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정치는 죽었다…너희들의 ‘집단적 조현병’이라는 정치적 수사를 잊지 않겠다”
“오늘 정치는 죽었다…너희들의 ‘집단적 조현병’이라는 정치적 수사를 잊지 않겠다”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1.02.01 18: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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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초선 31명 “정부의 북한 원전건설 의혹은 ‘조현병’”
플라톤 “정치를 외면한 결과는 저질의 인간들에게 지배받는 것”

그래. 인정한다. 너희들이 어떻게 조현병 증상을 바라보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인정한다. 너희들의 알량한 정치적 목적을 위해 정신장애인이 정치적으로 어떻게 이용되는지를.

분노하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않겠다. 하지만 나의 글은 분노가 묻어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1일 국민의힘 초선 의원 31명은 우리 정부가 북한에 원전을 지어주려 했다는 의혹에 대해 여권의 대응을 “집단적 조현병”이라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인정한다. 너희들이 이 정신적 병리의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는지를. 너희들도, 너희들의 자식도, 또 너희의 삶과 관련된 이들도 한 번도 걸려보지 못한 ‘조현병’이기에 얼마나 상대를 모욕하고 비하하기 위해 이 병명을 사용했는지를.

사실 너희들은 갑(甲)이다. 그리고 우리 정신장애인은 너희들의 시선에도 포착되지 못하는 숨죽이고 살아가는 을(乙)이다. 이 명제를 부정하고 싶은가. 갑으로 살아온 너희들이, 을보다 못한 더 밑바닥 을의 세상에서 살아가야 하는 조현병 당사자들의 삶을 알고 있을까.

국민을 통합하기 위한 정치라고? 그래, 인정한다. 너희들이 생각하는 국민의 범주가 어디까지이고 어디서 멈춰버리는지를. 그 멈춰버린 시선의 그 마지막에 너희들이 말하는 조현병 당사자들이 있다는 것을.

사회적 약자의 고통을 돌아보지 못하는 너희들의 파렴치하고 부끄러운 워딩에 대해 이제는 절망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그러기에 너희들은 정치적으로 너무 많은 정신장애인들을 죽여왔다.

이는 한 공당의 대표가 광주민주화운동을 ‘사태’라고 표현한 것과 같다. 자기 세계 중심으로 살았고 권력의 중심에서 호의호식하고 살아온 자들이 수백 명의 국민이 희생당한 저항운동을 두고 ‘사태’라고 언급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 있다. 그러므로 너희들도, 호의호식해온 너희들도 정신장애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나는 깨닫는다.

그 깨달음은 내가 스스로 깨달았음이 아니라 너희들이 얼마나 저속하고 비열하고 천박하게 약자를 이름을 빌어 너희들의 정치적 상대를 모욕하려 했는지를 느끼면서 깨닫는 서글픈 '각성(覺醒)'이다.

또한 나는 깨닫는다. 너희들의 발언을 보면서 우리가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를 받게 되는 것이라는 플라톤의 명제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러므로 당신들은 저질스러운 인간들이다. 국회의원으로서 멋진 양복에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좋은 차를 타고, 어디에 가서도 대접받고, 현재의 권력을 중심으로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고, 시장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서민 행세를 하고, 권력에 도취돼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약자들의 삶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함구한다는 이유에서 당신들은 저질이다.

묻고 싶은 게 있다. 왜 정부의 정치 행위를 “집단적 조현병”이라고 불렀는지. 왜 정부의 ‘북한 원전건설 추진 의혹’이 조현병이라는 병리적 의미를 들이대야 했는지를.

아니, 인정한다. 너희들은 적어도 그런 약자와 소수자의 삶과 고통에 대해 애초부터 관심이 없었다는 것을. 너희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라면 저항도 없고 꽃처럼 꽂혀서 살아가고 있는 정신장애인들의 부정적 표상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그래서 너희들은 저질 중에 저질이다.

너희들은 정부를 향해 ‘여당의 공작정치, 공무원의 신내림, 대통령 참모의 책임 전가, 청와대의 법적 겁박’을 이야기하며 “국민을 우습게 아는 것이 아니라면 집단적 조현병이 아닌지 의심될 정도”라고 부끄러움 없이 말했다.

그럼 너희들의 국민은 누구인지 말하라. ‘국민을 우습게 아는 것’이 너희들의 비판 조건이라면 그 국민에게서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이 포함되는지를 해명하라.

그래서 너희들은 저질 중에 저질이다. 너희들은 정신장애인들이 어떻게 정신병원에 강제적으로 끌려들어가야 했는지, 치유되지 못하는 그 증상과 고통으로 얼마나 세계의 변방에서 홀로 울고 있는지, 꿈도 희망도 없이 생의 밑바닥에서 괴로워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가.

너희 국민의힘 초선의원 31명 중에 조현병이 어떤 질병인지 알고 있는 자가 있다면 한 번 말해보기 바란다. 만약 몰랐다면 정신장애인의 존엄을 훼손한 부분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 만에 하나 알고도 그랬다면 너희들은 정신장애인을 인간 이하로 지금까지 생각해왔다는 걸 뒤집어 증명하는 것이다.

그래, 다 좋다. 너희들의 그 무지와 뻔뻔함,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라면 고통받는 약자의 병명을 갖다 붙여도 된다고 생각하는 우월감. 다 좋다. 그렇지만 이것 하나만은 기억하기 바란다. 나는, 그리고 우리는 너희들의 이름을 절대로 잊지 않겠다는 것을.

너희들에게 정신장애인들은 인간 이하의 존재들이고 돌볼 필요도 없이 헛소리를 하고 괴성을 지르고 혼잣말하는 정치적으로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하는 존재들일 것이다.

그렇기에 너희들은 상대에 윤리적 타격을 가하기 위해 정신장애, 조현병을 들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나는 인정한다. 너희들은 그러고도 남을 인간들이기 때문에.

슬프다. 너희들에게 사과를 요구해야 하는 이 현실이 사실 슬프다.

그리고 더불어민주당, 너희들의 발언 역시 잊지 않겠다. 너희들은 “정치에 ‘조현병’이라는 병명을 들어 ‘비하’하려는 의도에 대해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뒤집어 보라. 이미 너희들은 조현병이 상대를 ‘비하’하기 위한 의학적 용어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는 것으로 수렴된다는 것을. 어떻게 ‘비하’하기 위해 조현병을 이용하느냐는 그 말이 윤리적으로, 인권적으로 올바른지를 되물어보기 바란다.

그럼 너희들은 ‘관절염’이나 ‘심장병’을 가졌다고 정부를 욕하면 그게 비하 발언이라고 대응할 것인가.

그러므로 인정한다. 너희들이 인권적 무지를. 그래서 오늘은, 슬픈 날이다. 약자와 소수자의 권리를 옹호해야 할 자들이 너희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조현병을 함부로 갖다 붙이는지를 알게 된 날이기에 더 그렇다.

나는 분노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나의 글의 맥락은 큰 분노가 담겨 있을 수밖에 없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바깥으로 바람이 불고 있다. 그 바람 소리는 너희들의 천박한 발언을 잊지 않겠다는 의미로 나는 느낀다. 잊지 않겠다. 그리고 오늘, 정치는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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