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형 기자의 변론] '조현병 환자'가 아니라 '조현병을 가진 사람'으로 불러주세요
[이관형 기자의 변론] '조현병 환자'가 아니라 '조현병을 가진 사람'으로 불러주세요
  • 이관형 기자
  • 승인 2021.10.17 18: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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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병을 강조하는 표현은 조현병 자체를 낙인찍는 것과 같아

뉴스에서는 조현병과 관련된 사건사고에 대해 다음과 같은 제목으로 보도합니다.

"조현병 운전자 고속도로 역주행... 3명 사망" (연합뉴스. 2019. 06. 04.)

“손녀 해칠까봐 조현병 딸 살해” 70대 아버지에 징역형 (조선일보. 2021. 10. 06)

"행인 흉기로 위협. 70km 도주.. 40대 조현병 의사 집유 선고" (경인일보. 2017. 12. 11)

출처 : pix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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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기사의 제목에서 단어 선택 문제에 대해 짚어 보고자 합니다.

최근 사회적 분위기는 ‘여직원’, ‘여의사’, ‘여교수’, ‘여경찰’과 같이 표현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바라봅니다. 여러 직업군 앞에 굳이 ‘여’라는 단어를 넣어서 구분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죠.

아니면, 남자에 대해서도 동등하게 ‘남직원’, ‘남의사’, ‘남교수’, ‘남경찰’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게 맞겠죠. 물론 ‘남’자를 앞에 넣는 단어들이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남자와 달리 ‘여’자를 넣어 여성을 따로 구분하는 것에 익숙했던 것이죠.

앞서 소개한 기사 제목에서는 ‘조현병 운전자’, ‘조현병  딸’, ‘조현병 의사’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마치, 앞에 ‘여’자를 넣어 여성임을 강조한 단어들처럼 말이죠.

굳이 ‘조현병’이란 단어를 앞에 넣어야 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입니다. 아마도 ‘운전자 고속도로 역주행’, ‘손녀 해칠까 봐 딸 살해’, ‘40대 의사 집유 선고’라고 제목을 지으면 밋밋하고, 사람들에게 자극적으로 다가오지 않았을 겁니다.

또한 단어와 단어가 합쳐져서 새로운 단어를 탄생시키기도 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단어의 반복적 사용은 사람들에게 익숙하게 만들죠.

예를 들어, ‘암 운전자’, ‘암 딸’, ‘암 의사’라는 단어는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아무도 이런 식으로 단어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죠. 대신 ‘암을 앓고 있는 운전자’, ‘암을 겪고 있는 딸’, ‘암을 가진 의사’라는 표현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출처 :  pix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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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점에서 언론들이 뉴스 제목에 ‘조현병을 앓고 있는 운전자’, ‘조현병을 겪고 있는 딸’, ‘조현병을 가진 의사’라는 표현을 쓰는 게 더 적절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사람은 저마다 복잡하고 다양한 특성과 차이를 갖고 있는데 ‘조현병 운전자’와 같은 표현은 그 사람의 특징을 조현병 하나로 단정하고 낙인 찍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조현병을 가진 운전자’가 조현병을 그 사람이 가진 여러 특성 중 하나로 받아들여질 것입니다.

지난 10월 1일, 헬스데이(HealthDay) 뉴스라는 해외 매체는 한 연구 논문 결과를 소개하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오하이오 주립대학의 그라넬로(Darcy Haag Granello) 박사와 고비(Sean R. Gorby) 박사는 오하이오 주에 있는 251명의 상담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출처 : pix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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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집단에는 ‘조현병 환자(schizophrenic)’란 단어를, 다른 집단에는 ‘조현병을 가진 사람(people with schizophrenia)’이란 단어를 사용하여 측정 도구를 제공했습니다.

그리고 설문 결과 ‘조현병 환자’라는 단어를 사용한 집단은 조현병에 대해 더 권위적이고, 불친절한 태도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반대로 ‘조현병을 가진 사람’이란 단어를 사용한 집단은 조현병에 대해 비교적 관용적이고 호의적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연구 결과처럼, ‘조현병 환자’와 ‘조현병을 가진 사람’이라는 표현이 언뜻 보기에 큰 차이가 없어 보이나, 지속적으로 사용하다 보면 사람의 마음과 생각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전문가들이 평소 당사자에 대해 어떤 자세와 마음 태도를 가졌느냐에 따라, ‘조현병 환자’ 혹은 ‘조현병을 가진 사람’이라는 단어로 달리 표현하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언어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은 막대합니다.

오늘날, ‘여직원’, ‘여의사’, ‘여교수’, ‘여경찰’ 이라는 표현이 적절하지 못하다고 여겨지는 것처럼, ‘조현병 운전자’, ‘조현병  딸’, ‘조현병 의사’라는 표현도 과연 합당한 표현인지 논의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참고 기사

HealthDay news (2021.10.1.) Better Attitudes Seen When ‘People With Schizophrenia’ Phrase Used. Psychiatry Advisor.

https://www.psychiatryadvisor.com/home/topics/schizophrenia-and-psychoses/better-attitudes-seen-when-people-with-schizophrenia-phrase-u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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