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 우울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음악
힙합, 우울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음악
  • 이관형 기자
  • 승인 2021.02.02 19: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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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힙합’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과거에는 헐렁한 패션, 락카로 벽에 낙서하는 그래피티, 혹은 라디오를 어깨에 메고 거리를 다니며 음악을 듣는 흑인이 떠올랐습니다. 그들만의 문화였고, 비주류로 여겨졌죠.

그러다 힙합은 서서히 대중적으로 사랑을 받게 됩니다. 미국에서는 에미넴 같은 백인 랩퍼가 등장하여, 더 이상 특정 인종만 즐기는 음악이 아님을 입증했죠. 우리나라에서도 서태지나 현진영부터 시작해, 드렁큰 타이거, 가리온 같은 언더그라운드 힙합을 거쳐 현재는 TV 프로그램인 ‘쇼미더머니’를 통해 대중화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내뱉는 몇 마디의 문장과 단어들은 그 어떤 연설보다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강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특히 힙합을 사랑하는 청소년이나 젊은 층의 대중들은 랩퍼가 쓴 가사를 들으며 가치관과 생각에 많은 영향을 받게 됩니다.

이처럼 노래를 뛰어넘어 문화가 되어가고 있는 힙합에 대해 미국의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의 연구진(알렉스 크레소비치 외 3인)은 2020년 12월, JAMA Pediatrics(소아과학학술지)에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연구진은 1998년부터 2018년에 이르기까지 5년을 주기로 ‘빌보드 랩 음악 차트’ 상위 25위권 노래, 총 125곡의 가사를 분석했습니다. 특히 정신질환과 관련된 내용(불안, 우울증, 자살, 스트레스, 정신질환을 암시하는 표현)에 초점을 맞추어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상위 25위권에 곡을 올린 대부분의 힙합 가수들은 흑인 남성이었으며, 노래를 발표할 당시의 평균 연령은 28.2세였습니다. 빌보드에 상위 25위권에 오른 노래 중 32%의 곡이 가사에 불안을 나타냈고, 22%의 곡에서는 가사에 우울증을, 6%는 가사에서 자살을 언급했습니다.

또한 1998년에서 최근에 이르는 동안, 이러한 정신질환 관련 가사를 담은 곡은 점차 늘어났습니다. 먼저 정신질환에 대한 은유적 표현은 1998년 2개 곡에서 2018년 11개 곡으로 증가했습니다. 그리고 우울증이나 우울한 생각에 대한 언급은 1998년 4개 곡에서 2018년 8곡으로 증가했습니다.

가사 중에는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깊은 우울증을 겪으셨어요(went through deep depression when my mama passed …)”같은 직접적인 표현부터, “끄트머리까지 다다랐다(pushed to the edge)", “내 안의 악마와 싸우고 있다(fighting my demons)" 등 극단적 상황이나 정신질환을 암시하는 내용을 주로 담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가사는 가사를 쓴 힙합 가수가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사회적 환경으로 인해 생겨난 문제를 표현한 것이라고 연구원들은 밝혔습니다.

하지만 연구진들은 가사를 연구하며, 힙합 가수들의 의도를 해석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으며, 음악을 듣는 대중들이 이런 가사로 인해 긍정적인 영향을 받는지,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지 정확히 판단할 수 없다는 한계를 지적했습니다.

이번 연구의 주 저자이자 전직 음악 프로듀서인 알렉스 크레소비치(건강 커뮤니케이션학 박사과정)는 인터넷 언론지 아이뉴스(inews.co.uk)와의 인터뷰를 통해 “가수들이 가사를 통해 자신의 정신적 어려움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오히려 극단적 선택을 예방하는 안전장치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이 힙합 아티스트들은 지구에서 가장 멋진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정신질환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은 젊은이들이 정신질환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또 정신적 어려움 가운데 자신을 어떻게 되돌아보는지에 큰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1991년 발매된 힙합 그룹 Geto Boys의 노래 ‘Mind Playing Tricks on Me(나를 속이는 마음)'은 순간적으로 유행하고 사라지는 음악이 아닌, 오랫동안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노래라며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습니다.

“예술가들은 가벼운 생각으로 ‘나는 우울하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해야 할 일은 우울증을 가진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음악과 가사를 통해 감정을 묘사하는 것입니다.”

이번 연구에서 밝힌 그의 말처럼, 힙합을 비롯한 음악과 다양한 문화적 창조 활동이 대중적 공감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정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논문 출처

https://pubmed.ncbi.nlm.nih.gov/33284350/

기사 출처

https://inews.co.uk/news/science/mental-health-metaphors-suicide-depression-rap-music-explained-786445

https://www.usnews.com/news/health-news/articles/2020-12-07/mental-health-taking-more-of-the-stage-in-rap-music-study-says

https://www.okayplayer.com/music/rap-songs-that-address-mental-health-depressio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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