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회] "언론이 태도 바꾸지 않으면 정신장애에 대한 두려움과 편견은 사라지지 않아"
[토론회] "언론이 태도 바꾸지 않으면 정신장애에 대한 두려움과 편견은 사라지지 않아"
  • 김근영 기자
  • 승인 2021.03.27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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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 정신장애 보도 가이드라인 재정 토론회 개최
미디어는 당사자에 대한 연구를 끊임없이 해 긍정적 도움 돼야
장애인 200만 명 넘은 시대...장애인 전용 방송국 설립해야
정신질환은 한국적 자본주의의 산물...인간의 얼굴 한 자본주의 돼야
정신질환 사건 보도에서 약물·강제입원 강조는 편견 전파 논리
언론 보도 대상으로 가이드라인 적용해 상시 모니터링 필요
취재원으로서 당사자가 전문가로 활동하게 역량 강화해야

부산 지역에서 최초로 정신장애 보도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졌다. 지난 1월 부산민주언론시민연합과 정신장애 당사자 모임 침묵의소리, 한국기자협회 부산지부는 협업을 통해 관련 가이드라인을 구성했다. 정신장애에 대한 편견 보도가 임계점을 넘어섰다는 문제 의식이 그간 인권 진영에서 제기돼 온 만큼 이번 가이드라인이 전국적 확산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이 정신장애 보도 가이드라인의 활성화 방안을 모색하는 토론회가 부산소테리아하우스 주최로 지난 25일 부산 부산진구 부산시민운동지원센터에서 열렸다.

발제를 맡은 지미루 침묵의소리 회장은 “정신장애에 대한 인식이 결여된 상태에서 (기자들이) 보도에 임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며 “편견을 갖고 범죄자로 낙인하는 태도의 정보원을 설정할 때 오해의 소지를 안고 가기 때문에 잘못된 기사나 절제되지 않는 보도가 나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 회장은 “언론 보도를 모니터링하면 (정신장애인을) 사회적으로 소외되게 한다”며 “정신장애인에 대한 즉흥성 보도가 나올 때마다 우울감이나 공포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이어 “미디어만큼 인식 개선에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장치는 없다”며 “당사자와 합일된 미디어의 역할은 정신과 약물보다 훨씬 효과가 좋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언론의 보도 형태에 대해 ▲정신장애 보도 중 사건 범죄 보도가 압도적으로 높은 점 ▲취재원에 정신장애 당사자의 비율이 낮은 점 ▲보도 제목에 ‘진단명’ 언급 비율이 높은 점 ▲정신장애인의 폭력성 부각으로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과 공포감을 조장하는 점 ▲정신장애 관련 제도를 탐색하는 심층 보도의 부족 등을 꼽았다.

지 회장은 “미디어 상호작용은 개발, 운영, 교육 등 많은 부분에서 활용될 수 있으므로 소통의 부재를 해결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며 “당사자는 인식 개선에 참여하고 미디어는 당사자에 대한 연구를 끊임없이 해 서로에게 긍정적인 도움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절차보조와 더불어 더욱 많은 동료지원가와 인식 개선 강사가 배출돼 사회와 이웃과 동료 당사자에 다가가야 한다”며 “장애인 200만 명을 넘는 시대에 언론 보도 매체인 장애인 전용 방송국을 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선진 시설과 선진국 복지 관계를 연구해 우리에게 맞는 지역사회와 당사자의 의식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아동과 청소년을 위한 정신장애 인식개선 및 정보 교육 교재의 발간을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제철웅 한양대학교 법학대학원 교수는 “정신질환은 산업화의 산물이고 우리나라의 독특한 자본주의의 산물”이라며 “정신질환에서 회복되기 위해서는 돈과 자본이 중심이 되는 사회가 아니라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가 돼야 정신질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정신질환에 대응하는 방법은 강제입원해서 약물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결정권을 존중하고 스스로 결정하도록 지원하는 것”이라며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권력의 불균형을 균형되게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제 교수는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에 대해 이들이 피해자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며 “인권이 침해되면서 이들이 힘들게 버티다가 병이 나타난 것으로 보고 가해자인 우리가 반성을 하게 되면 전혀 다른 관점에서 (정신장애 문제를) 접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과 연관된 사건·사고는 정신질환의 특성이 아니다. 그냥 누구라도 특정 상황에서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며 “정신질환을 보도하면서 약물 복용을 하지 않고 강제입원을 못 시켰다는 것과 연결하는 것은 묵시적으로 (편견을) 전파하는 논리”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신질환은 사회의 문제이자 인간관계의 문제인데 거기서 피해를 입은 개인을 탓한다”며 “정신질환이라는 타이틀을 연계지어 보도하는 것은 또 한 번의 가해를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제 교수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정부가 변호사 단체에 비용을 지급해서 장애인을 차별할 경우 국가와 언론, 학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당사자들은 자기 돈을 쓰지 않으면서도 광범위한 부분에서 차별을 발견하고 적극적으로 소송할 수 있다는 의미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제 교수는 “우리는 그런 게 없고 약자니까 그냥 약자가 되는 것”이라며 “이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위반하는 차별”이라고 지적했다.

언론의 편견 보도와 관련해 그는 “기자 역시 정신질환에 대한 부정적 의식을 유포하는 상황에살고 있기 때문에 불안을 조장하는 것이 (대중의) 관심을 끄는 데 유리하니까 정신질환자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확산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열악한 사회 환경을 인식하고 그것을 개선하기 위해 작은 힘들을 결집시켜나가야 한다”며 “언론사와 기자는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지식인 집단과 지식인으로서 지혜를 발휘하는 데 주저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부산시 역시 (정신장애인 인권) 조례를 제정해 정신장애인의 권익옹호 활동 지원, 당사자 자조 모임 활성화, 동료지원을 통해 정신질환의 편견 해소를 위한 정신장애인 단체의 활동을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종언 마인드포스트 편집국장은 “기자 세계에서 어떤 취재 범주에 윤리적 의지를 갖게 된다는 것은 무의식적으로 써온 가해자와 기득권의 논리, 젠더 폭력에 대한 무지 등에 대한 반성적 사유로 봐야 한다”며 “피해자와 약자, 젠더의 시선으로 세계를 해석하려는 저널리스트 본연의 의무를 되찾으려는 의지와 맞물린다”고 분석했다.

박 편집국장은 “기자들은 정신장애인을 만나볼 기회가 거의 없을 것이고 사회에 표상되는 정신질환자의 기호는 늘 위험성과 범죄, 사회적 불안의 코드와 맞물려 있기 때문에 자기 검열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정신장애인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언론이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정신장애에 대한 시민적 두려움과 편견은 사라지지 않는다”며 “부산에서 출발하는 정신장애 인권보도 가이드라인이 강제성과 윤리성을 가진 지침으로 힘을 발휘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정희 부산민주시민언론연합 사무국장은 “보도 가이드라인을 제정했으나 바로 언론 보도와 프로그램에 반영되기에는 언론의 제작 환경이나 언론인의 인식, 사회적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며 “가이드라인을 적극 알리고 활성화하기 위한 후속 활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사무국장은 “언론의 보도와 프로그램을 대상으로 가이드라인을 적용해 상시적 모니터링을 진행하고 그 결과를 축적하는 활동을 제시한다”며 “당사자 미디어 비평을 활성화하고 정신장애 분야의 다양한 이슈를 기고하는 활동도 추진해야 한다” 말했다.

이어 “감시 비평과 함께 좋은 보도·프로그램을 공모, 선정해서 시상하는 과정을 통해 언론인들의 정신장애 인식과 보도 가이드라인에 대한 인지도를 제고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국언론진흥재단, 한국기자협회 등 언론인 교육 지원 기관과 협력해 협업 언론인과 언론 지망생을 대상으로 가이드라인 및 인식 개선 교육의 마련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재희 침묵의소리 당사자 활동가는 “(당사자의 역할로) 취재원으로서 당사자를 적극적으로 포함시키고 전문가로 활동할 수 있도록 역량을 강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 활동가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가 없다는 것은 아니며 우리가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라며 “우리는 우리를 옥죄는 사회 환경으로부터 정신적·물리적으로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취재와 보도는 정확하되, 윤리적이며 사회를 선도하는 일이 돼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관련 분야의 다양한 전문가를 취재원으로 섭외해 기사의 신뢰도를 높여야 한다. 당사자 또한 경험 전문가로서 취재원에 적극적으로 포함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 “보도 가이드라인을 벗어난 내용은 없는지 등을 면밀히 관찰하고 대책을 요구할 수 있는 당사자 모니터링단을 운영할 필요가 있다”며 “보도물들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당사자만이 가지고 있는 감수성을 기대해 볼 수 있다”고 전했다.

이어 “보도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활용을 독려한다고 해도 강제성을 부여할 수 없다는 것 또한 한계점이 될 수 있다”며 “차선책으로 많은 이들이 참고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보도에 있어 한국기자협회와 같은 권위 있는 단체와 협력하면 좋을 것”이라고 피력했다.

다음은 부산민주언론시민연합, 정신장애당사자 모임 침묵의소리, 한국기자협회 부산지부가 공동으로 제정한 정신장애 보도 가이드라인 10개 항목이다.

1 정신장애에 관한 정확한 의학적 용어와 사실을 확인하여 기사를 작성한다.

2. 정신장애 당사자, 정신의학 전문의, 정신건강 전문가, 정신장애인 가족, 인권 단체 등의 다양한 의견을 담는다.

3. 특정 정신질환을 범죄 및 폭력성과 연관 짓는 보도는 지양한다.

4. 사건·사고 보도 시 수사기관 발표를 팩트 체크하고 정신질환과의 연관성을 적극 확인하여 기사를 작성한다.

5. 보도 제목에 정신장애에 대한 공포, 불안, 혐오와 같은 부정적 이미지를 부각시키지 않는다.

6. 보도 내용에 정신장애에 대한 부정적 편견을 강화시키는 이미지, 영상, 음향을 사용하지 않는다.

7. 정신질환도 신체질환과 마찬가지로 예방과 치료, 관리가 가능하다는 점을 적극 보도한다.

8. 정신장애인의 다양한 삶을 보도하여 정신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노력한다.

9. 정신장애에 대한 인식 개선과 지원 정보 제공을 위해 기사 하단에 도움받을 수 있는 기관과 긴급 상담 전화번호를 명시한다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10. 정신장애 인식 개선을 위한 기자 교육을 시행한다.

2021년 1월 4일  부산민주언론시민연합, 정신장애 당사자 모임 침묵의소리, 한국기자협회 부산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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