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형 기자의 변론] 우리는 안인득이 아닙니다
[이관형 기자의 변론] 우리는 안인득이 아닙니다
  • 이관형 기자
  • 승인 2021.04.06 21: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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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인구집단을 전체적으로 비난하는 '연좌제' 구조 사라져야
조현병 당사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심성이 나쁜 이들이 죄 범해
병이 있다는 이유로 당사자 전체를 범죄자 취급 말아야

조현병 앓다 ‘묻지마 살인’ 저지른 중국인 징역 20년

“나는 조현병 환자다”마약에 위한 30대 모텔서 검거

모친 살해 뒤 자수... 조현병 환자 징역 10년

25년 함께 일했는데... 동생에게 흉기 휘두른 형

2021년 4월 5일 저녁 6시경, 포털 사이트에서 ‘조현병’이란 단어를 검색했을 때 나온 기사들 제목입니다.

그런 기사를 읽을 때마다 화가 납니다. 저는 범죄자가 싫습니다. 인륜을 저버리고 가족에게 해를 입히는 죄인들이 싫습니다. 이웃에게 살인을 저지른 사람들은 법적 절차에 따라 적합한 처벌을 받기를 원합니다. 그들이 조현병 환자라 해도 말이죠.

이런 글을 쓰는 제가 이상한가요? 조현병을 비롯한 정신장애 당사자의 인권을 위해 활동해야 할 제가 그들을 변호하지 않는 모습이 낯선가요?

언젠가, 안인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죄를 지은 만큼 처벌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대답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질문자는 자신이 생각한 것과 전혀 이외의 답변이라며 놀란 적이 있습니다. 아마도 같은 조현병 환자로서 안인득을 옹호하거나 대변하는 입장에 설 거라 예상했나 봅니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연좌제라는 게 있었습니다. 범죄인과 특정한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연대 책임을 지게하고 처벌하는 제도입니다. 나라에 역모 죄가 발생했을 때, 가족은 물론, 친척까지 한꺼번에 사약을 받거나 노예가 되어야 했죠. 그래서 사극에 “삼족을 멸한다”라는 대사가 자주 등장합니다.

현재는 연좌제 제도가 사라졌지만, 사람들의 의식 속에는 아직도 연좌제가 살아 있는 것 같습니다. <범죄 도시>란 영화를 보고나면, 대림동이 무법천지 같고, 그곳의 모든 조선족들이 모두 조직폭력배나 범죄자처럼 느껴집니다.

정치인들의 부정부패 뉴스를 보고 나면, 모든 정치인들이 깨끗하지 못하고 타락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지나가다 교복을 입고 담배를 피우는 청소년들을 마주치면, 요즘 어린 것들은 예의도 없는 아이들로 인식되어집니다.

만약 범죄를 저지른 조선족이 있다면, 그는 조선족이라서 범죄자가 아니라,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범죄자인 것입니다. 만약 뇌물을 받은 정치인이 비난을 받는다면, 그는 정치인이라서 비난을 받는 게 아니라, 부정한 돈을 받았기에 비난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길에서 담배를 피우는 청소년들은, 청소년이라서 담배를 피우는 게 아니라, 담배를 피우니깐 예의 없고 나쁘게 여겨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모든 조선족이 범죄자가 아니고, 모든 정치인들이 비리를 저지른 것이 아니며, 모든 청소년들이 담배를 피우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특정 인물의 행동을 바라보며 그 인물이 속한 전체 집단을 싸잡아 비난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범죄를 일으키고, 인륜을 저버리며 자신을 키워준 부모와 형제, 이웃을 잔혹하게 살인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조현병 환자이기 때문에 살인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나쁜 심성과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범죄를 저지른 것이겠죠.

그런데 모든 범죄와 살인 사건의 원인이 실제로 조현병 때문이라면, 조현병은 영화 속 좀비 바이러스처럼 인류를 위협하는 병일 것입니다. 전체 인구의 1%가 조현병 환자라면, 50만 명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모두 속출해서 병원이나 요양소에 격리해야 하겠죠.

어쩌면 병원에서 조현병 진단을 받는 순간, 대기하고 있던 경찰이나 군인들이 출동해 미리 강제입원시켜 이 사회의 안전을 보호할 수 있을 겁니다. 조현병 진단을 받은 환자 모두는 예비 살인마고 예비 범죄자이기 때문에 단 한 사람도 남김없이 모두 찾아내어 이 사회에서 뿌리를 뽑아야 할 것입니다.

조현병이라는 바이러스는 본래부터 열등하고 위험하며 인류와 사회의 안전을 위협하는 잔인무도한 병일 테니까요. 그리고 저 역시도, 병원이나 감옥에 갇혀야겠죠.

지금도 조현병이 살인 바이러스인지, 아닌지를 검증하고 증명하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기사를 검색했던 것처럼 관련 논문을 검색해보면, 다음과 같은 제목의 논문들을 볼 수 있습니다.

출처 :  RISS
사진=RISS 검색 갈무리

“잠재적 범죄위험 요인으로서의 정신병질”

“정신장애 범죄자의 특성에 따른 경찰의 대책방안에 관한 연구”

“정신장애범죄인에 대한 치료감호제도의 현황과 개선방안”

“정신질환유형에 따른 배경정보와 범죄현장행동특성 예측요인 연구”

“정신질환자에 의한 ‘묻지마 범죄’의 실태와 대책방안”

많은 논문 속 통계와 경험 사례가 조현병의 위험성에 대한 근거를 뒷받침하기도 합니다. 다수의 기자들은 이러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기사를 씁니다. 기사 제목만으로도 대중들은 조현병은 절대 악이며, 조현병 환자들은 관리, 격리 되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조현병에 걸리면 모두가 살인자고, 모두가 무섭고 위험한 존재라고 여길 수 있죠. 어떤 연구는 조현병 환자의 강력 범죄 통계율을 내세우며, 조현병 환자는 일반인보다 더 위험하고 무서운 존재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논문과 기사가 무엇을 말하든, 저는 범죄를 저지른 적이 없고, 범죄를 저지를 생각도 없습니다.

만약 조현병 환자의 범죄율이 전체의 10%라 하더라고, 30%라 하더라도, 절반이 범죄를 저지른다 하더라도, 만약 100명 중 99명이 범죄를 저지른다 하더라도, 제가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면, 저는 감옥에 가지 않아도 됩니다.

연구 결과가 어떻든, 같은 병을 가졌다는 이유로 죄 지은 적 없는 당사자들까지 범죄자 취급을 받아야 하는 것은 불합리합니다.

통계 수치가 올라가면, 제가 범죄자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건가요? 통계 수치가 낮아지면, 저는 사회 속에 안전한 사람이 되는 건가요? 물론 병을 드러낸 순간부터, 저는 범죄자 취급을 받으며 사회의 편견과 혐오 속에 살아가고 있지만요. 아무 행동을 안 했어도, 가만히 숨죽여 있어도, 조현병이라는 주홍글씨는 사람들로 하여금 모든 당사자들을 무서워하고, 경계하고 피하게 만듭니다.

저는 안인득과 같은 살인자가 아닙니다. 다른 당사자들도 죄를 짓지 않았으면 범죄자가 아닙니다. 예비 살인자는 더더욱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안인득이 왜 그런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냐고 제게 묻습니다. 같은 조현병 환자이기 때문에, 제게도 안인득과 같은 살인 본능이 있을 거고, 그 본능이 실제 살인으로 이어지는 과정에 대해 가장 잘 이해할 거라 생각했나 봅니다. 그리고 안익득과 같은 편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 안인득과 만난 적도 없고, 대화를 나눠본 적도 없습니다. 조현병 환자들끼리 살인 본능을 공유하거나 어떤 텔레파시가 통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전 안인득이 싫습니다.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싫습니다. 패륜을 저지르는 범죄자들이 싫습니다.

저는 그들을 변호하고 옹호해야 할 입장에 서 있지 않습니다. 죄를 지었으면 처벌을 받아야겠죠. 하지만 같은 병을 겪은 것일 뿐, 연좌제에 묶여 그들이 겪어야 할 죄의 대가를 저까지 감당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죄 없는 당사자들까지 모두 연좌제로 묶어서 범죄자 집단으로 만들어 버리는 사회와 언론에 목소리를 내고 싶을 뿐입니다.

그런데 만약 조현병이 실제로 범죄를 일으키고 사람을 죽이는 좀비 바이러스처럼 무서운 질병이라면, 세상의 편견과 따가운 시선을 달게 받겠습니다. 그리고 제 발로, 병원이나 수용소에 걸어 들어가겠습니다. 감금복을 입고, 침대에 밧줄로 고정돼 코끼리 주사를 맞아 의식을 잃은 채로 평생 누워 지내겠습니다.

그동안 제게 달렸던 댓글들처럼, 제게는 몽둥이가 약일 것입니다. 불에 태워 죽임 당해야 할 대상이고, 저희 부모님은 괴물을 낳은 것입니다. 사회가 원하는 대로 병원이나 외딴 섬 같은 곳에 평생을 수용되어 지내겠습니다. 저도 제가 예비적 살인자고, 범죄를 저지를 위험한 사람이라면, 남을 해하고 폐를 끼치면서까지 살고 싶지가 않습니다. 저는 이 사회에서 괴물로 살고 싶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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