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F20’은 쓰레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KBS는 방영 계획 즉각 철회하라”
“영화 ‘F20’은 쓰레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KBS는 방영 계획 즉각 철회하라”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1.10.20 23:5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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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추련 등 19개 장애운동단체, KBS 앞 집단 기자회견 진행
“‘F20’ 영화의 KBS ‘TV시네마’ 방영 중단·KBS의 공개 사과” 요구
KBS 측 “22일까지 답변 내놓겠다”…장애계 “약속 미이행 시 집단행동 불사”

영화 ‘F20’에 대해 정신장애계를 비롯한 장애계 전반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20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KBS 신관 출입구 앞에는 50여 명의 정신장애인들과 신체장애인, 장애단체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었다. 신관 앞 작은 네거리에는 각 구역마다 6~7명의 정신장애인들과 단체 회원들이 피켓을 들고 침묵 시위를 벌였다. 그리고 신관 입구에서는 플래카드를 들고 있는 관계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영화 ‘F20’은 러닝타임 104분의 심리스릴러 영화다. 지난 6일 개봉돼 현재 2만3000여 명이 관람했다. 영화는 KBS가 시도하는 영화 프로젝트 ‘TV 시네마’의 첫 작품이다. KBS가 직접 제작을 맡았고 7억 원의 제작 예산이 들어간 걸로 알려졌다. KBS는 매년 ‘KBS 드라마스페셜’이라는 단막극을 내보낸다. 올해는 좀 특별하게 4편의 ‘TV시네마’를 준비했는데 ‘F20’이 그 첫 작품이다. 연출 또한 KBS 드라마 PD 홍은미 씨가 맡았다.

홍 씨는 개봉 전 제작 발표회에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거나 부정적 인식을 일으키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며 “더도 덜도 말고 ‘F20’이 가장 중립적인 표현이 아닐까 싶어 제목으로 정했다”고 말했다.

F20은 질병분류기호로 조현병을 의미한다. 이 영화는 조현병을 가진 자식을 둔 두 어머니의 심리를 따라가는 형식으로, 의식을 흐름을 따라 진행되는, 좋게 말하면 심리 스릴러물이다.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다. 보험 판매일을 하는 애란은 외아들 도훈과 함께 임대아파트에 살고 있다. 아파트 주민들은 도현이 ‘서울대생’이라며 부러워한다. 하지만 도현은 조현병을 갖고 있다. 애란은 도현의 병이 알려질까 전전긍긍한다. 이때 같은 처지의 경화가 이사를 온다. 경화의 아들 유찬은 도훈보다 정신적 상태가 더 심각하고 아파트 주민들은 유찬을 조현병 환자라며 경계하게 된다. 애란은 더 조바심을 내게 된다.

그러던 와중에 길고양이를 잔인하게 살해한 사건이 발생한다. 주민들은 유찬을 의심한다. 그들은 유찬이 가족을 몰아내자며 아파트 회의를 진행한다.

유찬이는 착하고 조금 아플 뿐이라고 경화가 말하지만 사람들은 “우리 집 개는 안 물어요”와 다를 바가 뭐가 있냐며 몰아붙인다. 결국 경화는 잘 돌보겠다며 무릎 꿇고 주민들에게 사죄한다.

이 상황을 알고 있는 애란은 아들 도훈의 조현병 병명이 밝혀질까봐 극도로 두려워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런 애란은 함께 아픔을 나누던 경화를 도훈의 질병을 소문낼까 봐 자신의 집 수조에서 죽이고 살해된 경화를 캐리어에 넣어 경화의 아들 유찬에게 전해준다.

경찰은 애란을 의심하고 결정적 증거로 죽은 경화의 기도에서 애란의 집 수조 속 검정 물고기가 나와 출동하게 된다. 지속적 두통을 호소하던 애란은 자신이 죽인 경화가 “내 아들이 널 찾아갈 것”이라고 말하는 환청을 듣는다. 이때 문이 열리고 경화의 아들 유찬이 자신을 찾아왔고 애란은 칼을 휘둘러 유찬을 찌른다. 그러나 실제는 유찬이 아닌 자신의 아들 도훈이었다.

경화가 죽고 유찬도, 도훈도 남지 않은 아파트에 또 다시 고양이의 사체가 발견된다. 사람들은 도훈도 유찬도 아니면 누구일까. 우리 안에 또 정상인 척 숨어 있는 존재는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모두 미쳐가는 중일까라는 메시지를 남긴다.

영화는 이런 방식으로 진행되고 끝난다. 홍 감독은 제작발표회에서 “F20은 질병분류코드다. 말 그대로 하나의 질병일 뿐이라는 것이고, 그 말은 의료적인 관리를 통해 치료를 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가장 중립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 영화는 너무나 명확하게 조현병을 범죄와 동일시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영방송이 차별과 편견을 앞장서서 홍보한 영화라는 의견이다. 더군다나 이 영화는 영화관에서만 상영되지 않고 오는 29일 KBS2를 통해 안방에 방영된다. 누구나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기자회견은 이 같은 배경에서 이뤄졌다. 기자회견에는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 장애인차별금추진연대(장추련) 등 19개 단체가 함께했다.

김성연 장추련 사무국장이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권용구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장은 모두 발언에서 “(‘F20’이) 조현병을 비하한 것뿐 아니라 당사자와 가족, 당사자 이웃을 한꺼번에 모욕한 영화”라며 “조현병을 가지고 있으면 이웃에게 죄를 지은 것처럼 숨어지내고 당사자 부모도 정신질환이 와서 살인을 하고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묘사한 것에 분노를 느낀다”고 말했다.

이어 “영화 중간중간에 조현병 당사자는 길고양이를 잔혹하게 살해하고 자해나 타해를 저지르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며 “당사자 부모는 자식의 병을 무서워하고 자식의 병 때문에 세상이 끝난 것처럼 살고 있다는 걸 암시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신장애 당사자, 가족들을 이해해주고 포용해 주는 주변 사람들을 모두 모욕한 영화”라며 “당장 영화 상영을 금지하고 국영방송에서는 이 영화에 손을 떼라”고 주장했다.

배점태 한국조현병회복협회(심지회) 회장은 “영화 속에서 작가는 독자에게 공포감을 주기 위해 사이코패스의 행동을 조현병 당사자의 행동으로 묘사하고 있다”며 “작가는 사이코패스와 조현병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확하지 않은 지식으로 병에 대한 공포감을 조성하고 당사자와 가족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고 있다”며 “이에 대한 KBS의 공식적 답변을 구한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이 영화에서 극중 인물들이 2019년 방진동 방화 사건, 2017년 고수동 살인 사건 등을 묘사한 것은 조현병과 관련된 살인 사건이 계속되고 있음을 관객에게 주입하고 조현병 환자는 위험하다는 편견을 조장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배 회장은 “KBS와 감독은 표현과 창작의 자유를 주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자유에도 책임과 의무가 있다”며 “KBS가 창작의 자유라는 미명하에 현실을 왜곡하는 영화를 방영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단체들은 공동으로 낸 요구서에서 29일 예정된 방영을 즉각 중단하고 관계자들의 즉각적 사과를 촉구했다.

단체들은 “‘F20’은 사회를 떠돌고 있는 조현병에 대한 편견과 혐오를 고스란히 스릴러라는 이름으로 영화 전체에서 이야기하고 있다”며 “일부 잘못된 정보의 수준이 아닌 제작의 의도 자체가 조현병이 있는 사람은 위험하고 무섭고 지역사회 안에 함께 살 수 없는 사람이라고 분명하게 지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감독은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조현병 환자에 대한 자신의 편견과 혐오 공포를 고스란히 영화에 담고 있다”며 “확인되지 않은 사실로 누군가의 인권을 침해하는 일에 사용된다면 그것은 창작이라는 이름의 횡포”라고 규탄했다.

그러면서 “사회를 분리하고 해체하고 서로에 대한 경계와 혐오를 조장해 누군가를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는 나쁜 영화는 당장 상영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시간 동안의 기자회견을 진행되는 도중 KBS 측에서 면담에 응하겠다는 답이 왔다. 신석철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 준비위원장과 김성연 장추련 사무국장, 김윤진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 권용구 소장 등 대표단이 KBS 신관 일 층 면담실에서 논의를 진행했다.

이도경 KBS 시청자센터장은 “이 같은 상황이 올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며 “민원을 처리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 사무국장은 “민원 처리할 경우 이 면담은 의미가 없다”며 “자신의 권한으로 어렵다면 관련 책임자와의 면담을 확답해 주기 바란다”고 주장했다.

이 센터장이 “영화의 문제가 되는 부분을 편집하거나 각색하면 되지 않을까”라는 의견에 대해 김 사무국장은 “일부 편집만으로는 될 수 없는 구조의 영화”라고 지적했다.

30여 분의 면담 진행 과정에서 신 준비위원장은 “우리들의 요구는 29일 지상파 방송의 중단, 기자회견 현장에서의 공개 사과, 방송 자막을 넣어 공식적인 사과”라며 “관련 책임자와의 향후 면담을 확답해 줘야 기자회견을 중단하겠다”고 전했다.

면담 막바지에 KBS 이 센터장은 “임원회의에서 이야기하고 29일 전까지 어떻게 하겠다는 것을 책임자에게 전달하겠다”며 “오는 금요일(22일) 오전까지 답을 주겠다”고 밝혔다.

면담 이후 신 준비위원장은 기자회견에 참여한 이들에게 이 같은 내용을 설명한 후 “오늘 회견을 공식적으로 마친다”고 말했다.

지난 9월 16일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는 영화 ‘F20’의 상영을 반대한다는 주장의 청원이 올라왔다. 영화가 상영되기 훨씬 전의 일이다.

청원인은 “아무리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상업영화라 할지언정 F20으로 호기심을 유도하고 ‘미쳤다’는 자극적인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한 질환에 대해 공격적이고 선정적인 출발을 한 것”이라며 “병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는 일반 국민들에게 조현병에 대한 그릇된 편견을 심화시켜 조현병 환우와 가족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청원인은 또 “‘F20’은 상영 전부터 그 홍보에서 상업적 성공만을 목표로 특정 질환에 대해 잘못된 내용을 전파하고 있다”며 “유례가 없는 특정 병명 질병코드를 제목으로 사용하고 있는 바 이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영화를 관람한 이들의 리뷰 역시 인터넷 커뮤니티에 속속 올라오고 있다. 조현병 당사자 가족들의 커뮤니티 모임인 ‘심지회’의 한 회원은 “이 ‘F20’ 영화가 제작 발표회 때 밝힌 (상처를 주거나 부정적 인식을 일으키면 안 된다는) 의도를 정말 실현한 영상물일까”라며 “저는 단연코 노(No)다. 한마디로 이 영화는 쓰레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밝혔다.

그는 “(홍 감독이) 도시에서 한 인물이 일상에서 밀려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는데 사회적 약자들을 일상에서 몰아내는 데 앞장서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라며 “당신은 창작과 표현의 자유라는 칼날로 힘들게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 조현병 당사자와 그 가족들을 난도질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가”라고 질타했다.

이어 “자신의 범죄를 감추기 위해 경화의 시신을 캐리어에 넣어 유찬이게 전달하고 조현병을 앓는 유찬이 엄마를 살해한 것처럼 죄를 뒤집어 씌우는 인물로 애란을 묘사함으로서 조현병 자녀를 둔 부모들을 인간성을 상실한 악(惡)의 인물로 화면에 담았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 영화는 의미 있는 메시지 전달이 없는 어설픈 조현병 정보로 ‘조현병의 모든 것'이라는 책 한 권을 읽고 마치 박사라도 되듯 오만방자한 자세로 잘못 만들어진 쓰레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 나의 관람 후기”라고 밝혔다.

또 다른 온라인 커뮤니티의 한 회원은 “홍은미 감독은 주변에 조현병을 앓고 있는 환자나 보호자가 한 명도 없었음이 틀림없다”며 “자신의 가족이 아팠다면 이따위 영화를 만들었을 리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난 뭘 기대한 걸까? 그래서 조현병 환자는 망상에 의해 자신의 아들도 죽일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라며 “환자나 보호자가 본다면 더욱 더 상처받을까봐 피했으면 하는 영화이고, 최악의 영화였다”고 토로했다.

장추련 등 단체들은 요구 조건인 ▲‘F20’ 영화의 지상파 방영 등 모든 매체 즉각 방영 중단 ▲‘F20’ 제작에 대한 KBS의 공개적인 사과 ▲장애인 혐오 내용 제작에 대한 재발 방지 대책 마련 등을 KBS 측이 수용하지 않을 경우 일인 시위와 천막 시위 등 장기적 투쟁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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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인 2021-10-25 20:39:20
미국같은 경우 아웃라스트나 고담도 방영되긴 합니다. 상영중단에는 많은 논쟁이따를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