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숙 “히말라야 등정한 장애인의 장애 극복 서사?..내 가족이라면 말릴 것”
강경숙 “히말라야 등정한 장애인의 장애 극복 서사?..내 가족이라면 말릴 것”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0.10.26 18: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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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숙 원광대 중등특수교육학과 교수 인터뷰
1990년대 특수교육은 전문성 인정 못 받는 척박한 시절
인간은 전인적이고 총체적 존재...약물로만 장애 치유할 수 없어
장애인 소외 없이 교육 받아야...지속 가능 발전의 의무
코로나19로 자살률 증가하고 빈부격차 더 커질 것
위험한 순간에 관심 갖고 함께 하는 게 정서적 심폐소생술
코로나 시대 고립된 정신장애인에 온라인으로 상담 도와야
동료지원가는 중요한 자원...온정주의 넘어 전문성 갖춰야
장애인 평생교육, 통합교육, 가족 지원 강화돼야
특수교육은 전문성과 함께 영혼이 있는 교육 자세 가져야
박종언의 만남: 길을 묻다 (c) 마인드포스트
박종언의 만남: 길을 묻다 (c) 마인드포스트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고운 소녀의 음성이었다.

강경숙(53) 원광대학교 중등특수교육학과 교수를 만나게 된 건 지인의 소개 덕분이었다. 전북 남원 출신의 강 교수는 어린 시절 사업 실패로 서울로 올라간 부모님과 떨어져 시골에서 할머니와 3년 정도를 살았다. 그는 그 고립된 어린 시절에서 원형처럼 가난과 사회적 배제를 배우게 된다. 이후 서울에서 중등교육을 받은 후 1986년 이화여대 특수교육학과에 입학했다. 그가 그 전공을 선택한 건 교회의 아는 언니가 그 학과를 다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시절, 그는 사회적 불의에 저항하고 정의를 사유했던 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 하늘 아래 첫 동네라는 봉천동 달동네에서 방치된 아이들을 모아 공부방을 열었다. 부모들은 가난했고 고립된 아이들은 본드를 흡입하며 유년기를 학대하고 있었다. 자신이 겪었던 어린 시절의 차별과 배제의 기억이 그를 그 아이들에게 다가가게 만들었다.

90년대 초 대학 졸업 후 서울 소재 일반 학교의 특수학급을 하는 특수교사로 일했다. 당시 장애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동정과 시혜에 멈춰있었다. 강 교수가 일하는 특수학교 교사들까지도 장애아이들을 따뜻하게 돌봐주면 다 해결되는 것으로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그는 그 사유를 넘어서고 싶었다. 분리된 교육 대신 일반학생과 장애학생이 함께 생활하고 함께 배우는 통합교육이 대안이라고 생각했다.

발달장애 청소년들은 의무교육을 다 이수한 후 갈 곳이 없어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거나 미인가 시설로 들어갔다. 교육의 고리가 끊기면 집 외에 갈 곳 없는 발달장애인의 존재는 가족에게 큰 부담이 되고 만다.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그가 장애인의 평생교육을 주창하는 이유다. 그는 학교 교사 후 교육부 공채 3기로 국립특수교육원 연구사로 근무하면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대학 강사를 거쳐 원광대학교에 특수학과가 개설되면서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그의 말 대로 그는 현장과 제도권 안에서 ‘열심히’ 살았다. 2014년 한국연구재단이 선정하는 인문사회 분야 교육학 국내 영향력 11위의 학자에 포함됐고 미국의 세계인명사전 ‘마르퀴즈 후즈 후’에 2016년, 2018년에 등재됐다. 2019년에는 제자들의 추천으로 대한민국스승상 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는 신체장애와 발달장애, 정신장애의 사회적 배제를 없애기 위해서는 지속가능한 교육이 담보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코로나19 시대에 비대면 온라인 서비스를 통해 집에 고립돼 있는 정신장애인들에게 다가가야 한다는 주장도 내놓았다.

장애가 단순히 생물학적 문제가 아니며 사회환경적으로 구성되는 의미이므로 전인적 치유를 위해서는 동료지원과 주변의 관계망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는 의견도 냈다. 그가 동료지원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다. 강 교수는 장애교육의 고유성과 가치를 정치적으로 펼쳐보고 싶어서 지난 총선에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로 출마했지만 당선권 안에 들지 못했다.

최근에는 유네스크 한국위원회 사무총장 후보에 도전했다. 그를 만난 건 지난 23일 <마인드포스트> 사무실에서다. 그 전에 한 가지 에피소드가 있다. 2018년 무렵 가족을 모두 잃은 자신의 제자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사채에 손을 대서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힘들다는 내용이었다. 제자의 사정을 보아넘길 수 없었다. 수천만 원의 돈이었다. 강 교수는 제자를 위해 손을 내밀었다. 제자가 교사가 되면 갚기로 하고 그는 그 돈을 대신 갚았다. 왜 그렇게 했냐는 기자의 질문에 강 교수는 “한 영혼을 살리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강경숙 원광대 중등특수교육과 교수 (c)마인드포스트.
강경숙 원광대 중등특수교육과 교수 (c)마인드포스트.

-사범대학 중등특수교육은 무엇을 가르치는 학부 과정입니까.

“특수교사를 양성하는 학과입니다. 시각장애, 청각장애, 지체부자유, 지적장애, 자폐행동장애, 정서행동장애, 학습장애 등 장애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을 양성합니다. 중등특수교육은 중·고등학교에 가서 일하려는 교사들을 양성하는 과입니다.”

-특수하게 설립된 장애학교에만 갈 수 있는 겁니까.

“일반 학교에는 특수학급이라고 통합교육을 받는 데가 있어요. 거기서 장애 학생들을 교육하는 과정이 있습니다. 특수교육도 교육청 소속의 지원 센터에서 장애 학생들 상담 지원과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대부분은 특수학교 아니면 특수학급으로 배정이 되죠.”

-특수교육을 하면서 이론과 현실의 괴리가 많았을 거 같습니다.

“그렇죠. 저도 졸업하고 일반 학교의 특수학급에서 근무를 7년 했거든요. 처음에 갔을 때는 선생님들도 특수교육을 잘 몰랐어요. 어차피 가르쳐도 잘 모를 아이들인데 잘 씻기고 잘 먹이고 잘 보호해주면 되지 않느냐는 의식이 많았어요.

1990년대 당시만 해도 특수교육의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았고 그저 사랑과 애정으로 돌보면 된다는 인식이 팽배했어요. 장애 학생들은 제대로 된 교사 학습 방법과 교재를 갖고 지도를 받아야 돼요. 현실적으로는 장애 학생 교육에 이렇게 많은 돈을 들여서 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습니다만 어디 돈으로 교육의 가치를 제한할 수 있겠습니까.”

-특수교육 하면 발달장애인이 먼저 연상됩니다.

“제가 발달장애 전공인데요. 지체장애, 시각장애, 청각장애를 감각장애라고 합니다. 이들 외에 인지적, 정서·행동적 문제가 있는 유형이 제 전공입니다. 발달장애라고도 합니다.”

-대학 시절 빈민활동이 교수님의 삶에 영향을 많이 끼친 것 같습니다.

“저도 초등학교 처음 들어갔을 때 집이 ‘폭망’했습니다. 아버지 사업이 갑자기 어렵게 돼서 부모님이 서울로 올라가시고 저는 시골 할머니 집에서 자랐어요. 7살부터 10살 때까지 살았는데 그 과정에서 공감 능력이 생긴 거 같아요. 힘들 사람들 보면 마음이 아프고. 빈민운동은 가난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어요.

그때는 관악구와 난곡 지역, 신림동 쪽에 비닐하우스도 많이 난립해 있었고 산동네도 달동네라고 불렀죠. 거기서 공부방 활동을 하면서 ‘하꼬방’(판잣집) 작은 방 하나에 할머니, 엄마, 아버지, 애들이 같이 자고 화장실도 공동으로 쓰는 하나밖에 없었어요. 애들은 방치돼서 본드를 흡입하고. 삶의 현장을 리얼하게 목격한 거죠.”

-그때의 삶이 자신의 길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했을 거 같습니다.

“네. 1980년대 당시는 사회경제적 빈부 격차도 심했고 이해되지 않는 현상들도 많았어요. 대학 시절 공부는 열심히 했던 편이라 도서관에 주로 가 있곤 했는데 공부만 하기에는 마음이 몹시 불편하고 빚지고 있는 것 같아 좀 괴로웠죠. 다니던 교회에서는 그런 아픔에 대해 별로 얘기되지 않아 좀 답답하기도 했고요. 사회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사람들을 만났고 그 당시 학생들과 사회에 참여하고 목소리를 내게 된 셈이죠. 운동권이었죠. 달동네 운동 함께 했던 경험이 삶에 영향을 미쳤던 거 같아요."

-제자들이 ‘소녀 감성’이라고 하더군요. 목소리도 소녀 같았습니다.

“(웃음) 애들을 제가 잘 반겨주고 웃어주고 안아주고. 제가 잘 웃고 잘 울어서 소녀 감성이라고 하는 거 같은데 목소리는 지금 안 좋아졌어요. 원래 낭랑(朗朗)했는데 강의가 많아져서 (웃음).”

강경숙 원광대 중등특수교육과 교수 (c)마인드포스트.
강경숙 원광대 중등특수교육과 교수 (c)마인드포스트.

-산티아고 이론(Santiago Theory)을 소개했습니다. 이 이론은 마음과 물질이 별개의 범주로 간주되지 않고 약물만으로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했는데 좀 더 설명해 주시면요.

“세상은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지 않습니까. 장애도 의료적 문제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과 생태학적으로 주고받는 유기적 상관관계에 있는 거죠. 그걸 소개하는 이론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아픈 사람이 치료를 위해 약물만 복용한다면 그건 낫는 게 아니거든요. 하나의 인격체는 홀리스틱(전인적)하고 총체적이고 통합적이어서 약물로만 해결할 수 없어요. 다양한 주변 관계들, 동료들의 지지가 영향을 미치는데 이 이론을 정신적 부분에 쓸 수 있겠다 싶어서 말했습니다.”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장애인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필수 조건을 ‘지속 가능한 교육권’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유엔 유네스코에서 2016년부터 2030년도까지 세계적으로 달성해야 할 17개의 목표를 제시했습니다. 환경 문제와 물의 문제, 여성 문제 등이 있는데 그 중 네 번째가 지속 가능한 발전 교육입니다. 그 하위 영역에 평생교육도 있고요. 장애인이 소외되고 교육에서 배제됨 없이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게 지속 가능 발전에서 하나의 의무입니다.”

-코로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선망했던 서구 백인 문명 사회의 조잡함과 공동체성을 외면하는 극단적 개인주의를 드러냈다고 생각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진짜 민낯을 봤죠. 잠잠했던 것이 다 드러나는 계기가 됐다고 봐요. 저도 미국에서 2년 정도 살았는데 옛날에 아메리칸 드림이라고 해서 미국 가면 다 성공할 수 있다는 신화를 꿈꿨지만 사실 그렇지 않거든요. 그곳에는 홈리스도 많고 차별도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미국은 의료나 복지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못합니다. 북유럽은 사회민주주의라고 해서 국가가 개입을 많이 하고 사회적 안정망을 짜고 있기 때문에 한 번 미끌어지고 떨어져도 국가가 건져주는 역할을 하죠. 미국은 그런 게 없어요. 서구사회에 선망했던 시선을 접고 어떤 면에서는 우리가 자긍심을 갖고 선도해나갈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는 게 중요해요. 너무 사대적이고 숭미주의적 시각이 많았어요. 이걸 성찰해서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 리드할 수 있는 걸 찾았으면 합니다.”

-코로나19 이후 이번 겨울이 지나면 자살률이 크게 올라갈 거라는 우려도 표명했습니다.

“보건복지부 자료를 보니까 그렇게 예상했더라고요.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도 76%가 감염 후에 발생한다고 하더라고요. 코로나 블루(blue·우울)라는 용어도 우리나라에서 만들었더라고요. 정신적으로 어려운 분들이 더 위축되고 증세가 더 많이 나타날 수 있죠. 일반인도 (정신질환) 위험군이 될 수 있고 이들은 코로나 이후 더 위축되고 격리되니까 자연스럽게 자살로 갈 우려가 많이 있습니다.”

-빈부 격차가 더 커진다는 말씀입니까.

“네. 빈부 격차가 더 심해질 거고 정신질환이 있는 이들은 경제적 활동이 쉽지 않아 더 많은 일자리를 잃게 되겠죠. 제 제자 한 명은 알바를 해서 버는 100만 원으로 가족을 부양해요. 동생은 중증장애인이고 아버지가 안 계시고 기초생활수급권자예요. 어머니가 동생을 돌봐야 해서 돈을 못 벌어요.

아침저녁으로 카페에서 일하고 극장에서 표 끊어주고 시급 받은 걸 합치면 100만 원을 받아요.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권고 사직돼서 알바를 못해요. 겨우 한 곳에서 일을 해서 지금 30만 원 받아요. 이런 아이들이 많을 거예요. 절대 빈곤에 놓이게 되는 거죠. 그럼 정신적으로 어려운 분들은 더 많이 (빈곤에) 노출되겠죠.”

-정신장애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을까요.

“제가 정서행동장애 강의를 해요. 보통은 뉴로시스(neurosis·신경증) 얘기를 많이 하거든요. 불안장애, 강박장애, 우울장애를 주로 강의하기 때문에 관심이 있었어요. 또 2016년에는 사회정서·심리적 약자를 돕기 위해 당시 간호학의 대부라 불리는 김수지 선생님(1942~2016)과 같이 사단법인 ‘좋은의자’를 만들었고 제가 상임이사를 맡았어요. 그 일이 계기가 됐죠.

제 주변 사람 중에 한 분은 직장을 다니다가 몇 차례 심하게 야단을 맞고 나더니 환청이 들리고 환시가 있다고 해요. 남의 얘기가 아니구나. 지금은 좋아져서 장애인재활시설에서 정규직으로 일해요. 그게 직접적 계기가 됐어요. 지금 ‘좋은의자’ 이사로 있는데 그것도 영향을 줬죠.”

-미국 정신과 의사 다이엘 피셔 박사의 정서적 심폐소생술(e-CPR)를 교육받아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좀 더 설명해 주시면요.

“급성질환자에게 신체적 CPR(심폐소생술)을 해서 살려내잖아요. 위험한 순간에 누군가 관심을 갖고 함께 해줘야 한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게 정서적 심폐소생술의 중요한 개념이더라고요. CPR의 C(connect)는 서로 연결하는 거, E(empowering)는 역량강화, R(revitalization)은 회복 등 3단계로 구분이 되는데 전문성을 갖고 정서적으로 힘든 이들에게 단계별로 적용하면 좋을 거 같아서 제안을 한 겁니다.”

-피셔 박사는 회복에서 중요한 것은 나와 모두가 인격적으로 존중받는 거라고 했습니다.

“사실 그래요. 약물로만 치료되는 건 아닌 거죠. 사람이 유기적이고 총체적인데 약물만 복용한다고 그가 갑자기 짠하고 나아지는 건 아니죠. 인격적으로 존중받고 이 경험을 통해 힘을 얻으면서 회복이 되는 건데요. 그건 제가 평소 생각한 것과 굉장히 일치하는 개념이에요.”

강경숙 원광대 중등특수교육과 교수 (c)마인드포스트.
강경숙 원광대 중등특수교육과 교수 (c)마인드포스트.

-온라인 정신건강 서비스 제도를 제안했는데 구체적으로 무엇인가요.

“정신질환이 있으면 세상 밖으로 안 나오게 되고 약도 복용 안 하고 병원도 안 가게 되면서 더 많이 고립되거든요. 코로나 시대에는 더 그렇죠. 이때 온라인 정신건강 서비스를 통해서라도 의사를 만나게 해야죠. 온라인으로 의사를 만나고 상담받으면서 회복될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되는 거죠. 핀란드에는 이 서비스가 자리를 잡고 있는데 우리도 이 제도를 벤치마킹해야 할 거 같아요.”

-정신질환으로부터의 회복은 전인적 회복을 위해 온라인 서비스 접근을 강조했습니다. 어떤 의미입니까.

“약물만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격려를 통해 회복되는 통합적 사회서비스를 해야 한다는 겁니다. 회복 시점에서 온라인 서비스 접근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봐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직 원격 서비스가 법적으로 도입되지 않았어요. 코로나 시대에 저는 이 대안적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온라인에 접근할 수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런 경우에는 직접 찾아가는 서비스도 함께 해야죠. 이 경우에 동료지원 서비스가 중요해요. 의사들이 요즘은 왕진을 안 하잖아요. 동료지원 서비스에서 동료지원가와 온라인 서비스가 병행되면 좋겠습니다.”

-초인적 노력을 통해 장애를 극복했다는 장애 극복 서사, 혹은 영웅담은 사회적 편견을 더 심어주는 역효과가 아닐까요.

“개인적으로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미디어에서 장애를 묘사할 때 장애에 대한 개념이 시혜나 동정의 대상이면서 극복의 대상이기도 하죠. 생각해 보세요. 장애가 있는 사람이 히말라야 산에 올라가 깃발을 꽂았다고 하면 장애를 극복했다고 언론에 보도되고 그 사람은 자긍심을 갖겠죠. 만약에 내 가족 중에 그렇게 한다면 저는 눈물이 날 거 같아요.

그걸 극복하기 위해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일반인도 하기 힘든 극복을 장애인으로서 하면 저는 가슴이 너무 아플 거 같아요. 얼핏 보면 멋있다고 하겠지만 그 사람 입장이 돼 보면 얼마나 처절했을까요. 장애는 자연스러운 거고 굳이 극복해야 될 대상이 아니에요. 장애를 왜 극복해요? 장애는 그냥 더불어 있는 거예요. 극복할 수가 없어요.

정신질환도 마찬가지입니다. 신경전달 물질의 문제인데 이걸 극복하려고 애쓸 수 없는 문제죠. 장애 극복 서사를 만들어내는 개념이 장애인을 거꾸로 상실감에 빠지게 만들어요. 똑같은 장애인데 저 사람은 저걸 해냈고 나는 못했다라는 비교를 하거든요. 역효과에요. 미디어에서 장애를 극복한 아무개라고 하면 멋있죠. 제 가족이 그렇게 한다면 저는 말릴 거에요.”

-정신장애인의 동료지원가를 굉장히 강조했습니다.

“동료지원가는 굉장히 중요한 자원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자기랑 똑같은 문제가 있는데 먼저 그 길을 가고 그걸 이겨냈다면 얼마나 힘이 될까요. 내가 어떻게 가야 될 지에 대한 길도 보여줄 수 있잖아요. 동료지원가는 일자리 창출도 되거든요. 효과가 좋아요. 다만 동료지원가는 전문성을 갖춰야 해요. 왜냐하면 온정적으로만 할 수 없는 거고 마냥 좋다라고만 얘기해 줄 수 없는 게 이 동료지원가 일이에요. 긴급한 상황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등을 전문적으로 배워야죠. 그걸 강조하고 싶었어요.”

-정신병원 입원과 동시에 절차보조를 비롯해 입원환자가 퇴원 이후의 삶을 계획하도록 하는 지원 시스템도 정신병원이 거부하면서 작동하지 않습니다.

“정신병원은 병원이니까 치료에 치중하는 거겠죠. 회복 시기까지에는 신경을 쓰지 못할 거 같아요. 그건 상담의 영역일 수 있을 거고요. 지속적인 치료와 재활, 회복 세션을 벤치마킹할 수 있는 모델이 구축되면 그걸 확산시킬 수 있겠죠. 정신병원에서 그걸 못하는 걸 일정 부분 이해가 됩니다. 치료하고 긴급한 상황에 인력을 투입하니까요. 퇴원 이후의 삶을 계획하는 건 상담과 연관성이 있어서 정신병원에서만 할 수는 없을 거 같아요.”

강경숙 원광대 중등특수교육과 교수 (c)마인드포스트.
강경숙 원광대 중등특수교육과 교수 (c)마인드포스트.

-신체장애인의 자기결정권에 비해 정신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은 현재와 같은 정신건강 치료 시스템에서 온전히 행사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자기결정권을 가르칠 때 지적장애에 대해 얘기해요. 그건 인지적 능력이 떨어질 때 얘기에요. 정신장애인의 경우에는 다른 차원이죠. 인지가 떨어진다기보다도 정신적인 문제니까요. 어떤 면에서는 그걸 신뢰하지 못해요. 정신장애인은 그렇게 할 권리를 내버려두면 불안하다고 믿는 거 같아요.

절대 그렇지 않죠. 자기 인생을 자기가 옹호하고 존중받아야 할 독립된 인격체란 말이죠. 물론 스펙트럼이 다양해서 위험한 케이스도 극소수 있잖아요. 그럴 경우에는 협의를 해야죠. 정신지체도 그래요. 지적장애라고 하는데 저는 학생들에게 인지가 떨어지는 상황에서 교육 계획을 짤 때 그들의 의견을 들으라고 해요. 전문가의 입장에서만 짜면 안 되는 거죠. 협의해서 목소리를 들어야 하거든요.

정신질환은 인지능력이 떨어진 게 아니라 신경전달 물질의 문제로 정신적으로 힘든 경우잖아요. 자기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다만 전문가와 함께 상담하거나 동료지원가와 함께 협의하는 부분은 필요하죠.”

-온라인 치료적 파워는 비대면으로 은둔하는 정신질환자에게 도움을 줄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좀 더 설명해주시면요.

“숨어 있거나 세상에 안 나올 경우 온라인으로 접근할 수 있거든요. 사람과 만나는 걸 힘들어하는 이들에게도 굉장히 편하게 할 수 있어요. 중요한 건 디지털을 거쳐 사람을 만나게끔 관계를 형성할 수 있게 도와야죠. 회복에 이를 수 있도록 의료적 서비스를 그런 식으로라도 제공해야 돼요.”

-장애 판정 시 신체장애인 위주로 평가를 해서 정신장애인이 장애등급을 받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정신장애와 관련된 법은 따로 있죠. 지금은 장애 판정에서 등급은 없어지고 경증과 중증으로 구분돼죠. 그런데 지적장애와 자폐장애는 발달장애지 정신장애가 아니거든요. 실제 멘탈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란 말이죠. 장애등급을 하면 사회적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게 되게 많아요.

낙인 효과가 있어서 장애판정을 안 받으려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장애와 관련된 복지 서비스를 제공받는 데는 이 과정이 필요해요. 중요한 건 장애인복지법 상 장애로 등록될 수 있게 정신장애인들이 더 많이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세계 교육 분야 석학들은 코로나19로 변화될 교육 환경에 대해 ‘디지털 혁신’이 필수라고 했습니다.

“제가 유네스코 위원으로 자료를 찾아 보니까 전체 인구의 98% 가까이가 교육을 못 받아요. 비대면으로 해야 되고 학교를 못 나오니까요. 결국은 면대면으로 안 되니까 비대면으로 교육할 수 있는 옵션이 있어야 해요. 아무리 코로나에서 회복이 된다 해도 거리가 멀어서 못 오는 경우가 있겠죠.

우리나라는 집집마다 컴퓨터 한 대씩 있지만 저개발 국가에는 전기도 안 들어오고 교육에 손을 놓아 버린 상태에요. 최근에 제가 부탄, 동티모르, 라오스의 경우를 조사해 봤는데 부탄의 경우 아예 교육을 안 해 버리더라고요. 왜냐하면 컴퓨터도 없고 스마트폰 있는 경우도 10%도 안 되니까.

고가의 디지털 장비를 갖출 수 없으면 교육에 접근할 수 있는 것들을 제공하도록 국가 간에 서로 도와야죠. ODA(공적개발원조)를 통해 저개발 국가를 지원하는 서비스죠. 특수학교도 만들어주고 도로도 만들어주는 서비스를 제공해야죠.”

-문재인정부 출범 전 교수 싱크탱크 ‘국민성장’에서 장애인 교육 위원이었습니다. 한국사회의 장애인 교육은 어떤 문제점이 있습니까.

“싱크탱크의 교육 분야에서 장애인 분야 페이퍼를 만들어서 정책 제안을 했는데 저는 평생교육 쪽 얘기를 해 보고 싶어요. 장애인은 고등학교까지 모든 게 무료에요. 그런데 그걸 마치면 갈 데가 없어요. 교육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와야 돼요. 그리고 미인가 시설이나 데이케어센터(주간보호센터) 같은 데를 다니거든요.

중증 장애인의 경우 교육보다는 보호 개념으로 성인이 됐는데도 프로그램 없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니까 장애인의 교육권을 보장하고 평생교육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많이 만들어야죠. 또 장애인 교육도 문제지만 장애인을 둔 가족의 지원도 필요해요. 장애 당사자의 문제를 더 확산해서 가족도 지원하고 장애인에게 생애주기별로 평생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하는데 통합교육도 아직 잘 안 돼요.

우리나라는 학력 중심 교육을 하기 때문에 중·고등학교 가면 장애 애들이 발붙일 수가 없거든요. 일반 학급에 가면 애들이 ‘왕따’ 시키고 교육을 방해하니까 통합교육도 중요해요. 즉 평생교육과 통합교육, 가족 지원이 강화돼야 합니다.”

강경숙 원광대 중등특수교육과 교수 (c)마인드포스트.
강경숙 원광대 중등특수교육과 교수 (c)마인드포스트.

-영혼이 있는 교육을 주창하셨습니다. 영혼이 있는 교육이란 무슨 의미입니까.

“특수교육은 전문성이 정말 중요합니다. 그런데 궁극적으로는 사람인 거 같아요. 사람에 대한 사랑과 관심, 따뜻한 인성 없이는 그런 교육을 할 수가 없거든요. 제가 특수교사도 했고 교육부에서 행정도 했었고 지금은 가르치는 교수에요. 저는 제자들이 임용고시 시험에 붙기 위해 열심히 하는 그런 교사를 만들어내는 것 보다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영혼을 소중히 여기는 교사로 만들고 싶어요. 그런 의미에서 영혼이 있는 교육이라고 말했습니다.”

-삶을 개척해오신 건가요. 아니면 운도 따랐던 걸까요.

“저는 기독교의 영향이긴 한데요. 청지기 같은 개념인데 저에게 주어진 시간을 잘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인생은 한 번밖에 없는 거고 지나간 시간은 오지 않으니 지나가고 있는 현 시간에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한 게 기본 자세였어요. 그래서 많이 이뤘어요. 초등학교에서 장애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에서 교육부로 갔다가 선생 하기 전에는 세이브더칠더런이라는 비정부기구에서 있었고, 교수가 됐다가 지금은 대통령 직속의 국가교육회의도 하고 유네스코 위원도 하고 훈장도 받고 세계인명사전에도 실리고요.

제가 성공을 하기 위해 그렇게 살았던 건 아니지만 개척을 해 온 건 사실이죠. 제가 좋아하는 용어가 운칠기삼(運七技三)입니다. 아무리 사람이 기술이나 재능이 뛰어나도 삼의 역할밖에 못 하는 거 같아요. 사람이 할 수 없는 영역이 7할은 되는 거예요. 사람이 다 이뤘다고 한들 하늘에 뜻이 닿지 않으면 그게 문이 안 열리면 안 되는 거거든요. 뜻을 세우고 최선을 다 하다 보면 하늘이 그 문을 열어주는 거 같아요.”

정치에 다시 도전할 거냐고 물었다. 그는 “비례대표로 기회가 오면 도전하고 싶은데 지역구는 자신이 없다”고 했다. 이유를 물었다. “지역구 의원은 여기저기 사람도 많이 만나고 악수도 하고 온갖 행사들, 초상집이나 입학식 등도 다 다녀야 하는데 그러면 너무 삶이 번잡할 거 같아요. 저는 입법을 통해 정책을 개선하는 등의 일을 하는데 관심이 정말 많아요. 할 수 있다면 공부를 많이 한 전문가로서 비례대표로 가고 싶어요.” 그리고 덧붙였다.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사무총장 일도 하고 싶습니다. 기도해 주세요.” 기자는 멍한 눈으로 그의 순한 눈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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