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의 ‘흉기 든 정신질환 어린이’ 보도를 규탄한다
KBS의 ‘흉기 든 정신질환 어린이’ 보도를 규탄한다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2.03.06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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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응급 상황의 공적 이송체계 문제를 다루지 않고 위험성에만 치중한 보도
보호의무자에게만 정신질환자의 보호와 방어를 전가하고 국가는 방기해
고작 10살짜리 아이에게 ‘정신질환자’라는 낙인을 찍어야 했나
보도의 본질은 강제입원 아닌 ‘살인자’인 조현병 당사자들에 낙인찍기
(c)KBS뉴스 화면 갈무리.
(c)KBS뉴스 화면 갈무리.

열 살된 아이가 한밤중에 엄마를 흉기로 위협했다. 그 아이는 정신질환을 갖고 있다고 했다. 어떤 정신질환일까.

지난 3일, KBS는 이 사건을 보도했다. 그리고 응급입원(강제입원)이 되지 않은 상황을 분석했다.

상황 전개는 이렇다. 이제 잘해야 초등학교 저학년인 아이가 밤중에 엄마를 향해 흉기를 들이댔다. 전에도 아이는 엄마에게 위험한 행동을 했다고 한다. 엄마는 112에 신고했고 집에 도착한 경찰은 아이에게 위급한 정신질환 증세도 없고 자·타해 위험성이 없다는 이유로 응급입원 대신 사설 구급차를 보내 정신과 병상이 있는 병원으로 가게 했다.

아이 엄마는 아이를 데리고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도착했다. 하지만 병원 측은 강제입원을 위해 전문의 진단이 있어야 하는데 야간에 당직을 서는 전문의가 없었다고 한다.

현행 정신병원 입원 유형은 자의입원과 비자의입원이 있다. 자의입원은 주체의 개인적 판단에 의해 입원을 하고 퇴원도 자유롭다. 동의입원은 주체의 판단과 보호의무자의 동의에 의해 입원으로 자의입원으로 분류된다.

비자의입원은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 응급입원, 행정입원이 있다.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은 보호의무자의 동의와 의사의 진단이 있으면 당사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입원시키는 제도다.

그리고 행정입원은 지자체장이 전문의의 동의를 얻어 입원시키고, 응급입원은 경찰이 전문의 동의를 얻어 입원시키는 유형이다. 행정입원과 응급입원은 입원 요건으로 정신질환 증세를 보일 것과 자·타해 위험성이 동시에 있을 것을 요구한다. 정신질환 증세가 있어도 위험성이 없다면 경찰은 돌아서야 한다.

KBS 보도에 따르면 엄마는 경찰이 불러준 사설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갔고 병원 측은 당직의가 없다는 이유로 응급입원을 거부했다.

아이 엄마는 “병원 측이 진료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강제입원이 어렵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정신건강복지법 제50조는 경찰이 응급입원 대상자를 병원까지 호송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경우 병원장은 정신과 전문의에게 진단하게 하고 그 결과를 보호의무자에게 서면 통지하도록 하고 있다. 행정입원의 경우 보호의무자가 없는 경우가 많아 지자체가 입원비 등을 부담하도록 하는 법안도 지난해 통과됐다.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 시 병원은 입원 신청서와 보호의무자임을 확인할 수 있는 서류를 받아야 한다. 급박하게 입원하는 상황에서 보호의무자 서류까지 챙기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더구나 입원이 보통 야간에 일어나는 걸 감안하면 그 시간에 문을 연 동사무소는 없다. 서류 발급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 앞에서 선(先) 입원, 후(後) 서류 제출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절차가 정신건강복지법 규정에 어긋난 입원 방식이다. 실제 지난 2016년 10월에는 경기 의정부에서 입원 당일 서류 미비와 절차 위반을 이유로 전문의들이 무더기로 기소된 적이 있다. 정신병원 입원이 보수화되어가는 이유다.

위에서 아이 엄마가 말한 “병원 측이 진료기록이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는 부분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 어쩌면 병원 측이 “아이 엄마가 증빙 서류를 갖추지 않았다는 이유로 입원을 거부했다”로 고쳐야 할 것 같다. 기자의 몰이해에 의한 문장으로 봐야 한다.

응급입원 상황에서 경찰도 난감할 경우가 많다. 만약 정신질환자가 급박성과 위험성을 갖고 있다면 경찰은 그 환자를 경찰차에 실어야 한다. 문제는 거기서 출발한다.

우선은 정신병원이나 정신과 병동을 갖고 있는 병원들이 야간에 응급 환자를 받는데 거부감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입원 과정에서 고분고분하지 않고 정신적 고통으로 절규하는 환자를 진정시키고 병상에 눕히는 과정은 의료진의 에너지가 많이 소비되는 일이다. 게다가 입원을 시켜도 병원 입장에서는 의료 수가가 많지도 않고 ‘말썽’이 많은 정신과 환자들이라고 보기 때문에 달갑지 않게 여긴다.

정신과 병상이 종합병원과 대학병원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다.

(c)KBS뉴스 화면 갈무리.
(c)KBS뉴스 화면 갈무리.

경찰은 병원이 받아주지 않으면 정신응급 상태에 빠진 환자를 데리고 지역 정신병원들에 연락해 입원 가능 여부를 확인하지만 늦은 밤 시간대의 응급입원 환자를 받으려는 병원은 없다. 그럼 경찰은 서울에서 경기도까지 갔다가 다시 지구대로 돌아와야 한다. 그리고 환자는 지구대 한 곳에서 정신응급 상황을 견뎌야 한다.

응급입원에서 경찰이 겪는 애로 사항의 토로다.

KBS 보도에는 “무조건 강제입원시켜도 안 되는 거잖아요”라고 질문한다. 기자는 “인권 침해를 막기 위해 강제입원 법적 요건이 2017년부터 강화됐다”고 말했다.

1995년 제정된 정신보건법 제24조는 의사 진단과 보호의무자 동의만 있으면 정신장애인의 자기결정권 대신 강제로 입원시킬 수 있는 조항이었다. 당시 이 형태의 입원률이 90%를 넘었다. 그리고 2017년 정신건강복지법이 시행되면서 이 입원률은 30%대로 떨어졌다.

KBS는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할 경우 일부 정신질환자 범죄 위험이 우려되는 것이 사실”이라고 진단했다. 정신질환자는 치료받지 않으면 위험하다는 사회 치안적 시선으로 접근한 해석이다.

보도는 이어 한 연구 결과를 토대로 “부모를 살해한 사건 10건 중 4건은 원인이 정신질환이었고 조현병이 대부분이었다”고 전했다.

여기서 드러난 정신질환자에 의한 사건사고는 부모를 살해하는 천륜을 저지르는 몹쓸 인간들이 바로 정신질환자들이며 이들의 정신과적 진단명은 ‘혐오스러운’ 조현병이었다.

아까 그 아이도 진단명이 조현병이었을까. 알 수는 없다. 다만 그 아이는 정신질환자이며 ‘위험한 존재’로 전환된다는 것이다. 고작 10살짜리 아이가 위험성을 갖춘 존재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 엄마는 강제입원을 시키지 못한 어려움을 토로한다. 아이 엄마는 정말로 아이가 강제입원이 안 된 것을 괴로워하는 게 아니라 공적 이송 체계가 부재(不在)하는 현 정신응급 시스템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부모가 자식을 강제입원시키고 싶겠는가. 그리고 정말 입원을 시켜야 한다면 경찰과 공적 의무를 가진 수송차가 와서 부모와 함께 병원으로 가 진단을 받고 아이를 입원시켜 며칠 간 응급상황이 지나가기를 원할 것이다. 이 간단한 입원 문법이 부재하기 때문에 부모는 부모대로 환자는 환자대로 고통을 겪는 것이다.

그런데 KBS는 강제입원을 시킬 수 없었기에 정신질환자는 살인 등 강력범죄를 저지른다고 이야기를 몰고 갔다.

KBS는 또 강제입원에서 경찰과 지자체에 의한 입원 결정은 열 건 중 2건꼴이었고 나머지 80%는 가족이 나서서 강제입원을 시켰다고 전했다.

현행 정신건강복지법은 보호의무자의 의무 규정을 두고 있다. 절대로 자신과 타인을 해치지 못하게 잘 ‘감독’하라는 조항이다. 장애인복지법에도, 발달장애인권리보장법에도 없는 이 ‘보호의무자’ 개념을 두고 강제입원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문제만 제기하는 것은 타당할까.

발달장애인권리보장법에서 국가는 보호자의 휴식과 정보, 교육 지원을 규정하고 있고 그 형제자매에게도 심리치료를 받을 수 있는 법적 장치를 담고 있다. 그러나 정신건강복지법 제38조에는 가족에게 교육을 할 수 있다는 ‘선언적’ 의미만 담고 있을 뿐 정신장애인의 보호 의무를 모두 가족에게 떠넘기고 있다. KBS는 이걸 알고 있을까.

하루종일 정신장애 당사자를 돌봐야 하는 보호의무자는 부모가 대부분이고 이 끝이 보이지 않는 보호 과정에서 부모형제마저 우울증에 걸려버리는 척박한 정신보건 시스템을 왜 KBS는 보지 못하는 것일까.

이 기사는 오롯이 정신질환자의 위험성에만 시선을 맞춘 편견 기사라고 봐야 한다.

그래서 “통원 치료를 받고 있던 30대 정신질환자가 부모와 형을 흉기로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고 보도할 수 있었던 것이다.

(c)KBS뉴스 화면 갈무리.
(c)KBS뉴스 화면 갈무리.

우리 사회는 정신질환자가 지역사회에서 제대로 살 수 있는 정신보건 서비스의 부재(不在)를 보지 않는다. 다만 일회적이면서 교차적이고 분절적인 정신질환자의 사건사고, 특히 살인과 같은 중범죄를 기사의 고리로 설정해 정신질환자의 위험성을 극대화해 왔다.

그 위험성에 대한 두려움, 혹은 거부감이 이 같은 기사 문법이 여전히 활개치게 만드는 심리적 장치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 10살짜리 아이가 그토록 두려운 존재였을까. 부모는 그 아이를 폭력적으로 강제입원시키지 못해 괴로웠던 것일까. 경찰은 응급입원을 함부로 시켰을 경우 나중에 혹 민형사상 소송을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입원 절차에서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일까.

그래서 정신응급에서의 공적 이송체계의 부재를 문제삼기보다 위험하고 폭력적인 정신질환자를 병원이든 요양소든 집어넣어서 나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광기어린 대중의 언어와 시선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일까.

이제 초등학교 저학년인 그 아이에게 ‘정신질환 어린이’라는 기사 제목을 꼭 달았어야 했을까. 그 아이가 기자 당신의 아이라면 정신질환이라는 낙인의 언어를 그토록 쉽게 붙여줬을까. 아닐 것이다.

어쩌면 기자 당신은 강제입원에서의 문제를 파고 들어가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기사는 정신질환자의 위험성을 본질적 문제로 만들어버렸다. 그래서 감옥 같은 시설에 넣고 나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선동적 언어에 문제의식을 던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핀란드에 오픈다이얼로그라는 치료 체계가 있다. 정신응급 상황에서 환자인 주체와 관계된 이들이 모여 입원에 대해 열린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마지막 입원 결정은 환자 스스로가 하게 한다. 여기에는 정신과 전문의도 입원 결정에 개입할 수 없다.

정신응급에서도 주체인 당사자의 의견을 존중하는 세계적 흐름에서 응급입원인 강제입원만을 문제로 제기하는 것은 KBS가 성찰해야 할 문제다.

아플 때 인권 침해 없이 치료받을 수 있는 정신병원, 공적 이송체계의 확립으로 정신응급 상황의 정신장애인 당사자가 안전하게 병원으로 이송되는 시스템, 당사자가 입원을 스스로 결정하는 시스템, 병원에서 자기결정권이 보장되는 생활, 인권에 기반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에 대한 고민 없이 응급입원(강제입원) 문제만을 지적한 것은, 깊이, 슬프다. KBS를 규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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