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와 상실의 시대…"재난 시기에 고위험군을 빨리 발굴하는 게 정신건강 서비스의 핵심”
코로나19와 상실의 시대…"재난 시기에 고위험군을 빨리 발굴하는 게 정신건강 서비스의 핵심”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0.09.04 21: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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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득 국가의 자살률이 저소득 국가보다 높아
세계 자살의 절반이 45세 이하 젊은층에서 발생
의료서비스 접근 어려운 시기…전화·SNS에 적극 투자해야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고립이 자살에 직접 영향 끼쳐
재난 취약 계층에서 여성 노동과 돌봄 위기 성찰해야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고소득 국가의 자살률보다 저소득 및 중간소득 국가에서 자살하는 비율이 전체의 79%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고소득 국가에서 극단적 선택이 만연하고 있다는 기존 예측에 반대되는 결과다. 또 현재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는 취약계층 중 특히 여성이라는 젠더의 노동력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고 위험의 직접적 담지자가 된다는 분석이 나왔다.

보건복지부와 중앙자살예방센터가 4일 주최한 ‘코로나 시대의 자살 예방’ 정책 누리토론회(웹세미나)에서 영상 발표를 진행한 WHO(세계보건기구) 데보라 케스텔(Devora Kestel) 정신건강국장은 국가 소득별 자살률을 분석한 결과 “중년 남성의 자살률은 고소득 국가에서 젊은 여성과 노인 여성 자살률은 저소득 국가와 중간소득 국가에서 더 높았다”고 말했다.

세계 자살의 52%는 45세 이하에서 발생했다.

지역별 10만 명 당 자살률은 동남아에서 가장 높았고 남성의 경우 유럽연합(EU), 여성은 동남아에서 가장 높았다. 남성 자살률은 고소득 국가에서 여성 자살률은 저소득 국가와 중간소득 국가에서 높았다.

이는 WHO가 2030년까지 목표로 하는 전 세계 자살률을 현재의 3분의 1 수준으로 낮추겠다는 정책 의제에 회의를 느끼게 하는 부분이라고 데보라 국장은 말했다.

데보라 국장은 “현재 38개국만이 국가 차원의 자살 예방 전략을 수립했고 이는 매우 낮은 수치”라며 “실효성 있는 자살 예방 체계를 갖추기 위한 국가 차원의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WHO는 세계 각국이 자살 예방 전략을 적용하기 위해 최소한의 기준으로 LIVE LIFE의 적용을 권고하고 있다. LIVE LIFE는 효과적 증거 기반 개입을 위한 도구의 적용 및 분석용 가이드를 의미한다.

LIVE LIFE 패키지는 자살 수단에 대한 접근 제한, 미디어의 책임 있는 자살 관련 보도, 청소년의 생활 기술 개발을 위한 학교 차원의 개입 방법 등을 담고 있다.

데보라 국장은 “WHO는 (자살 예방에 대한) 근거 기반 개입 방법들을 개발해 왔으며 각국은 우리가 개발한 개입 방식을 자국 상황에 맞춰 자유롭게 적용할 수 있다”며 “자살 수단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고 살충제와 같은 국제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자살 수단에는 더욱 그렇다”고 말했다.

백종우 중앙자살예방센터장은 코로나19와 한국의 자살 예방 정책을 주제로 발표했다. 백 센터장은 “코로나19와 같은 재난이 발생하면 초반에는 모두가 어려움을 이겨내자는 사회적 신뢰에 기반한 노력을 하게 된다”면서도 “그러나 이게 오래되면 국민적으로 부정적 감정에 영향을 준다”고 분석했다.

그는 “재난의 정신건강 서비스에서 스트레스 반응은 정상적 반응으로 감염병 상황에서 국민의 80%는 정상적으로 회복하는데 10~20%는 우울 등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다”며 “이걸 줄여나가는 게 자살 예방과 정신건강 문제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재난과 자살의 관계는 재난 성격에 따라 상이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미국 9·11 테러 당시 뉴욕에서 자살 증가는 없었다. 반면 홍콩은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유행 당시 고립된 노인의 자살이 증가했다. 2011년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은 그해 자살률이 변화가 없었지만 2년이 지난 후 현실이 변하지 않는다는 데 절망을 느낀 40~50대 가장들의 극단적 선택이 증가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백 센터장은 “이런 결과를 겪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찰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자살 동기는 정신건강의 문제, 경제적 어려움, 건강 문제가 가장 핵심적인 3대 요인이다. 이 문제는 하나로 수렴되지 않고 3.9개의 스트레스가 중첩되면서 발생한다. 코로나19 시대의 극단 선택이 증가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지점이다.

백 센터장은 “재난 시기에 고위험군을 어떻게 빨리 발굴할 것인가는 재난 정신건강 서비스의 핵심”이라며 “그러나 시설이나 정신건강복지센터 등의 찾아가는 서비스의 어려움, 복지관도 문을 닫은 상황에서 사회적 지지가 감수하면서 취약한 계층이 위험을 겪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복지와 의료서비스에의 접근이 어려운 상황에서 전화와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하다”며 “축적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 대한 대책은 보건복지부와 고용노동부 등 여러 부처가 협력해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정신건강 지표는 두려움인데 국민은 확진에 대한 두려움보다 낙인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다”며 “확진됐을 때 ‘어서 나아라’가 아니라 ‘너 왜 확진됐니’라는 비난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확진을 둘러싼 낙인의 두려움이 상당하고 확진자는 사회와 주변에 폐가 됐다는 걱정과 죄책감, 억울함이 있다”며 “확진자 사이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 수준을 유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유 교수는 “우리나라가 높은 수준의 방역 성과를 낸 것은 지도자와 방역 당국, 국민 모두가 개인의 책임과 역할을 강조해왔기 때문”이라며 “확진자 동선 공개가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자유의 제한을 넘어 감염을 탈인격적으로 대우하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는 코로나19 확진이 시작된 지난 2월부터 지금까지 8개월 동안 감염된 사람의 권리와 자유의 문제로 보기 보다 이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는 탈인격적인 관점에서 대응해 왔다는 의미다.

유 교수는 장기화되는 감염병 시대에 일상적인 ‘번아웃’(소진)에 대해 성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의 예방을 위해서는 사회적 신뢰 자본을 고갈하지 않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유 교수는 “신뢰 자본을 고갈시키지 않으면서 어떻게 상호 신뢰를 높일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며 “길게 보면 자살 예방 내지는 극단적인 정신건강 취약함의 문제를 증폭시키지 않는 게 예방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송인한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재난의 성격과 그 재난을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자살의 양상은 달라진다”며 “단기적 증가뿐만 아니라 실업, 고독, 만성화된 질병 등 자살과 정신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장기적 분석과 추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사회적 거리 두기에 따라 수반되는 경제 활동의 감소와 중단, 사회적 고립과 고독감, 인간관계의 단절로 인한 부작용에 대한 보완적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며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고립은 자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특별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디지털 시대에 소외되고 잊혀진 계급이 존재하지 않나 우려된다”며 “잊혀진 계급인 사각지대에 놓인 소외계층에 대해 자살 예방을 포함한 보건의료 복지 정책에서 밀려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명희 경상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은 자살자들이 여성이 더 많다는 걸 고려할 때 재난 취약계층에서 젠더 변수와 결합된 노동의 위기, 더 나아가 노동의 위기와 결합한 돌봄의 위기를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19 이후 매일 8000여 명의 여성들이 실업에 빠지고 있고 여성 임시일용직 또한 급감하고 있다”며 “여성 일자리는 저임금 노동이고 감염 위험 또한 높다는 보고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고위험 위험 노출 종사자의 대표적 직군이 보건의료 부문이고 이 분야에서 일하는 여성은 전체의 84.7%를 차지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전 세계적으로 보건의료 인력 다수가 여성이고 코로나19 시대에 이들이 위험의 직접적 담지자가 된다”며 “비경제 활동 여성의 증가로 가사와 돌봄을 전담해야 하는 여성의 돌봄 부담은 자살 위기를 증가시킨다”고 말했다.

이어 “돌봄의 성별화는 전염병이 촉발시킨 재난 특성에서 비롯된 젠더화된 효과”라며 “팬데믹은 대단히 성차별적이고 이를 심화시킨다”고 전했다.

전홍진 중앙심리부검센터장은 “자살 사망자 1000명을 심리 부검 분석한 결과 이들은 자살 직전에 언어적 신호, 신체적 신호를 보내는데 흔한 건 감정의 기복이 심해진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신체적 변화로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식사를 거의 못하며 언어적으로는 죽음에 대한 말을 많이 하고 신체적 불편감 호소, 자기 비하의 말을 하는 특성을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감정 상태의 변화, 수면 상태의 변화 등을 주변에서 잘 보고 도와줘야 한다”며 “코로나19 감염자나 회복자에 대한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일환 보건복지부 자살예방정책과장은 “코로나19 확진을 받았거나 자가 격리자들이 낙인이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해줄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며 “일반 국민들이 사회적 고립에 대한 케어가 필요한 부분은 관리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19로 과거보다 정신적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는데 정신건강복지센터와 상담센터 등이 대응하고 흡수하기에는 부족한 측면이 있다”며 “이 부분에 대한 대책 강화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번 누리토론회는 실시간 동영상 스트리밍 주소(www.youtube.com/user/spckorea)에 접속해 시청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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