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장애인가족협회 “준비 안 된 정신건강복지법 시행규칙 시행 유보해야”
정신장애인가족협회 “준비 안 된 정신건강복지법 시행규칙 시행 유보해야”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1.01.11 20:4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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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상 축소·이격거리 확대 의무화하는 법 시행규칙에 ‘제동’
“정신병원 병상 급격 감소로 입원 더 어려워질 것” 우려
“당사자·가족·전문가 논의 통해 부작용 최소화해야”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가족협회)는 보건복지부가 입법예고 중인 정신건강복지법 시행규칙에 우려를 표하며 이의 시행을 유보해달라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11일 가족협회는 이 법의 시행규칙 일부개정안의 시행을 유보하고 가족, 당사자, 전문가, 현장 인력 들이 포함된 토론회 등을 통해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해 11월 보건복지부는 정신건강복지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주요 내용은 ▲입원실 당 병상 수 10병상에서 6병상으로 축소 ▲입원실 면적 기준 1인실 6.3㎡에서 10㎡로, 다인실 4.3㎡에서 6.3㎡로 확대 ▲병상 간 이격 거리 1.5m ▲입원실 화장실, 환기 시설 설치 등을 담고 있다.

이 같은 정부 입법예고는 지난해 2월 경북 청도대남병원 등 정신과 폐쇄병동에서 지내는 정신장애인들이 신종 코로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집단 감염되고 일부 사망한 데 따른 조치다.

정부는 입법예고를 거쳐 3월 5일부터 신규 정신의료기관에 이 기준을 모두 적용하기로 했다. 기존 정신의료기관은 2022년 12월 31일까지 이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가족협회는 정신장애 당사자들이 좀 더 쾌적하고 감염질환으로부터 안전한 환경에서 치료받기를 원하는 것으로 개정안 취지에는 공감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가족협회는 “(개정안 시행 시) 전국 정신병원 병상의 급격한 감소로 인해 지금도 어려운 정신병원 입원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며 “현재도 까다로운 비자의 입원 절차 및 코로나19로 인해 신규 입원이 힘들어 입원 치료가 필요한 정신질환 당사자의 가족들이 발을 구르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설령 (병원들이) 그런 조건을 어렵사리 충족하더라도 병상 자체가 없어서 입원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져 가족들을 지금보다 더 힘든 처지로 내몰 것”이라고 우려했다.

단체는 또 입원 치료가 필요하지 않지만 지역사회에서 살 집 등 지지체계가 없어 정신병원에 머물러야 하는 ‘사회적 입원환자들’을 퇴원시키면 부작용이 없을 거라는 일부의 주장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가족협회는 “그런 환자들 상당수가 무연고 환자이거나 가족과의 관계가 소원해서 퇴원하면 거주할 곳이 마땅치 않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며 “정신요양병원이나 그룹홈 등의 현 가용자원을 최대한 활용한다해도 제도 변화로 인해 퇴원하는 환자들을 지체없이 다 받아들이는 것은 무리”라고 밝혔다.

이어 “신규 정신병원 개설이나 병상 확충 방안도 해당 지역민들의 편견에 따른 민원 때문에 어려워졌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며 “특히 대도시나 중(中) 도시급에서 입원 병상 급감이나 폐원은 정신질환 당사자와 가족 입장에서 정신의료기관 접근성 하락으로 이어진다”고 분석했다.

가족협회는 정신과적 응급상황에 대비한 법률적·제도적 시스템의 구축 없이 시행규칙이 진행된다면 사건·사고의 증가와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이 더 심화될 거라는 우려도 표명했다.

지난 2019년 4월 경남 진주의 한 임대아파트에 거주하던 안인득(당시 42세)은 망상에 시달리다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르고 화재를 피해 대피하던 거주민들에 흉기를 휘둘러 5명이 숨지고 22명이 부상을 입는 사건을 저질렀다. 이후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점점 더 나빠졌다.

가족협회는 “(사건 이후) 당사자뿐 아니라 가족들도 사회적 낙인과 위축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며 “가족협회와 유관단체의 허탈감이 매우 심하다. 이 상황보다 더 나빠진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고 토로했다.

가족협회는 정부 요구안으로 “정신건강복지법 시행규칙의 확정·시행을 일단 유보하고 공개적 논의를 거쳐서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좋은 취지는 최대한 살리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정신질환자의 특수성을 감안해 감염된 정신질환자를 위한 신종 코로나바이라스 감염증(코로나19) 특수 감염 병상 및 자가격리 시설을 충분히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신질환 당사자의 인권과 사회안전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정신응급 대응 시스템 개선 논의의 중요성과 시급성을 인정해야 한다”며 “시스템 개선이 병실 환경 개선보다 선행되거나 같이 갈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사회적 입원 환자들의 퇴원 후 거주, 재활 등을 위한 대책을 수립하고 그 대책에 병실 환경 개선보다 선행되거나 같이 갈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가족협회는 이와 함께 “사회적 입원환자들에게는 병원이나 정신요양원에서 입원하거나 지역사회에 나와 방치되거나 가족에게 모든 부담을 지우는 두 가지 선택밖에 없는 현 상황을 타개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적절하고 다양한 유형의 커뮤니티케어의 도입·지원 방안의 수립과 실천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아울러 “병실 환경 개선을 위한 시설 기준의 변화와 정신응급 시스템, 치료 환경 개선, 커뮤니티케어 등을 논의할 협의제를 만들어야 한다”며 “보건복지부가 당사자, 가족, 전문가 등과 함께 낙후된 정신건강 복지 환경을 개선할 큰 그림을 그리고 함께 하자”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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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21-01-11 22:21:38
왜 당사자도 아닌 가족단체를 굳이 "우리"의 시선에 넣으셨나요? 당사자의 권리와 배치되는 주장을 하는 의견이 어째서 우리 정신장애인의 의견이 될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