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희정 칼럼] “자살예방센터에 전문가 넘쳐나도 인간 본성인 공감 없으면 자살 못 막아”
[노희정 칼럼] “자살예방센터에 전문가 넘쳐나도 인간 본성인 공감 없으면 자살 못 막아”
  • 노희정
  • 승인 2022.02.27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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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예방센터 연락해도 공감 없는 대응…전문성보다 따스함 필요
인간이 죽음에의 자유의지를 성찰하고 막게 만드는 감정은 ‘공감’
스위스, 안락사 진행 중 최종 단계에서 다시 살려는 이들 많아
(c)www.folha.uol.com.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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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3.

1577-0199.

129.

이 번호들 중 한 곳에라도 전화를 걸어 봤던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나라에서 계획하고 운영하는 자살예방센터 시스템이 얼마나 허술하고 허울뿐인 형식적 장치인지.

모두가 잠들어 있을 새벽. 키패드 위의 숫자 네 개. 1393.

“전화 주신 분의 가장 가까운 상담 센터로 연결합니다. 동의하지 않으시면 0번을 눌러주세요.”

그리고 시작되는 상담.

누군가의 S. O. S인데도 말의 마침표를 찍기 전에 먼저 요약을 해버린다. 이미 알고 있는 의례적이고 형식적인 말들….

“그럼 다른 대기자가 많아서 이만 끊겠습니다.”

통화가 끝났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의 시간, 아무런 공감도 없는 상담자의 목소리는 무엇을 예방하고 바꿀 수 있을까?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인간에게는 두 가지 욕구가 있다고 했다.

살고 싶은 욕구와 죽고 싶은 욕구. 여기에서 욕구라는 말은 적절치 않은 학술 용어 같다. 두 욕구는 서로 치열하게 다투며 공존하는 실존적 인간의 현상이다.

인간에게는 자유 의지가 부여되었다. 태어남은 스스로 선택할 수 없지만 죽음은 그 영역 밖으로 남겨졌다. 이건 아주 위험하고 사회에서 금기시되고 종교에는 위반되는 이론이기에 접근하지 않으려 하고 차단한다. 하지만 우린 죽고 싶다는 말을 생각보다 앞서서 습관처럼 내뱉는다.

죽고 싶다는 욕구. 자유의지. 자신의 죽음을 결정할 수 있는 인간의 존엄권.

매우 형식론적이지만 동시에 아주 단순하다.

스위스는 국내인뿐만 아니라 외국인에게도 안락사를 허용하는 국가다. 우리나라에서 생각할 수 있는 범주의 안락사는 말기 암으로 고통받는 환자나 뇌사 상태의 환자들 그리고 ‘사전 연명 의료 의향서’를 건강보험공단에 제출한 환자들이지만 스위스에서 안락사의 범주는 더 넓다.

스위스의 ‘디그니타스’는 비영리 재단으로써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권을 마지막 순간까지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는 이념 하에 안락사의 범주에 더 이상 치료가 될 수 없는 불치병 판정을 받은 환자, 더 이상 지속되는 질병으로 인한 고통을 견뎌내기 불가능한 환자들이 그 대상에 포함된다.

‘디그니타스’는 병원이 아니며 창립자는 인권 변호사이다. 회원제로 운영되며 신청자뿐 아니라 가족들과도 사전에 충분한 의견을 나눈다. 불치병이라는 의사의 진단서가 필요하며 타당한 신청 사유와 살아온 히스토리도 참조한다.

신청한 회원들에게 수년간 교육을 통해 꼭 죽음을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지를 다시 한 번 되집어보게 하고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도 있는 자신의 삶을 그려보게끔 한다.

실제로 일반 주택 침실에서 가족들과 지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지막을 선택하려는 순간 결심을 바꾸는 회원들이 더 많다는 사례는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

자살예방센터.
자살예방상담전화

인간의 죽음을 부추긴다는 비판 속에서 디그니타스의 대표는 “디그니타스가 없어지는 것. 그것이 디그니타스의 목표”라고 말한다. 결국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디그니타스의 진정한 설립 취지인 것이다.

우리는 타인의 생각을 옳다, 그르다로 나누어 함부로 말할 수 없다. 감정은 더욱 그러하다. 밝음과 긍정만 가져야 하고 그 감정만 좋은 것이라고 인정하며 우울하고 부정적인 감정은 외면하고 터부시한다면 걸려온 전화 속 누군가의 존재는 사라진다.

통화를 하고 있는 누군가는 틀린 것도 나쁜 것도 아닌 그냥 감정이고 생각이며 단지 그 사람일 뿐이다. 누구도 죽음을 권하지 않지만 타인의 말을 듣는 대신 우리는 자신의 말만을 우선 하려 한다.

인간의 죽음을 막기 위한 장치, 인간의 죽음에 관해 성찰하게 하는 단체. 이 모두에는 타인의 감정을 나의 감정처럼 받아주는 ‘공감’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자살예방센터에 사회복지사뿐 아니라 심리 상담사, 의사가 투입되어 24시간 풀가동되어도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과 실습을 갖춘 전문성 보다 타인의 마음을 오롯이 이해해주는 따스한 인간의 본성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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