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인드포스트가 창간 2주년을 맞았습니다
마인드포스트가 창간 2주년을 맞았습니다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0.06.10 18: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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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씨에게 보내는 편지
(c)마인드포스트.

J씨에게.

여여(如如)하신지요. 아주 오랫동안 당신에게 편지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사는 게 바빴고 그 바쁨 때문에 저 역시 치유의 길로 나설 수 있었던 거 같습니다. 처음 신문을 만든다고 할 때, 저는 머리를 저었던 거 같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라는 패배 의식이 우선 떠올랐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나 많은 긍정적 우연들이 겹쳤고 신문 창간을 위해 뛰어주었던 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 됐습니다.

J씨.

그 마인드포스트가 벌써 2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저에게는 10년이나 더 지난 이야기 같았습니다. 그리고 많은 일들이 생겼고 또 그만큼의 기사 꼭지수도 늘어났습니다. 어쩌면 그 기간, 우리의 요구 사항은 정신병원과 정신요양시설에 가두지 말라는 요청과 항의의 시간이었던 같습니다. 가두지 말라는 것. 그래요. 한 인간이 죄 없이 정신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산 속의 정신병원과 요양시설에 들어가 전 생애의 의미를 박탈당하게 했던 그 모든 정신보건 시스템의 문제들. 우리는 그 골리앗처럼 서 있던 ‘감금의 문화’에 대해 몸을 던져야 했습니다. 그것은 이 세계가 과연 정의로운가라는 질문과 맥락이 닿아있습니다.

J씨.

이 세계가 정의로운가요. 이 대답을 위해서는 정의로움이 무엇인가를 먼저 정의내려야 할 것입니다. 저는 ‘정의’를 이 세계의 질서가 그 자체로 올바른가라는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자유주의 하에서 인간은 소모품이 되었고 자본의 논리에 어긋나는 가치들은 논의될 가치조차 없었습니다. 정신장애인은 국가를 지키는 군인도 될 수 없고 국부(國富)를 창출해낼 노동자성도 거세당했습니다. 이들은 ‘식충이’였습니다. 적어도 자본과 우생학의 관점에서 본다면 말이죠. 우리가 왜 아무 쓸모없는 존재가 됐을까요. 나치와 파시즘은 그렇게 우리를 가스실에서 절멸시켰습니다.

이 우생학의 논리는 20세기 초중반 폭압적 세계 정치체계에서만 유효했던 이론은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 세계는 정신장애인의 비효율성과 무능함을 이유로 이들을 시민적 규범으로 바라보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정신장애인이 작은 사건을 일으키면 언론은 이를 확대 재생산해냅니다. 마인드포스트는 그 언론의 폭력적 담론에 항의를 합니다. 그러나 언론은 우리를 무시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 싸워야 했습니다. 적은 도처에 있고 그것은 우리의 가야할 길을 가로막습니다. 시인 김수영은 “우리의 적이 늠름하지 않으니 우리의 싸움이 이토록 힘들다”고 토로했죠. 신자유주의에서 궁극적 적은 도처에 숨어버리고 우리는 누구를 대상으로 싸워야 하는지 가끔은 길을 잃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적은 분명히 있었고 우리는 이들을 대상으로 지난한 싸움을 벌여야 했습니다. 그건 정신해방 운동의 전면전 선포에 가까웠습니다. 그리고 그 싸움의 최종적 의미는 한 가지입니다. 우리를 가두지 말라는 것.

2018년 6월 11일 마인드포스트 창간식 모임 (c)마인드포스트

J씨.

마인드포스트의 철학은 ‘우리를 빼고 우리에 대해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건 페미니즘에서도 그런 요청이 있는데 우리 역시 우리라는 존재성을 제외하고 권력자들이 우리에 대해 조정하고 관리하는 모든 억압에 저항하려는 도덕적 심급입니다. 지나칠 정도로 왜곡된 정신장애 관련 기사와 담론에 대해 우리는 문제제기를 했고 일정정도 그 담론을 수정하는 성과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정치 공동체가 정신장애를 왜곡해 해석하고 우리에게 부당하게 집행됐던 물리적·심리적 폭력이 존재하는 한 우리의 싸움은 이어질 것입니다, 싸움을 멈출 수 없는 이유입니다.

J씨.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는데 그건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겁니다. 백 년을 맹세한 사랑도 잊혀지고 변하는데 어떤 가치와 형체가 있어 천 년, 만 년을 변함없이 이어가겠습니까. 이런 말씀을 드리는 건 우리 정신장애인의 해방적 기획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존에 우리를 억압했던 정신병원과 같은 물리적 폭력의 장소가 조금씩 정신장애인의 인권을 보호하는 방식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조심스럽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만의 생각일까요. 신종 코로나바이라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류는 거대한 문명사적 변화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이 변화의 폭과 강도는 기존 시대에서 경험해 보지 못할 정도로 강하고 깊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문명사의 변화를 리드하고 있는 한국사회를 바라보면서 저 역시 조선 민족의 일원으로 태어난 것에 무한한 자부심을 갖게 됩니다.

배곯던 시절, 우리 선조들은 허리띠를 졸라맸습니다. 잘 살아 보자는 것. 우리의 후세에는 이런 배고픈 공동체를 만들지 않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그 이념에 묻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100년 만에 농경사회와 산업사회, 정보화 사회를 모두 이뤄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학승(學僧) 탄허 스님도 “우리 한국이 세계 문명을 리드할 날이 올 것”이라고 예언했었죠.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 예언 앞에 서 있습니다. K팝, K방역, K문화가 지금 그렇게 힘을 얻고 있습니다.

정신장애 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는 억압이 아니라 인권 옹호가 먼저인 정신병원들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 생각합니다. 2018년 악명 높았던 청량리정신병원이 문을 닫았을 때 저는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정신병원이라는 공간의 전면적 사망 선고로 읽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한국 정신보건 공간에서 소테리아 하우스, 오픈 다이얼로그와 같은 선진적 치료 방식들이 도입되고 있습니다.

100년 안에 정보화를 이룬 우리 민족이 정신보건 분야를 변화시키지 못할까요. 저는 한국 민중의 힘을 믿습니다. 분명히 어느 날, 우리는 인류사에서 가장 진보한 정신건강 시스템을 구축하게 될 거라고 감히 예언하고 싶습니다. 그때까지 마인드포스트는 힘을 다해 정신장애인 권익 옹호에 힘을 쏟겠습니다.

(c)마인드포스트.

J씨.

제3세계는 여전히 정신장애를 치안의 문제로 해석하고 쇠사슬로 발목을 묶는 등 폭력적 치료방법에 멈춰 있습니다. 그리고 노르웨이에서는 약물 처방 없는 치료 방법을 접목하는 가장 진보적인 정신보건 시스템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디쯤 있을까요.

저는 이들의 중간에 있지만 화살이 뒤로 물러섰다가 앞으로 나가듯이 우리의 후퇴와 같은 행위들이 사실은 앞으로 멀리 나가기 위한 전략적 후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후퇴의 공간에서 우리는 싸우고 있습니다. 더 이상 정신을 장악한 권력이 존재를 훼손하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은 결국 ‘좋은 세상’이라는 요청과 맞닿아 있는 것이겠지요.

J씨.

다시 오랫동안 편지를 띄우지 못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저희들이 더 나은 세상으로 가는 길목에 서 있겠다는 작은 약속을 드리고 싶습니다. 정신보건 시스템의 가장 진보적 구축은 도둑처럼 어느 날 우리 앞에 다가올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진보적 시스템 앞에서 ‘이게 뭐지’하는 심정으로 바라볼 때가 올 것이라는 것도요. 그때까지 힘을 내겠습니다. 힘겨우면 잠시 쉬었다가 가겠습니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마인드포스트를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기자들이 힘겨울 때 기댈 수 있는 곳은 마인드포스트를 아끼는 여러분이었습니다. 물론 J씨도 그렇고요. 여여(如如)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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