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 칼럼] 노희정 "나는 소망한다. 우리가 잃었던 것들을 예술치료로 다시 얻게 되기를"
[당사자 칼럼] 노희정 "나는 소망한다. 우리가 잃었던 것들을 예술치료로 다시 얻게 되기를"
  • 노희정
  • 승인 2021.07.08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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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예술은 정신질환 치료의 기원
아르브뤼는 정신질환자의 예술로 미술의 한 장르로 인정받아
니나내나·천둥과번개·안티카는 정신장애인 예술 치유의 최전선
당사자 예술치료는 편견과 차별에 맞서는 무기가 될 것
Left: Jean Dubuffet - Compagnonnage, 1956 / Right: Jean Dubuffet - Le Reitre, 1955
Left: Jean Dubuffet - Compagnonnage, 1956 / Right: Jean Dubuffet - Le Reitre, 1955

아리스토텔레스는 문학뿐 아니라 다른 모든 예술이 인간의 정신적인 질환의 치료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 심리 치료적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사실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수도 없는 경제적 상황,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없는 활동가, 특히 오랜 기간 정신질환으로 정서적 결핍을 얻은 당사자들에겐 사치스럽고 현실적이지 못한 이론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정신장애 재활기관, 정신장애인 당사자 단체, 자조모임, 정신건강복지센터에는 이미 다양한 프로그램과 동아리로 당사자 치유의 한 방편으로 실행되고 있다.

앞으로 1년 후인 2022년부터는 정신건강 작업치료사도 보건복지부에서 자격을 인정받은 정신건강 사회복지사, 정신건강 간호사, 정신건강 임상심리사와 함께 정신건강 전문요원에 포함될 예정이다.

우리는 예술이라는 말에서 왠지 특정 집단에 국한된 고급스러움과 사치스러움을 연상하지만, 사실 예술은 문화의 포괄적 범주에 속하며 모든 인간이 누리고 행할 수 있는 장치다.

예술이란 단지 문학성을 갖춘 책, 클래식 음악, 이해할 수 있는 식견으로 감상하는 미술 작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프랑스어인 ‘아르브뤼(Art Brut)’는 기존 화가들의 작품과 다른 마치 순수한 어린아이의 그림 같은 단순함 속에 담긴 인간 내면의 표출을 있는 그대로 쉽게 그려내는 미술의 한 장르로 인정받는다.

아르브뤼의 창시자인 프랑스 화가 쟝 뒤뷔페는 아마추어 화가, 정신질환자, 어린아이의 그림들을 주목했다. 아르브뤼는 결코 그림 그리기의 어려움을 강요하지 않는다.

내가 그리고 싶은 것, 나의 마음과 모습 등을 붓과 유화 물감이 없어도 마음대로 그려낼 수 있는 그림이다.

아르브뤼 작가가 나올 확률은 3백만 명 중의 한 명이라고 한다. 그렇게 탄생한 정신질환 환자들이 화가이며 전시회의 주인이다.

(c) Korea Welfarenews

성균관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김통원 교수는 ‘한국 아르브뤼’를 설립했고 정신장애인들의 예술적 가치 구현과 인식 개선을 위해 인사동에 위치한 ‘인사아트센터’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정신재활시설 ‘해벗누리’ 회원들이 그린 그림을 서울 시민청에서 전시했을 때 취재한 적이 있다. 이들의 그림들 속에서 생생한 무의식 속에 담긴 아름다운 영혼을 발견할 수 있었고 감동받았다.

어느 미술 교실에서 그림을 시작한 회원이 있었다. 강사가 기본적인 데생부터 시작해 소재를 주고 지도해도 그는 자기가 그리고 싶은 대로 타인이 보기에 알 수 없는 그림들을 그렸다. 전업 화가인 강사는 그에게 더 이상 이론에 입각한 그리기를 강요하지 않았다. 그의 모습과 그림 속에서 내면의 우울을 발견할 수 있었기에 다른 회원들이 구도를 잡고 원근법을 익히고 색감을 표현하는 기법을 배울 때 그는 마음껏 자기만의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그렇게 1년이 흘렀다. 그의 모습은 확연히 달라졌다. 얼굴을 덮고 있던 어둠이 걷혀가며 밝게 변모했다. 그리고 회원들의 전시회장에 걸린 그의 그림은 나무를 그리고 꽃을 그린 다른 이들의 그림과는 달랐다. 알 수 없지만 알 것 같은 은유는 아무도 해낼 수 없는 것이었다.

지하철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어폰을 귀에 꼽고 스마트폰을 쥐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들이 어떤 음악을 듣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트로트든 걸그룹의 최신 댄스 음악이든 추억의 가요든 락이든 그들은 지치고 힘든 일상에서 노래를 들으며 위로받고 힘을 얻는 힐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서점가에 컬러링 북이 붐을 일으키고 있는 것도 어릴 때 하던 색칠 책에 어른들이 색연필을 쥐고 무슨 색을 칠할까 생각하고 색칠을 반복하며 정서적인 안정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진=melon 화면 갈무리
사진=melon 화면 갈무리

당사자들이 만든 ‘니나내나’ 그룹이 있다.

그들은 노래를 부르고 연주하고 작곡한다. 음악에의 열정만 있으면 아무 제약도 받지 않는다.

이들의 작업은 훌륭한 예술 치료이며 이들의 노래는 음원화 되어 이제 멜론에서도 들을 수 있다. 물론 니나내나 그룹의 노래를 듣고 즐기는 사람 역시 무기력감과 지친 인생을 예술로 치료하는 작업에 동참하는 사람들이다.

‘천둥과 번개’ 당사자들의 문학 교실도 예술 치료의 역할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매주 토요일 오전 열 시부터 열두 시까지 그들의 예술 치료는 단지 문학 강의를 듣고 글을 쓰는 데에 국한되지 않는다. 수많은 등단 작가를 배출해 레전드급 문학 교실임을 입증해낸 작가들은 회원들에게 희망을 갖게 했고 회원들은 모두가 함께 글을 나누며 아픈 동료를 위로하고 격려한다. 그들은 ‘치유의 글쓰기’를 하는 예술가들이다.

정신질환 당사자들이 만든 예술창작 단체인 ‘안티카’의 공연을 유튜브에서 본 적이 있다.

싸이키델릭과 일렉트로이카 테크노가 섞인 몽환적인 사운드를 빚어내는 연주 속에서 무심한 듯 절제된 보컬과 춤으로 꾹꾹 눌려진 열정과 혼을 발산해낸 두 명의 아티스트의 공연은 감탄할 만한 음악 치료였고 기타 하나와 목소리로 완성한 여성 당사자 아티스트의 노래는 인디 음악계의 독보적인 그룹 ‘새소년’처럼 신선했다.

코로나로 인해 정신건강복지센터의 모든 오프라인 사업이 중단됐다. 정신재활시설 이용자는 오전만이라도 이용할 수 있지만 서비스 제공을 받을 수 있는 회비도 부담할 수 없는 정신보건센터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정신건강복지사업은 가장 힘들어졌다.

다행히 확진자 수가 줄어들어 외부 활동 프로그램이 단기간 진행되기도 하고 사례담당 사회복지사들과 전화가 아닌 면담으로 상담을 할 수도 있게 되었지만 모두가 힘들 때 많은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회원들이 가입할 수 있는 밴드를 만들었다.

센터에서 올리는 건강 댄스 동영상으로 회원들은 재미를 찾고 움츠렸던 몸을 펴고 춤을 추며 활력을 얻는다. SNS(사회관계망서비스) 속의 댄스 동영상이 코로나로 인한 정신건강 복지의 단절을 무용 치료를 할 수 있는 대안으로 활용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대에는 도서관을 ‘영혼을 치유하는 장소’라고 명칭했다.

치유는 비단 책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여러 명이 울려대는 환청이 계속 그치지 않고 따라다니며 괴롭히고 텅 빈 집에 사람들이 보이고 음성 증상으로 세수도 목욕도 못 하고 한 달 가까이 불면과 수면장애가 이어지고 인지 능력이 쇠약해져서 인지적 오류에 빠지고 망상이 그것이 망상인란 것을 알 수 없는 채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 때 우리는 블랙홀에 빠진다.

이럴 때 당신은 무얼 하는가?

누군가는 집 밖에 나가지 못하고 하루 종일 누워있기도 하고 누군가는 알코올 도수에 올인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탕진잼 분노성 소비를 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재떨이가 넘치도록 담배와 동맹을 맺기도 하고 누군가는 게임으로 해방을 찾으려 먼 가상 세계로 떠나기도 한다.

이런 블랙홀 속에서 무언가를 하는 것 자체가 힘이 들고 어려운 일이지만 이럴 때 좋아했던, 또 앞으로 좋아지고 싶은 음악을 찾아도 보고 아이돌 동영상도 재생해 보고 대형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서 책 구경을 하며 뒤적여 볼 수 있다면 이 모든 것이 예술 치료이다.

정신질환자. 정신장애인으로 폄하되고 낙인찍힌 당사자들의 이 모든 예술치료에서의 생산자이자 소비자로서의 작업은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 소외와 격리에 당당히 대두하고 맞설 수 있는 도구요 무기가 될 수 있으리라.

“나는 소망한다. 우리에게 금지되었던 억압의 굴레에서 자유로워지기를.“

“나는 소망한다. 우리가 잃었던 것들을 예술 치료로 다시 얻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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