorexia)’ 환자에 대한 적실한 치료가 논의되고 있으며, ‘거식증’과 ‘폭식증’ 구분 대신 폭식/구토 증상에 초점을 맞춰 ‘폭식 스펙트럼 장애(binge eating spectrum disorders)’ 군에 대한 중재 방침이 연구되고 있기도 하다.

1992년에 개봉된 영화 <로렌조 오일(Lorenzo's Oil)>은 1980년대 ALD라는 희귀병에 걸려 죽어가는 어린 아들을 구할 치료법을 찾기 위해 고투했던 부부의 실화를 각색한 작품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 ‘문제'가 실로 어떤 것인지를 몸소 통렬히 경험한 당사자가 보이는 절박한 행동력은 제3자에겐 ‘이성을 잃은’ 행위로 간주되기 쉬울 만큼 맹목적이고 초인적이다.

벌써 8년 전, 나는 내가 꾼 꿈에 대해 글쓰기 선생님께 메일을 썼다.

꿈들은 대강 이런 내용이었어요:

우리 가족이 한 15년쯤 살던 아파트를 포함해 한 도시가 공중에서 무너지는 광경.

아직 두어 살밖에 되지 않은 막내동생을 끌어안고 붕괴 현장을 가까스로 탈출한 것.

그리고 도시가 무너지기 전에 배를 타고 공중을 항해 중이었던 나머지 가족들은 집에 있었던 우리 두 사람이 죽었을 거라고 생각하겠지, 하고 추측했던 것.

그리고 제 해석은 이래요:

나는 붕괴되는 우리 가족으로부터 내 막내동생을 구했다.

나는 붕괴되는 우리 가족으로부터 어린아이를 구했다.

나는 붕괴되는 우리 가족으로부터 내 어린 시절을 구하고 싶다.

나는 붕괴되는 우리 가족으로부터 내 어린 시절을 구하려 한다.

나는 붕괴되는 우리 가족으로부터 내 어린 시절을 구하고 있다.

나는 붕괴되는 우리 가족으로부터 내 어린 시절을 이미 구했다.

그 의미는 분명하다. 더없이 명확하다. 크리스티나 새프런은 13살의 자신을 구하고 있다. 키티 웨스틴은 딸의 목숨을 구한다. 공통적으로 섭식장애를 경험한 노벨 문학상 수상자 아니 에르노와 루이즈 글릭은 진실을 재현함으로써 세상의 진실을 구한다. 그리고 프로이트의 저작에 ‘안나 오(Anna O)’라는 가명으로 등장한 히스테리 환자 베르타 파펜하임(Bertha Pappenheim)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내 책 <삼키기 연습>에도 인용했던 주디스 허먼(Judith Herman)의 책 <트라우마>에 실린 파펜하임에 관한 구절을 여기 다시 옮기고 싶다.

히스테리아의 탐색을 논리적인 결론으로 이끌고 갔던 초기 연구자 중에서 유일하게 남은 이는 브로이어의 환자였던 안나 오였다. 브로이어가 그녀를 버린 뒤, 그녀는 몇 해 동안 아픈 채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회복하였다. ‘대화 치료’를 발명한 무언의 히스테리아 환자 안나 오는 여성 운동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와 건강함을 되찾았다. 그녀는 파울 베르톨트라는 가명으로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고전적 논문인 <여성의 권리를 위한 변명>을 독일어로 번역하였고, <여성의 권리>라는 연극을 창작하였다. 그녀는 베르타 파펜하임이라는 자신의 진짜 이름으로 탁월한 여성주의 사회복지사가 되었다. 그녀는 지적이었고 훌륭한 조직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풍요로운 오랜 시간 동안 그녀는 소녀들을 위한 고아원을 짓고, 유대인 여성을 위한 여성주의 조직을 세웠으며, 여성과 아이들의 성적 착취에 반대하는 투쟁을 유럽과 중동 지역에 전파하였다. 그녀의 헌신적인 태도와 에너지, 현실 참여에 대한 의지는 전설적이었다. 그녀 동료의 말에 의하면, “한 여성 안에 활화산이 살아 있었다. (...)그녀는 마치 자신이 신체적인 고통을 느끼는 것처럼 여성과 아동에 대한 학대에 맞서 투쟁하였다.”

마지막 문장에서, ‘마치… 처럼’이라는 표현은 불필요해서 걷어내도 된다. 그녀는 실제로 고통을 느꼈고, 그녀 자신을 구하고 있었을 테니까.

[1] https://www.huffpost.com/entry/huffpost-uber-project-heal-eating-disorder_n_5663387de4b08e945fefc4c1

[2] 2023년 12월 현재 프로젝트 힐 웹사이트에 실려 있는 정보는 이렇다: 일반적인 섭식장애 치료 한 회기 비용은 평균 8만 달러 수준이며 완치되기까지 수년 동안 드는 비용은 25만 달러에 달한다. 그러나 이 같은 과도한 비용 부담, 보험 보장성 부족, 섭식장애 치료체계 내의 구조적 편견 탓에 3,000만 명에 달하는 미국 섭식장애 환자들 가운데 단 20퍼센트만이 치료를 받고 있다.

[3] https://www.qchron.com/editions/north/douglaston-woman-called-hero-for-work/article_01f3ad36-bfe4-577a-be2f-a33d54ad85cf.html

[4] https://people.com/human-interest/project-heal-founders-help-anorexia-patients/

[5] https://www.girltalkhq.com/former-anorexic-teen-girls-fight-eating-disorders-with-their-own-non-profit/

[6] https://www.theprojectheal.org/annual-reports

[7] https://www.devex.com/organizations/project-heal-150575

[8] https://eatingdisorderscoalition.org/inner_template/our_work/the-anna-westin-act.html

[9] 애초의 명칭은 ‘Swinburne Anorexia Nervosa (SWAN) Research Group’이었다.

[10] https://twitter.com/jamesldowns

[11] https://twitter.com/HopeVir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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