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운 폐원, 인권 치료 표방한 '성안드레아병원'에 무슨 일이 있었나
갑작스러운 폐원, 인권 치료 표방한 '성안드레아병원'에 무슨 일이 있었나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2.01.05 21:33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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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측, 이달 31일자로 폐원 안내…늘어난 적자로 한계 상황 맞은 듯
1990년 인권 치료 표방하며 개원해 당사자·가족 신뢰 형성해와
민간병원 개·폐원은 개입할 수 없는 자율…재개원의 탈출구는 없나

경기도 이천시에 위치한 성안드레아병원이 이달 말에 폐원한다. 이 병원 홈페이지에는 “힘든 상황으로 인해 더 이상 운영할 수 없게 되어 2022년 1월 31일 자로 병원 문을 닫게 됐다”는 공고가 올라와 있는 상황이다. 개원 41년 만이다.

성안드레아병원은 가톨릭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가 운영하는 300여 병상의 국내 최초 개방형 정신병원이다. 지난 1990년 9월 개원한 후 정신병원의 치료 문화를 환자 중심으로 개선하자는 수도자들이 뜻에 따라 한국사회 최초의 ‘개방형 정신병원, 인권 존중 병원’을 지향해 왔다.

이 철학에 따라 병동을 쇠창살로 막는 기존 정신병원들의 감금식 치료가 아닌 강화유리로 바꾸고 개방적인 환경에서 환자들의 치유를 모색해 왔다.

이를 인정받아 이 병원은 지난 2006년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대한민국 인권상을 수상했다. 이는 전국 정신병원과 정신의료기관 최초의 수상이다. 이어 2013년에는 우수 인권교육기관으로 선정돼 보건복지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성안드레아는 김대건 신부의 세례명을 딴 병원 이름이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폐원에 이 병원을 이용했던 내원자들과 가족들도 의아해하는 실정이다. 병원 측은 폐원일인 이달 31일까지 입원 치료 중인 환자들의 퇴원과 전원을 지원하고 전원 의뢰서 및 제 증명서류도 필요한 내담자와 가족에게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신규입원 진료는 지난해 12월 27일 종료됐고 외래진료는 이달 28일 종료된다. 셔틀버스 운행도 같은 날 동시에 끝난다.

이 병원은 지난해 11월 25일 2022년도 정신건강사회복지사 2급 수련생을 모집한다는 공고문을 올린 바 있다. 당시 필기시험과 면접을 지난해 12월 15일에 진행한다는 요강도 들어있었다.

이 요강대로 한다면 수련 기간은 올해 3월부터 2023년 2월까지다. 면접 날짜를 보면 적어도 지난해 12월까지는 폐원이 대외적으로 논의되지 않았다는 걸 의미한다.

또 한 취업포털에는 지난해 12월 6일, 성안드레아병원이 안내데스크 직원을 채용한다는 구인 정보가 올라와 있다. 공고마감은 지났지만 마감일이 12월 24일까지였다는 점을 미뤄볼 때 역시 지난해 말까지는 폐원을 할 계획이 없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성안드레아병원은 인권 기반의 치료 시스템을 한국사회 정신병원에 접목하려던 1세대 정신병원이라고 할 수 있다. 알코올의존증 전문 정신병원으로도 알려져 있지만 통상적으로 조현병 등 정신질환을 치료하는 병원이다. 한때는 몇 달을 기다려야 입원할 수 있을 정도로 상시 만실로 유명세를 탔다.

정신건강의학과 A 전문의는 “내부 소식을 자세하기 알 수는 없지만 폐업 원인은 누적돼 온 적자와 탈원화 정책으로 인한 시설 기준 강화 때문으로 알려지고 있다”며 “병원은 대부분의 기간 동안 만실이었고 환자들은 수개월 대기가 밀렸지만 병원은 적자를 감당하지 못했고 새로운 시설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문을 닫는다”고 전했다.

그렇지만 늘 만실로 꽉 차 있던 병원이 ‘적자’를 이유로 폐원한다는 건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 대목이다. 성안드레아병원이 적자 경영으로 인해 문을 닫는다면 이 병원보다 인권적 치료가 미흡한 민간 정신병원은 더 일찍 문을 닫아야 하지 않는가라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마인드포스트>는 상황을 알기 위해 병원 측에 수차례 연락을 취했지만 고객상담 메시지만 나올 뿐 전화를 받는 직원은 없었다.

그러던 중 5일 어렵게 이 병원 강길준 원장과 통화가 이뤄졌다. 하지만 그는 답변을 거부했다.

다음은 전화 통화 내용이다.

강 원장: 네. 폐원 결정은 한 달 조금 넘었어요. 지금 공식적으로 얘기하는 게 안 돼 있어서 저한테 묻지 마시고 제가 말씀드리기 뭐합니다.

기자: 이 병원이 인권상까지 받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갑작스럽게 폐원을 하게 돼서 그게 좀 궁금해서.

강 원장: 저는 사실 드릴 말씀이 없고요. 공식적 얘기는 수도회나 다른 외부에서 나올 거 같고요. 제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전화번호를 아셔야 하는지 모르겠고요. 아무튼 솔직히 저는 공식적으로 드릴 말씀은 없고요.

기자: 설명을 해 주실 곳이 있으면 소개를 좀.

강 원장: 없습니다.

그는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었다.

지난해 11월, 정부는 정신의료기관 집단감염 방지 및 안전관리 강화를 위한 시설 기준을 대폭 강화했다. 정신병원 내부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하고 면역력이 취약한 환자들이 잇따라 사망하면서 정부가 내놓은 대책이다.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에는 입원실 면적 확보, 병상 수 제한, 300병상 이상 격리병실 설치 등을 의무화했다.

특히 입원실 당 병상 수를 기존 10병상에서 6병상 이하로 줄이고 병상 간 이격 거리도 1.5m 이상 두도록 했다.

입원실에 화장실, 손 씻기 및 환기 시설도 설치하도록 했다.

그런데 이 개정안은 신규 정신의료기관의 경우 즉시 시행하도록 했지만 기존 정신병원은 올해 12월까지 기준을 충족하도록 했다. 유예 기간을 둔 것이다. 이 개정안의 입법예고 기간이 이달 5일까지인 점을 비춰볼 때 성안드레아병원이 정부의 ‘시설 기준 강화’ 조치 때문에 폐업한다는 것 또한 납득하기 어려운 지점이다.

게다가 개정안은 병상수를 6병상으로 규정했지만 이는 2023년 1월까지 기간을 두고 있으며 그 동안은 병원 병상 수를 8병상으로 두는 것을 허용했다.

이에 대해 정신의료기관협회 측은 병상 이격 거리를 줄이고 병상 수를 줄일 경우 1만3000명의 입원환자들이 퇴원 조치돼야 하는 실정이라며 정부 개정안에 반발했다.

반면 정신장애 인권 단체들은 입법 예고안이 그대로 시행되고 정신의료기관에 적용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같은 상황을 볼 때, 시설 기준 강화 때문에 성안드레아병원이 갑작스럽게 문을 닫는다는 점은 질문이 던져질 수밖에 없는 지점이다.

지난 2018년 3월, 국내 첫 정신병원인 ‘청량리정신병원’이 개원 73년 만에 폐원했다. 당시 병원 측은 혐오 시설이라는 주민들의 반대 목소리를 설득하지 못했고 지속돼 온 경영 악화와 인력난이 겹치면서 폐원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500병상 정도로 운영되던 이 병원에는 시인 천상병, 화가 이중섭 등 당대의 예술가들이 정신적 고통보다는 부랑자라는 이유로 입원해 있었다. 당시의 폭력적 치료 환경을 감안한다면 이들이 이 병원에서 인권 기반의 치료보다는 통제와 억압, 규율에 복종하는 시간을 보냈을 가능성은 충분히 추측해 볼 수 있다.

<마인드포스트>는 청량리정신병원 폐원과 관련해 “이는 폭력적·규율적 정신병원이 한국사회에 정신과 치료 모델에서 사라지는 첫 단계”로 분석한 바 있다. 낡은 치료 시스템이 물러나고 새로운 인권 치료 체계가 구성되는 과도기적 상황으로 본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성안드레아병원의 폐원은 강 원장이 말한 것처럼 “아무 말씀도 드릴 게 없다”로 끝날 수 있는 것일까. 물론 민간병원이 폐원을 하든 개원을 하든 그건 그들의 자율적 결정이다. 다만 열악했던 1990년대 초에 인권 치료를 표방하며 주목받았던 병원이 운영 적자로 인해 문을 닫는다는 것에 많은 이들이 아쉬움을 가지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이 병원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당사자와 가족은 인권 치료를 표방한 더 많은 정신병원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질문을 던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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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은십자가 2022-03-12 21:34:52
정신병원 가고 싶은 사람이 어딨어요?
국가가 인정한 사설 고문기관 성안드레아 정신병원에서
팔다리 묶고 숨 못쉬게 가슴결박하고 비명소리에 잠을 잘 수가 없는 지경인데
양심 없는 사람들이네..

ggyeonu 2022-01-13 20:17:02
아무 말씀도 드릴게 없다는 병원장 이야기를 왜 믿지 못할까? 병원장이 패싱된거라고도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워낙 시설과 체계가 잘 갖추어진 곳이라 최근의 시설기준 강화가 폐원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보기에는 어렵습니다. 패싱했다면 패싱시킨 뭔가가 성안드레아를 여기까지 끌고 온 것인지 아닌지 좀 더 밝혀 나갈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용자 2022-01-06 19:04:37
아니, 이렇게 충격적일 수가요…..? 정말 이 병원은 어뵤어져서는 안될 좋은 곳인데…. 너무 안타깝습니다…. 어떻게 살릴 방법이 없을지;

정신과의사1 2022-01-06 07:23:24
강 원장이 말한 것처럼 “아무 말씀도 드릴 게 없다”로 끝날 수 있는 것일까.

아무 말씀도 드릴 게 없다 = 1년간 절규해도 아무도 듣지 않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