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시작된 ‘대규모 탈원화’ 논란…“의료권력 부끄러워해야”
또 시작된 ‘대규모 탈원화’ 논란…“의료권력 부끄러워해야”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1.01.05 19: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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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 입법예고에 정신의료계 “속도 조절을”
정신장애 인권단체들 “입원환자 지역사회로 다 나와야”
정신병원 수가 올리기 위해 정부에 압박하는 ‘모양새’

대한신경정신의학회(대신정)를 비롯한 정신의학 관련 14개 학회가 지난 4일 성명서를 내고 정부가 추진 중인 정신건강복지법 시행규칙 개정안이 준비되지 않은 정신장애인들의 대규모 탈원화가 이뤄질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했다.

이들은 입법예고된 개정안이 의료 현장과 현실적으로 맞지 않으며 실태조사를 통해 충분한 논의를 거쳐 진행되었는지에 대한 의문을 표시했다.

이에 대해 정신보건 분야에서는 반발이 나오고 있다. 장기입원 위주의 의료체계를 근본적으로 반성하고 지역사회에서 정신장애인들이 살아갈 수 있는 방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부가 지난해 11월에 입법예고한 주요 내용을 보면 ▲입원실 당 병상 수를 최대 10병상에서 6병상으로 축소 ▲입원실 면적 기준 현행 1인실 6.3㎡에서 10㎡로 확대 ▲다인실은 환자 1인당 4.3㎡에서 6.3㎡로 강화 ▲병상 간 이격 거리 1.5m 이상 ▲입원실에 화장실과 손씻기 및 환기시설 설치 ▲300병상 이상 정신병원 감염병 예방을 위한 격리병실의 별도 설치 등을 담고 있다.

이 같은 정부의 입법예고는 지난해 경북 청도대남병원과 대구 제2미주병원, 서울 다나병원 등에서 장기입원한 정신장애인들이 집단적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감염돼 다수가 사망하는 상황에서 나온 조치다.

앞으로 신규 정신의료기관은 이 입법 조치에 따라 규정을 지켜야 하고 기존 정신의료기관은 2022년 12월까지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대신정 등 학회들은 “의료현장의 현실에 맞지 않을 경우 취지와 달리 개정 시행규칙의 통과 이후는 돌이키기 어려운 심각한 후유증이 예상된다”며 “코로나19 사태 극복 후 원점부터 다시 검토할 것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이어 “현 개정안이 실태조사와 개선방안 연구 등 현황 파악과 개선 방향에 대한 충분한 논의를 거쳐 진행됐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학회들은 “개정안은 주소지 이전이나 개설 변경을 하는 경우도 적용돼 2년의 유예기간조차 의미가 상실된다”며 “정신의료기관의 수가와 의료급여 정액 수가가 원가에도 못 미치는 상황에서 이에 대한 개선책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병실 급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의료기관들이 시설 기준에 맞춰 생존하기 위해 집단치료실, 재활치료실을 병실로 전환해 적절한 프로그램을 실시하지 못하게 되는 엉뚱한 방향으로 진행될 위험성이 높다”며 “정신병동 시설 기준에 의료법 기준보다 더 강화된 기준을 제시하는 것은 실효성이 전무하다”고 우려했다.

이들 학회는 정신응급의료시스템의 핵심인 지역사회 기반 급성기 병동 지원책과 대학병원급의 폐쇄병동의 의무화 등 특단의 조치와 함께 급성기와 재발한 정신장애인의 신속한 치료를 위해 이송과 치료기관 연결을 위한 정신응급센터 등 제도 정비에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정신장애인 당사자 단체와 정신보건 의료진, 지역사회 활동가들에게서 오랜 시간 탈원화 준비를 하지 않다가 이제 와서 대규모 탈원화를 우려하는 것은 정신병원들이 자기 이익을 위한 것이란 주장이 나오고 있다.

정신과 전문의 A씨는 <마인드포스트>와의 통화에서 “입법예고 개정안은 분명 가야할 방향은 맞지만 개정 저지의 목소리를 의사들이 내는 건 현장의 혼란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의료법 상 적용이 예외적으로 제외됐던 정신과 폐쇄병동의 장기입원 형태는 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A씨는 “지금의 상황에서 두 가지의 방법이 있는데 하나는 병원 프로그램실이나 면담실을 모두 병동으로 만드는 것”이라며 “둘째는 그것도 안 되면 병원 환자들을 퇴원시켜야 한다”고 전했다.

특히 “지역사회 사회복귀시설이나 주거시설에 빈 자리가 많다”며 “장기입원 환자들이 지역으로 옮기는 기회와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렇지만 “지역사회 탈원화 플랜이 없는 상태에서 시설 기준만 강화하라면 강제 퇴원이 많아질 것”이라며 “공동생활가정과 입소 시설이 꽉 차 있는 게 아니니까 그것과 연동해서 병원의 병상을 줄여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정신장애와인권 파도손 이정하 대표는 “정신의료기관 의사들은 기존 병상수를 유지하려고 하지 급격한 변화를 못 받아들인다”며 “환자가 갈 곳이 없다는 이유지만 지역사회 인프라를 만들어서 다 나오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료학회들은 입법예고가 시행되면 대규모 탈원화가 진행돼 2만5000명이 지역사회로 나오게 되고 이들을 맞아줄 지역사회의 대비는 미비하다는 주장에 우려를 표명했다.

이 대표는 “개인 입장은 다 지역사회로 나와야 한다는 것”이라며 “환자의 수가를 올려서 입원 환경을 좋게 하고 급성기와 만성기 환자를 구분해서 초기 급성기에 재원을 집중 투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신건강전문요원 B씨는 “정신병원은 수가가 저수가이기 때문에 그 돈 받아서 이익을 못 낸다”며 “이익집단화돼 정부를 압박해서 수가를 올리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오랜 세월동안 환자들은 치료라는 명목으로 열악한 상황에 있었는데 그 당시에는 의료단체들의 그런 요구가 없었다”며 “그런데 지금 밥그릇에 영향을 미치니까 분노하는 것. 그게 본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B씨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의사와 간호사가 고생했는데 정신과 의사들이 그만큼의 고생을 했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제시했다. 특히 코로나19 상황에서 의료단체에 대한 국가의 정책적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정부도 이들의 ‘볼멘 소리’에 부담을 안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코로나19 때 청도대남병원을 봤지 않나. 거기 메트리스를 깔고 생활했다”며 “그런 환경이 치료라는 목적으로 만들어져 왔다. (의료단체가) 정책적으로 반성하고 그런 식의 성명서를 내는 걸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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