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형 기자의 변론] 라흐마니노프와 정신과 의사 니콜라이 달의 만남, 서로를 치유했던 그들
[이관형 기자의 변론] 라흐마니노프와 정신과 의사 니콜라이 달의 만남, 서로를 치유했던 그들
  • 이관형 기자
  • 승인 2022.02.02 18: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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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발표한 교향곡 혹평 받자 우울증과 작곡에의 두려움 겪어
정신의학자 니콜라이 달과의 만남 "왜 음악을 하나" 질문에 성찰 계기
라흐마니노프와 정신의학자의 만남처럼 상처와 치유로 길로 나아가야
출처 : stienway
출처 : stienway

2015년, 라디오 음악 채널인 ‘KBS 클래식FM’은 한국인이 사랑하는 클래식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라디오 애청자 1천458명이 참여한 조사에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 c단조’가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이어 2위는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5번, 3위는 비발디의 사계가 뒤를 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차이코프스키, 모차르트, 쇼팽의 협주곡들이 많은 사랑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출처 : KBS

이처럼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음악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그 역시도 다른 예술가들처럼 우울증과 신경쇠약으로 정신치료를 받아야 했던 당사자입니다. 32세에 유서를 쓰고 자살을 결심할 정도로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던 베토벤. 라인강에 투신 시도를 하는 등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친 독일의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 환청과 불면증, 경련 등 정신착란에 시달렸던 체코의 작곡가 스메타나처럼 말이죠(이병욱, 2020).

기자는 우연한 계기로 뮤지컬 <라흐마니노프>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생각이 들어 기사로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라흐마니노프는 러시아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네 살 때부터 어머니에게 피아노를 배웠습니다. 큰 손을 이용한 그의 연주 실력과 천재적인 작곡 능력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었습니다. 앞날이 창창한 매우 촉망받는 음악가였죠. 하지만 24세에 발표했던 <교향곡 1번>은 사람들로부터 혹평을 받고 말았습니다. 당시, 이 곡을 지휘했던 글라주노프가 술에 취한 상태로 악단을 지휘했다는 증언도 있었죠(이병욱, 2020).

a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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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교향곡이 실패로 끝나자 그는 우울증에 시달린 채 집에서 은둔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의 곡에 대한 사람들의 야유와 비판은 그로 하여금 새로운 곡을 작곡하는 것조차 두렵고 괴롭게 만들었죠.

훗날 라흐마니노프는 당시 자신의 상태에 대해 “겉으로는 실패와 비판에 대해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사실 극심한 우울증에 빠져 있었습니다. 마치 뇌졸중에 걸린 환자가 오랫동안 마비되어 있다가 손과 뇌를 쓰는 방법을 완전히 잊어버린 사람 같았다”라고 회고했죠(블로그 : 뮤지컬 라흐마니노프의 인물들 4. 니콜라이 달).

이런 그의 집에 한 정신의학 심리학자 ‘니콜라이 달’이란 사람이 찾아옵니다. 라흐마니노프는 니콜라이 달을 차갑고 냉정하게 대합니다. 이미 다른 여러 심리학자와 정신과 의사, 목회자들이 찾아와서 자신의 병을 치료하려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니콜라이 달은 라흐마니노프의 마음을 열기 위해 노력합니다.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하고, 미숙하게나마 라흐마니노프가 작곡한 곡을 비올라로 연주하며 들려주었죠. 라흐마니노프도 니콜라이 달의 비올라 연주에 피아노 연주로 화답을 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둘은 합주를 하며 서서히 마음을 열어가게 되었습니다. 니콜라이 달은 라흐마니노프의 회복을 돕고자 수면 패턴과 식습관에 변화를 이끌었고, 최면 요법과 심리 요법을 병행하였습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다음과 같은 말을 반복해서 들려줬다고 합니다.

“당신은 당신의 피아노 협주곡을 쓸 것입니다. 당신은 아주 잘 해낼 거에요. 협주곡은 정말 훌륭한 곡이 될 것입니다.”

이에 대해 라흐마니노프는 다음과 같이 회상합니다.

출처 : 위키피디아
출처 : 위키피디아

“놀랍게 들릴지 몰라도, 이 치료는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초여름 즈음에 나는 작곡을 다시 시작했다. 이 치료는 새로운 음악적 아이디어를 내 안에서 들끓게 했다.”

그렇게 치료가 순조롭게 진행되던 도중, 뜻밖의 일이 발생합니다. 라흐마니노프는 니콜라이 달에게 한 신문기사를 보여주며, “당신은 왜 나를 치료하려고 합니까?”라고 따져 묻습니다. 신문에는 <니콜라이 달이 자신의 치료 기법의 우수성을 증명하여 선배 심리학자 프로이트를 뛰어 넘고자, 이름이 알려진 라흐마니노프의 병을 치료하는 중>이라는 기사가 쓰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니콜라이 달 역시도 자신과 비교조차 되지 않는 뛰어난 선배 심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로 인해 열등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라흐마니노프의 분노와 조롱 앞에 부정할 수 없는 수치심을 느낀 나머지, 자신의 치료 동기를 인정하고 그를 떠나고자 마음먹습니다.

하지만 집을 나서려는 순간, 라흐마니노프의 절망과 괴로움에 빠진 모습을 보고 발걸음을 머뭇거리게 되죠(아트인사이트, 2018). 니콜라이 달은 라흐마니노프를 바라보며 똑같이 묻습니다.

“당신은 왜 음악을 작곡하려 하십니까? 내가 솔직히 인정한 것처럼, 당신도 내게 솔직히 말해 줄 수 있습니까?”

classicf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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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라흐마니노프는 자신의 과거를 회상합니다. 어려서부터 천재 음악가 소리를 듣던 그는 자신만만하게 모스크바 음악원에 입학합니다. 당연히, 음악원에서도 인정받는 학생이 될 거라 생각했죠. 어떤 교수들은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찬사와 박수를 보냈지만, 어떤 교수들은 그의 음악에 대해 비판을 했습니다.

“너의 음악에는 여러 기교와 기법들이 들어가 있어. 빈틈없이 훌륭한 멜로디와 악기로 채워져 있지, 그런데 네가 하고자 하는 말은 ‘전 이런 음악도 할 수 있어요! 전 저런 음악도 할 수 있어요! 보세요! 나는 이런 멜로디도, 저런 멜로디도 훌륭하게 소화할 수 있어요! 나를 인정하고 칭찬해주세요! 내게 박수를 보내주세요!’라고 억지 부리는 어린아이와 같아.”

출처 : interlude.hk
출처 : interlude.hk

사람들의 칭찬과 비판 가운데 서 있는 라흐마니노프는 음악에 대한 순수한 동기를 잃고 맙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한 음악을 하게 된 것이죠.

그러다 자신이 가장 존경하던 톨스토이의 집에 초대 되어 음악을 들려줍니다. 톨스토이는 그에게 “도대체 이런 음악이 사람들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며 싸늘한 반응을 보입니다. 이에 충격을 받은 라흐마니노프는 더 이상 음악에 대한 열정을 가질 수 없었죠.

니콜라이 달은 칭찬에 굶주려야 했던 라흐마니노프에게 처음 음악을 하고자 했던 진짜 이유를 묻습니다. 그러자 라흐마니노프는 그동안 누구에게도 쉽게 꺼내놓을 수 없었던 자신의 과거를 털어 놓습니다.

“어릴 적, 아버지는 괴물처럼 무서웠어요. 어머니와 누나가 아버지에게 맞을 때면, 제발 그만 때려달라고 바짓자락을 붙잡고 애원을 했죠. 차라리 저를 대신 때려 달라고 말이에요. 그러면 아버지는 저를 발로 차고 주먹을 휘둘렸어요. 차라리 어머니나 누나가 맞는 것보단 제가 맞는 게 마음이 편했거든요.

그러다 술과 도박에 빠진 아버지는 모든 재산을 탕진한 채 우리를 버리고 떠났어요. 심지어 누나는 많이 아팠고, 치료비조차 마련하기 힘들었죠. 전 어머니에게 말하고 싶었어요. 제가 모스크바 음악원에 가지 않을 테니깐, 그 돈으로 누나를 치료해 달라고요. 하지만 그 말을 할 용기가 나지 않았어요. 음악원을 포기 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대신 저는 침대에 누워 죽어가는 누나를 위해 음악을 들려주고 싶었어요. 제가 작곡했던 아름다운 음악을 누나에게 들려주고 싶었어요. 하지만 누나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어요.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고 싶었는데, 누나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어요. 그래서, 다시 작곡을 하고 싶어요. 누나에게 들려주지 못했던 아름다운 음악을 다시 만들고 싶어요.”

출처 : 페이스북
출처 :Facebook Rachmaninoff.Sergei

이를 통해, 라흐마니노프는 자신의 음악에 대한 순수함과 열정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라흐마니노프를 치료하기 위해 왔던 니콜라이 달도, 자기 내면의 열등감과 비교의식에서 벗어나 정신 의학 심리학자로서의 열정과 보람을 되찾게 되었죠. 그렇게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이 연주되며 뮤지컬은 막을 내립니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했던 클래식 음악가 라흐마니노프. 그리고 그를 치료하기 위해 노력 했던 니콜라이 달. 둘은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으면서도 사람들의 판단과 비교에 시달렸습니다.

하지만 둘은 내면의 솔직한 마음과 아픔을 나누면서 서로 치유되고 회복의 길을 걸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후로, 라흐마니노프는 연이어 주옥같은 곡들을 발표합니다. 특히 2015년 한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클래식 <피아노 협주곡 2번>은 자신을 치료해 준 니콜라이 달에게 헌정됩니다. 라흐마니노프처럼 많은 재능을 가진 당사자들이 니콜라이 달과 같은 의사와 심리상담사를 만나 함께 회복의 길을 걸어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출처 : 뮤지컬 라흐마니노프
출처 : 뮤지컬 라흐마니노프

<이 기사는 기자가 뮤지컬 ‘라흐마니노프’의 내용과 관련 자료들을 바탕으로 일부 각색하여 작성했습니다.>

 

<참고 문헌>

이병욱 (2020). 위대한 환자들의 정신병리. 학지사.

뮤지컬 라흐마니노프의 인물들 4. 니콜라이 달 (2018.07.01.)

https://leerestelle.tistory.com/57

아트인사이트(2018.07.08.)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360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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