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구하의 사는 이야기] 뼈아픈 후회…엄마를 떠나보내며
[작가 구하의 사는 이야기] 뼈아픈 후회…엄마를 떠나보내며
  • 구하
  • 승인 2021.03.28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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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병 엄마의 상처는 외로움과 두려움...약만 강조해온 나의 과오
회복은 삶의 회복이어야...지지해주는 한 사람이 필요했던 거
회복은 누구도 대신하지 못해...가족·전문가는 그 삶에 귀기울여야
삽화=구글 이미지.
(c) 따뜻한하루

엄마가 떠나셨습니다.

당신 생의 20년을 정신질환으로 고통받으셨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정신질환의 치료로 고통받으셨습니다.

엄마는 정신질환에 대한 나의 학위논문을 받으시고는 불같이 화를 내며 집어던지셨습니다. 왜 이딴 걸 공부하느냐며.

어쩌면 엄마의 말이 맞았는지도 모릅니다. 자기 엄마의 회복조차 제대로 못 도왔던 내가 그때 진로를 바꾸었어야 했는지도 모릅니다. 엄마의 삶을 수십 번 복기해 봤습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다시 돌아간다면 내가 무엇을 해야 했을까.

사실은 잘 모르겠습니다. 엄마의 삶과 세상의 기준, 그 사이에서 늘 허우적댈 뿐이었습니다. 다만 그때는 최선이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참 어리석었던 몇 가지는 있습니다.

첫째는 의사를 맹신한 것입니다. 엄마가 점점 의부증(疑夫症)이 심해져 부부 상담을 권했고, 몇 번의 설득 끝에 결국 부모님은 서로의 문제점을 증명하겠다며 정신과를 처음 방문했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좋은 의사를 권했고, 혹시나 자식이 관여되면 더 의심이 커질까봐 일체의 연락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의사가 딱 보면, 다 알 줄 알았던 것입니다.

참 어리석었습니다. 생물학적 근거가 없는 정신과에서는 결국 정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을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때 내가 의사와 사전에 충분히 의논을 했더라면, 적어도 첫 방문 때 다시는 병원에 안 간다고 하시지는 않았을 텐데.

두고두고 후회를 했습니다. 의사보다 엄마를 더 잘 아는 사람은 가족이었지만, 아니 엄마 자신이었지만, 의사가 가장 정확한 판단을 내릴 것이라고 맹신했던 것입니다.

두 번째는 엄마의 증상에 대해 한 번도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엄마의 망상을 알게 된 것은 경찰서에서 연락을 받은 후였습니다. 자식들에게는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모습들이 지역 국회의원실, 교회 등에서 찍힌 사진 속에 있었습니다.

이웃과의 갈등마저 커지면서 결국 강제입원이라는 선택을 하였습니다. 그 전에 정신건강센터에 찾아갔을 때는 병원 가라는 소리만 들어야 했고, 혹시 가정방문은 안 되는지 부탁했을 때는 치료 후 연락하라는 응답만 돌아왔습니다.

강제입원 후 조현병 진단을 받고, 3개월간 입원 치료를 하는 동안, 그리고 그 후에도 엄마의 증상에 대해서는 한 번도 서로 얘기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때는 증상에 관심 주지 말라고, 망상은 소통되지 않는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하지만 세상이 이해 못하는 엄마의 증상 속에는 세상에 대한 억울함과 분노가, 자신 안의 외로움과 두려움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었습니다.

결국 본질은 외면한 채, ‘약을 먹자, 안 먹겠다’는 지난한 싸움만 남았을 뿐이었습니다. 조금만 더 엄마의 마음 자체를 이해하려고 했었다면, 그리고 엄마와 소통했었더라면 좋았을 걸. 후회됩니다.

(c) Scary Mommy
(c) Scary Mommy

세 번째 어리석음은 나조차도 세상의 편에 섰다는 것입니다. 정신과 약으로 부작용이 점점 심해지고 힘들어하셨지만, 의사는 치료를 위해 그 약과 용량이 최선이라고 했습니다. 엄마의 일상이 무너지는 것들은 늙어서 어쩔 수 없다고 했습니다.

층간소음으로 이웃과 갈등이 생길 때면 엄마가 의도적으로 소리를 낸다고 생각해, 이웃에게는 사과했지만 엄마 편은 되어주지 않았습니다. 지나고 나면, 나는 세상 눈치만 보고 살았고, 그저 문제가 생기지 않기를 바랄 뿐 엄마의 삶은 늘 뒤편이었습니다.

그렇게 활동적이었던 엄마가 하루 종일 텔레비전만 보는 멍청한 모습을 보면서도, 문제를 일으키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엄마에게 이것저것 권하며 잔소리만 할 뿐, 의욕이 없고 소심해졌다고 치부할 뿐, 아주 작은 시도라도 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지는 못했습니다.

이제는 황망하게 떠나가신 엄마의 삶을 오늘도 복기해 봅니다.

자식으로서 하지 못했던, 하지 말았어야 했던 과오(過誤)들에 대한 후회만 떠오릅니다. 진단이 몇 번 바뀌고, 약을 이래저래 써보아도 엄마의 삶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회복은 증상이 아닌 삶의 회복임을, 믿고 지지해주는 단 한 사람이 필요했던 거라고, 그리고 의미 있는 일상을 살아내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그때는 미처 몰랐습니다.

차라리 내가 문외한이었다면, 더 적극적으로 대안을 찾아봤을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내가 가진 전문가로서의 독선과 편견이 더 문제였습니다. 이 글을 읽는 당사자, 가족, 그리고 전문가들은 나의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라봅니다.

회복은 어느 누구도 대신해 주지 않습니다. 대신해 줄 수도 없습니다. 당사자가 온전히 자신의 삶을 살아내는 것이며, 가족과 전문가는 그 삶에 귀 기울일 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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