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이 ‘약’...당사자 선호 맞춰 일자리 선택하고 훈련 후 직장 배치 모델 필요
취업이 ‘약’...당사자 선호 맞춰 일자리 선택하고 훈련 후 직장 배치 모델 필요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3.05.10 19: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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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해 일해본 정신장애인이 자기효능감 높고 장애수용도 긍정 인식
한국심리학회지, 20대~60대 성인 당사자 524명 대상 연구 분석
질병 특성에 맞게 맞춤형 직업교육과 훈련·재활 활성화해야
수급권은 ‘아킬레스건’...직장급여로 전환할 때 최저임금 보장 필요
정신장애인 표준사업장인 미성테크 작업장에서 근로하는 당사자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음. (c)마인드포스트 자료사진.
정신장애인 표준사업장인 미성테크 작업장에서 근로하는 당사자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음. (c)마인드포스트 자료사진.

취업이나 고용서비스를 이용한 경험이 있는 정신장애인일수록 자신의 장애를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장애수용 수준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경제활동이 수혜자의 역할에서 벗어나 사회구성원으로 자기효능감을 경험하게 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최근 한국심리학회지에 게재된 박초원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연구원, 현명호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가 만 20세~67세 성인 정신장애인 524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논문에 따르면 자기효능감이 고용 여부와 장애수용의 관계를 긍정적으로 매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기효능감은 어떤 행동을 계획하고 수행하는 능력에 대한 자신의 판단을 의미하며 ‘할 수 있다’라는 정서적 요소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정신장애인은 다양한 편견과 차별에 자신을 비춰보고 타인의 고정관념에 동조해 자신을 평가하는 ‘자기 낙인’을 내재화하게 된다. 이는 정신장애인의 성장과 변화를 방해하는 핵심 요인으로 간주된다.

논문은 정신재활에서 ‘회복 모델’에 주목했다. 회복 모델은 완벽하고 깨끗한 정신상태를 추구하는 대신 만성 정신장애와의 공존 상태를 인정하도록 하는 대안적 관점을 제시한다. 따라서 회복의 핵심 가치는 자신의 질병과 장애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인 장애수용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분석이다.

취업과 고용서비스의 이용은 장애수용의 수준을 높이고 정신장애인의 자기효능감 향상은 적극적인 사회참여로 이어져 이상적인 회복에 가까워지게 한다는 의견이다.

현재 우리나라 정신장애인의 취업률은 15.7%로 15개 장애유형 중 최하위 수준이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정신장애인 524명 중 취업자는 135명(25.8%), 미취업자는 389명(74.2%)이었다. 연구 결과 취업 상태의 정신장애인은 미취업 정신장애인보다 자기효능감이 높았다.

박 연구원은 “정신장애 증상이 심각할수록 생활 기능은 약화되고 사회적 차별을 경험할 가능성은 커진다”며 “그 과정에서 형성되는 자기 낙인은 자기효능감을 저하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분석했다.

이는 정신장애인이 자신의 강점과 자원을 활용해 경제활동을 실현한다면 자기효능감이 증진되고 장애수용으로 연결된다는 논리다.

특히 정신장애인의 질병적 특성상 학업과 직업을 오래 유지하기 어려운 점을 고려했을 때, 개인 맞춤형 직업 교육과 훈련, 재활을 활성화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또 고등학교 수준 이상의 정신장애인이 직무 수행에서 기본 능력이 더 높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조기 개입 차원에서 정신장애인이 고등교육까지 완료할 수 있도록 사회적 지원이 있어야 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현재 국제노동기구(ILO)가 권장하는 ‘지역사회 중심 직업재활(CBVR)’ 모델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게 연구팀 의견이다.

CBVR은 장애인의 속한 지역사회에서 자립을 시도하도록 돕는 직업재활 모델로 참여자는 개인의 자원, 선호, 관심사에 따라 직무를 선택한 뒤 지역 전문가에게 충분한 기간 훈련받고 일을 시작하도록 하는 제도다. 나이지리아 정부가 이 모델을 추진하면서 90%의 장애인이 성공적인 직업 생활을 유지했다는 통계도 나왔다.

미국, 영국, 호주의 경우 ‘개별 배치 및 지원(IPS)’ 모델에 따른 정신장애인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CBVR이 시행 중이다. IPS 모델을 적용한 결과 정신장애인의 타 대조군보다 직업을 유지하는 기간이 4배 더 길었고 일하는 시간은 3배 더 길었다. 임금 역시 3배 많았다.

현 교수는 “IPS는 근거기반 접근의 직업재활로 입원 중심의 정신재활보다 효율적이며 정신장애인 사이에서 그 효과성이 꾸준히 입증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직업재활을 기획하는 단계부터 당사자의 선호와 의사를 반영하고 그들의 친숙해하는 지역사회 자원을 활용할 때 정신장애인의 장애수용 및 사회 통합이 원활하게 성취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기초생활수급권자가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정신장애인에게는 노동과 수급권 사이에서 결국 취직보다 장애급여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신장애인이 수익이 발생해 소득 조건을 초과하면 수급권에서 탈락하는 위험성이 있고 직업을 통한 임금과 수급권 급여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면 정신장애인은 사회적 편견을 느끼며 취직하기보다 장애급여를 선택하게 된다는 의견이다.

박 연구원은 “장애급여 수급에서 직장급여로 전환하려는 과도기적인 시기에 안정적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고용 안정 및 최저임금 보장 등의 실질적인 정책이 절실하다”고 전했다.

이어 “정신장애인의 직업활동은 그들의 장애수용을 성취하도록 하는 밑거름”이라며 “고용 현장에서 정신장애인의 증상을 먼저 이해하고 당사자 친화적인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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