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 칼럼] 노희정 “약물에만 의존하기보다 인간관계 등 일상성에서 의미를 찾아야"
[당사자 칼럼] 노희정 “약물에만 의존하기보다 인간관계 등 일상성에서 의미를 찾아야"
  • 노희정
  • 승인 2021.10.11 19: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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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물 처방 초기 부작용 지나면 회복 단계로 넘어갈 수 있어
부작용 적은 신약 좋지만 의료급여 수가로는 ‘그림의 떡’
희귀난치질환 환자에 적용되는 ‘산정특례제도’ 적극 이용해야

정신질환의 치료를 위해서는 약물치료가 필요하다. 정신과 약은 결코 평생 먹어야 하는 극약물이 아니다. 약물이 몸에서 적절히 작용하고 증세가 호전되면 더이상 약물치료를 중단해도 일상적인 생활과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건강을 되찾을 수 있다.

하지만 약물치료를 끊는 이 시기가 정신과 치료에서 가장 중요하다. 다시 재발하게 되면 다시금 약물을 복용해야 증상이 발현되지 않을 정도의 시간이 더 길게 필요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입원 치료를 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흔히 정신과 약은 머리가 멍해지고 회전이 안 되게 만들며 중독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결코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약 복용 후 나타나는 변화는 병의 증상을 호전시키기 위한 첫 번째 처방이지 결코 영원히 계속되는 것은 아니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고 머리에 돌덩어리가 들어있는 것 같고 남들에겐 들리지 않는 소리가 들리고 잠을 못 자고 끊임없이 생각이 멈추지 않는 것은 처음 발병 때 겪는 병의 증상 때문이다.

이렇게 과도하게 활동하고 교란이 된 뇌를 어느 정도 쉬게 하고 호르몬의 균형을 잡으려는 방편으로 쓰이는 약물이기에 오히려 머리가 돌아가지 않고 졸리고 행동이 느려진다.

이 시기를 잘 넘기고 호전되면 다시 생체 리듬이 안정되고 망상을 망상이라고 인식하게 되고 환청과 환시가 결코 자신을 파괴시킬 수 없다는 것에 안심하게 될 정도로 회복될 수 있다

어쩌면 환자의 치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치료를 하고 어떤 약물을 처방할지를 결정하는 의사를 만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50~60년대에 개발되어 승인되고 시판된 약물을 복용해서 치료 효과를 보는 환자도 있지만 수십 년 넘게 약물을 바꾸고 치료해도 점점 만성적으로 굳어가는 환자들도 있다.

이렇게 치료가 쉽지 않은 환자들 중 신약을 복용함으로써 뚜렷한 호전을 가져오는 환자들이 많다.

부작용도 없고 효과가 좋은 신약이 모든 환자에게 처방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문제는 의료수가이다.

의료급여는 한정되어 있고 만 원 이상의 급여를 국가로부터 지원받지 못하는 병원에서 처방한 약물의 미흡한 치료 효과와 약물들이 가져오는 부작용에 많은 환자들이 고통을 겪는다.

의료급여를 받는 수급자들을 위한 정책이 오히려 환자의 치료를 돕지 못하고 역효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또한 신약을 복용한다 해도 한 알에 이천 원인 신약을 하루 네 알씩 먹어야 회복되는 환자 중 약값을 감당할 수 있는 환자는 과연 몇 퍼센트나 되겠는가?

그래서 도입된 제도가 희귀성 난치 질환 환자들에게 적용되는 '산정 특례 제도'이다.

진료비와 약제비를 10퍼센트로 경감해 주는 제도로 이를 통해 치료를 중단하지 않고 계속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환자들 중에서 이 제도를 모르는 이들이 있고 의사들도 희귀성 난치 질환 대상자나 산정 특례 제도를 환자에게 자세히 알려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약물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가지지 않는 의사들은 신약 대신 늘 처방하던 약들만 쓰기에 환자들은 다양한 약물의 효능을 경험하지 못할 수도 있다.

최근 조현병 치료 약물로 새롭게 개발된 클로자핀은 그야말로 치료를 위한 최후의 극약 처방이라 할 수 있다,

클로자핀은 몸속의 적혈구 생성을 막는 치명적인 부작용이 있는 약이다. 적혈구 감소로 백혈병에 걸려 사망할 가능성도 있기에 주기적으로 백혈구 수치 검사를 받아야만 한다.

클로자핀의 부작용은 그뿐만이 아니다. 하루 종일 잠만 자기도 하고 침이 계속 흘러나오고 걷고 외출하는 일상생활을 하기도 힘들고 일시적으로 기억력을 잃기도 한다. 차마 인간으로서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다.

하지만 일 년 이상 이런 부작용들을 감수하며 꾸준히 복용하면 환청, 망상이 사라지고 크게 호전되어 약을 먹으면서도 사회생활을 할 수 있고 다른 약물로 바꿀 수도 있게 된다.

조울증 환자에게 있어 우울증약의 용량은 매우 중요하다. 극심한 우울기에 용량을 높여 효과를 볼 수도 있지만 자칫 조증 증상으로 바뀔 수도 있다.

도파민에 작용하는 약물 또한 적절한 용량에 대한 세심한 판단이 중요하다. 도파민 생성을 위해 용량을 적정 용량보다 높이면 오히려 도파민 부족 상태와 같은 부작용이 발생한다.

물론 우리가 흔히 복용하는 감기약도 위장약도 변비약도 모두 부작용을 가지고 있다.

기침약 부작용으로 손이 떨리고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증상을 경험할 수도 있고 위장약의 부작용 중에도 아주 미미한 경우이지만 소화 장애가 따를 수 있다.

진통 주사로 매우 흔히 쓰이는 트라마돌 주사액은 약물에 대한 과민성이 있는 환자에게 주입되었을 때 구토와 함께 몸이 전기 충격을 받은 것처럼 경련을 일으키기까지 하여 응급실로 실려 가기도 한다.

이러한 약물의 이중성, 약물의 아이러니함을 감수하고 꾸준히 향정신성 약물을 복용해야 하는 당사자들은 이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단시간에 약물의 효과가 없다고, 부작용이 따른다고 해서 약물 복용을 중단한다면 재발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고 그렇다고 약물에 지나치게 비중을 두어 의존한다면 약물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경우 어떤 희망을 가질 수 있겠는가?

약물 복용이 필요하다고 해서 오직 약물에만 의존하고 있어서만은 절대 효과적인 치료가 되지 않는다. 그러기에 약물의 효과를 증대시키고 증상을 호전시킬 수 있는 소소하지만 구체적인 방법과 대안들을 늘 꾸준히 찾는 것이 필요하다.

취침 시간과 기상 시간을 규칙적으로 하고, 개인위생 관리를 하고, 영양분이 뇌까지 공급돼야 하므로 하루 세끼 밥을 때맞춰 먹고, 세로토닌 생성을 위해 햇볕을 쬐고, 운동을 하고, 적절히 뇌를 쓰는 일과 일상생활을 위한 집안일들을 조화롭게 하며 성실하게 하루 일과를 꾸준히 만들어 지속시켜 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 당사자 동료, 친구들과 함께 친밀하고 진실된 인간관계를 맺으며 유대감을 확인하는 것은 약물치료에만 의존하는 대신 정신 건강을 증진시키는 가장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함께 나누고, 도움을 주고받고, 서로 소통하며 지지하는 당사자들 간의 화합과 사랑을 통해 일상의 활력과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다면 약물이 주는 효과만큼 당사자인 우리 모두를 건강하게 일으킬 수 있는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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